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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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작품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기도 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라진 과학자를 찾기 위해 오동통한 손녀와 함께 길을 나선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 야미쿠로의 위협과 거머리떼의 출현과 금방이라도 차오를 듯한 물을 피해 간신히 도착한 그 곳에 과학자가 숨어 있었다. 그로부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듣게 되는 나. 사실 이 부분이 너무 복잡하여 머리를 쥐어뜯고, 여러 번 읽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나의 뇌 속 무언가를 건드려 지금의 자신은 사라지고 무의식에 존재하는 '나'로 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즉, 현재의 자신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 지금 세상에서 맛보고 있는 소소한 행복-책, 음악, 맥주-등등은 이제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이야기. 나라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광분해 날뛰고 어마무시 화를 냈을텐데, 이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자신의 사멸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날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한편 <세계의 끝>의 '나'는 점점 힘이 약해져가는 그림자와 함께 마을에서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다. 그러면서도 도서관 사서인 여자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을을 탈출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그림자와, 잠시 방황했지만 그림자를 도와 탈출을 감행하는 '나'. 그리고 '나'의 마지막 선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의 일상이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하고 스펙터클한 것과는 달리, <세계의 끝>의 '나'의 생활은 비교적 단조롭고 고요하게 그려져 있지만, 결국 그 둘은 하나다.

 

1권을 읽으면서 예상했던 바와 같이, <세계의 끝>의 세상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의 의식의 핵이었다. 하드보일드한 세계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기억을 잃고 마을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나'. 과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회로와 정크션 등 어마무시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는데, 작가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론적으로는 현실 가능성이 적다고 해도, 작가의 심심찮은 성적 표현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무척 재미있었다. 이 리뷰 안에서 어떻게 표현해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긁적긁적,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읽는 내내 맥주가 마시고 싶고, 책에 등장한 음악이 듣고 싶어지는 소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리꿍도서로 만난 이 작품. 그 동안 무라카미옹의 소설은 어쩐지 어려운 감이 있어 등한시 해왔는데, 이번을 계기로 다시 흥미가 생겼다. 그 유명하다던 [1Q84] 부터 한 번 읽어볼까나. 잘 안 읽는다면서도 책장에는 요상하게 이 작가님 책이 꽤 많다는 것이 신기방기. 일본문학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작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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