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의 애프터 파이브 - 막차의 신, 두 번째 이야기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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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를 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막차의 신] 작가 아가와 다이주가, 이번에는 막차가 끊긴 후부터 첫차가 움직일 때까지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찾아왔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첫차의 애프터 파이브] 는 모두 8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대중교통이 끊긴 후에도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숨쉬는 '신주쿠'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휘황찬란한 대도시의 이면, 화려함 속에 감춰진 도시인들의 고단함과 아픔, 슬픔과 외로움 같은 감정들이, 그리 과하지 않게, 스스로에 대한 자기 연민조차 없는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한때는 잘나가던 상사맨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경쟁에서 도태되어 이제는 러브호텔로 출근하는 남자, 뮤지션의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도시의 모습에 압도되어 망설이는 여자, 지진 재해 후 삶의 터전을 잃고 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술에 취해 막차를 타고 가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버린 옛 연인을 데리러 가는 남자, 출장 성매매업소에서 아가씨들을 데려다주는 운전기사. 어쩌면 낮에 일하고 밤에 잠드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일상과 동떨어진, 다소 낯선 인물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의식 밖에서 움직이는, 조용히 나타났다 또 조용히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라는 기분. 각자가 지닌 사연들을 통해 비로소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신주쿠는, 나에게는 추억의 거리. 1년 동안의 어학연수 기간 동안 도쿄에 머물렀던 이후, 한 번도 그 도시를 다시 찾지 않았다. 대도시의 느낌은 거기서 거기, 언제고 다시 가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제 그 도시에 마음 편히 발 디딜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 지, 아득하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낯선 도시의 그 휘황찬란함과 대놓고 이야기하는 성적인 요소들이 거북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간다면 더 흥미로운 눈빛으로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래도 외부인에게 신주쿠는, 여전히 낯설고 약간의 두려운 마음을 품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리다.

 

작품 하나하나에 큰 굴곡이 없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단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법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나는 아가와 다이주의 이런 담담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특이하다고 할 것도, 신기하다고 할 것도 없는 그냥 한 사람, 어떤 이들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툭 던져놓는 기분이랄까. 꼭 누군가의 일기를, 어떤 이의 독백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담담하게 진행되는데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뭘까. 첫차는 말 그대로 시간 상의 첫차를 의미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서의 '첫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할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그 거리에 서보고 싶다. 서서 그 곳의 공기를, 공기의 냄새를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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