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으로 보는 세계사 - 자르지 않으면 죽는다!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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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자극적인 제목! 역사 속에서 숙청은 어쩔 수 없는 수단으로 생각해왔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개인적인 원한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던 듯 하다. 저자는 중국인에게 숙청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라서 숙청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성인군자'로 꼽혔던 공자였지만 그런 그도 노나라 대사구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청이었다. 부임한 지 7일만에 당대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소정묘를 별다른 이유 없이 죽이고, 제후회의에서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우와 광대까지 죽이라고 했다니! 그 동안 쌓아왔던 공자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 잠시 충격에 빠졌을 정도다. 저자는 주로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유럽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들을 풀어내며 숙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중국의 과거와 현대에 일어났던 숙청, 인종차별의 시작과 학살, 프랑스 혁명으로 비롯된 숙청,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혁명의 역사.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제시하면서 저자가 일본인인만큼 일본에서 있었던 사례 제시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간 '숙청의 논리'까지 곁들여져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점이 눈에 들어왔고, 그런 점들이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하니 이 책을 객관적으로 읽기가 힘들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숙청'이라는 소재는 단순히 방패막이이고, 주된 목적은 아시아에서 세력이 커져가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자국에 대한 옹호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57페이지에는 '일본인들은 전후 70년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란 악'에 미국이 '정의의 철퇴를 내렸다'고 배웠다. 하지만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를 생각하면 '진실'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역사의 법칙대로 전쟁이 끝나면 승자는 패자를 폄훼하는 유언비어를 흘리고 그것을 널리 퍼트리기 마련이다' 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자국인 일본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악으로 폄하당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대전에 있어 일본이 책임질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자신들이 패배했기 때문에 유언비어가 퍼졌다는 인식. 읽으면서 '어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181페이지에서는 '중국인은 이상하게 자존심이 높은 민족이다. 이를 자극하는 방법에 따라 그들을 회유할 수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 무슨 법칙인 것마냥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한 30년은 된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물론 역사가에게도 주관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읽을 책에, 이렇게 버젓이 어떤 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이 나와 있다니, 이런 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다. 또한 자신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숙청은 중국에 비하면 그리 심하지도 않았다며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니 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강해질 뿐이다.

 

숙청을 알면 세계사가 보이고, 냉혹한 사회 현실과 조직 상태를 파악하여 다른 문화와 마주하는 비결을 터득할 수 있다는 야심찬 홍보문구와는 달리, 나에게 이 책은 한 일본인 역사학자가 중국을 폄하하고 왜곡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판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훨씬 더 깊이있고 의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더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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