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마자키 돼지돼지. 40대 남자. 핑크색 피부에 배구공 정도의 크기이며 목소리는 듣기 좋은 중저음입니다. 침착하고 다정하며 성실해서 늘 호텔 여기저기를 공처럼 굴러다니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척척 일하고 있어요. 그랜드 호텔의 버틀러(집사)로서 봉제 인형이지만 예쁜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이 있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입니다. -라고 하면, 여러분은 '엥?'하고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으훗. 봉제인형이 어떻게 호텔에서 일할 수 있으며 아내에 두 딸까지 있을 수 있는 거냐!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시려고 하면, 세상 곳곳에 나타나는 작은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행운을 놓칠 수가 있답니다. 이 돼지돼지씨를 만난 사람들도 처음에는 깜짝! 놀라지만, 어느 새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감사하게 되었거든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연작 단편집입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일년에 걸쳐 완성되는 이야기죠. 마지막 파트에는 앞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는, 읽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집이에요. 연극을 좋아하고 각본가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여성,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제멋대로의 여자로 보이지만 진정한 행복을 워하는 여성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가족들과 소원해져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사는 남자의 딸과 친해지기 작전, 호텔에 갇혀 원고를 써야하는 호러 작가의 이야기가 때로는 따스하면서도 때로는 코믹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이 돼지돼지씨가 굴러다닌답니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돼지돼지씨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 눈에는 이 돼지돼지씨가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특정한 사람 눈에만 이 돼지돼지씨가 보인다면, 그 '특정한'을 기준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책에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위로가 필요한 사람, 행복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잖아요~나쁜 사람 눈에 이 선량하고 정의로운 돼지돼지씨가 보일 리 없다! 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착하고 순수하고 폭신폭신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극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연기한 모습이 더 빛을 발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피해를 주는지도 모르고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에게는 이것이 옳아!'의 집념을 가진 사나이 이아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때야말로 봉제인형인 돼지돼지씨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에 사람들이 진정한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돼지돼지씨를 만난 건 이 한 권 뿐이지만 실은 10년 이상 이어져 온 장수 시리지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돼지돼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2011년 1월을 기준으로 벌써 12권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백화점 아르바이트 산타클로스에 형사, 심지어 호스트일 때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있는 시리즈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돼지돼지씨의 모습이 궁금해요! 아내와는 어떻게 만났고, 그 아내도 봉제인형인지도요. 따스한 봄햇살을 연상시키는 노오란 표지와 돼지돼지씨의 순박한 얼굴로 동화책같은 느낌이 전해져온 작품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가정이 있습니다. 딸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힘들어하는 엔도 가족. 사립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지면서부터 나타난 딸의 막무가내 폭력 성향으로 엄마 마유미의 하루는 고됩니다. 언제 어디서의 말이 스위치가 되어 딸이 돌변할 지 매순간 조마조마해 하는데도, 그녀의 남편은 딸의 거친 언행에도 묵묵부답. 마유미의 가슴에는 하루하루 그늘이 쌓여갑니다. '이 아이가 정말 내가 키운 내 딸인가'. 한편 그들의 앞집에는 누가 봐도 완벽한 가정으로 보이는 다카하시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의사인 아버지,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의학부에 다니는 큰아들과 유명 사립고에 다니는 딸에 어머니의 아름다운 외모를 닮은 막내아들까지, 그야말로 판타스틱 패밀리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의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여자 고지마 사토코. 그녀의 아들은 멀리 외국에 며느리와 함께 나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들 부부가 돌아와 자신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쎄요, 어쩌면 희망사항으로 끝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늘 시끄러웠던 엔도 가족의 집이 아니라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던 다카하시 가족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사망한 아버지. 그리고 그 가해자로 경찰에 연행된 어머니.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 편의점에서 마유미와 마주친 막내아들은 그 밤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찰은 막내아들이 아버지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도주했으며, 어머니가 그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소설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가족해체의 위기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지만 점점 심각해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근친살해와 가정폭력이 끊이지 않죠. 그만큼 우리의 관계들도 변화합니다. 닫힌 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는 가장 편안한 상태로 보여지는 고립. 서로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웃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죠. 가족들 서로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어지는 이 현상은, 현대사회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참 슬픈 현실입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 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결국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고 작은 상처와 부담들이 쌓여 결국은 폭발할 때까지 그저 기를 쓰고 버티기만 했을 뿐인 거죠. 가족이라 모든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음에도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말들도 있으니까요.

 

작가는 가족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다카하시 가족의 딸 히나코는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 친구 아유미의 집에 묵고 있었어요. 사건이 일어난 후 아유미에게 여러 번 문자를 보내지만 그녀는 답하지 않습니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고 할까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이기도 한 살인자 집안과 얽힐수록 부담은 커졌을 것이고, 그리고 무서웠으니까요. 무슨 말을 해도 히나코가 상처받을 것 같다는 말로 자신의 진심을 포장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히나코의 이모와 이모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니가 아니라 차라리 조카가 범인이기를 바라는 이모와 하루라도 빨리 히나코를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하는 이모부. 그리고 다카하시 가족의 집에 행해진 비방들은, 다카하시 가족을 상처입히는 것은 단순히 살인사건 하나가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그 모든 시선임을 나타내죠.

 

작가의 최고 인기작인 [고백] 만큼 결말이 큰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범인이 누구냐를 떠나 각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 가족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을 보듬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 지 생각은 해봐야 하니까요. 각각의 방에 들어가있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관람차처럼, 어두울수록 안이 더 잘 보이는 야행관람차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메세지일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화씨비가] 와 함께 찾아온 쑤퉁의 또다른 작품입니다. 그가 최초로 털어놓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하는데, 으흠. [화씨비가]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성북지대에 네 명의 악동이 등장해요. 이미 학교에서는 쫓겨났고 동네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자살로 몰아간 홍치와 유부녀와 도망간 쉬더, 좀도둑 쩔룩이와 멋진 사나이가 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탄장에서 횡사한 다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과 얽힌 여자들 또한 운명이 순탄치 않습니다. 강간을 당하고 자살한 메이치, 건달들에게 죽음을 당한 진홍, 유부녀 진란까지. 읽다보면 [화씨비가]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지더라구요. 
  

[화씨비가] 에서도 등장했던 참죽나무길에서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옮긴이의 말처럼 1970년대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 지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만약 알고 있었다면 이해하기가 한층 수월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사춘기는, 청춘은 힘들고 모진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는, 성장소설이라고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이 어째서 이리 암울한 과정과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없었나 하는 것입니다. 성장소설이라 하면, 제 머릿속에는 일단 고난과 위기를 겪었어도 그것을 뛰어넘어 찬란한 빛으로 향해가는 암시를 주어야 한다고 믿거든요. 어떤 일을 계기로 성장하기 위해서 고난이 필수라면 주어진 미래는 밝아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작가는 그런 면에서 전혀 자비롭지 못하다고 할까요. [화씨비가] 때도 그러더니, 암울한 현실을 그저 그려내기만 할 뿐 그것에 대해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청춘들이 있다, 이런 사춘기를 보냈던 소년들이 있다라는 것을 그저, 보여줄 뿐입니다. 작가가 밝은 미래를 제시해주길 원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쑤퉁은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겠죠. 자신이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이상을 펼쳐보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말에 어쩐지 끄덕끄덕 공감이 되는 것은 또 왜인지. 어린시절 보아왔던 서민들의 생활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다며 고난과 불행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어쩌면 그들에 대한 작가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결코 맞이할 수 없는 밝은 세상을, 서민들의 진짜 현실과 비교하며 제시하는 것은 그래도 어쨌든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테니까요.

 

지금까지 쑤퉁의 작품을 [측천무후], [화씨비가], [성북지대], 이렇게 세 권 읽었는데요, 저는 [측천무후]에서 보여준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절제된 중후함이라고 할지, 그런 분위기가 측천무후와 잘 어울렸거든요. 하지만 아직도 이 작가의 성향을 잘 모르겠습니다. 휴우.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분위기를 보여줄 지 기대도 됐다가, 또 마음 아픈 비극을 보여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가, 그렇습니다, 그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가의 문장 1 - 고대와 현대, 시공을 뛰어넘은 로맨스의 고전
호소카와 치에코.호소카와 후민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홋홋. 오랜만에 추억의 만화를 읽었습니다. 제 손으로 책을 산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부지 친구분이 대형서점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저희 남매를 초대하셨습니다. 그 때도 책이라면 껌뻑 넘어가는 저라서 정신없이 고른 책들 중 몇 권은 놓아두고 서너 권만 받았는데 그 때 이 [왕가의 문장]을 소설로 만든 책이 끼워져 있었어요. 1,2권으로 되어 있던 그 책을 하룻밤에 단숨에 읽어버리고 단꿈을 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부터 저의 터무니없는 꿈도 시작되었죠. 저는 정말 21세기가 되면 타임머신이 만들어질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타임머신이 만들어지면  꼭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서 이 책의 주인공인 캐롤처럼 멋진 소년왕과 결혼하겠다구요. 그렇게 애정하던 주인공들을 만화로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그런데 아직도 완결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읽은 그 소설도 불법으로 만들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그 후에 읽은 만화도 해적판이라고 하니 말이에요. 

이번에 나온 [왕가의 문장] 은 어렸을 때는 <나일강에 피는 꽃>으로 알려졌던 그 만화의 정식 한국어판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만화에 풍덩 빠져 있어서 시험 기간 중에도 만화책을 읽다가 어무니께 호되게 혼난 기억이 나요. 지금도 아예 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만화는 소장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왕가의 문장] 을 보니 웃음이 나요.  내가 정말 이 만화를 읽고 그렇게 수많은 밤을 두근거리며 지새웠나 싶어서요;; 덕분에 이집트와 고대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고, 역사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만화이긴 한데 갑자기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라는 생각에 허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마 투탕카멘 왕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그 왕의 미라를 발견한 학자들과 인부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아서 '미라의 저주'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이 만화의 기본적인 줄기는 바로 그 사건이에요. 여주인공 캐롤의 아버지가 3천년 전에 묻힌 왕의 무덤을 발견했는데, 그의 미라와 함께 그를 사랑했던 누이 아이시스의 미라도 같이 묻혀있었던 거죠. 왕의 무덤을 둘러보던 중 고대어가 적힌 점토판이 깨지면서 아이시스의 미라가 깨어나고, 그녀는 동생의 편안한 잠을 방해한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하나씩 살해합니다. 캐롤의 목숨도 위협받지만 고고학 교수가 점토판을 맞추면서 아이시스는 고대로 돌아가게 되고, 그 때 캐롤도 데려가게 돼요. 그리고 이어지는 캐롤과 소년왕 멤피스의 사랑-이 주된 내용입니다. 
 

요렇게 내용을 되짚어보니 정말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 주인공 멤피스는 말 그대로 나쁜남자, 요즘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쭉 이어져 온 영원한 여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멤피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고 막 대하면서도 여주인공 캐롤에게만은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는 남자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왕'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처음에는 캐롤에게도 난폭하게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만 캐롤을 사랑하게 되면서 부드럽고 자애로운 남자로 변모해 갑니다. 단! 요것은 만화이니, 소녀분들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3천년 전의 고대로는, 어찌해도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예전에는 캐롤과 멤피스의 사랑만 보였는데, 이제는 아이시스의 사랑도 눈에 들어오네요. 일방적이고 잘못되긴 했지만 멤피스에 대한 그녀의 사랑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매가 결혼하기도 했다는 것!) 이 새삼스레 절절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절절함을 반감시켜버리는 유치한 대사도 있어, 가끔 풋!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저희 부모님도 만화를 대체 왜 보느냐고 하시는데요, 꿈과 희망을 키우기에 만화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애정하는 만화 중 하나가 [유리가면]인데, 가끔 꺼내보면서 다시 힘을 내곤 하거든요. 사랑으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꿈과 공상으로 인해 감성적으로 얼마나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옆에 이 [왕가의 문장]을 두고 풋풋, 웃음을 터뜨리거나 살짝 긴장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 추억의 만화로 즐거웠어요. 얼른 완결이 나오면 좋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 참 좋아졌어. 우리 때는 이런 거 상상도 못했는데" 그럼 저는 불과 2,30년만에 크게 변화한 세상을 새삼 둘러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2,30년 후를 살아갈 인생들에게 작은 질투도 합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과학의 달 행사때마다 그렸던, 우리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어쩌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한 번쯤은 그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도 해요. 그런 질투와 욕망은 그 세상 속에서 정말 살아보고 싶다, 가 아니라 그저 한 번 보고 싶다의 선에서 끝납니다. 현실의 저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별로 관심도 없고, 생활이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아날로그적 생활에 깊은 정을 느껴가고 있는 정도니까요. 모든 것은 순리대로. 그것을 거스르려고 하면 더 심한 부작용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조금씩 다가가고 있을 '죽음'도요.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은 순리에 맡긴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진심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젠가 우리도 유비쿼터스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 초기 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그런 우리의 상상과 바람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회, 그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아내 '이후'를 암으로 잃은 남자 홀. 그녀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의 앞에 어느 날 이후로부터 메일이 도착합니다. "여보, 나야. 잘 지내?" 그 메일에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바이앤바이의 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죠. 큰 혼란과 두려움 앞에 선 홀. 그는 망설이지만 결국 가상의 세계로 아내를 찾으러 떠납니다.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지하세계로 떠나는 것처럼. 

[굿바이, 욘더] 에서 나타난 것을 정리해보면, 죽음으로 내세워진 시간의 유한성과 존재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에요.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순간의 고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픔. 그 모든 것이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부한 표현일지라도 시간의 유한성에 의해 그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지 않고 무한하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중한 하루를 위해 열심히 뛰고,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오래 있고싶어 하며,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은 아마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물론 욘더와 같은 세상은 우리에게 큰 유혹이겠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입니까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과연 그들의 사랑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 지를.

[굿바이, 욘더] 는 죽은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영원'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욘더로 들어오고자 하지만 욘더가 과연 진실일까요? 기술 발달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 어떻게 죽은 사람들의 의지가 가상 세계에서 만나 영원한 행복을 약속할 수 있는 걸까요? 이성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이 책으로 인해 꽤 머리가 복잡해지실 거에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욘더에서 이후와 홀의 아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그저 머무는 거죠. 이후와 홀의 시간도 '그저' 흘러갑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 어떤 노후를 마련하겠다, 무엇을 해서 행복해지겠다,같은 이쪽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활발한 에너지를 보이지 않아요. 그런 삶이 정말로 행복인지, 그리고 '진짜'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 될 겁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리뷰를 적는 이 순간도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 지 의문이 듭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작가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중간중간 집중력이 끊기는 것이, 뭐랄까,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토막토막 끊기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미래 세계의 발달된 기술에 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