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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ㅣ 손바닥 박물관 3
캠벨 프라이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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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어릴 적 꿈은!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 멋진 파라오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면 이게 웬일인가 싶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나일 강에 피어난 사랑]이라는 (아직도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순정소설을 읽었다. 그 때 처음 순정소설, 순정만화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는데, 고고학도인 한 소녀가, 파라오의 무덤을 발굴하는 데 경제적인 조력을 하는 오빠(음청 부잣집 딸래미) 로 인해 깨어난 미라에게 저주를 받아 3천년 전의 이집트로 가게 된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나일의 딸이어야만 가질 수 있는 금발의 이 소녀에게 반한 소년왕! 결국 소녀는 현대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파라오의 왕비가 되어 그와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 그 파라오의 이름은 심지어 람세스였던 것이다! 그 뒤 이 내용에 홀딱 반한 나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이집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고고학과에 가서 상형문자도 배우고 방법을 찾다보면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꿈이었지만, 그 때의 나는 꽤 진지했었다. 덕분에 이집트라는 나라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열정의 시간들이 지나간 후 한동안 이집트 관련 책은 읽지 않았었는데 또 이리 제목부터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책이라니,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앞서 읽은 [고대 그리스] 책과 같이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고대 이집트의 약 200가지 이상의 유물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잡하고 서로 뒤엉킨 신앙들과 관습의 산물들. '제대로 되어' 보이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장인들은 동일한 시각적 언어에 의지했고, 그 후 3천년 간은 수많은 모티프의 표현 방식이 대체로 고착되었다. 특별한 문화적 영속성. 극단적 보수주의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이집트 내에서 일어난 혁신은 물론 경계 바깥에서 온 영향력에도 모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고대 이집트 유물은 수집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유물의 발굴과 관련된 내용, 실제로 살아남은 유적들이 처했던 환경, 대다수 박물관의 소장품이 사회의 죽은 자와 가장 부유했던 자를 과잉 대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이어 마침내 200여 점의 유물이 그 찬란한 매력을 뽐낸다. 연대에 따라 일곱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와는 또 별개로 가정에서 이용한 물품이나 장식물, 국가 및 파라오에 관계된 유물, 종교적 실천과 관련된 유물, 죽음 및 사후 세계와 관련된 유물 같은 테마로 한데 모아져 있기도 하다.
책에 실린 유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함과 경외감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아주 먼 옛날, 그 옛날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구나, 자신들의 기록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재미로 책을 찾아보는 데 그쳐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유물을 통해 알게 되는 즐거움이 컸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