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노예 12년 - 189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솔로몬 노섭 지음, 원은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주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나 30년 넘게 자유의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 노섭.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주로 농장일을 했고, 여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등 평범한 생활을 누렸다. 1828년 크리스마스에 집 근처에 살던 흑인 소녀 앤 햄프턴과 결혼,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1834년 사라토가 스프링스로 이사한 그들은 1841년 봄까지 죽 그 곳에 살았고,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그 3월에 솔로몬 노섭은 당장 일할 자리를 구하기 위해 길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때 그에게 다가온 두 남자. 이 두 명의 신사는 솔로몬의 바이올린 실력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며 자신들과 함께 일해볼 것을 권유한다. 워싱턴의 서커스에서 일하는데 공연에 쓸 악사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말하면서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남자들. 노섭은 다시 돌아오는 데 그토록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선뜻 그들을 따라나선다. 워싱턴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어 장장 12년 동안이나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했던 한 남자의 삶이, 이 종이 위에 생생하게 그려져 울분과 회한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노예 12년]은 실화를 바탕으로 노예 제도의 실상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축처럼 취급받는 노예들의 모습을 소설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실제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에 의해 납치 당할 당시의 상황, 어떤 경로로 노예 시장에 팔려갔는지, 그가 만난 주인들의 성품은 어떠했는지, 노섭 외의 노예들이 어떤 취급을 당했었는지, 그가 보낸 12년 동안 죽음의 문 앞까지 갔던 상황들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노섭이 당한 부당한 대우는 물론이고, 루이지애나의 농장에서 임했던 목화 재배나 사탕수수 재배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 갖는 의미도 상당하다고 평가받는다.

 

감정적으로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 사람이 난데없이 노예가 되어 팔려갔다는데 어찌 감정적이 되지 않을 수 있으랴. 솔로몬의 경우도 경우지만 내 가슴을 무너지게 만든 것은 그가 윌리엄의 노예수용소에서 만난 엘리자와 그녀의 아이들-랜들과 에이미-이었다. 워싱턴 근방에 사는 부자 엘리샤 베리의 노예였던 엘리자는 베리의 집에서 태어나 베리가 아내와 별거할 당시 그를 따라 근방의 영지에 지은 새 집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9년 동안 베리의 시중을 들며 그의 딸인 에이미를 낳은 엘리자. 베리는 그녀에게 친절했고 그녀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베리의 사위의 책략으로 아이들과 함게 노예수용소로 끌려온 것이다. 노예시장에서 아들인 랜들이 먼저 팔려 떠나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오열을 금할 수 없었다. 제발 에이미와 자신도 같이 사달라고, 그 누구보다 충실한 노예가 되겠다고 애걸복걸하는 엘리자의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엄마를 뒤돌아보며 랜들이 -엄마, 울지마. 나 말 잘들게. 울지 마-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내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후 엘리자는 에이미와도 헤어지게 되는데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주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 덕분에 주인마님에게 가혹한 처사를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주인의 구미에 맞추어 원하는 않는 춤을 추어야 했던 경우도 많았다. 혹독한 노동은 물론이요, 별 것도 아닌 일에 심한 채찍질을 당해 등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야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작품 안에서도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지칭된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가축 취급을 당해야했던 사람들의 애끓는 경험이 이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무척 괴로웠다.

 

몇 세기가 지났지만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한 흑인이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다음은 어떤 이유로든 우리 차례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문제가 되었다면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일지 알게 뭔가.부디 우리 아이들에게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도록, 이상에 불과하더라도 그들이 사는 세상은 부디 평온하기를, 그 평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