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결정적 리더십의 교과서, 책 읽어드립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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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시즌이 끝났지만 방송에서 소개된 도서들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 추세다. 나 또한 띠지에 이 홍보문구가 붙어있는 책이라면 평소 잘 읽지 않는 분야여도 한 번 더 눈길이 가곤 하는데, 이번에 고른 책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옴마. 아마도 방송이 아니었다면 절대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읽기 전까지도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무척 고민했던 책이다. 왜냐! 나는 군주가 아니니까! 나는 신하가 될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읽다보니 왜 이 책이 방송에 소개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군주나 신하 등의 단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군주론]은 일종의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라틴어를 공부했고, 피렌체 대학에서는 인문학에 심취해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요직에 앉게 된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의 사망으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공화국 외교관으로서 강대국을 오가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 [군주론]을 지어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다.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 국가의 종류 및 그 획득 방법들>을 시작으로, 군주 국가의 종류와 군대의 종류와 용병, 용병과 원군, 혼성군, 국민군의 비교 내용, 군사에 관한 군주의 의무, 군주가 칭송받거나 비난받는 원인들, 군주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책은 결코 두껍지 않으나 익숙한 내용들이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 몇 페이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역시 늘 그렇듯 머리를 살짝 쥐어뜯었으나, 요상하게도 읽다보니 점점 빨려들어간다. [군주론]을 짓기 전에 고생을 좀 해서인지 단호하게 느껴지는 어조와 내용들이 흥미진진하다.

군주는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악도 행할 줄 알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을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에게서 후하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 결국 탐욕스러워져 남들의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불명예스럽기는 하겠지만 인색하다는 비난을 듣는 편이 현명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해치는 데 덜 주저합니다. 애정은 의리의 사슬에 매여 있는 것인데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경우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를 끊어버립니다. 반대로 두려움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형벌이라는 공포에 의하여 지탱되므로 효과적입니다.

 

인간이란 아버지의 죽음은 곧 잊어버리지만 빼앗긴 재물에 대해서는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장들을 읽다보면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지지하며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곧 잊어버리지만 빼앗긴 재물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니, 뜨악하면서도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군주의 자리가 결코 쉽지 않음을, 그 간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올만한 문장들이라고 할까.

 

군주와 신하, 백성의 관계를 떠나 현실에서도 응용이 가능한 처세술이라 느껴지는 것은, 그 자리에 자신과 타인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해 써내려간 군주론. 격변의 시대에 자신이 생각한 바를 글로 써 남긴 그의 각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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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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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읽어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 호불호를 떠나 새 작품이 출간되었다고 하면 일단 읽는다. 매번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그의 작품이 '인간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해왔는데, 이번에는 심지어 최초의 인류, 이런 개념도 아닌 '전생'의 삶에 대해 다룬다. 그것도 몇 번이 아닌 무려 111번의 삶. 지금 생의 그 앞도 알지 못하는데 여러 번의 삶과 최초의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들이 모두 '나'라는 자각이 있을까. 그들의 삶과 현재 내 삶에 과연 연결고리가 존재하는가.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르네는 같은 학교 동료인 엘로디와 <최면과 잊힌 기억들>이라는 공연을 보러 갔다가, 최면사인 오팔에 의해 전생을 경험한다. 자신에게 보인 수많은 문들은 모두 111개. 고로 이번 생은 112번째라는 깨달음과 함께 111번의 문을 연 르네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 이폴리트 펠리시에의 생을 직접 겪게 된다. 전투 도중 자신이 적군을 어떻게 죽이고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모두 생생하게 경험한 르네. 혼란에 빠진 그는 정신없이 공연장에서 뛰쳐나오고, 마침 거리의 노숙자와 시비가 붙어 의도치 않게 그를 살해, 강에 유기한다. 이폴리트로서의 기억이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일깨운 것이라 생각한 그는 다시 한 번 오팔을 만나 여러 삶을 경험하면서 그 기억들이 거짓이 아님을, 모든 생은 그 전 생의 바람이 내포된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믿어온 것이 전부가, 진실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르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둔 채 자신의 최초의 삶, 아틀라스인인 게브를 대홍수에서 구하고, 그가 존재했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얻기 위해 이집트로 떠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의심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매력이면서도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신화나 전설로 여겨지는 아틀란티스 대륙, 그 곳에 살았던 80만명의, 지금의 인류보다 10배는 크고 10배는 오래 살았던 사람들, 성경에서 보았던 대홍수와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를 게브가 만드는 장면, 살아남은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이집트에 도착해 신으로 추앙받는 내용들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갈팡질팡하기도.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어쩌면 작가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음. 그런데, 작가의 작품들이 초기작에 비해 그리 엄청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111개의 전생이라는 소재는 독특하지만 굳이 두 권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속도감도 떨어지고, 중간 부분은 약간 지루하기도 했고. 그런데 또 마지막 장면을 보면 우리 삶의 신비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뭔가 가슴이 먹먹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면 또 읽을 것이라는 것. 마성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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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희균 옮김 / 검은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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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엘러리 퀸 콜렉션의 네 번째 책은 [그리스 관 미스터리] . 앞서 읽은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서 '지금까지 읽은 엘러리 퀸의 작품들 중(그래봐야 세 권이지만) 가장 머리가 빙빙 돌고 범인의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어떤 비밀이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등장인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라고 기록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급!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스 관 미스터리] 는 지금까지 읽은 네 권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몇 번이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게 만들고, 눈을 핑핑 돌게 만든 사건이었다. 작품의 주인공인 엘러리마저 단 한 번에 추리에 성공하지 못하고, 난항을 겪었던 사건!

 

저명한 미술품 거래상이자 감정가이며 수집가, 칼키스 갤러리의 설립자이며 뉴욕의 오래된 칼키스 가문 마지막 후계자인 게오르그 칼키스가 토요일 오전 자택 서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워낙에 유명한 인사였기에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인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에 장례식은 예정대로 거행된다. 그런데 그의 금고에 들어있어야 할 새로 쓰인 유언장이 사라지고, 엘러리는 유언장은 칼키스의 관 안에 있을 것이라며 무덤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의 말에 따라 다시 파헤쳐진 관. 그런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던 유언장은 온데간데 없이, 한 구의 시신이 칼키스의 시신 위에 엎어진 채 발견된다. 시신의 정체는 미술품 도난범인 앨버트 그림쇼. 익명의 쪽지에 의해 앨버트 그림쇼와 칼키스 갤러리의 지배인이자 칼키스의 매부인 길버트 슬론이 형제관계인 것으로 밝혀지며, 길버트 슬론의 혐의가 짙어지는 듯 하지만, 그 역시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한 번의 실수로 체면을 구긴 엘러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굽이진 길을 돌아 마침내 그의 실력이 빛을 발한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늘 작가에게 뒤통수를 맞을 각오를 하고 책을 읽는 편이지만, [그리스 관 미스터리]를 읽으면서는 처음부터 범인을 맞추겠다는 의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비루한 머리로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데만도 헉헉댔는데, 여기에는 엘러리가 범인을 위해 놓은 덫도 한몫 했다고 할까. 처음에는 A가 범인이라고 해놓고, A가 범인이 아니란다. 범인은 B였는데, 우와, 늘 그랬던 것처럼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인물이 범인! 그런데 이 범인이 무척 똘똘한 편이고 엘러리를 한 번 골탕먹였기 때문에 엘러리 또한 그를 가지고 놀아봤다고 진술하는데, 단순한 나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사건 처리였다. 그저 나는 이 사람이 범인인가, 저 사람이 수상한데!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뿐. 한편으로는 범인에게 아주 약간, 아주 쬐끔 안됐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함정을 파놓으면 누가 나타나서 그거 아니라 하고, 또 뭔가를 조작해놓으면 또 누가 나타나 그거 아니라고 진술하니 진땀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을 때 따란, 나타난 엘러리라니. 엘러리가 정말 밉기도 했을 것이나 결말은 결국 인과응보라고 할까.

 

권수가 더해갈수록 사건의 난이도도 올라가는 느낌이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읽었을 때도 범인은 전혀 유추하지 못했지만, [그리스 관 미스터리]에 비하면 로마 모자는 뭐, 그냥 모자 쓰는 기분. 게다가 이번 편은 '차례'에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각 챕터의 영어 제목의 앞글자를 죽 연결하면 'THE GREEK COFFIN MYSTERY BY ELLERY QUEEN' 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와! 소리가 절로, 여러 번 나온 이번 작품. 머리가 다소 복잡하기는 했지만 엘러리의 추리와 논리 그물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난 기분이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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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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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6주 여정이 마침내 끝났다. 마지막 5권의 내용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특히 '들어가는 말'이 무척 감동적이었는데, 저자는 자신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필하게 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진솔히 고백한다. 인생에서 특히,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삶에서 그 어떤 고난을 만나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아손은 1권에서도 등장했었다. 이올코스 나라의 왕은 노쇠한 데다 그의 아들 이아손은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였던 지라 결국 왕의 이복 아우인 펠리아스가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후에 이아손이 장성하면 다시 왕좌를 내놓겠노라 약조하지만, 노쇠한 왕은 혹여 자신의 아들이 이복 아우에게 화를 당할까 염려하여 이아손을 펠리온산의 현자라고 불리는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보낸다. 그 후 15년이 지나 펠리온산에서 내려온 이아손. 이올코스 나라로 들어가려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노파로 변신한 헤라 여신을 만나게 된다. 모노산달로스, 외짝신의 주인공이 된 이아손은 펠리아스를 찾아가 당당히 왕좌를 요구하고, 여기서 짐작 가능하겠지만, 펠리아스는 그에게 왕의 자질을 시험해보겠다는 명목 하에 콜키스에 있는 프릭소스의 '금양모피'를 찾아와줄 것을 명령한다. 아무 군소리 없이 그의 명을 받아들인 이아손. 이에 원정대가 꾸려진다.

 

배 짓는 명장 아르고스에 의해 만들어진 아르고호. 그가 배를 만들고 있을 동안 이아손은 온 그리스 땅 곳곳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당시 한다하는 영웅들은 다 모셔오게 했다. 여기에는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제우스 신의 아들들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북풍의 두 아들 칼라이스와 제토스, 새 우는 소리에서 운명의 발소리를 듣는 예언자 몹소스와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로 뱃길을 짐작하는 암피아라오스, 천리안의 망꾼 륀케우스와 밤에 보아둔 별자리로 낮의 뱃길을 짐작하는 천부적인 뱃사람 나우폴리오스,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둔갑의 도사인 페리클뤼메노스, 여걸 아탈란테와 동성인 헤라클레스를 사늘로 알고 떠받들었던 나약한 미소년 휠라스까지. 후에 트로이아 전쟁의 명장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되는 펠리우스도 아르고호에 탑승한다. 그리고 마침내 길을 떠나는 영웅들. 항해는 시작되었고, 여러가지 모험을 겪은 뒤 그들은 마침내 콜키스에 당도해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금양모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후에 이아손과 메데이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테세우스와 메데이아가 나중에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지에 대해 다룬 뒷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6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밤을 신화와 함께 보냈다. 1권의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2권의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3권의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4권의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까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어린 시절 이후로 신화에 이리 깊이 빠져들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당연히 저자 이윤기님이 생존해 계실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미 타계하신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순간 망연자실했다.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테지만, 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저자 이윤기님의 열정의 산물이다. 심지어 나에게는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서마저 그 열의가 느껴졌는데, 이리 그 분의 영면을 알게 되고 나니 새삼 5권의 '들어가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평생을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빠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 그 분이 남기신 이 기록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 영광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읽어볼 내 마음 속 신화백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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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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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다쿠미와 아내 레이코의 아들 도키오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뇌신경이 차례차례 죽어버리는 병으로, 십대 중반까지는 아무런 징후도 나타나지 않지만 그 시기를 경계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먼저 운동신경을 서서히 잃게 된다.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장기 기능도 저하되면서 누워 보내는 생활이 2,3년 지속되다가 의식 장애가 나타나고, 마지막에는 의식을 완전히 잃고, 조만간 뇌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괴로움 속에서, 다쿠미는 문득 기억의 한 조각 속에서 아주 오래 전 '도키오'를 만났던 일을 레이코에게 털어놓는다. 지금 도키오는 스물세 살의 자신을 만나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크게 한 방을 노릴 뿐 성실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스물세 살의 미야모토 다쿠미 앞에 정체 불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자신을 도키오라고 밝힌 그는, 일단 자신과 다쿠미가 친척관계라고 하면서 가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사귀고 있던 지즈루가 어떤 경비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달라고 부탁하고, 다쿠미는 마지못해 면접을 보러 가지만 또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벌컥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지즈루에게 변명하기 위해 도키오와 함께 지즈루의 집에 찾아간 다쿠미를 맞이한 것은, 그녀가 떠난 텅 비어버린 방. 지즈루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그녀가 일하던 술집으로 가보지만,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기고 협박까지 당하게 된다. 한 남자와 오사카로 떠난 듯한 지즈루.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평소 근성없고 불성실한 다쿠미지만, 어째서인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도키오로 인해 지즈루를 찾아나서는데!

 

한편 다쿠미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사실 그는 미야모토 집안의 양자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친모인 도조 스미코가 가끔 미야모토 집에 방문해 그와 아주 약간의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혼자 다쿠미를 낳아 키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 결국 아들을 양자로 보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알려온 것은, 스미코가 재혼해 들어간 집의 의붓딸이었다. 결코 가지 않으리라 결심한 다쿠미에게, '나중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한다'는 말을 남기는 도키오다. 지즈루를 찾으러 가는 도중, 다쿠미는 결국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도키오가 나타난 이후 어쩐 일인지 그의 말에 휘둘리는 것 같은 다쿠미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의젓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그가 싫지 않다. 도키오가 없었다면 친어머니를 만나러 가지도, 지즈루를 찾는 데 그리 열성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키오를 만나 인생의 한 계단을 도약해 성숙한 어른으로 변모해가는 다쿠미는, '나는 당신 아들이야. 당신을 만나러 미래에서 왔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결국 태어난 아들에게 도키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가슴 뭉클한 결말.

 

언젠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백하게 결심하는 다쿠미는, 그렇게라도 해서 도키오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리라.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준 그를. 만약 내가 다쿠미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이자 아들이었으니까. 미스터리 제왕의 면모 뿐만 아니라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각을 잃지 않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 따스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멋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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