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르몽드> 에서는 이 작품을 프랑스 장르문학의 신기원을 연 작품이라고 평했지만 나에게는 프랑스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우선 '막심 샤탕' 이 떠오른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는 아주 쪼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막심 샤탕의 <악! 시리즈> 를 읽고 나서는 프랑스 소설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이야기가 대부분 스릴러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속도감과 내용이 프랑스적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여기서 프랑스적 냄새가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나에게만 느껴지는 그런 냄새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르몽드]> 의 극찬을 보고 이 책도 그런 종류일까나, 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는데, 음, 장르문학치곤 조금 어려웠다고 할까. 

이야기는 우고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친구 마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누의 복수를 위해 마르세유로 돌아온 우고는 마누를 죽였다고 생각되는 주카를 암살한 직후 경찰에게 사살된다. 그 후 실종된 그들의 여인 롤. 그 사건을 역시 어렸을 적 친구였던 파비오가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그는 경찰세계에서 완전히 무시당하는 존재다. 마누, 우고와는 어렸을 때 잘 어울렸지만 재미삼아 벌인 강도짓이 한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린 후 그들의 관계는 부셔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소식도 끊고 각자의 삶을 살아온 그들. 한편, 파비오는 아랍계 이민자의 딸 레일라와 오묘한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런 레일라가 실종되고, 며칠 후 시체가 발견된다. 마누와 우고의 죽음, 시체로 발견된 레일라, 그들의 여자 롤의 실종.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 세상에 외롭게 남은 파비오가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어슬렁,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 마르세유. 요렇게만 말하면 어쩐지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이 책에 묘사된 마르세유는 황량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다양한 이민자들,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중심을 이루고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세력 등이 날뛰는 그곳은 말 그대로 토탈 케옵스(대혼란)의 온상지다. 작품은 몇 건의 살인사건과 실종을 해결하려는 파비오 형사 모습 이외에도 이민자 가족들이 마르세유에서 당하는 배척, 어두운 뒷골목의 모습을 음울하게 그려낸다. 그런 묘사 때문에 문체도 무척 건조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파비오에게서조차 '어떻게든지 해결하겠다!'는 결의도 잘 느껴지지 않고 '하다보면 해결되겠지'는 안일한 분위기가 풍긴다고 할까. 색감이나 활동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슬로우로 진행되는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더는 문제될 것이 없었을텐데, 사실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소설이라면 '집중' 이 필요하다. 어떤 단서가 나왔고, 어떤 인물들이 연관되어 있으며,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는 그런 것. 하지만 이 책은 거의 파비오의 반 자서전이다. 어렸을 적 마누, 우고와는 어떻게 어울리게 됐는지, 그들의 여인 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레일라와는 어떤 감정의 교류가 있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누구이며 현재 자신 곁에 있어주는 여자는 누구인지 등. 그런 필요없는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 여자도 좋다, 저 여자도 괜찮다 하는 파비오의 물렁물렁한 태도랄까. 내용도 나에게는 '토탈 케옵스'였다. 

사건은 그냥, 어느 틈에 해결된다. 글쎄, 그걸 딱히 파비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그의 동료 페롤이 더 능력있는 형사로 보인다. 마르세유의 복잡한 상황과 사건을 해결하려는 요소가 잘 버무려지지 못한 것이 흠이다. 아예 마르세유의 상황을 배경으로 완전 사변적인 소설을 썼거나, 그런 상황과 파비오 자신의 문제들을 조금 줄이고 사건해결에만 집중하는 소설이었다면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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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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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상처는 때로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괜찮다고 위로해도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납득하지 않으면 그것이 괜찮은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모든 상처를 치료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서, 혹은 치료하고 싶었지만 시기를 놓쳐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새살이 돋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구멍을 메워버릴 때도 분명 있다. 확실한 것은 그저 메워져있을 뿐인 상처의 구멍은 크기가 점점 커져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길라르가 나흘 간의 짧은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 아구스티나는 그녀만의 광기 속에 빠져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녀가 호텔에 있다는, 체크인할 때 어떤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듣고 그녀의 불륜을 의심하는 아길라르다. 그들 앞에 소피 이모가 나타나 아구스티나를 간호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시점과 인터뷰 형식을 이용해 아구스티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봉인하고 있는 불행은 무엇인지, 그녀를 광기로 몰아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음습한 분위기, 건조한 문체는 이야기를 한층 어둡고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그런 장치보다도 더욱, 이 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구스티나처럼 진정으로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듯 행동하는 그녀의 가족들이다. '이 책은 정말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 있다. 소피 이모와 불륜을 저지른 아구스티나의 아버지. 그 불륜의 증거가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 보이는 가족들의 행동. 특히 아구스티나의 어머니의 반응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그들의 가정은 지킬만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을 포기하면서 지키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그 행동과 그 일이 있은 후의 가정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어째서 아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추측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파격적이고 사실적이지만 나는 그리 큰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콜롬비아의 사회적 상황과 부패, 돈과 권력에 허물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유명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대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는데, 내가 이 작품에 완전히 빠지지 못한 탓일까. 자꾸 '이 작품 안에 자신의 작품이 몇 편 언급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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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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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살짝 꼬집어 주고 싶은 표지입니다. 귀엽다고 생각되어야 할 나이에 한 소녀가 썩소를 짓고 있습니다,네. 머리에 분홍핀을 꽂은 것을 보고 여자아이라 추측했는데, 여자아이, 맞겠죠? 욕심 많게도 한 손에 사탕을 두 개나 들고 있네요. 어린아이답지 않게 옆으로 쭉 늘어진 눈에 뭔가 알 수 없는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헉. 담 위에 올라앉아 있는 강아지를 보세요. 전 처음에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인 줄 알았습니다. 어째 심술궂어 보이는 표정, 이런 표정은 강아지보다는 주로 고양이가 더 많이 짓지 않습니까? 주인을 닮아서인지 역시 눈이 옆으로 쭉! 늘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음흉해보이는 미소까지 주인과 판박이입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놀러오라며 '흐흐흐' 웃다니, 요런 식으로 초대하면 어째 거절하고 싶어질 것 같네요. 

전 오쿠다 히데오 하면 아라부 시리즈보다 [스무살 도쿄]가 더 기억에 남아요. 아라부 시리즈도 재미있긴 했지만 아라부 시리즈를 접하기 전에 [스무살 도쿄]를 먼저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청춘의 기억들이 무척 좋았거든요. 얼마 전에 읽은 [요노스케 이야기]와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저는 유독 추억, 기억, 아스라함, 요런 것들에 약하거든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 가끔은 저를 즐겁게도, 쓸쓸하게도 만들어준답니다. 그런데 [오 해피데이]는 작가를 보지 않고 표지만 봤는데도 어쩐지 느낌이 왔어요! '왠지 오쿠다 히데오 작품일 것 같아'라는 느낌이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이 책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지 예전보다 한층 기대도 했습니다. 

모두 여섯 편의 가족 이야기에요. 그 중에는 옥션에 물건을 팔고 누군가로부터 감사인사를 받으면서 삶의 활력을 찾는 주부도 있고, 아내와 별거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신나게 꾸며나가는 남자도 있고, 건조한 일상을 꿈으로 보상받으려는 여자도 있어요. 실직하면서 가정일의 기쁨을 알아가는 남편과 무작정 일을 저지르는 남편을 걱정하며 잔소리하는 아내, 비판하는 글을 쓰기는 했지만 아내 걱정에 글을 수정하러 달려가는 작가남편도 있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굉장히 평범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전 이런 이야기들이 참 좋아요. 평범한 생활 속에서 잠깐씩 맛볼 수 있는 감동에 대한 믿음, 이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기회, 특별함보다 평범함을 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죠. 

가족이란 뭘까요? 전에  '가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버릴 수 있다면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대답했던 어떤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납니다.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나눠가는 사람들. 저도 때론 부모님의 잔소리에 짜증도 내고 쿵닥쿵닥 다투기도(?) 하며, 동생과도 갈등을 겪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무척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언제 어느 때든 나의 편이 되어주고 위로해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관계죠. 가족이 없다면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에요. 밉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모든 것이 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물어질 수 있는 사람들. 아내와 별거하던 남편이 아내가 찾아온다니까 집안을 정리하고 아내의 취향을 고려해 새로 바꾼 침구커버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장면이 있어요. 정확히는 잘 말할 수 없지만 저는 그런 것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단, <그레이프프루트 괴물>에 나오는 주부의 이야기는 약간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주부의 모습이 불쾌하기도 했는데, '불만은 없다. 그렇게 삼십대를 보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삶의 보람을 찾는 일과도, 자신을 되찾는 일과도 평생 인연이 없을 것이다' 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해졌습니다. 안타깝기도 했구요. 

기본적으로 재미없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동안은 즐거운 기분을 간직하게 해 주는 유쾌한 여섯 가족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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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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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FBI에서 은퇴한 프로파일러가 있다. 최고의 프로파일러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심장발작은 그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고, 죽음을 준비하던 때, 심장을 이식받고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이제 막 수술이 끝나 안정을 찾아갈 즈음 그가 머무는 배로 한 여성이 찾아오고 자신의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며 그에게 매달린다. 자신은 은퇴했다면서 거절하려 하지만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한 마디가 이식받은 그의 심장에 파고든다. "선생님 심장. 그거 제 동생 거예요. 제 동생이 선생님 목숨을 구했어요"

마이클 코넬리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은 [시인] 이 대단하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 유명한 [시인] 보다 [실종] 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이번 달에는 꼭 읽어야지! 했는데 자꾸만 책폭탄이 떨어져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실종] 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의 직업에 관한 작가의 지식도 풍부하고 실종된 릴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이 머리를 굴려 범인에게 대응하는 결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 정도면 마이클 아찌와의 첫만남은 그리 엉망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러니까 요 [블러드 워크] 도 낼름 집어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스릴러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마이클 아찌의 내공이 대단했던 건지 처음의 몰입도는 굉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죽음에서 걸어나온 사람에게 한 여인이 나타나 저런 말을 던진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순간적으로 오싹! 해지면서 책을 읽는 나는 심장수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순간적으로 가슴이 쿵 울린다. 주인공처럼 나도 장기이식은 어쩔 수 없는 죽음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아니라 의도된 죽음, 사악한 의도에 의해 한 생명이 사라진 댓가로 자신이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머물게 된 시간이 아무리 길어졌다고 해도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런 주인공의 고뇌와 범인을 밝혀나가는 그의 집착이 맞물려 은근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도 풍겨나면서 나도 모르게 '으훗' 소리를 연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반으로 향하다 보면 그런 몰입도가 약간 떨어진다. 물론 호기심과 궁금증은 계속된다. 주인공 테리에게 심장을 이식한 사람 뿐만 아니라, 동일 수법으로 당한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이게 과연 연쇄살인일까, 마피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등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보이며 계속 마음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과정이나 단서를 얻게 되는 방법 등이 매우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반면 숨을 헉! 하고 몰아쉬게 되는 긴장감이 다소 부족한 듯 하다. 솔직히 스릴러 소설의 재미는, 머리카락이 삐릿삐릿해지고, 가슴이 두방망이질세방망이질 하는 것을 느끼는 데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뒷심이 아닌 중간힘이 모자른 것 같은 느낌이랄까나. 중반을 넘어서면 사건 해결을 빨리 맛보고 싶어서 속도가 나기는 하지만.  

또 한 가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 있는데, 바로 주인공의 말투다. 미드를 좋아하는 나는 그 중에서 형사물을 즐겨보는 편인데 드라마에 등장하는 프로파일러들의 말투는 이 책의 테리같지 않았다. 드라마의 프로파일러들의 말투가 냉철하고 객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데 비해 테리의 말투는 조금 연약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카리스마보다는 다정하고 자상한 느낌이 더 강했던 듯 하다. '~요, ~요'체를 사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든다. 

밝혀진 진실은,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미드와 스릴러소설을 보며 '나도 언젠가 FBI의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다면 좋을텐데!'라며 불끈 쥐었던 주먹을 다시 펴게 만들 정도였다. 그나마 그의 심장을 희망으로 다시 뛰게 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역시 해피엔딩이 좋다!  꼼꼼한 마이클 아찌, 다음에는 중간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준다면 정말 완벽할 것 같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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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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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 읽은 [페이지 마스터]라는 책이 떠오른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인공 소년이 살아있는 책들과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매컬리 컬킨 주연의 영화도 나왔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역시 영화보다는 책이 더 매력적이었다. 책도 커다랗고 글씨도 크고 올컬러판이라 눈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어쩌면 책에게도 생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처럼 눈, 코, 입이 있고 생각도 할 줄 알고, 나쁜 책과 좋은 책이 있어서 서로 싸우기도 하는 책들. 그 책들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하기도 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여기에 스스로 책이 되어버린 남자가 있다. 남자가 처음부터 책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어느 벼룩시장에서 한 여자가 죽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어떤 책을 발견한다. 보는 순간 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남자. 그는 그 책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책에 몰두한다. 눈과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철자들과 책을 얻은 첫날밤 꾼 기이한 꿈들. 그 후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질병이던 허리통증이 심해졌고 급기야는 고통이 척추로 번지기 시작했으며 온 몸에 압통이 느껴졌고 키도 점점 작아졌다. 더욱 기이한 일은 그 동안 애지중지하던 책들을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육체의 고통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어느 날, 남자는 책으로 변하고 만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책으로서 시작된 남자의 새로운 생활. 

책으로 변하는 남자의 과정은 기묘함을 넘어서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어쩐지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표지가 인상적으로, 남자 뒤에 엄청난 책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마치 남자가 금방이라도 책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팔과 다리는 경직되며 움츠러들고 온 몸에 끔찍한 고통이 번지면서 책으로 변화하지만, 의외로 남자는 자신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들이 책의 내용이 되어 그를 거치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남자의 생각은 그를 손에 든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보여진다. 그것은 남자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남자가 그렇게 마음을 먹는 데 일조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주인'들이었다. 마치 한 권의 책이 여러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가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가 책이 되기 전, 책이 된 후, 그리고 결말이 제시되었을 때. 그 경우는 각각 우리의 독서생활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아니라 책의 눈으로 독서가들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데, 한편으로는 가장 훌륭한 책, 가장 의미있는 책은 우리 인간의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자가 책이 되어 그 자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였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한 권 한 권의 책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벼룩시장'에서 이루어진다. 벼룩시장은 자신이 필요없는 물건들을 싼값에 내다 파는 곳이다. 그 곳에 나와 있는 옷, 책, 생활용품들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시간만큼 책장에서, 옷장에서, 창고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본래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책도 읽지 않고 책장에만 꽂혀 있다면 더 이상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책장 안도 읽지 않은 책들이 넘쳐난다.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벌어진 그 일은 어쩌면 내 책장과 다른 사람들의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의 복수(?)일지도. 

표지 그림으로 인해 살짝 중압감을 느꼈는데 책 속 일러스트는 의외로 안정적이고 따스하다. 페이지 자체도 약간 황토색을 띄고 있고, 일러스트의 색감이 따스한 나무색이라 그런 지 표지를 처음 봤을 때처럼 위축되지는 않는다. 일러스트로 인해 책의 분위기를 한층 깊게 맛볼 수 있다.



   운명이란 바로 그대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 운명을 품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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