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옛길 사용설명서 - 서울 옛길, 600년 문화도시를 만나다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 지음 / 창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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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그냥 버릴 뻔했다. 나름은 무척 호화롭고 멋진 책장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물로 영접한 책은 주택공사의 브로셔 같기도. 편집을 흉보는 것이 아니라, 평소 제목도 보지 않고 버리는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제목을 눈으로 슥 훑은 덕분에 다행히 버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아이가 커갈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에게는 그저 삶의 터전인 이 곳이 아이에게는 해가 갈수록 새로운 놀이가 가득한 장소로 여겨지는지 이것저것 질문이 늘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나 싶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이었던 곳.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 예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어릴 때부터 여행을 떠나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줘야지 결심했었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굳이 먼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잘 모르는 이 곳, 서울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에 펼쳐들게 된 책.

 

[서울 옛길 사용설명서]는 서울자유시민대학의 제2차 민간연계시민대학 운영 사업인 '서울 옛길 문화콘텐츠 발굴과 활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저술작업에 참여한 시민들은 2019년 역사인문 지식공유 활동을 통해 옛길 12경을 답사하고, 곳곳에 스며 있는 문화콘텐츠를 발굴하였다. 그 노력의 결실 이 바로 이 [서울 옛길 사용설명서]인 것이다. 예쁜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소올직히! 이 책이 별로 예뻐보이지 않는다. 굳이 만들거면 좀 더 호화롭게 사진도 다채로운 컬러로 뽑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내용에 불만은 없다. 아니, 불만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이런 책, 나느 어디 가서 발견하고 소장하기 쉽지 않았다.

 

한양도성 자체와 내사산, 옥류동천길, 삼청동천길, 안국동천길, 제생동천길, 북영천길, 흥덕동천길, 정릉동천길, 남산동천길, 필동천길, 묵사동천길, 진고개길, 구리개길-서울 옛길의 이름을 중심으로 중요 장소와 역사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책 내용 전부를 한 번에 꿰차기는 어렵겠지만 아이가 좀 더 자라 함께 서울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게 되면 그 전에 한 번찍 정독하고 길을 나서도 좋을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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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노예 12년 - 189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솔로몬 노섭 지음, 원은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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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나 30년 넘게 자유의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 노섭.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주로 농장일을 했고, 여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등 평범한 생활을 누렸다. 1828년 크리스마스에 집 근처에 살던 흑인 소녀 앤 햄프턴과 결혼,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1834년 사라토가 스프링스로 이사한 그들은 1841년 봄까지 죽 그 곳에 살았고,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그 3월에 솔로몬 노섭은 당장 일할 자리를 구하기 위해 길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때 그에게 다가온 두 남자. 이 두 명의 신사는 솔로몬의 바이올린 실력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며 자신들과 함께 일해볼 것을 권유한다. 워싱턴의 서커스에서 일하는데 공연에 쓸 악사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말하면서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남자들. 노섭은 다시 돌아오는 데 그토록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선뜻 그들을 따라나선다. 워싱턴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어 장장 12년 동안이나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했던 한 남자의 삶이, 이 종이 위에 생생하게 그려져 울분과 회한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노예 12년]은 실화를 바탕으로 노예 제도의 실상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축처럼 취급받는 노예들의 모습을 소설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실제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에 의해 납치 당할 당시의 상황, 어떤 경로로 노예 시장에 팔려갔는지, 그가 만난 주인들의 성품은 어떠했는지, 노섭 외의 노예들이 어떤 취급을 당했었는지, 그가 보낸 12년 동안 죽음의 문 앞까지 갔던 상황들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노섭이 당한 부당한 대우는 물론이고, 루이지애나의 농장에서 임했던 목화 재배나 사탕수수 재배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 갖는 의미도 상당하다고 평가받는다.

 

감정적으로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 사람이 난데없이 노예가 되어 팔려갔다는데 어찌 감정적이 되지 않을 수 있으랴. 솔로몬의 경우도 경우지만 내 가슴을 무너지게 만든 것은 그가 윌리엄의 노예수용소에서 만난 엘리자와 그녀의 아이들-랜들과 에이미-이었다. 워싱턴 근방에 사는 부자 엘리샤 베리의 노예였던 엘리자는 베리의 집에서 태어나 베리가 아내와 별거할 당시 그를 따라 근방의 영지에 지은 새 집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9년 동안 베리의 시중을 들며 그의 딸인 에이미를 낳은 엘리자. 베리는 그녀에게 친절했고 그녀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베리의 사위의 책략으로 아이들과 함게 노예수용소로 끌려온 것이다. 노예시장에서 아들인 랜들이 먼저 팔려 떠나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오열을 금할 수 없었다. 제발 에이미와 자신도 같이 사달라고, 그 누구보다 충실한 노예가 되겠다고 애걸복걸하는 엘리자의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엄마를 뒤돌아보며 랜들이 -엄마, 울지마. 나 말 잘들게. 울지 마-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내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후 엘리자는 에이미와도 헤어지게 되는데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주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 덕분에 주인마님에게 가혹한 처사를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주인의 구미에 맞추어 원하는 않는 춤을 추어야 했던 경우도 많았다. 혹독한 노동은 물론이요, 별 것도 아닌 일에 심한 채찍질을 당해 등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야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작품 안에서도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지칭된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가축 취급을 당해야했던 사람들의 애끓는 경험이 이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무척 괴로웠다.

 

몇 세기가 지났지만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한 흑인이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다음은 어떤 이유로든 우리 차례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문제가 되었다면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일지 알게 뭔가.부디 우리 아이들에게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도록, 이상에 불과하더라도 그들이 사는 세상은 부디 평온하기를, 그 평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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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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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명성과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는 익히 들어왔지만, 사실 그는 나에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다. [데미안]을 읽었을 당시만 해도 문학적 오만에 젖어 펼쳐들기는 했지만 그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어 당황했고, 얼마 전 읽은 [싱클레어의 마지막 여름] 조차 매우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음에도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만약 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와 저자 정여울님의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토록 헤세를 피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소 정여울님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으나 (물론 책은 소장하고 있다;;) 그의 안내대로 헤세의 삶과 작품을 따라가다보면 헤세의 인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적중!

 

'독한 치료제가 아니라 지금의 아픔을 가만히 누그러뜨리는, 마음의 진정제가 나에게는 헤세'였다는 저자의 말부터 마음을 울린다. 이 책을 처음 펼친 시간이 새벽이었던 탓이었을까. 나의 마음의 진정제는 과연 무엇일지, 대체 저자는 어떤 아픔을 지니고 있길래 마음의 진정제가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다보니 프롤로그의 첫문장부터 울컥했다. 두 번의 이혼, 세 번의 결혼, 조국 독일의 전쟁에 대한 반대, 독일에서의 출판 금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동조하지 않은 죄, 첫 번째 아내와 자신의 우울증,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방랑에 대한 열망과 그럼에도 현실에 정착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점, 경제적인 곤란까지 헤세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험난했다. 그 와중에도 늘 '글쓰기'로 돌아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헤세.

헤세는 일상의 자잘한 기쁨, 생활의 사소한 걱정거리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어떤 소설을 읽고]라는 산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큰일에는 진지하게 임하면서 작은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몰락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p047

이 책은 헤세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작가 정여울이 독일과 스위스에 남겨진 헤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헤세로부터 받은 치유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다. 특히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라는 7가지 키워드로 헤세의 삶을 재조명하는데, 도주에서 방랑으로, 방랑에서 순례로 나아가는 헤세의 삶과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다.                              

 

 

                              

헤세의 작품은 대부분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미안]에서의 헤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이라고, 거북이처럼 자기 안으로 온전히 파고들어야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알고보니 [데미안]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방랑을 그린 [크눌프]와 [페터 카멘친트], 종교적 초월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싯다르타]와 종교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시민적인 삶과 초월적인 삶 사시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린 [황야의 이리] 또한 늘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흔들리고 고통받으면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헤세의 삶과 작품들이 정여울님 개인의 고통이나 경험과 만나 생명력을 가지고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다시 한 번 헤세의 작품에 도전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트라우마와 싸워내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제대로 겪어야만 자기 안의 신화를 연출하는 진정한 감독이 될 수 있다.

p080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정여울님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누구보다 상처받기 쉬웠던 자신, 조직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자신,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자신을 가감없이 내보이는 그 글에, 나는 어마무시 감동받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 무엇이 자신을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드는가. 인류가 이 세상에 나타난 때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답에 대해 바로 이 헤세와 정여울님이 이정표를 제시한다. 그 어느 때보다 숭고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읽어내려갔던 [헤르만 헤세 x 정여울]. 이들과의 만남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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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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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대학생활을 보내고 싶은 다바타 가에데.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우연히 강의실 옆자리에 앉은 4차원 여학생인 아키요시 히사노를 만나 그의 예상과는 다른 캠퍼스 라이프가 펼쳐진다. 아키요시는 현실보다 이상을 부르짖는, 타인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해 보일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다. '이 세계에 폭력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와 같은, 어쩌면 어린아이와 같은 주장을 타인의 비판적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줄 알던 아키요시.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귀찮은 관종으로 여겼던 다바타지만 어느 새 그녀의 이상론에 동화되어 간다. 얼떨결에 세계평화를 위해 지금 당장 모든 무기를 내려놓자는 동아리 '모아이'를 결성하게 된 다바타와 아키요시. 그런데 3년 뒤, 원래는 두 사람만의 비밀결사 같았던 동아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취지는 변질되어 버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나답지 않은 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바뀌어버렸다. 다바타는 아키요시와 함께 하고 있지 않는 것은 물론, 모아이는 취업용 인맥 쌓기 동아리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던 것. 취업이 결정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던 다바타는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 '모아이'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이미 이 세계에 없는 아키요시를 위해서라도!

 

책을 읽는 내내 아키요시의 행방이 궁금했다. 다바타는 아키요시의 존재에 대해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뉘앙스가 조금 미묘해서 아키요시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바타의 마음 속에서 아키요시의 자리가 없어졌다는 의미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예상하실 것 같지만, 역시 아키요시는 나의 생각대로. 내내 다바타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모아이 자체도 부정적으로 보이는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다바타의 계획에 동조해 모아이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기로 한 도스케의 말대로 '모아이가 반드시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현실에서 나답지 않은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취업하기 위해 인맥 쌓는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은 정말 자신답지 않은 일일까. 현실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과연 다바타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만약 학생이라면 다바타의 의견에 동조하며 변해버린 모아이의 모습에 같이 분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비판이 향한 곳은 모아이가 아니라 다바타 쪽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같은 행동을 한 것은 다바타였다. 친구로서 아키요시 곁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싶었던 욕망. 자신만을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유치한 마음이 결국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혔다.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하면 될 것을, 본심은 숨긴 채 '모아이가 변질되었다, 원래의 모아이로 되돌리겠다'는 비겁한 변명을 앞세우다니, 으아아, 다바타 너 혼 좀 나자. 자신이 보기에 타인의 모습이 어떻든, 그가 노력하고 걸어온 길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사람이라 해도 무조건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한 템포 쉬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두루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나는 이제 다바타와 같은 유치함, 그 유치함으로 발산되는 정열적인 시기는 지난 듯 하여 그의 마음을 전부 다 헤아리기는 어려웠지만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의미있게 다가올 듯 싶기도 하다. 이상은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가. 현실에 맞춰 이상도 바꿔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과거를 곱씹게 만든 작품. 그래도 나에게는 스미노 요루의 작품 중 최고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다. 그런 작품을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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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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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시신이 도심 한 가운데에 나타났다! 가슴부터 배까지 가느다란 못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박히고 머리는 잘린 채 이순신 동상 투구에 걸린 시체. 놀라운 점은 그 시신을 운반해온 것이 다섯 대의 드론이었다는 것.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신을 운반해 온 드론은 경복궁 안으로 날아들어가 궁 안에서 폭발했다. 사건을 접한 <사이언스이스트> 잡지의 기자 하영란은, 이번 사건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물리학자이자 한국대학교 교수인 조성환에게 연락을 취한다. 시체의 가슴상처를 보기 위해 종로경찰서로 향한 조성환은 시체의 가슴과 배에 박힌 가느다란 못이 목공작업할 때 많이 쓰이는 타카핀이며 이 타카핀 하나하나가 픽셀이 된 것처럼 어떤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것,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개입한 것임을 밝혀낸다. 여기에 일가족 실종사건과 야쿠자 개입까지 거론되고, 조성환과 일행은 인공지능 관련 최고 권위를 지닌 양자인공지능연구소 소장 문혜진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죄송해요, 작가님. 먼저 급사과부터. 책을 읽으면서 대강의 줄거리는 파악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멀고 먼 물리학 영역 관련한 설명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시신이 발견됐고,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은 분명 미스터리 소설이 맞는 것 같은데 마치 물리학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은 뭐였을까나. 장르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혹은 분석하듯 글자를 하나하나 정독해 본 적은 또 처음인 것 같다. 양자물리학에, 과거를 투시할 수 있는 기계까지 등장하는데, 소재 자체는 분명 흥미로운 게 맞는데, 그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유체이탈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과학기술에 우리의 역사적 비극을 연결한 시도는 주목받아 마땅하고 작가님이 자신의 전공분야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백번천번 이해하지만, 저는요 너무 어려웠어요. 흑흑.

 

이것은 취향의 차이, 관심소재의 차이, 지적 능력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래도 대중의 평가를 피해갈 수 없는 작가라면 어느 한쪽의 지식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가끔 쓰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그래도 이런 작품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던 소설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요즘은 인문계). 이과생인 옆지기에게 한 번 내밀어봐야겠다. 나와의 이해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괜히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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