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리랑 2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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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리뷰쓰기 힘들었던 책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시작하는 것초자 망설여지기는 또 처음이다. 그 동안 어떤 책이든 그래도 한 번 시작하면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차마 이어나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단어는 오직 학살, 죽음, 아비규환-같은 것. 계엄군이 빠져나간 뒤에 광주 시민들은 '우리들이 이겼다'며 기쁨에 들떠 환호하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그 끝을 알고 있기에 증폭되는 진압에 대한 공포.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은 양쪽 모두에게 해당된다.

 

2권에는 5월 21일부터 5월 27일까지 총 7일간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시위대에 참여는 못하더라도 헌혈은 하겠다며 당차게 집을 나섰던 박금희 학생. 몇 년 전부터 카드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오고 있을만큼 인정많은 여고생이었다. 말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친구와 함께 다시 헌혈하기 위해 헌혈차를 탄 여고생의 몸을 총알이 뚫고 지나간다. 죽음의 순간 애타게 불렀던 엄마 얼굴 한 번 못보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딸의 부고를 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첫장부터 눈물바람의 연속이었다.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했지만 혼란은 계속된다. 시민대표라고 행세하려고 나서는 정치인과 종교인에 대한 비난, 서로 각 방향으로 조직된 수습위원들의 서로 다른 의견들에 시민군들이 제대로 협력하고 있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누군가는 협상을 위한 총기 반납을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목숨과도 같은 무기이니 절대 총기를 반납할 수 없다면서 계속 무장하고 있어야 다시 계엄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정의를 위해 발로 뛰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가슴에 사무쳤다. 주먹밥과 약들을 제공하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는 시민들, 그런 시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한층 경계를 강화하고, 사망한 시신들을 수습하는 데 자원하는 사람들. 따뜻하고 인간적인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계엄군의 간첩작전과 양측의 전투는 계속된다. 그 중에서도 원제마을과 진제마을 아이들 학살 사건은 절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중학생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개구쟁이 국민학생들을 잔인하게 사살한 계엄군.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도 너무 마음 아팠는데 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몸에서 숨을 빼앗아가버린 무자비한 총격이라니. 읽어내려가면서 차마 숨도 쉴 수 없었다. 계엄군이 어떤 주장을 하든 그들은 이미 이 순간, 그 진정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아이들이 시위대인가. 손에 총이라도 들고 있었나.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사람은 지금 발뻗고 편안히 안녕하신가.

 

깊어지는 두려움 속에서 마침내 마지막 날이 시작된다. 계엄군의 군홧발에 참혹하게 밟히는 사람들과 시신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을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 그런 정신이 일반 시민들 속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가족조차 만나지 않으려 했던 그들. 우리에게 이런, 보석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광주를 지키기 위해, 광주 시민들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을 빨갱이라 매도하며 가차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었을까.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말의 깊이를, 이제야 피부로 깨닫는 느낌이다.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하고 소중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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