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측천무후. 중국에서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 당 고종의 황후였지만 국호를 '주'로 바꾸고 15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당의 건국 공신인 무사확의 딸로 태어나 당 태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갔고 '무미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태종이 죽은 뒤 다른 여인들과 출가하였으나 고종의 후궁으로 입궐하기에 이른다. 고종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던 그녀는 고종이 죽은 뒤 자신의 아들을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지만, 결국 그녀 스스로 황제가 되어 중국을 다스렸다. 

예전에 다른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몽환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그 책에 비해 쑤퉁의 [측천무후]는 문체가 담백하다. 번역을 그리 한 것인지 작가 본래의 문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이같은 담백함이 좋다. 그 어떤 편견과 평가 없이 인물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듯한 담담함이랄까. 그동안 많은 작가가 여성이었으나 군주로 군림한 이들에 대해 쓸 때 흔히 드러내는 감상적인 분위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려 한 의도가 어쩐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쑤퉁의 이 책은 역사소설인 이상 어느 정도의 한계는 있겠지만, 주인공인 측천무후에 대한 연민의 느낌없이 객관적으로 측천무후의 생애와 그 주변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아들인 이홍과 이현, 이단의 시점에서 측천무후와 일련의 사건을 묘사하는 장면들이다. 황제의 후계이면서도 강하고 잔인한 어머니로 인해 편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측천무후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그녀의 존재를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정적이었던 왕황후와 소숙비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딸마저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아들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렸을 그녀.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측천무후 또한 권력을 가까이 한 자라면 피하기 힘든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나는 본래 권력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삶을 결코 부러워한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누군가를 음해하고 자식들과도 평범한 애정을 나눌 수 없으며 쓸쓸하게 홀로 늙어 죽음을 맞는 삶이란 내가 꿈꾸는 것과 거리가 멀다. 혹자는 권력의 맛을 한 번 보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 안에서 보내는 어두운 삶보다 평범한 백성들의 삶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국호를 '주'로 바꾸고 15년이나 나라를 다스렸건만 결국 그녀의 죽음을 지킨 이가 누구였던가를 생각해본다면 누구도 세상에서 제일 가는 것이 권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소설을 읽고나면 꼭 진실이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진다. 측천무후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 때문에 중국을 손 안에 넣고 싶어했을까. 우리는 다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조금은 잔혹하고 강인하게 묘사된 그녀를 보고 있으니 앞서 언급한 책 속에 등장한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그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측천무후를 통해 본 쑤퉁은 문체와 분위기 면에 있어서 괜찮은 작가인 듯 하다. 그의 문체가 담담하고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말 그의 문체인지, 아니면 번역 때문인 건지 다른 작품을 통해 알아봐야겠다. 어쨌든 그와의 첫만남은 만족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어야 할 수학여행이었다. 선생님 눈을 피해 친구들과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추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아키바 가나코. 한밤에 들려온 소식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이제 그녀가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가나코의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쓰즈키 노리오가 집에 침입해 가나코의 아버지, 엄마, 두 남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그 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 가나코는 수학여행지에서 죽은 가족들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네 시간'을 때때로 현실처럼 겪게 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지만 자신이 죽은 가족들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도 되는 건지 죄책감을 안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범인 쓰즈키 노리오에게 자신과 같은 나이의 딸, 쓰즈키 미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체를 숨기고 쓰즈키 미호에게 접근하는 가나코.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연애시대>로 유명한 노자와 히사시의 이 작품은, 가해자의 딸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다소 독특하면서도 잔혹한 설정 속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초반 범인 쓰즈키 노리오의 상신서를 통해 그가 아키바 일가에 품게 된 원한과 살인을 하게 된 계기 등을 보여주는데, 이 시점부터 독자들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과연 진정으로 나쁜 사람은 누구였을까, 생명을 앗아간 것은 나쁘지만 쓰즈키 노리오만 악인이었을까. 그런 어지러운 상황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이 목숨을 잃은 어린 두 동생과 홀로 살아남은 가나코의 존재다. 아무리 원한이 깊어도 아무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주인공 가나코가 온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게 만든 점등을 강조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점을 우선 깨닫게 한다. 

이 책의 띠지에는 전반부의 참극묘사가 25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는데, 나는 전반부의 참극묘사보다도 사건을 듣게 된 어린 가나코의 심적 상태와 원수의 딸인 미호에게 접근하는 그녀의 심리를 서술하는 쪽에 후한 점수를 주겠다. (어째서 잔인한 참극묘사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이 겪어온 고통의 세월을 범인의 딸인 미호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 지 궁금해하고, 범인이면서도 여전히 아키바 일가를 미워하는 범인과 그의 딸을 저주하며 깊은 어둠으로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가나코의 마음이 아프도록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가나코는 결국 그들의 악연을 끊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지, 그 과정을 긴장감 가득하게 팽팽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가나코와 미호가 과거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을 그린,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뻔히 그려질 수도 있는 용서와 화해를 그리지 않는다. 서로에게 원망을 토해내고 사죄를 하는 식상한 장면도 없다. 그저 그녀들 각자의 고통의 세월을 그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뿐이다. 미궁 속을 헤매는 듯한 몇 문장들로 인해 번역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분위기와 내면 묘사가 괜찮은 작품이다.


 

 있지 미호, 우리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어. 내가 달려갔을 때에는 모두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지.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가족들의 심장이 뛰어주길 바랐어. 나도 모두의 가슴에 귀를 대고, 아직 살아 있는 동안 물어보고 싶었으니까. 나, 이제부터 살아가도 되냐고. 모두의 심장은 이제 곧 멎어버릴텐데, 난 앞으로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 살아남아서 미안해. 난 모두의 용서를 바랐어. -p3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백과
정상영 지음, 이병용 그림, 류재만 감수 / 진선아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고백하자면, 저는 꽤 많은 미술서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라는 책이었어요. 저의 짧은 소견 탓인지는 몰라도 미술서적의 설명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 듯 하고, 두께가 두껍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죠. 하지만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이라는 책은 다른 점은 다 차치하고라도 그림이 정말 큽니다! 거의 모든 지면을 그림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어차피 작정하고 외우지 않는 이상, 작가와 그림의 제목을 외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 마음으로 깊이 그림을 느끼고자 하는 분들께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왜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의 리뷰를 쓰면서 다른 책을 추천하냐고요?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하지만 이왕 한 번 추천한 글, 지우지는 않으렵니다.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 조금 전문서 같다는 느낌이라면,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는 딱,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저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봐도 전혀 유치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림을 설명하는 어투나 사이사이 삽입된 귀여운 그림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부드럽거든요. 그림을 보는 것도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과 예술을 느끼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그림 조기교육'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리 큰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요. 그리 두껍지도 않거든요.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부록으로 같이 온 <명화 감상 노트>입니다. 여기에는 본 책에 실린 그림들 중 몇 점이 또 따로 실려 있어요. 그 선정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보면서 술렁술렁 넘겼던 그림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저는 참 좋더군요. 제 경우에만 국한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솔직히 여러 권의 그림 서적을 감상했더라도, 결국에는 제가 좋아하는 그림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에 지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명화 감상 노트>를 보면 '아! 이 그림은 누구의 뭐다!'라고 맞추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이 쏠쏠해요. 뭐, 누구에게 굳이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든 '자기 만족'이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또 맨 뒤에는 미술관을 관람한 후 관람록을 쓸 수 있도록 양식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겪다보면 자연스레 아이에게도 그림을 보는 눈과 예술을 소중히 하는 풍요로운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제가 왜 앞에서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을 소개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조금 전문적인 지식, 어려운 내용이라도 상관없지만 조금 크게 그림을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내용은 아직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림 보는 것은 좋아한다,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그림을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모호한 생각이 대뜸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을 추천하는 글을 남겨버리게 되었군요. 

이번 책에서 저는 또 하나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싼마오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의 작품 [사하라 이야기] 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이 바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이 책에서 그 그림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어요! 그리고 며칠 전 읽은 일본소설 [파인 데이즈] 에 등장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도 자세히 보게 되었으니 이번 책에서는 요렇게 만족하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 '과연 인권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라는 의문을 빙자한 변명으로 이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하루하루가 슉슉 지나가고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부치는 저는, 그저 제 할 일이나 잘하면 다행이라는 그런 소소한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며,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인 셈이지요. 하루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누웠다 하면 잠에 빠져드는 저에게 '인권'이란, 마치 저어기 떠 있는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를 가진 단어랄까요. 단순히 싫다, 좋다의 개념이 아닌 생각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에 느낄 수 있는 거리감입니다. 주위를 홱홱 둘러보면, 제 주위 사람은 아마도 저와 거의 비슷하지 싶어요.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며,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라는 개념이, 어쩌면 인권의 시작이 아닐까 되새겨봅니다. 인권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를 존중해준다는, 그런 의미 아니겠어요? 그것은 결국 부모와 자식사이, 학생과 교사사이, 남자와 여자사이, 유색인종과 무색인종 사이, 부자와 극빈자 사이, 회사와 노동자 사이 등 그 어떤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 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를 가졌던 그 인권은, 바로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숨쉬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런 거리감을 저자 김두식 선생(어쩐지 선생이란 직함이 붙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이 편하고 알기쉽게,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좁히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 [불편해도 괜찮아] 입니다. 

직업상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청소년 인권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들은 것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과 폭력 사이, 평소 편견없이 바라봐왔(다고 생각했)던 성소수자 인권과 인종차별의 문제, 노동자 인권,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장애인 인권과 종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노싸이드 등 평소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지만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만약 저자가 대학 강의식으로 하나의 인권 당 개념이나 원리 등으로 진행 했다면 저는 이 책을 덮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종종, 사회나 인문 서적들은 저자들의 지식 자랑하기로 끝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문제의 민감성을 쏙쏙 뽑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모든 챕터의 내용들이 깊이있고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라면 평생 써야 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도입해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설명하고, 성소수자들을 위해 우리가 '다름'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 지를 고찰하게 하죠.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그 시대 인종차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저자가 말한대로 정말 숫자놀음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제노싸이드를 통해 생명의 고귀함과 우리 삶을 조종할 수도 있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는 영화 <300>을 예로 들어 '장애인 인권'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 <300>을 보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그 영화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조조로 보기위해 극장으로 달려갔거든요. 광고효과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300명 용사들의 멋진 몸 때문이라기보다, 소수의 영웅들이 악을 이기기 위해 분투하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 김두식 선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모든 내용을 이 리뷰 안에 담아내기란 무척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므로 저도 김두식 선생처럼 <한겨레> 의 김소민 기자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효과적으로 다듬어진 시각적 무기가 인종주의를 북돋우며 여성과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 거슬릴 수 있는 영화-p131


정말 어떤 분들은 한 편의 오락영화를 보면서 유난스럽기도 하다고,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인간은 결국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단순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결국에는 그 소소하게 느껴지는 '불편함'이 인권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아픔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연결되지 않겠어요? 

인간은 쪼콤 못된 습성을 가진 동물이라 남에게는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남의 손을 빌려 일을 처리하려 하기도 하죠. 다른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나에게는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며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못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일까요? 그 약함을 아집이나 편견으로 드러내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고 저자의 말 그대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면 같은 사람들끼리 치고박고 싸울 일도 적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자가 들어가서 거창한 무엇처럼 보이지만, 인권은 우리 삶의 바른 모습,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의 몽환적인 소설의 대가라고 하면 '온다 리쿠'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제 그 범주에 이 작가, '혼다 다카요시'를 넣어도 될 것 같다. 단편집인 탓인지 그리 큰 완성도와 탄탄한 구성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현실과 판타지,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쓰여진 문구에 걸맞게 주인공들은 대부분 청춘,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고 작품들의 배경은 딱히 어디가 현재, 어디가 과거라고 규정짓기 어렵다. 때로는 오싹하고 때로는 안타까우면서 또 때로는 강한 결의같은 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단편들.

첫 번째 이야기인 <Fine Days>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청춘살벌미스터리'소설이 되겠다. 어느 날 전학 온 아름다운 전학생 소녀. 그 소녀를 따라다니는 불길한 소문들과 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 소녀의 정체와 그녀를 둘러싼 오싹한 분위기들이 주인공과 그의 친구 야스이가 가진 비밀과 맞물리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일어나면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이 작품 속에서는 그 때마저도 '아련한 한 때'로 그려지며 그야말로 'Fine Days'로 각인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인 <Yesterdays>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녀의 존재를 찾아간 남자. 내용 자체만을 두고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듯하나 작가가 묘사하는 분위기와 장면 하나하나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만큼 섬세하다. 실제로 2008년에는 영화화되어 젊은 층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싶을만큼 분위기가 멋지다. 여운과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특별한 로맨스. 

세 번째 이야기는 <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는 각자의 상처를 끌어안고 죽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즐거워도 즐거워할 수 없고 누군가의 인생에 강하게 엮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함께 살아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짧은 분량 안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발전시켜 장편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주인공들의 미래가 기대되는 오싹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인 <Shade>는 이야기 속 이야기와 등장하는 현실 속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골동품 가게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되짚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가 볼 것을 결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혼다 다카요시의 작품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요렇게 단편집으로 만나게 됐다. 작가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세계와 분위기들을 느껴보니 앞으로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999년에는 수상작을 포함한 [MISSIING]이 '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부문에서 10위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이 작품과 다른 두 세 편의 장편을 읽어본 후 결정해야지. 페이지가 슉슉 넘어가는, 여름밤에 읽기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