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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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는 존재, 종교라는 것에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우리는 가톨릭 신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믿음을 확신하며 삶에서 가톨릭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

p339-340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굉장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어요. 친구가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은 알았고, 저도 아주 아이였을 때 교회에 잠깐 다닌 적이 있어 크게 거부감이 없는 상황. 단지 그 친구와 어울려 다닐 때는 교회에는 다니지 않았고, 결혼 전부터 성당에 다니시다가 저와 동생을 낳고 잠시 종교생활을 쉬고 계시던 엄마의 권유로 성당에 다닐까 생각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가 저에게 교회에 같이 다니기를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거절했었는데 어느 순간 친구의 권유는 집요해지기 시작했고, 저는 차츰 그 친구를 피해다니기에 이르렀어요.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하는 친구가 그렇게 무섭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고, 저는 그 때부터 종교에 광신적으로 빠져있는 사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기가 힘들었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히치콕이라 불리는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신을 죽인 여자들]은 종교적 광신으로 산산조각 난 소녀를 둘러싼 비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토막난 채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 아나 사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성폭력이라는 범죄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것이라 생각하며 '아나는 이미 자신의 품 안에 죽어 있었다'고 말하는 아나의 친구 마르셀라의 증언을 묵살해버립니다. 마르셀라는 아나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 성당에서 천사상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새로 겪는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렸으니 그럴만도 했겠죠. 아나의 죽음을 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 두 사람만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의 존재가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나의 아버지인 알프레도와 아나의 둘째 언니 리아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귀염둥이 막내딸을 죽인 범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오래된 자료를 보고 또 보고,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르셀라와의 만남과 오래 전 사건을 담당했던 엘메르와 보낸 시간을 통해 마침내 범인을 확신한 아버지. 그 후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알프레도는, 그의 첫째딸인 카르멘의 아들인 마테오에게 세 통의 편지를 남깁니다. 마지막 편지는 집을 떠난 리아와 마테오가 함께 읽기를 언급하면서요. 강압적인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끌려다니는 아버지 훌리안에게 회의를 느끼며 살아온 마테오는 훌쩍 리아를 찾아 떠나고, 리아는 아버지의 편지를 들고 자신을 찾아온 마테오와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 이 책의 홍보문구를 읽었을 때만 해도 저는 이 작품이 단순히 아르헨티나 스릴러 소설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초반에 강조되면 전개되는 종교적 이야기에 어리둥절하며 거부감을 느꼈죠. 그러나 그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작가의 초석이었습니다. 한 소녀의 죽음이 종교의 광기에 휘말려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 낱낱이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중반부터 범인의 정체를 눈치채기는 했지만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인물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피해자인 아나의 책임이다, 자신은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선택을 한 것은 전적으로 아나다-라고 억지를 쓰는 그들의 주장은 그들이 얼마나 비겁한 인간들인지 여실히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작품은 한층 그 깊이와 심오함을 더해갑니다. 진정으로 종교란 무엇인지, 종교적인 행동은 무엇인지, 종교라는 미명 하에 비인간적인 일이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을지, 종교를 믿지 않는 이와 믿는 이 중 과연 누가 더 대단한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인지 등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어떤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 뜻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요.

 

저는 아이를 낳은 후로 성당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평일은 직장에 다니고 휴일은 아이들과 활동하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종교를 소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올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누군가의 엄마로서 더 바른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다짐하고 있는 날들입니다. 언젠가는 또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종교를 가지고 어떤 존재를 믿든, 무신론자로 살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을 죽인 여자들'이라는 제목은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르다 가문의 세 여자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신을 죽인 셈이 되었으니까요.

 

**출판사 <푸른숲>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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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유괴 붉은 박물관 시리즈 2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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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은 없다!!]

 

2차 대전 이후에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모든 형사사건의 유류품과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보관하고, 그것을 형사사건의 조사 및 연구와 수사관 교육에 활용하는 범죄 자료관. 런던 광역 경찰청 범죄 박물관을 모방하여 1956년에 설립된 이 곳은 그 원조가 검은 박물관이라 불리는 것처럼 '붉은 박물관'이라 불리는데요, 여기의 관장은 '설녀'라 불리는 히이로 사에코입니다.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 하얀 백의를 걸친 모습에서 수사1과에서 전직한 데라다 사토시가 붙여준 별명이에요. 데라다 사토시가 어째서 이 붉은 박물관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위는 전작인 [붉은 박물관]에서 밝혀졌었죠. 처음에는 좌천된 것에 괴로워하지만 이 붉은 박물관에 수집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히이로 사에코와 재수사를 감행하는 사이 어느새 부쩍 정이 든 것 같은 모습입니다.

 

옥상에서 사라진 여고생 살인 사건 용의자, 불을 지르고 피해자들을 대피시킨 연쇄 방화범, 열 조각으로 토막 난 남편과 같은 날 자살한 아내, 완벽한 알리바이로 모두를 속여 온 남자, 기억 속에 숨겨진 유괴 사건의 진실. 총 5개의 수수께끼가 히이로 사에코의 손에 그 미스터리가 풀립니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사건의 실마리를 붙잡는 것인지 모르게 그녀의 '진상을 알아냈다!' 한마디면 정말 모든 사건이 너무나 쉽게 해결돼요. 그 곁에서 데라다 사토시는 어안이 벙벙한 채, 독자와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볼 것이 분명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역시 설녀인 히이로 사에코일 겁니다. 그녀는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해 경찰청에 들어온 이른바 '커리어'입니다. 그런데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직으로 불리는 범죄자료관에서 관장 노릇을 9년이나 하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스터리가 아닐까요??!! 이미 엘리트 코스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길에서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과거에 미해결된 어떤 사건 하나가 그녀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설녀는 그 사건이 범죄자료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기억 속의 유괴]에 실린 다섯 작품 모두 흥미롭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인물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제가 그 정도의 극한 상황에 내몰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면 아주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어요. 도대체 작가는 이런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떠올리는 것인지, 도통 머리가 뛰어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작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붉은 박물관]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는 히이로 사에코의 사정. 그 사정이 다음 편에서는 부디 속 시원하게 밝혀지길 기대해봅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리드비>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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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완벽한 실종
줄리안 맥클린 지음, 한지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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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로맨스의 멋진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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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완벽한 실종
줄리안 맥클린 지음, 한지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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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실종된 남편! 그 진실은??!!]

 

파일럿인 남편 딘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올리비아. 비록 집안의 반대는 있었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의 선택을 믿고 첫 눈에 반한 딘과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아침, 딘의 상사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두 사람의 행복은 산산조각나요. 오랜만에 갖는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약속이 있던 날 유명 연예인 마이크 미첼의 비행 스케줄이 잡힌 거죠. 결국 가족들과의 약속 대신 비행을 선택한 딘. 올리비아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고 결국 허락하지만 한밤중에 울린 전화기의 수화기 너머에서는 딘의 비행기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행기. 딘의 실종 이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올리비아는 홀로 딸을 키우며 싱글맘으로 살다, 전 남자친구인 가브리엘과 재혼합니다.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생각하지만 공원에서 발견된 시체의 용의자로 사라져버린 딘이 지목되면서 올리비아의 인생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해요.

 

핑크빛과 푸른색이 너무나 아름답게 어우러진 책표지로 행복한 로맨스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것과는 달리, 장편소설 [이토록 완벽한 실종] 의 내용은 미스터리 로맨스입니다. 현실에서도 의문으로 가득찬 장소인 버뮤다 삼각지대, 그 곳에서 사라져버린 남편의 비행기와 발견된 시체-라는 설정만으로도 정신이 어지러운데, 심지어 지목된 용의자가 실종된 딘이라니!! 발견된 시체는 멜라니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과거 딘이 심리 상담사로 일할 때 만났던 인물이었어요. 올리비아와 딘, 멜라니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작품의 전개 때문에, 저는 분명 멜라니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체로 발견된 것에서 놀라고, 결말 때문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존 킨들 종합베스트 1위, 미스터리 로맨스 1위를 차지한 작가의 명성답게 이야기는 쉴 틈 없이 전개됩니다. 미스터리 로맨스 장르이기는 하지만 사랑이란 무엇인지, 인생에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어느 길을 골라야 후회가 없을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 그 사랑이 행복이라는 과정을 거쳐 결실을 맺기 위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해피북스투유>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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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의 후회 수집
미키 브래머 지음, 김영옥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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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는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유치원 시절 담임 선생님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부터 '죽음'에 남다른 반응을 보였던 클로버. 다른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때 그녀는 홀로 선생님의 손을 잡아주고 그의 마지막을 지킵니다. 그 이후 죽음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되었고, 그런 취미(?)는 클로버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었죠. 학교에서조차 그녀를 꺼림칙한 아이로 여기며 친구 한 명 사귈 수 없었지만 그런 그녀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클로버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녀가 여섯 살 때 사고로 부모를 잃은 후부터 그녀에게 지식과 감성을 알려준, 클로버의 전부였던 사람. 이제 그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난 외로운 세상에서 클로버는 '임종 도우미'로 혼자인 사람들이 외롭지 않게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클로버는 임종 도우미 일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수집해요. 이제는 누구에게도 전달하기 어려워진 후회나 고백같은 것들이지만 아직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말들입니다. 하지만 이 말들은 아직 클로버의 노트 안에 갇혀 있어요. 그녀의 주위에는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이 80이 넘은 리오 할아버지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녀가 세상을 향해 두껍게 친 벽을 두드리는 사람들. 서배스천을 시작으로 새로 이사 온 실비와 서배스천의 할머니의 그리움을 달래줄 추억 속 연인을 찾으러 간 여정에서 만난 휴고가 이제 클로버의 세상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클로버들이 모은 문장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차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살아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가족과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할 것,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당장 할 것,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우선 부딪혀 볼 것. 클로버는 물론 알고 있었겠지만 세상 밖으로 손을 내밀기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역시 너무 늦은 일은 없구나, 라는 것을 느기게 됩니다. 마음 먹은 그 순간이 시작이에요.

 

클로버가 수집해둔 문장들은 휴고와 실비로 인해 이제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에 서배스천의 존재에 대해 희망을 품었는데 말이쥬) 아마 클로버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를 얻게 되는 원천이겠죠.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요즘 시대에 어쩌면 미래에는 클로버의 직업이 각광을 받게 되는 게 아닐까요? 삶이란 무엇일지, 죽음이란 무엇일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는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강하게 다가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 출판사 <인플루엔셜>을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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