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딱 한 개만 더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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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는 맨션 부지의 정원수 사이에서 시체로 발견된 하야카와 히로코. 그녀는 유게 발레단에서 사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출신지인 사이타마 현에서 발레학원을 열 계획이었다. 그녀와 같은 맨션에 사는 데라니시 미치요를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가가 형사. 유게 발레단의 사무국장이자 15년 전에는 현재 올리는 무대인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를 맡았던 미치요는 가가 형사로부터 집요한 신문을 받고, 자신의 집에서 대각선 아래로 보이는 히로코의 집을 자세히 내려다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녀의 집에는 이사하는 날 잠시 도우러 갔을 뿐이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미치요. 가가는 그녀에게 동행을 요청하고, 미치요의 집에서 히로코가 이사하는 날 화분을 옮길 때 사용했던 장갑을 보여달라 요구한다. 여기에는 과연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여섯 번째 도서인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단편집이다. 앞의 다섯 작품과는 달리 다섯 개의 이야기가 각각 실려 있고, 주인공인 가가 교이치로가 중심이라기보다는 사건의 범인들, 혹은 연관된 사람들의 사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상대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모순점을 노련하게 간파해내는 가가 형사의 실력은 물론 매력적이지만, '아,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구나!'라는, 인간의 본능과 심연을 더욱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는 기분에 읽으면서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숨어 있는 인간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

 

다섯 편의 이야기 중 인상적인 작품이 두 가지 정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차가운 작열>이었다. 퇴근한 남편을 맞이한 것은 차가운 시체로 누워있는 아내. 게다가 하나뿐인 아들은 실종상태다. 추리소설인지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진상을 알게 된 남편의 마음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무너져버렸다. 육아에 지쳤을 아내의 마음도 십분 이해한다. 책에서 즐거움을 찾는 내가 주제넘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가족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취미는 부차적인 것일 뿐, 가족보다, 아이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가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참극을, 냉정하면서도 가가 형사의 시선을 통해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내용보다는 묘사에 있어 인상적이었던 <어그러진 계산>. 줄거리로만 보면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불륜에 빠져 결국 남편을 살해하기로 계획한다는 내용인데, 어째서인지 나는 사랑하는 남녀가 동반자살을 한다는 의미의 '신쥬'가 생각났다.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면 세상에 다시 없을 악녀로 인식됐을텐데 마지막 한 문장에 울컥하게 된다. '이제 이별이네' 라고 읊조리며 떨어지는 여자의 한 방울 눈물.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의 범인들은 악랄하거나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저지른, 혹은 저지른 일을 숨겨주게 된 사람들이다. 사건 자체만 보면 무섭고 이해 못할 인간들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사연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기구한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고, 그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지 않다. 가가 형사의 시선에서조차 안타까움과 연민이 묻어나온다. 여기에서 작가가 사람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따스한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그 어떤 가가 형사 시리즈보다 더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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