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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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끔 잊을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괴로움을 조금 참아야 할 때는 있다. 하지만 그 괴로움조차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 아닐까. 소박하고 따뜻한 감정들, 지금 가진 것이 전부이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 누구나 가질 수 있을 듯 했던 그 추억들이 이 작품에서는 돈 앞에 무참히 깨어진다.

제목 그대로 계획은 간단했다. 추락한 비행기 안에서 4백 40만 달러의 돈을 발견한다-조종사는 죽었고 아무도 비행기가 추락한 사실은 모른다-돈을 숨기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눠서 각자 멀리 떠난다. 단순하게 보였던 시작은 어느 새 얽히고 설켜서 관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엄청난 피를 부른다. 아, 정말 밤에 읽었다면 기분 나쁜 꿈을 계속 꾸면서 잠을 설쳤을 것 같다. 
 

나는 세상 일에는 반드시 주고 받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하면 '댓가'라고 할까. 그것이 내가 로또에 흥미를 갖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돈이 있으면 살짝 즐겁기야 하겠다. 책도 많이 살 수 있고 예쁜 옷이랑 구두에 엄청난 크기의 책장까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물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 갑자기 굴러들어왔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사람 자체가 소심해서인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늘 생각한다. 나라면 도저히 하지 '못'했을 일들을 너무나 담담하게 저질러 버리는 주인공 행크는 계속되는 죄의 무게가 너무 많이 쌓여 이제는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무서운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크가 '평범'이라는 글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죽인 후에도 자신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아내인 사라마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그의 모습은 혹시 나도 행크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저렇게 돌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임신한 아내의 배를 어루만지는 장면은 오히려 쓸쓸하고 기괴하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 나 자신도 나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이 이 작품에서 오싹오싹함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행크가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저지르는 모습에는 긴장감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재.미.있.다. 한동안 손에 든 책들이 잘 맞지 않는 듯 해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다시 시동이 걸릴 듯. 하얀 눈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눈이 가진 깨끗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어둡고 사악하다. 행크가 진창으로 자꾸만 더 빠져들어 갈수록 하얀 눈 또한 어둡고 슬프게 변해가는 느낌이다. 멈춰야 할 때를 모르고 계속 나아가고 말았을 때, 어쩌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가장 빠른 시기임을 이 책이 증명한다.

스콧 스미스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결말을 보고 '최고야!'라고 외치고 말았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돈을 잃는 것보다 더 잔혹한 운명이 무엇인지, 살아있는 지옥이 무엇인지 작가는 완벽하게 보여준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변화되는 주인공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고, 그 덕분에 나까지 목에 올가미가 걸려 끌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남의 것은 바라지 않고, 엄청난 돈벼락도 바라지 않고, 그저 지금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 그리고 추락한 비행기 안에서 돈을 발견한다면, 누가 뭐래도, 당장 신고해야지. 밤에 침대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편안하게 다리를 오므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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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의 지름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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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다보면 엄청난 속도와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 끌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천천히, 쉬엄쉬엄 편안하게 읽을만한 이야기가 끌릴 때도 있다. 요즘처럼 햇빛이 간지럽고 기분이 붕붕 뜨는 때에는 특히. 그럴 때는 동화책이나 그림이 많은 책, 혹은 연작소설집을 읽으면 좋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를 품고 편안하게 누워 배 위에 올려놓고 읽기 시작한 [유코의 지름길].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자. 몇 년 전부터 일본 작가들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나 또한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둘 생겼고, 그 작가의 작품이라면 앞뒤 살피지 않고 일단 구입부터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출간되는 작품 중에는 장편소설의 수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유난히 연작소설집의 수가 증가한 것 같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인 걸까.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단 주어는 '나', 생활 속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편안하게, 혹은 코믹하게 그리는 이야기들은 언뜻 보면 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 듯도 하다. 실제로 작가가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그런 이야기들을 자주 접하다보니 담백함과 편안함이 장점이었던 작품들이 빛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선하고 아기자기하게 느꼈던 분위기를 '에이, 또 요런 거야? 생활이야기라고 해도 뭔가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그릴 수는 없을까?'라며 심드렁하게 생각해버린다. 물론 작가들이 어떤 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 얼마나 머리털 빠지게 고민할 지 짐작은 가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완벽한, 최고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뭐랄까, 새로운 소재와 구성을 간직한 작품의 소개가 절실해진 때라고 할까. 

[유코의 지름길]의 내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도 나이도, 심지어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나'가 서양 골동품 전문점 후라코코에서 아르바이를 하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느긋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매일매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 상상만으로도 따스한 매력이 넘칠 것 같지만 이 책은 조금 독특하다. 표지그림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람의 이미지보다 장난감병정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등장인물들로 아기자기한 맛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문체가 담백하다 못해 넘쳐흘러서 건조함까지 느껴진다. 과연 원서에서도 이런 문체로 쓰여졌을지 그 어떤 때보다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졌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식장에서 'あいまいな日本の私(애매한 일본의 나)’ 라는 제목으로 수상 연설을 한 오에 겐자부로. 그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한 데다 일본의 순문학을 열어갈 이야기라 해서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응, 하기는 나오키상이라든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그 작품들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한 작품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이 기다림이 기쁨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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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모중석 스릴러 클럽 6
딘 쿤츠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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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었는데 '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이 책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릴러는 스릴러이기는 한데 구성이 약간 헐거운 듯도 하고, 긴장감도 부족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한 느낌이랄까. 어쩌면 딘 쿤츠의 '평범한 남자 시리즈' 중 2부인 [벨로시티]를 읽은 지 얼마되지 않아 이 책, 1부인 [남편]을 손에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구성의 비슷한 분위기. 어쩐지 자꾸 고개가 갸우뚱. 

평범한 남자 시리즈는 말 그대로 평범한 남자에게 어느 날 닥친 불운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에게 찾아 든 시련. 사랑하는 아내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가 과연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딘 쿤츠의 작품은 몇 편 읽어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사랑' 때문에 움직인다. 연인과 아내에 대한 사랑,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정 등 그 종류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을 행동하게 했던 것은 늘 '사랑'이었던 듯 하다. 여기, 주인공 밋치처럼. 

이 책이 나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은 사건에만 촛점을 맞추지 않고 스릴러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소재인 '사랑' 에 관해 구체적으로 묻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벨로시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신은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까? 살인도 마다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의 소제목들은 작가가 단순히 사건해결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관한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랑, 좋다. 사랑 때문에 강해지는 남자, 좋다. 하지만 이 책은 스릴러와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어중간하게 놓지 않고 있는 느낌이라. 아무리 지능지수가 좋다고 해도 소박하게 살아온 정원사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킬러 두 명을 순식간에 죽인다거나, 경찰을 제압하는 모습은 평범한 남자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렵다. 게다가 범인들의 정체도 어중간하다. 밋치의 아내를 붙잡고 있던 남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밋치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범인 형 앤슨은 왜 유독 밋치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던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할까. 그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이들이려니 여기지만, 그래도 어떤 행동에 대한 이유는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밋치와 밋치의 아내가 그런 험난한 사건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된 사랑의 감정 또한 미안하게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로 나온다면 그저 그러려니 재미있게 봤을 소재이지만 책으로 보니 자꾸 이런저런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눈에 띈다. 아니면. 요즘 내가 책 보는 재미가 떨어진 걸까. 그래도 억지로 엮어지는 이야기는 별로인 걸 어떻게 해. 미안해서 또 한 마디 해야지. 딘 쿤츠 아저씨, 그래도 전 오드토머스 이야기는 재미있었어요. 평범한 남자 2부도 재미있었구요. 3부는 1,2부보다 더 나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꼭꼭 믿고 있을게요!  요즘 자꾸 작가들을 협박하게 된다. 내 말을 들어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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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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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으로 첫만남을 가졌던 온다 리쿠 여사. 그녀의 이야기들은 판타지, 호러, SF, 혹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괴이함 등 그 소재가 다양하지만 어떤 이야기든 온다 여사가 내뿜는 독특한 분위기는 항상 감돌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차지만 철도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를 달린다거나,  멀쩡한 도시지만 알고보면 하늘 위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실은 그런 느낌들이 어떤 느낌일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뭐랄까, 실제로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다른 세상 속에 속한 듯한 느낌이 갑자기 들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잘은 설명할 수 없지만 아무튼 온다 여사의 작품에는 그녀가 아니면 남길 수 없는 독특한 발자취가 있었답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저이지만 요즘 온다 여사의 작품을 집어들기 전에 느끼는 감정은 '복불복'입니다.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한 번 그녀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그 일의 시초였는데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는 사실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랍니다. 그저 언젠가는 멋진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으려니 하는 마음에 출간되는 작품을 습관처럼 사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나비]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온다 여사는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야기들 속에서 아련한 향수같은 느끼게 만드는 작가라고 표현되는데, 그걸 느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알싸한 느낌은 늘 둥둥 감돌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나비]에서는 앞서 말했던 온다 여사만의 발자취와 그런 알싸한 느낌을 잘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초감각소설, 상상초월, 오감만족' 이라는 선전용 문구가 나타내는 것처럼 저같은 보통사람이 생각해낼 수 없는 이야기들은 많았지요. 하지만 그저 '그걸로 끝!'이라는 느낌만 들었습니다. 어쩌다 생각난 이야기들을 끄적끄적하고 그걸 조금 손 본 뒤에 세상빛을 보여준 듯한. 온다 여사가 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작가가 쓴 듯한. 

물론 그 중에는 온다 여사의 색채가 충분히 살아있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는 맨 마지막 이야기인 <야상곡>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다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손에 들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였어요. 개인 서가에 대한 욕심에 또 한 번 불을 붙인 이야기이기도 했답니다. 

당연히 어떤 분들은 저와 다르게 느끼실 수 있어요. 제가 온다 여사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건지도 모르니까요. 멋진 표지만큼 근사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기를 원한 저의 바람이 충족되지 못해 더욱 아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온다 여사,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그래도 한동안 변함없을테지만  이 사랑이 변하기 전에 부디 분발해 주세요! 이상 협박 아닌 협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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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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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도 제대로 못 보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요괴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귀신이나 유령이라는 단어에서는 어둠의 기운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본 요괴라고 하면 악한 기운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물론 일본 요괴 중에도 [음양사]에 등장하는 귀신들처럼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도 있겠다. 하지만 [음양사]를 제외하고 내가 읽었던 작품들에 등장한 요괴들은 인간들 곁에 머물며 주인을 호위하거나([샤바케]), 여기에 등장하는 호루모 귀신들처럼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호루모 6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이 작품은 '호루모'라는 기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호루모는 일본 교토에서 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경기로 교토대학, 리쓰메이칸대학, 교토산업대학, 류코쿠대학의 4개 호루모 동아리에서 10명이 각각 귀신 100마리를 부려 치르는 경기를 가리킨다. 호루모 귀신은 몸길이 약 20센티미터로 머리가 약간 크고 얼굴 한 가운데에 꼭 오므린 채 튀어나온 주둥이가 있는데 적의 공격을 받으면 이 주둥이가 점점 들어간다. 완전히 들어가면 '뾰로'라는 소리를 내며 소멸하지만 그 전에 건포도를 넣어주면 다시 주둥이가 튀어나오게 된다. 

마키메 마나부의 [가모가와 호루모]의 속편인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단순한 요괴 이야기가 아닌 호루모 귀신들을 부리는 인물들의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 총 6편의 사랑연작소설로 호루모 경기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대학생들의 청춘과 사랑의 고뇌를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호루모 동아리를 통해 만난 여자들의 우정,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할 때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을 패러디한 이야기, 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만난 동아리 사람들의 에피소드 등 소재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라고 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나무 궤 사랑>. 오다 노부나가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베마루와 툭하면 눈물을 울리는 다마미의 시대를 뛰어넘은 풋풋한 사랑이야기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무척 단순한 이야기같지만 (물론 단순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가슴의 알싸함은 책을 껴안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당신을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꿈 세상에 있는 것입니까? 꿈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당신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당신이 알아볼 수 있게 표식을 달고 나타나겠습니다. 아즈치 성에서 바라보는 비와코는 아름답습니다. 당신께 꼭 한 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비와코 표식과 함께 반드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부디 당신도 나를 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p370  
     

교토는 794년부터 약 1,000여년의 시간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으로 문화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천년의 고도라 불리는 교토. 그 교토에서 벌어지는 호루모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달콥쌉싸름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호루모라는 판타지가 맛있게 버무려진 유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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