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회화실록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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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7월, 태조의 즉위식 기사에서 시작하여 1910년 8월, 국권을 일본에게 넘긴다는 순종의 교서로 마칠 때까지 조선의 하루하루를 지켜보아온 [조선왕조실록]. 조선의 역사는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잘 아는 부분이면 신이 나지만, 또 세세하게 들어가면 복잡해지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역사.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가장 가깝게 이어져 있는 조선이지만, 우리는 과연 그 조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단순히 글로만 읽어왔던 조선의 역사를 이제는 그 때의 회화와 함께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조선회화실록]은 역사와 당대의 그림들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조선'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 바로 태조가 아닐까. <태조 어진>은 태조 재위 당시에 그려진 원본이 아니라 1872년 이모한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그림이 낡거나 상했다면 이를 이모하여 새것으로 모시는데 어진의 경우에는 <태조 어진> 외에도 후대에 이모된 예가 적지 않다고 한다. 화면 정중앙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태조. 용상은 금빛 용문으로 가득하고 앉은 자태만으로도 큰 키에 당당한 체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로애락을 드러내놓지 않은 표정. 저자는 가볍지 않은 인물의 성품과 함께 표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지위를 보여주는 듯하다고 해설한다. 유능한 무장이었던 이성계. <태조 어진>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가 즉위할 당시의 상황, 중국 황제처럼 황색 곤룡포를 입지 않은 이유, 명과의 관계, 그 유명한 왕자의 난을 일으킨 세자 책봉 등의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그림 하나. 광해군 시절에 그려진 <파진대적도>이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갈등에 휩싸인 조선의 현실. 결국 명의 원군으로 명과 후금의 전쟁에 끼어들지만 이 <파진대적도>를 통해 당시의 긴장과 상황을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그림은 [충렬록]의 삽화로 제작되었는데 각 열마다 다른 무기를 들고 적을 향해 선 조선군의 모습을 강조했다. [충렬록]은 김응하라는 장군의 장렬한 죽음에 대한 헌사인 까닭에 버드나무에 기대 선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다. 저자는 전쟁이 끝난 후 패전 수습과 공훈에 대한 포상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조선이, 명나라에 대해 의리와 충성을 다했음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해설한다. 그리고 역시 이어지는 광해군의 정치적 역량, 계축옥사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태조 어진>과 대척점에 있는 것은 어쩌면 <고종 어진>이 아닐까 싶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맺게 된 외국과의 통상조약, 일본과의 조일수호조규, 조미수호통상조약, 갑신정변 등은 나라가 얼마나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을 지 짐작하게 한다. 그 이후의 상황이야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이기에. 그런 배경 속에 그려진 <고종 어진> 속 고종은 군주다운 위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적혀 있다. 기분 탓일까. <고종 어진>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

 

뒤에 실린 -도판 목록-을 보면 한층 생생하게 그림들을 느낄 수 있다. 역사와 그림이 만나는 지점에서 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난다. 사관과 화가의 붓이 포착한 500년 조선사의 명장면, 부디 놓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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