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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빠진 화가들 - 그리스 로마
토마스 불핀치 지음, 고산 옮김, 이만열 추천 / 북스타(Bookstar) / 2019년 4월
평점 :
무엇이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하는가. 이 책의 추천자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는 신화가 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경영과 기술 등의 분야에서까지 인문학적인 소양을 요구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임마누엘은 이 현상을 현대 IT 산업 기술의 원점에 서 있는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애플을 애플답게 하는 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고 했던 말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니체는 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찾아 마침내는 스스로의 삶을 성숙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이를 바탕으로 임마누엘은 인문학을 '우리의 삶과 주변의 세계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통해 인간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지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임마누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과 그 비밀에 민감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옛 철학자와 과학자들, 사상가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항상 다른 관점에서 현상을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힘, 그것을 얻기 위한 발판이 신화와 예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그 바탕에 자리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고,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는가'에 관한 것일 테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화가 고갱은 이 화두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고민,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는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옛 사람들은 그 의문을 종교와 신화를 통해 풀어보고자 했는데, 책에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이집트 신화, 북유럽의 신화, 힌두 신화와 중국 신화등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방대한 이야기가 마침내 시작된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대부분의 신화는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에서 뽑았으나 원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고 이야기는 일단 산문으로 서술하되 원문에 내재되어 있는 시적인 요소는 살리려고 노력했다 한다. 시의 인용을 자유롭게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읽기 전 접한 동일작가, 토마스 불핀치의 [알수록 다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00]에는 시적인 요소가 거의 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천자인 임마누엘은 신화를 통해 인문학적 기본을 배울 수 있고 인간적인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신화에서 비롯되어 현대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와 신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학작품들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두고 읽지 않더라도 신화 읽기는 충분히 즐거운 행위다.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그에 따른 갖가지 풍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실제로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설레임을 선사한다. 게다가 우리처럼 신화를 사랑한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인류가 종이를 발명한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부록인 <신화 속 계보>에는 신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을 표현한 예술작품이 작게나마 같이 실려 있어 한 눈에 신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신화를 통해 무엇을 얻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만약 임마누엘의 추천사에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면 과감히 떨쳐버리시라. 즐겁지 않으면 독서는 의미가 없으므로. 그저 방대한 신화 속 이야기에 자신의 정신을 맡겨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