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이라고 대답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철학 지식은 철학이기는 하지만 교육철학에 관계된 것이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공자와 맹자,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그 외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교육에 어떻게 적용했는가에 관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들 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내용임에는 다름 없다. 어려웠던 것은 그들이 사용한 자신들만의 철학용어와 개념이었는데 그런 용어적 장벽이 철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분야라고 해도 철학은 재미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허망한 것을 좇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깊이 관련된 학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행하는 사고의 정립과정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생각하는 힘으로서의 철학' '생각하는 과정으로서의 철학'이 철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보고 있는데 그러한 철학을 '동사로서의 철학'이라 명명한다. 

이 책의 구조적 특성을 잠깐 설명하고 넘어야겠다. 거의 모든 철학책이 고대에서 근대의 방향으로 변화한 철학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 책은 근대에서 중세, 고대로 넘어가는 독특한 구조를 지녔다. 또한 철학사상과 철학자에 알맞는 12곳의 도시를 선정하여 말 그대로 철학이 도시를 디자인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서를 즐겨읽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철학에 보다 쉽게 다가가게 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단 여행서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적다. 

만약 이 책이 단순히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논한 책이었다면 나는 아마 이 두 권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들이 쉬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비엔나 편에서 다룬 논리실증주의, 실재와 표상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네덜란드로 피신한 근세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와 헤겔의 이야기들은 한 번 읽어서 모두 이해하기에는 내 앎의 깊이가 너무 얕다. 저자 나름대로는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체적인 사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념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되새김을 해보곤 했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2권의 맨 마지막 장 '고대로 가는 길-로마' 편과 1권의 '철학의 새 천년, 1968년에 시작되다-파리' 편이었다. 고대 철학 부분은 교육철학을 공부하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공부한 부분이라 다시 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파리에서 일어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68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운동의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두 도시에서 다뤄진 철학 이야기 모두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도 한몫한다. 

철학과 관련해서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게 책을 읽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내용을 모두 이해했는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내가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들, 그 도시들에 여전히 살아숨쉬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들. 저자는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의 눈'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철학이 살아숨쉬는 도시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예전' '거기'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철학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네이크 스톤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
제이슨 굿윈 지음, 박종윤 옮김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제이슨 굿윈의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은 제목만 들었지 읽어본 적은 없다. '환관'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어쩐지 가벼운 이미지와 표지에 그려져 있는 야심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책을 읽는 데 표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책의 표지는 나에게만큼은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표지가 이상하면 속이 상하고, 재미없는 책이었더라도 표지가 멋지다면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사람에게 읽혀져야 진정한 제 기능을 하는거야'라고 말하는, 정말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면 기가 차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흠흠.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표지에서 느껴지는 야심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척이나 잘난 척을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왕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소리없이, 때로는 촐싹거리면서 사건 속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는 야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스네이크 스톤] 에 나타난 그는 예상 외로 진중하다. 마치 물같은 느낌이랄까. 흐르는대로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정적인 느낌. 그에 대한 내 편견이 순식간에 깨지면서 이슬람의 신비로운 문화가 나를 책 속으로 이끈다. 

배경은 술탄 마흐무트 2세가 죽음을 앞둔 19세기 중반의 이스탄불. 야심의 친구 조지가 습격을 당해 큰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잇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책방을 운영하는 상인이 살해되고 야심의 친구 팔레브스키와 함께 그를 방문한 프랑스인 르페브르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한다. 르페브르가 야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그 때 르페브르는 야심의 방에 한 권의 책을 숨겨놓고, 훗날 그 책을 발견한 야심은 '헤티라'라는 단어를 단서로 범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술탄에게만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책이 간직한 비밀,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19세기 이스탄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에는 미스터리 팩션을 참 좋아했지만 요즘은 어쩐지 잘 읽지 않게 된다. 별다를 것 없는 소재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 이야기들은 나를 질리게 했고 점차 팩션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만약 이 책이 또 성서 다시 구성하기 등의 이야기였다면 나는 절대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끌어당긴 이 책의 매력은 19세기 이스탄불의 서민적인 모습이었다. 굉장히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을텐데도 야심이 등장하면 금새 조용해지는 듯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새롭게 알게 된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 비밀결사대 등의 이야기도 처음 접해보기 때문인지 흥미로웠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흔히 갖추고 있기 마련인 숨가쁜 추격전이나 스릴은 조금 부족하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약간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 야심을 이해한다면 그런 분위기도 곧 적응이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관이지만 내가 가진 환관 이미지와는 영 다른 남자. 오히려 정적이고 차분한 그의 모습은 추리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것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에서의 야심도 한결같은 모습일지 궁금하다. 

2007년 세계 최고의 추리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그리고 이 책 [스네이크 스톤].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야심의 사건 수사 모습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맘을 이기는 해피맘 - 좋은 엄마를 꿈꾸는 초보 엄마들의 공감 이야기
트리샤 애쉬워스.애미 노빌 지음, 강현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아이를 참 좋아한다. 길을 가다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우울했던 내 기분도 금방 풀려버린다. 통통한 볼, 앙증맞은 손가락과 발가락, 꺅꺅거리며 밝게 웃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사람의 기분을 행복하게 만든다. 아이가 간직한 사랑스러움때문인지,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지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낳고 싶다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그건 결국 꿈에 그칠 일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해도 어려운 육아를 한 사람이 온전히 해낼 수 있을까. 아이가 가진 사랑스러움은 달콤한 꿀같지만 육아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전쟁이지 않을까. 

요즘 한국여자들은 슈퍼우먼, 혹은 원더우먼 컴플렉스에 걸려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힘겨워하면서도 직장과 가정을 지켜내고 완벽하게 일하려고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해서 집안에서의 위상도 높아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종종 같은 직장의 선배분들께 '분홍쟁이씨는 좋겠다, 집에 가면 온전한 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집안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잖아. 나는 애 때문에...' 라는 말을 듣곤 한다. 안타깝고 두려워지는 현실이다. 

여자들은, 엄마들은 과연 슈퍼맘이 되어야 할까. 행복하자고 즐겁자고 한 결혼이고 사랑으로 탄생한 아이일텐데 오히려 엄마들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는 현실. 그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두 여자가 이 책을 썼다. 나는 아직 아이는 커녕 결혼도 안 한 사람이지만 행복한 여성이 되기 위해, 슈퍼맘이 아닌 해피맘이라는 설정을 내 직장에도 응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저자들은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 완벽한 엄마의 꿈을 버리라고 한다. 현실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찾아내고 너무 높은 기대를 갖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육아 방식을 믿고 다른 부모를 경쟁자라 생각하지 말며 아이의 발달에 집착하지 말라고. 원하는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라고 조언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은 모두 각 챕터를 대표하는 소제목인데 이 소제목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을 갖기에 충분한 듯 하다. 중요한 것은 주위의 협조와 완벽해지려는 자신을 버리는 것. 

엄마의 마음이 아니어서인지 완벽히 공감할 수 없었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조언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언젠가 엄마가 될 그 날을 위해 미리 준비해보기에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많은 엄마들이 슈퍼맘이 되려는 욕심을 갖기보다는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 엄마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만큼 소중하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p50 <즐거운 편지>, 황동규  

시는 시험에나 나오는 시험범위의 하나로만 여겨졌던 중학교 시절, 나에게도 마음을 울리던 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중학교 3학년 친구들과 함께 보러 간 영화 <편지>에 등장한 이 시를 한동안 잊을 수가 없어서 시집을 뒤적거렸었다. 그리고 무슨 마음에선지 예쁘게 필사를 해서 다이어리에 고이 남겨뒀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때의 나는 어렸었지만,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영화가 남겨준 감동 덕분에 오래도록 그 시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는 나에게 무척 어렵다. 하고 싶은 말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작품에 대해 이리저리 해석을 하지만 그 소설이, 시가 어떤 의미로 쓰여진 것인지 작가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시들이 강렬한 느낌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아니므로 나처럼 시에 문외한인 사람이 어떤 시를 선별해서 읽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때문에 여러 작가들의 시가 함께 들어있는 모음집은 참 반갑다. 게다가 사람들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시라니, 이번만큼은 시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시에 대해 도전하는 마음을 갖다니 참 어리석다라며 스스로도 자책하며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그만 시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랑에 대한 시이다 보니 언어들이 말랑말랑하다. 읽으면 느낌이 확 오는 시들도 꽤 된다. 하지만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장석남 시인과 김선우 시인의 해설이다. 예전에는 시 뿐만 아니라 해설들도 어려워서 시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분들의 해설은 또 다른 문학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에 마음이 젖고, 해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성미정 시인의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사랑으로 상대가 아닌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모습이 시와 해설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시와 해설을 돋보이게 해주는 삽화 또한 멋지다. 시의 주제와 분위기에 맞도록 때로는 화사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그려넣어진 삽화들은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클로이라는 사람. 앞으로 삽화가 들어간 책을 살필 때에는 꼭 찾아봐야겠다.

여전히 시는 내게 어렵고 소설을 읽을 때처럼 느낌이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시 모음집으로 조금씩 시에 다가가다보면 언젠가 시가 진정으로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시는 어른이 읽는거야 라는 핑계를 대며 시집을 멀리했던 학창시절. 이제는 시집에 눈과 손이 자꾸 닿는 것이 이미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시들이, 좋아질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p34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내겐 기억에 남는 그녀의 작품 두 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꽃보다 아름다워]가 그것인데 두 편 모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랑도 좋다. 삶도 좋다.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가족의 모습은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일까. 깊은 새벽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엄마와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그녀의 산문집이라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 작가와 소통하지만, 진정한 작가의 속마음을 알기란 쉽지 않다. 간간히 출간되는 이런 산문집이야말로 어쩌면 작가의 진실한 모습을 알 수 있는 기회의 창구가 아닐까. 편집 과정에서 얼마나 삭제되고 생략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나마라도 엿볼 수 있다는 것. 나는 참 즐겁고 가슴 벅차다. 친구가 대사가 너무 좋다면서 꼭 보라고 일러주었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친구의 권유에도 노희경 작가가 그리는 사랑의 모습은 익숙치 않아서 남겨두었는데 그 작품에 등장한 대사를 이렇게 책으로나마 일부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삶, 사랑,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는 한 여자,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는 여자를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보는 작가는 마치 나의 모습 같다. 사랑은 나를 가슴 뛰게도 하지만 내게 사랑은 불안과 고민의 다른 이름이다. 나를 다 버리면 사랑이 내게 온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 적어도 사랑이 끝났을 때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내 자신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왜 작가의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라는 말에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작가가 말하는 '사랑하지 않는 자'란 바로 나처럼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만 선택하기에는, 난 너무 속물이다. 작가 또한 사랑만 선택할 수 없음을 알기에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것은 아닐까. 

그런 작가와 나는 너무 닮았다. 사랑에 실패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한동안 슬퍼했던 일을 나는 이제서야 부끄럽게 생각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계절이 바뀌 듯 우리의 인생도 변화를 거듭하며 삶은 계속된다. 마냥 끝일 것만 같은 순간도 진정 끝은 아니다.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아직도 가끔은 슬퍼한다. 그의 마음이 변한 것을. 그리고 내 마음도 변해버린 것을. 

사랑 앞에서 나는 부끄러울 수 밖에 없기에 나는 그녀의 가족 이야기가 더 좋았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신 부모님을 향해 내뱉는 부끄러운 고백들, 출생에 관해 뒤늦게 알게 된 진실,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막내딸로 다시 살고 싶다는 소망들.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갖는 감정이란 그런 것인가 싶었다.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나조차도 부모님을 앞에 대하면 차마 꺼내지 못할 말들이 조금쯤은 있으니. 

이 책을 읽고 나니 노희경 작가가 그저 작가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기쁘다. 드라마를 통해 사랑과 가족, 희망을 전하는 사람. 비록 그녀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지 매일 밤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겠지만, 나는 이 사람이 있어 좋다. 

사랑이 믿음보다 눈물보다 먼저 요구하는 것, 그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예민함이다.-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