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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토요일 오전, 오락실 화장실에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 류다이화는 살해당한 아이와 같이 있던 친구의 증언에 따라 PC방에 숨어 있던 천원칭을 체포하고 신문하지만, 그의 진술은 도저히 정상인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일도 없고, 돈도 없고, 빚은 많은데 갚을 길이 없어 감옥에서 평생 콩밥이나 먹자는 생각에 사람을 죽였다는 천원칭의 증언에 경찰은 물론 여론도 기가 막혔다. 게다가 잡히지 않았다면 사람을 더 죽였을 거것이고, 죽은 아이에 대해 죄책감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에 류다이화는 분노와 함께 자신의 딸 신신을 떠올리며 슬픔을 느낀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이 천원칭은 대체 왜 열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를 죽였던 것일까.
물리학을 공부하는 유리팡과 결혼을 약속하고 뱃속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렸던 위윈즈.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식이 있기 전날, 유리팡은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려 열차에 치여 사망한다. 범인은 스물 넷의 주젠쭝. 그는 살면서 좋은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았고 화가 나서 누군가를 죽여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고 증언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고작 그런 이유로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위윈즈는 절망하고, 주젠쭝에게 반드시 죄의 댓가를 치르게 하리라 결심하지만, 주젠쭝은 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갈 곳 없는 분노와 원망.
시간이 흘러 5년 후, 변호사가 된 그 앞에 예전 위윈즈의 심리상담을 담당했던 중완칭이 나타나 천원칭의 변호를 부탁한다. 처음에는 강력히 거절하지만, 그를 변호함으로써 유리팡이 허무하게 살해당해야 했던 이유를 찾고,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 더 나아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천원칭처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자 결국 변호를 받아들인다. 온전한 정신상태로는 보이지 않는 천원칭을 여러 번 접견하는 동안 위윈즈는 그의 어두운 과거와 대면하게 되지만, 급기야 천원칭은 2심 때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이상행동을 보인다.
대부분의 스릴러와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는 범행의 동기가 뚜렷하다. 등장인물들이 대립해 갈등이 일어나고,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증오와 분노를 느낀 나머지 살해. 여기에는 작품마다 동기가 존재했고, 경찰이나 탐정이 짠!하고 나타나 사건을 개운하게! 해결해주는 패턴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무차별 살인법]에는 사건은 있지만,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에 갈등은 커녕 일면식도 없는 경우가 등장한다. 언제, 어디에서,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은 피의자의 심리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답답함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 답답함은 피의자의 성장배경이나 학대당한 과거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누군가가 저지른 범죄를 처벌할 때 피의자의 어두운 과거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아무리 가혹한 과거를 걸어온 사람이더라도 누구나 다, 죄를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윈즈도 변호를 맡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천원칭과 접견하고 그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이런 사건에 결코 사회의 책임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작가의 생각은 위윈즈의 비서인 야란을 통해 뚜렷이 드러난다.
개인과 가정에 문제 생기는 걸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죠. 하지만 그가 가정에서 사회로 나와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을 때, 사회와 행정기관은 그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만약 원칭이 평생 감옥에서 지내게 된다면 치료와 교정 시간이 늘어나게 돼요. 그때 드는 인력과 자원은 정부,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그를 보호하지 못해서 생긴 빚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의 그를요. 이제 우리가 그에게 갚아 줘야 해요. 따라서 저는 세금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 발전을 원한다면 그에게 드는 교정 비용과 의료 비용은 우리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해요.
상당히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누구나 야란처럼 생각할 수 없다. 특히 내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라면 더욱. 피해자나 유족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을 지닌 채 우리와 함께 지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당장 지금도 집에 성범죄자 관련 정보가 우편으로 배달되어 오면 유심히 보게 되고, 어디선가 그를 본 적은 없는지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어쩌면 결코 벌어지지 않을 일에 대해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 작가는 발전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개인의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지만 과연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숙제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작가각 던지는 메시지는 뚜렷하지만 조금 산만한 구석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딱 야란의 의견이 나오는 부분에서 어떻게든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작가 스스로는 반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반전이라는 것이 오히려 작가가 사회에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흐릿하게 만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이완 문단이 주목한, 미스터리의 신성 저우둥. 그는 [무차별 살인법]으로 제14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