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Yujin's Book Story (Yujin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9 Oct 2026 06:38:16 +0900</lastBuildDate><image><title>Yujin</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02491632808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yuji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Yujin</description></image><item><author>Yujin</author><category>독서목록</category><title>9월 독서목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549128</link><pubDate>Thu, 01 Oct 2026 17: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549128</guid><description><![CDATA[1. 마치 박사의 네 아들(브리지트 오베르, 양영란 역. 엘릭시르. 2024. 320쪽): 이전에 일했던 집들에서 모두 도둑질을 했던 가정부 지니. 지금은 과거를 숨기고 시골의 마치 박사 집에서 일하고 있다. 마치 부인의 방을 정리하다가 부인의 모피 코트를 입어보던 중, 코트 아랫단에서 수상한 쪽지를 발견한다. 바로 살인을 고백한 쪽지. 글을 쓴 사람은 이 집의 아들들 중 한 명. 의사가 되려는 클라크,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재크,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마크, 공대생 스타크. 이들 중 누가 과연 어릴 때부터 살인을 해왔으며 지금도 단순히 자신의 재미를 위해 여성들을 죽이고 있는가? 처음엔 호기심이었던 지니는 점점 살인자의 섬뜩한 일기 내용에 매몰되고, 끊었던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br>(스포)<br>이게 그러니까.... 범인은 내가 예측했던 사람이 아니었고(어쩌면 당연) 사건의 진실도 좀... 제목과 표지가.... 하아.... 이거는 좀 아니지 싶다. 이걸 트릭이라고 할 수 있나? 서술 기법이라든가, 반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물론 추리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알아챘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주 쉽게. 그러니까 이 책은 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시하고 나처럼 감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무한 내용이다. 글은 잘 쓰는데 내용상으로는 좀 비겁했다고 말하고 싶다.&nbsp;<br><br>2.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최정화. 마음산책. 2021. 204쪽):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짧은 이야기들이었고 처음부터 이들에게 공감하거나 이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의 세상이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해서인지 오히려 이질감이 없었다. 보통 다른 단편들을 읽을 땐 그러지 않는데, 이 작품집은 처음부터 왠지 내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고 - 표지의 영향이었을까? 평소엔 표지 그림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편인데 이 작품집은 표지 그림이 이상하게 생경한 느낌이었다 - 어딘가에서 살고있음직한, 하지만 어쩌면 소설 속에서만 있을 것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아주 묘한 매력이 있는.&nbsp;<br><br>3. 호수 속의 여인(로라 립먼, 박유진 역. 아르테. 2024. 396쪽): 매디 슈워츠는 갓 스무 살에 남편과 결혼을 한 후 성실한 전업주부로서 살아왔다. 아들 세스를 정성들여 키워냈고 남편 뒷바라지도 잘 해왔다. 어느 날 남편이 운동을 하다 만났다며 고등학생 때 자신을 쫓아다녔던, 하지만 지금은 앵커로 성공한 남자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그가 자신과의 과거를 각색하는 걸 참고 들어주던 중 자신이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고, 더 늦기 전에 남편을 떠나기로 한다. 집을 나와 방을 얻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치안이 허접한 동네에 있을 수 밖에 없고, 아들마저 자신을 따라나오지 않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지만 곧 머리를 잘 써서 어느 정도의 자금을 확보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 애인도 사귀게 된다. 그러던 중 동네에 열 한 살 소녀가 실종되는 일이 생기고 수색대에 합류한 매디는 안면을 터 두었던 보석가게 점원 주디스와 함께 시신을 발견한다. 이걸 알고 자신을 찾아온 지역 양대 신문사 중 하나에서 일하는 칼럼니스트 보브에게 정보를 준 후 신문에 이름이 실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실종된 소녀를 살해한 용의자에게 편지를 써 자신만의 정보를 확보한 후 신문사에 들고 간다.<br>1960년대 미국 소도시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매디의 생활이 변화하며 매디가 성장하는 모습과 '호수 속의 여인'인 클레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당시에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오랜 시간 전업주부로 살았던 여성이 신문 기자가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매디는 해낸다. 자신만의 요령과 노력과 추진력으로. 솔직히 말하면, 매디가 이만큼의 추진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의 미모가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았고 자신의 얼굴이, 행동이 상대방에게 늘 호감을 샀다는 걸 알고 있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그녀의 원동력이었던 것. 그럼에도 주관이 뚜렷한 그녀가 나아가는 길은 통쾌함을 준다. 이 이야기는 성차별 외에도 당대의 인종차별 풍조와 옐로 저널리즘도 다룬다. 비록 매디가 가는 길이 정의구현은 아닐지언정, 그녀를 응원하게 되는 건 이러한 시대 배경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길을 확실히 알고 발걸음을 내딘 그녀가 주는 대리만족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건의 진실이 품고 있는 작은 반전도 흥미로웠다.&nbsp;<br><br>4. 꽃 달고 살아남기(최영희. 창비. 2015. 248쪽): 감진 마을 유일한 청소년 진아. 온 마을 사람들이 진아에게 모든 신경을 쓴다. 진아는 일흔 여섯 살 엄마의 업둥이 딸이다. 17년 전 대문 앞에 놓여 있던 진아를 엄마와 아빠가 거뒀다. 현재 진아는 읍내에서 하숙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야 한다. 이번 주말에도 고향 마을에 온 진아는 집 밖 평상에 모여 있던 마을 어른들에게 얼굴 보이러 나가려는 참인데, 자기 이름이 들린다. 장터를 떠돌아 다니는 미친 여자 꽃분이와 갈수록 닮아간다며. 꽃분이가 진아의 친엄마인 걸까? 진아는 갑자기 나타난 중학교 동창 신우와 함께 꽃분이를 찾아 사실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5일장이 열리는 장터마다 찾아다니는데 상인들에게 꽃분이에 관해 물어볼수록 상인들은 엉뚱하게도 진아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곁의 신우는 자꾸만 상인들에게 덤비려고 한다.<br>제목이 진짜 이런 뜻일 줄이야. 진아의 앞날이 쉽지는 않을 걸 알기에 즐겁기만 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은 건 아니지만 진아가 씩씩해서 맘이 덜 무겁다. 다만 난 애매한 건 싫어서, 결말에서 끝까지 보여줬으면 좋았을 걸 싶기는 하다. 단순히 진아의 자아 찾기를 넘어서 청소년 그루밍 범죄와 세상의 편견, 좋은 어른의 요건까지 골고루 건드린다. 청소년 대상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을 이야기였고, 출간된 지 좀 되긴 했지만 꾸준히 청소년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소설이었다.&nbsp;<br><br>5. 메일맨(스티븐 스타링 그랜트, 정혜윤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6. 404쪽):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기, 저자는 전화로 해고를 통보받는다. 저자의 직업은 마케팅 컨설턴트. 고향 마을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면서 공유 오피스를 두고 주로 출장을 다니며 일하던 저자는 졸지에 직업 뿐 아니라 의료 보험까지 잃었다. 문제는 저자가 암 치료 중이었다는 것. 당장 의료 보험이 필요했던 그는 우체국 시골 배달부로 일하기 시작한다. 시골 배달부는 단어 그대로 주로 시골 지역을 돌아다니는 배달부이다. 잘 갖춰진 우편함에 우편물을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도시 배달부와 달리 길과 우편함이 제각각이라 쉽지 않다. 길을 외우는 것도 힘들지만 그전에 우편물 분류부터가 문제다. 게다가 저자는 평생을 책상 앞에서만 일해 왔다. 이 책에는 저자가 단순히 초보 배달부로서 뿐 아니라 팬데믹 시절에 '배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겪었던 많은 우여곡절 에피소드와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물건에 대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꽉 차 있다.&nbsp;<br>읽는 내내 자주 깔깔대며 웃었다. 저자가 특별히 유머러스해서라기 보다는 -&nbsp; 저자는 '웃음'을 목표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 상황이며 사람들이 꽤나 웃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론 진지함도 잃지 않는다. 처음 하는 일의 힘듦과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자신이 돌봐야 할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티는 건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만 저자의 디테일한 자료 조사과 이 책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저자의 깊은 사유는 이 책을 그리고 저자의 (임시적이었을지라도) 직업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nbsp;<br>흔히 하는 말로 '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고들 한다. 난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맙소사, 레모네이드도 싫으면 어떻게 해? 라고 생각했었다. 아예 레몬으로 된 모든 게 싫은데 삶이 레몬만 주면 어떡하냐고! 저자는 레모네이드에 설탕을 넣는 법을 가르쳐 준다. 아니 꼭 설탕이 아니더라도, 레몬을 싫어하는 사람도 레모네이드를 먹을 만 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건 저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정 물건이거나 혹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소소한 무엇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하나만 있다면 시디신 레몬도, 취향이 아닌 레모네이드도 꿀꺽 삼킬 수 있게 될 것이다.&nbsp;<br><br>6. 타운하우스(전지영. 창비. 2024. 300쪽): 마냥 선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악하지도 않은, 약간의 선의와 범법이 되지 않을 정도의 악의를 지닌, 마치 나같은 인물들이 바라보는 세상. 결말도 그에 걸맞게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힘들다. 그래서 읽고 나서 마냥 편하지도 마냥 괴롭지도 않았다. 세상에 대해 꽤나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진 작가. 삶은 그런 것.&nbsp;<br><br>7.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임태운. 시공사. 2021. 316쪽): 아이디어가 매우 좋은 SF 소설집. 하나하나가 다 신선하다. 가벼운 소재들이지만 그 안에서 외(국/계)인에 대한 차별, 성역할 고정관념과 차별, 학교 폭력 등 사회문제를 조금씩 건드린다. 가장 재밌었던 건 표제작. &lt;로봇이라서 다행이야&gt;는 조금 슬펐다.<br><br>8. 김밥천국 가는 날(전혜진. 래빗홀. 2025. 352쪽): 김밥천국으로 대변되는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은, '만만한' 식사들. 그 메뉴를 중심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서 딱히 더 재밌거나 흥미롭지는 않았다. 음식과의 연결이 조금 특별했을 뿐. 그것도 그냥 아 이렇게 연결짓는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글솜씨가 나쁘지 않았고 모든 이야기를 아우를 줄 아는 작가라는 느낌이 들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했다.&nbsp;<br><br>9. 지구로부터의 편지(마크 트웨인, 윤영돈 역. 베가북스. 2005. 127쪽): 사탄이 아직 천사이던 시절, 사탄은 그 본성을 참지 못하고 이제 막 천지창조를 끝낸 하나님을 비꼰다. 그 벌로 지구에 유배를 가게 된 사탄이 동료 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에게 인간 사회의 이상함을 일일이 써보낸 편지 11통이다. 단순히 인간의 사회적인 우스꽝스러움 뿐 아니라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이 만든 기독교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한다. 진짜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이 원하는 신의 모습을 한, 기득권자만을 위하는 신. 저자 특유의 블랙 유머와 시니컬함이 가득하다.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오만함과 성에 대한 터부, 인종 차별, 성차별 등 이 책이 쓰여졌던 120여 년 전과 비교해도 별반 나아지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사탄의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nbsp;<br><br>10. 어른의 미래(편혜영. 문학동네. 2025. 224쪽): 불편하고 불안하고 억울한 어른들. 맵고 짜고 시큼한 이야기들이다. 내 삶이 달달했다면 이 이야기들이 좀 덜 맵고 덜 짜고 덜 시었을까 생각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원인은 '나'일 수도, 타인일 수도 있고 환경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다. 내가 당한 일에 대해 되갚아 주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그저 자신만 만족하는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버티고 견디는 게 어른의 삶. 책 속 누구도 지금의 이런 어른이고 싶지는 않았을, 하지만 이대로 살아내야 하는.&nbsp;<br><br>11. 감정의 혼란(슈테판 츠바이크, 김선형 역. 세창미디어. 2022. 243쪽): 화자(롤란트)는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거둬 추밀고문관의 자리에 오른 학자이다. 그는 환갑 기념 논문집을 받은 후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한다. 지금의 위치는 상상할 수 없었던, 치기어리고 미숙했던 젊은 날을. 그는 처음 대학을 진학하자 대도시의 환락에 쉽게 휩쓸린다. 여자, 술, 친구들과의 오락에 빠져 학업은 등한시하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방문하자 침대에 함께 있던 여자를 허겁지겁 보내는 일이 생기고, 이를 계기로 수치심을 강하게 느낀 그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지방의 한적한 대학 도시로 적을 옮기기로 한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그는 학생들에 둘러싸여 엄청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활발하게 토론을 하던 한 교수를 보게 되고, 그 교수를 자신의 지도교수로 삼고자 한다. 그에게 받아들여지고 그와 같은 건물에 세들어 살게 된 롤란트는 거의 매일 저녁 교수와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며 지식과 지혜를 쌓아간다. 하지만 교수의 태도는 기복이 심하다. 그와의 토론에 심취하다가 어느 순간 싸늘해 지며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전날의 토론을 이어가기도 한다.&nbsp;<br>읽으면서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결국 내 예상대로이기는 했다. 가엾은 교수, 가엾은 부인, 가엾은 롤란트...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교수의 저작이 제대로 출간됐는지 그게 제일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니까, 1부 뿐 아니라 전체가.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토록 뛰어난 생의 업적을 앞에 두고도 감정 때문에, 마음 때문에 결국은... 하지만 롤란트가 없었더라면 교수도 그만큼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었겠지. 인류 전체에게도, 한 인간에게도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감정의 혼란. 과연 운명은, 아니 인간 자신은 인간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br>ps. 내용과 별개로 번역, 편집, 교정이 너무 엉망이어서 읽기가 힘들었다.<br><br>12. 비밀의 책(안나 마촐라, 유소영 역. 인플루엔셜(주). 2026. 436쪽): 17세기 로마,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내에 죽은 뒤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뺨이 붉고 피부가 하얀 시신에 관한 소문이 돈다. 신의 도시 로마에 악마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도는 걸 경계한 당국은 초보 수사 판사 스테파노에게 이를 조사하라 명하고, 스테파노는 의사 마르첼로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시작한다. 유족 면담을 진행하던 이들은 유족인 아내들이 모두 학대받은 흔적이 있음을 발견한다. 사실 이들 죽은 자들은 모두 지롤라마라는 여성이 제조하는 '아쿠아'를 먹고 죽은 자들이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도움을 청할 곳 없이 끝까지 몰린 가여운 아내들이 지롤라마에게 도움을 청한 것.<br>(약스포)<br>읽는 내내 화가 났다.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데 평온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결말까지 뭐 하나 속 시원한 게 없다. 물론 글은 잘 썼고, 저자가 책 뒤에서 밝혔듯 자료 조사도 철저했으며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크게 왜곡하지 않고 적당히 가공해서 잘 전달했다. 하지만.... 왜 여성에게는 자식이,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점일 수 밖에 없나. 모든 게 자식을 두고 협박당한 여인의 한 마디에서 잘못되기 시작했다는 게 난 너무나 슬펐다. 그녀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걸 약점으로 잡고 협박한 인간이 잘못이긴 하지만... 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득권자의 이익을 위해서 돌아가고, 가진 게 없는 이들을 위한 시스템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소설 속에서나마 약간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는 데에서 위안을 받아야 하나.&nbsp;<br><br>13. 우리 세희(조해진. 현대문학. 2026. 176쪽): 연주는 런던에 취재차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센세'에게서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재일동포인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연주에게 센세와 선생님은 마음을 기댈 유일한 사람들. 연주는 선생님과 센세를 처음 만났던 순간들과 엄마와의 추억, 그리고 한국에서의 엄마의 삶과 선생님에게서 들은 일본에서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br>늘 그렇듯 이 작가는 적은 분량에도 이야기를 진하게 응축시키는 힘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 재일한국인들이 일본 패망 후에도 일본에 남을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나 그곳에서 받은 차별 대우, 시간이 흘렀지만 오히려 애매해진 사회적 지위 등을 연주의 회상을 통해 풀어낸다. 사실 재일한국인 이야기는 그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약자들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 작가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무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약자로서의 삶은 어느 나라든 쉽지 않겠지만 고국에서조차 밀려난 삶이라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으로, 읽는 것으로 그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어주고픈 맘이 들었다.&nbsp;<br><br>14. 먹는 기쁨에 대하여(한은형. 인플루엔셜. 2026. 352쪽): 먹는 것이 진심인 작가의 음식 에세이. 작가는 어릴 때부터 대식가인 식구들 틈에서 열심히 먹으며, 본인만의 취향과 정확한 입맛을 키우며 살아왔다. 지금도 제철 음식과 영화 속 음식, 파인 다이닝은 물론 고향이 아닌 타지역 명절 음식 등 꽤나 본격적으로 먹는 기쁨을 잘 구하며 잘 살고 있다. 읽는 내내 감탄한 게, 나도 먹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입맛이 저렴하고 귀찮음이 큰 터라 그렇게까지 먹는 것에 아니 식사 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게 신기했고 식재료 얘기를 하며 신나하는 게 느껴져 나도 같이 즐거웠다. 제대로 미식가로 살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하는 거구나... 사실 먹는 얘기는 언제 읽어도 즐겁다. 입이 짧은 사람이 쓰는 경우가 거의 없고 - 혹시 있다면 추천 좀... - 자신이 좋아하는 걸 얘기하는 글들이 모두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더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게 행간에서 읽혀서 더욱 그렇다. 이 책도 읽는 내내 재밌고 즐거웠다.&nbsp;<br><br>15. 마지막 모든 두려움(알렉스 핀레이, 배지은 역. 현대문학. 2026. 576쪽): 맷은 밤새도록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외투와 휴대폰도 잃어버린 채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FBI 요원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봄방학을 맞아 멕시코로 여행을 간 가족들 - 부모님과 여동생, 늦둥이 남동생 - 이 가스 사고로 죽었다는 것. 맷은 곧, 기자들이 몰려올 것을 예감하는데 왜냐하면 맷의 형 대니가 고등학생 때 데이트 상대인 소녀를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기 때문이다. 맷은 가족의 시신을 인수하러 멕시코로 가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꼬이고,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하는 그에게 바에서 어떤 여성이 접근한다.&nbsp;<br>솔직히 말하면, 변영주 감독의 추천사가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근데 재밌었다. 범인은 예상하는 그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가 중반 이후에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기도 해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 그리고 최근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옐로 저널리즘과 수사 담당자의 확증 편향으로 인해 누명을 쓰게 된 억울한 피해자, 그리고 과도한 권력욕으로 인한 부가적 희생 등을 균형 있게 다룬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꽤 디테일해서 계속 집중해서 읽었다. 다만 드러난 사건의 진실 자체가 살짝 스트레스여서 좀 괴로웠다. 정말, 그럴 필요까지야...<br><br>16.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김하율,홍지운,오정연,이산화,이루카,윤여경,이수현. 에디토리얼. 2019. 320쪽): SF 페미니즘 앤솔러지. 어느 것 하나 나쁘거나 재미가 덜 한 건 없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마음 깊이 남아 있는 것도 없었다. 사회적 약자의 현재 상황/입장을 이야기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답답하기도 했고, 여성 자신보다는 약자에 방점이 찍혀 있기도 해서 더욱 심드렁하기도 했다. 그래도 페미니즘 앤솔러지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br><br>17. 블루버드, 블루버드(애티카 로크,박영인 역. 네버모어. 2021. 404쪽): 아프리카계 텍사스 레인저 대런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을 도왔다가 정직을 당한다. 그에게 로스쿨 동창이자 FBI에서 일하는 그렉이 전화를 걸어 텍사스 외곽의 소도시 리크에서 두 구의 시체가 이 주의 간격을 두고 발견됐다며 조사를 해보라고 한다. 상사에게서 간신히 암묵적 허락을 얻어낸 그는 먼저 흑인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다시 백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 개울 근처의 카페로 향한다. 죽은 흑인은 변호사이고 백인은 이 마을에 살던,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 대런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흑백 양측의 반발을 얻는다. 흑인들은 백안시하며 비협조적인 정도지만 백인 남성들, 특히 일종의 KKK단인 텍사스 브라더후드로 의심되는 이들은 폭력까지 행사한다. 거기에 더해 남편이 사고사가 아니라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흑인 피해자의 아내까지 나타난다.<br>현재의 이야기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텍사스의 인종 차별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정말이지 대런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당하는 장면장면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조사의 진도는 너무 느리다. 게다가 피해자 아내는 왜 달고 다니는 지 알 수가 없다. 함께 힘을 합쳐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방해만 되는데다가 해당 여성의 캐릭터마저 비호감이다. 내가 결혼 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가 남편 살아생전 잘 못 해줬던 거 만회하자고 남편 죽은 장소에 와서 남의 남편 휘두르고 쫓아다니는 게 맞는 거야? 물론 결말에 가서는 진실이 밝혀지고 뚝심있게 진실을 파헤친 대런이 결국엔 옳았던 것으로 밝혀지지만 그 과정에서 대런이 뭘 대단히 해냈다기보다는 그냥 소 뒷걸음질치다가 개구리 잡은 격인 거 같은데... 해서 앞으로 이 시리즈는 물론 이 작가도 안 읽을 거 같다.&nbsp;<br><br>18.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곽유진. 고블. 2025. 200쪽): 임종의 자리에 누운 노인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포칼립스의 세계에서 한 노인과 함께 걷던 소녀의 이야기를. 소녀는 얼어붙은 세상의 배달원이었다. 소녀가 머물던 지하철 역에서 다른 역까지 노인을 데려다 주는 게 소녀의 임무였다. 식량도 거의 없이 사방이 얼음인 세상에서 늑대의 습격마저 걱정해 가며 소녀와 노인은 폐허가 된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노인과 함께 들어간, 예전에 백화점이었던 건물에서 노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좋아했던 아역 배우의 광고 사진을 보고 소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아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연을 맡았던 영화의 이야기를.<br>단순히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중첩된 이야기 속에서 소녀와 노인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이야기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인과 소녀 뿐 아니라 이야기 속 이야기의 두 주인공 또한. 진실도 중요하겠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더 중요한 건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닐까? 자신도 몰랐던 상처를, 같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177쪽) 서로를 치유한다면,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도 한 발자국 더 갈 수 있는 거겠지. 그래서 이건 아름다운 이야기.&nbsp;<br><br>19. 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김보람. 사농공상. 2026. 320쪽)<br><br>20. 이만원만 빌려줘(안보윤. 자음과모음. 2026. 156쪽):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만원. 연작 소설집. 한 남자가 아이를 납치하는데, 요구하는 몸값은 겨우 이만원이다. 그는 왜 이만원만 필요했을까? 함께하고자 했지만 결국 인간은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다. 모두 자신만의 사정이 있고 상처가 있다. 다른 이를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되지만 속사정 모르고 쉽게 내뱉는 말들은 항상 주위를 떠돈다. 작가의 에세이가 가장 희망적이었던 책. 이 작가의 잘 벼려진 시선이 그날따라 많이 슬펐다.<br><br>21. 나무 : 삶과 죽음의 이야기(데이비드 스즈키,웨인 그레이디. 이한중 역. 더와이즈. 2024. 296쪽): 나무 더글러스퍼의 일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나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저자는 더글러스퍼가 우뚝 솟아 있는 걸 보며 문득 이 나무가 태어난 건 셰익스피어 시절이었으리라 생각을 하고, 이 나무의 긴 수명(700여 년)을 떠올린다. 화재로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 속에서 하나의 씨앗이 발아했을 때부터 뿌리를 내리고 키를 키우고 나이테를 늘리는 동안 주변에는 온갖 생물들이 함께한다. 가까이는 다른 종류의 나무와 풀, 이끼 들을 비롯하여 균류와 크고 작은 동물들까지, 과연 생명의 군락이라 할 만 하다. 나무는 이들과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받으면서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기후를 비롯한 환경 변화에 맞춰 자신 또한 변화시킨다. 이러한 나무의 삶은 고목이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고목이 된 후에도 나무는 다른 생명들과의 상호 작용을 멈추지 않는다.&nbsp;<br>어쩌면 인간사와도 닮았을 나무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생명의 이야기이고, 그 숨이 순환하는 이야기이다.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쉰 후에도 다른 생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일 것이다,&nbsp;<br><br>22. 1990XX(김아나. 자음과모음. 2023. 252쪽): 1990년은 백말띠의 해이다. 백말띠의 여자아이들은 기가 세다고 하여, 많은 아이들이 낙태를 당했다. 단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책 속에선 그 아이들이 귀신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자신을 죽인 할아버지들을 찾는다. 이 책은 그 여자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운 좋게(?) 살아남아 태어난 아이들도 이 X같은 세상에서 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건 책 속에서도 이야기하지만, 아마도 몇 십 년 후에도 그러할 지도 모른다.<br>사실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 빛을 못 본 아이들은 비단 1990년 생이어야 헀을 아이들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읽으면서 난 1978년생이었어야 했을 아이들이 훨씬 많이 죽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 이전도. 또한 이건 말띠에만 국한된 폭력도 아니다. 범띠, 용띠, 닭띠.... 어느 띠인들 여자아이라고 반겼을까. 이 책 속 아이들은 단순히 백말띠만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건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던 모든 영혼들을 위한 애가이다. 처음 기대했던 것 만큼 속 시원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모든 어린 여성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nbsp;<br><br>23. 데이먼 러니언&nbsp; : 세라 브라운 양 이야기 외(데이먼 러니언, 권영주 역. 현대문학. 2013. 440쪽): 뮤지컬 &lt;아가씨와 건달들&gt;의 원작이 되는 단편들. &lt;아가씨와 건달들&gt;이라는 제목을 누가 처음 지었는지 정말 딱 맞는 이야기들이다. 평소엔 건달이지만 아가씨 앞에서는 신사가 되는 인간들과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과 함께 살게 되면 건달을 넘어서 폭력배가 되는 인간들의 이야기. 그나마 대부분은 신사로 남기는 한다. 표제작 격인 &lt;세라 브라운 양 이야기&gt;도 재밌었지만 가장 재밌었던 건 역시 첫 번째 작품인 &lt;광란의 40번대 구역에 핀 로맨스&gt;. 마지막에 나름 반전이 있다. &lt;부치, 아기를 보다&gt;도 재밌었다. 사실 재미 없는 작품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낭만과 나름의 질서가 잘 어우러져 '광란의 시대'를 멋지게 살아냈던 브로드웨이 사람들. 이들에게 작가가 가진 애정이 드러나보이는 사랑스럽고 웃긴 이야기들이었다.<br><br>24. 내 남편을 팝니다(고요한. 나무옆의자. 2025. 224쪽): 해리는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남편 마틴을 팔아버리기로 결심한다. 보험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오해에 의해 타의로 퇴사한 후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데, 갈수록 꼴뵈기 싫어지는 중이다. 남편과 백화점에 갔다가 모르는 여성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은 해리는 어떻게든 남편을 팔 수 있는 사이트의 정보를 알아내려 하지만 못 찾던 중, 백화점 화장실 칸막이 아래로 불쑥 내밀어진 명함을 통해 비밀 카페를 알게 되고, 정말로 남편을 매물로 올린다. 약간의 소동 끝에 남편 마틴을 경매에 올리게 되는데, 입찰자가 꽤 많다. 부유해 보이는 카미유, 나이 지긋한 압구정, 반면에 가장 어린 듯한 선글라스, 뭔가 수상한 루비통과 카페를 만든 유회장까지. 각자 사연이 있고 낙찰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br>처음엔 뭔가 신박한 이야기일 거라 기대했는데, 진짜 남편을 경매에 올리는 게 다라서 좀 실망했다. 나 이 책 왜 끝까지 읽은 거지? 내가 남의 결혼 생활에, 아니 결혼이라는 거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걸 나 자신도 깜빡했다. 난 뭐, 못 되어 먹은 남편한테 복수라도 할 줄 알았지. 경매 낙찰가로 위자료 준다는 말에 흔쾌히 응한 남편이나, 그런 인간을 경매에 올린 아내나 유유상종이기는 하다. 그냥 뻔하디 뻔한 이야기.<br><br>25. 랭스턴 휴스 :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외(랭스턴 휴스, 오세원 역. 현대문학. 2015. 440쪽): 아프리카계인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는 단편들. 단순히 흑인이어서 당한 차별과 억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부당한 대우에 대한 이야기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유색 인종끼리의 견해차와 반목,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의 대륙 아프리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 태도 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삶의 페이소스가 진하게 배어나온다. 읽으며 유색인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다 재밌고 좋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lt;천사들의 문제&gt;와 &lt;누가 누구인 척을 하는가?&gt;. &lt;내가 연주하는 블루스&gt;는 최애 생각하며 읽었더니 과몰입하게 되어서 나중엔 조금 슬프기까지 했다. 좋은 독서였다.<br><br>26. 제사를 부탁해(박서련, 정영롱. 문학동네. 2023. 144쪽): '제사상 코디네이터'인 수현. 남의 집 제사상을 제대로 차려주는 일을 하는데, 늘 거짓말을 재미삼아 하던 고등학교 동창 정서가 죽었다. 정서는 죽으면서 수현에게 자신의 일주기 제사상을 부탁했고, 수현은 짐을 챙겨서 정서의 집으로 향하는데 그곳엔 정서의 고등학생 딸만이 있다.<br>초단편이지만 읽은 후 생각이 길게 이어졌다. 앞의 글은 박서련 작가가 썼고, 뒤의 만화는 정영롱 작가가 그렸는데 뒤의 이야기는 정서의 관점이다. 글이 더 재밌긴 했다.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걸 만화가 채워주려는 의도였던 거 같은데 오히려 상상의 폭을 제한해 버린 느낌이랄까. 여운을 없애버린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신선한 느낌은 있었다. 재밌었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Everyday, Every night</category><title>악보위원이 말해주는 것들 - 『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 김보람 - [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 - 클래식 무대 뒤, 오케스트라 악보를 둘러싼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548782</link><pubDate>Thu, 01 Oct 2026 1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5487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0611&TPaperId=175487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1/96/coveroff/k5421306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0611&TPaperId=175487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 - 클래식 무대 뒤, 오케스트라 악보를 둘러싼 세계</a><br/>김보람 지음 / 사농공상 / 2026년 07월<br/></td></tr></table><br/>음악을 듣거나 공연 실황을 볼 때 악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 안 해 보았다. 공연을 보거나 실황을 볼 때 보면대 위에 버젓이 놓여 있는 악보에 대해서도.
난 솔직히 말하면 그냥 '공구' 하는 줄 알았다. 지휘자가 출판사 정해주면 단원들이 알아서 구하는 줄.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됐을 때 책 소개 글을 읽고 약간 과장해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악보위원이란 직무가 있을 수 밖에 없구나. 서둘러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고 드디어 읽었다.<br>



악보는 공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임대를 한다. 그리고 악보위원이 하는 건 단순히 지휘자가 지정한 악보를 찾아서 빌려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론 찾아서 빌려오는 과정도 간단하지는 않다. 악보 버전도 여럿이거니와
출판사도 그렇고, 대여료와 각각의 저작권도 신경 써야 한다. '창작자(작곡가) 사후 70년'의 원칙이 대부분 적용되긴 하지만 출판사의 2차 저작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연권은 물론이고 혹시 방송을 하거나 실황을 유튜브 등에 게시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저작권 문제는 꽤나 복잡해진다. <br>



악보를 구해서 실물을 손에 쥐었다고 끝이 아니다. 혹시 한번도 대여된
적이 없는 새 악보라면 중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철저히 검증해야 하고 새 악보가 아니라면 지난 흔적들 –
지난 연주자/지휘자의 해석 표기가 연필로 남아 있다고 한다 – 을 살펴 원래의 악보와 그 위에 덧입혀진 부분을 분석해야 하며, 지휘자가
총보를 보고 분석한 내용을 파트보에 옮기기도 해야 한다. 때로는 아예 조바꿈을 해서 새로 작성해야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연주 도중 페이지 넘기는 시간(4초)까지 고려해 악보를 편집해야 한다. 그야말로 악보위원이 일을 해내야
비로소 연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악보위원을 ‘librarian’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br>



이 책에는 이렇게 일반 청중들이 몰랐던 악보위원의 일 자체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외에도 각
출판사별 특징과 구하기 힘든 악보들을 구하는 요령 등도 서술되어 있어 앞으로 악보위원이라는 직업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또한 유명 작곡가들, 유명한 곡들의 악보에 대한 이야기, 진은숙이나 정명훈, 조성진 등 유명 음악인들과의 일화, SM과의 협업, 서울 시향의 해외 투어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클래식에
관심이 없더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 꽉 차 있다. 정말 ‘풍부하다’라는 표현이 기꺼운 책이다.
읽는 내내 너무나 재미있어서 책이 얇게만 느껴졌다. <br>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공연 한 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대 뒤에서 노력을 하는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막연히 오케스트라 운영실이나 무대 관리
등의 업무들을 떠올렸지만 실상은 훨씬 세분화되고 또 다양하리라. 이 모든 비하인드가 다 궁금해졌다. 무대 뒤의 다른 직업들을 가진 분들이 이런 책들을 많이 써줬으면…<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1/96/cover150/k5421306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19671</link></image></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독서목록</category><title>8월 독서목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91216</link><pubDate>Thu, 03 Sep 2026 1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91216</guid><description><![CDATA[1.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 수첩(브뤼노 몽생종, 이세욱 역. 정원출판사. 2005. 606쪽)<br><br>2. 목숨전문점(강윤화. 실천문학사. 2015. 216쪽): 단편집. 첫 작품을 읽고 판타지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여기, 지상에 발 딛고 서 있지만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회피가 아니다. 어떻게든 남은 삶을 이어가 보려고 치는 발버둥. 하지만 해피엔딩은 없다. 그래서, 마음이 쉽지 않았다.<br><br>3.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김슬기. 클레이하우스. 2025. 368쪽): 강하고는 드디어 죽음을 결심한다. 배달 노동으로 가까스로 이어오던 삶. 가장 친한 친구라 믿었던 애는 강하고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남자를 낚아채고서도 둘이 계속 하고를 등쳐먹고, 알면서도 호구 노릇을 하던 하고는 이제는 지쳤다.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철거를 앞둔 옥탑방 구석에 누워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데, 세 명의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저 근육들은 뭐지? 저승사자들에게 운반된 하고는 얼마 후 눈을 뜨는데, 정갈하게 정리된 집안이다. 여기가 사후세계인가?<br>강하고의 성장담. 로맨스도 살짝 있다. 꿈같은 이야기이고, 강하고가 너무나 부러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강하고의 의지. 되고자 하는 모든 걸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근처에만 가도 성공 아닌가. 이 빡빡한 자본주의 사회에선 말이다. 물론 옆에서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하지만 뭐, 없을 수도 있는 거고. 기존에 읽었던 소위 '힐링 소설'과는 결이 좀 다르지만 진짜 힐링을 주는 동화같은 이야기.<br><br>4. 바다의 긴 꽃잎(이사벨 아옌데, 권미선 역. 민음사. 2022. 476쪽)<br><br>5. 위대한 피아니스트 1.2.(해럴드 C. 숀버그, 박유진 역. 조은아 (감수). 클. 2021. 444쪽, 452쪽)<br><br>6. 페드르와 이폴리트(장 라신, 신정아 역. 열린책들. 2013. 200쪽): 그리스 신화의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이야기를 각색한 희곡. 내용은 알려진대로, 의붓아들을 사랑한 페드르와 의붓아들인 (죄없는) 이폴리트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신화에서와는 달리 이 희곡에서 초점을 맞춘 건 인간의 정념. 결국 인간은 애욕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구렁텅이로 이끄는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다. 그가 전쟁 영웅이든, 고귀한 혈통이든 상관없이(사실 저자는 페드르의 정념에 휘둘리는 혈통을 강조하기는 한다) . 그리고 이 정념은 부수적인 피해마저 낳는다. 사실 이폴리트는 죄가 없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 적국의 공주 아리시도 죄가 없다. 어쩌면 이 정념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테제는 오히려 이들의 죽음으로 이득을 얻는다. 왕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 결국 기득권자의 권위와 권리를 강화하기만 한 결말인 것이다. 비록 그게 정의 실현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을지언정.&nbsp;<br>당대에 이 이야기가 얼마나 인기를 얻었는지와는 별개로, 읽으면서는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와는 또다른 삐딱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nbsp;<br><br>7. 운명의 꼭두각시(윌리엄 트레버, 김연 역. 한겨레출판. 2023. 344쪽):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페르모이. 이곳에는 퀸턴 가가 있다. 킬네이에 자리잡고 있는 이 가문은 대기근 때 토지의 대부분을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준, 영국 출신의 여인 애나 우드컴을 증조 할머니로 두고 있다. 그녀의 증손자인 윌리의 엄마 에비도 영국인이다. 아일랜드는 1차 대전 후 영국에게서 독립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지만 오히려 영국은 아일랜드에 군사를 파견했고, 이들은 결국 킬네이의 퀸턴 가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킬네이 저택이 이들에 의해 불타고 아버지 윌리엄과 윌리의 두 여동생이 사망한 것. 윌리는 엄마와 하녀와 함께 시내로 이사하는데, 엄마는 계속 우울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위스키에 점점 더 의존하고 멀리 있는 부모에게서 온 편지를 읽지도 않는다. 이에 윌리의 외조부는 에비의 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윌리의 이모와 사촌 메리언이 방문을 한다. 윌리는 메리언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되지만, 운명은 그들을 함께 두지 않는다.<br>책을 읽으며, 그리고 책을 덮은 후 운명에 대해 한참 동안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이끌어가는 운명. 책 제목은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해질 걸 알면서도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인간의 하찮음을 뜻하지만 인간은 그래서,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할 수 있다. 윌리로 하여금 킬네이를 떠날 수 밖에 없게 한 운명, 메리언을 등질 수 밖에 없게 한 운명. 분명 윌리는 그러지 않음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러지 않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니까. 그러나 윌리는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인다. 바로 그 지점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 윌리의 방법이 옳았다는 게 아니라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그것을 받아들였음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작은 존재인 인간이 운명을 감내하는 방식인 것.&nbsp;<br><br>8. 복수의 여신(마거릿 애트우드,산디 토츠비그,시엔 레스터,카밀라 샴지,엠마 도노휴,커스티 로건,캐럴라인 오도노휴,헬렌 오이예미,린다 그랜트,키분두 오누조,엘리너 크루스,수지 보이트,앨리 스미스,레이철 시퍼트,클레어 코다,스텔라 더피, 이수영 역. 현대문학. 2024. 368쪽): 주로 멸칭으로 쓰이는 'Virago'를 주제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고 진짜 영웅적이고 불의에 맞서는 여성상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앤솔러지이다. 사실 기대만큼 세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온화한 거 아닌가? 엄청 부드럽게, 많이 봐주는구만. 그래도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다 인상깊었지다. 가장 좋았던 건 「보리수나무의 처녀귀신」. 「진짜 사나이」와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도 좋았다.&nbsp;<br><br>9. 느릅나무 밑의 욕망(유진 오닐, 신정옥 역. 범우사. 2004. 178쪽): 작가의 초창기 희곡. 뉴잉글랜드의 척박한 농장. 농장주인 캐봇의 세 아들 중 첫째 시미언과 둘째 피터는 반복되는 노동에 지쳐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일을 도맡아 온 셋째이자 배다른 동생 에벤이 현금을 줄 테니 농장의 형들 몫을 자신에게 팔고 골드 러쉬가 한창인 캘리포니아로 떠나라고 하자 둘은 흔쾌히 떠난다. 둘이 떠나던 날 여행을 갔던 아버지 캐봇이 세번째 부인은 에비와 함께 돌아온다. 에벤은 농장의 소유권을 당당히 얘기하는 에비가 싫지만 곧 욕정에 굴복하여 에비와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되고, 에비는 곧 임신을 한다. 캐봇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해서 아들이 태어나자 아이에게 농장을 물려줄 거라고, 에벤의 몫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는데 이 농장이 돌아가신 엄마의 농장이라고 생각하는 에벤은 이 얘기를 듣고 격분한다.<br>처음부터 대사들이 꽤 거칠어서 살짝 놀람과 흥미가 동하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 이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시작했다 - 교정교열이 너무 엉망이어서 짜게 식었다. '숨겨 논(35쪽)', '일부로(36쪽)' 같은 게 너무 많다. 이걸 제대로 교정해서 이후에 신판이 출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하필이면 이 판본을 사서...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그래도 낭만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을 줄 알았다. '나무 밑'이라잖아. 하지만 처음 무대 배경 설명에서부터 내 짐작은 틀렸음이 드러났고 - 농장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느릅나무를 상상하니 미리부터 이들의 욕망이 어디로 흐를 지 걱정스러웠다. 당대에 뿐 아니라 현대에도 충분히 문제적일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보여주고자 하는 파멸에는 충분히 타당했다.&nbsp;<br><br>10. 닥터 지바고 상. 하(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박형규 역. 열린책들. 2001. 416쪽, 520쪽)<br><br>11. 한 사람에게(김멜라,김보영,김숨,박솔뫼,정영선. 곳간. 2026. 228쪽): '한 사람에게 띄우는 편지'로, 환경 문제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 대체로 다 마음이 아팠다. 그 중 가장 날 힘들게 한 이야기는 김보영, 「축제」.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그래서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흘린 눈물이 책 속으로 흘러들어가 리로의 길을 열어줄 수만 있다면 몇날 며칠이고 울 수 있는데...<br><br>12. 하드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마크 트웨인, 전봉룡 역. 신원문화사. 2005. 303쪽):&nbsp; 표제작인 단편 한 편과 중편 「고난의 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은 전국에서 가장 정직한 마을이라는 하드리버그에 원한을 가진 한 남자가 마을 전체를 타락하고 그걸 폭로하기 위해 일을 꾸미는 내용이다. 인간이 가진 욕심을 이용하는데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한편으로는 그저 인간적일 뿐인 주민들이 벌이는 소동이 가벼운 문체로 보여진다. 사실 정말 재밌었던 건 「고난의 길」 . 골드 러쉬 시대 은과 금을 찾아나선 주인공의 좌충우돌인데, 한숨이 나오면서도 저자의 블랙 유머에 계속 피식거리게 되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 뿐 아니라 희한한 자연 현상들에 더해 심지어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까지 이야기되면서 저자 특유의 신랄한 사회 풍자와 유머가 독자를 즐겁게 한다. 딱 트웨인다운 소설.<br><br>13.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네이선 밸링루드, 심연희 역. 문학수첩. 2026. 416쪽): 1930년대 화성 주거지구. 아버지와 주방엔진 왓슨과 함께 식당을 꾸려가고 있는 열네 살 애너벨은 마을의 영화 상영을 앞두고 식당 문을 일찍 닫으려하는데, 수상한 남자가 와서 커피를 청하며 시비를 걸고 결국 그는 애너벨과 아버지를 위협하여 가게의 먹을 것과 물, 연료를 몽땅 털어간다. 그의 이름은 사일러스. 애너벨은 그들이 가져간 것들 중에 1년 전 지구로 떠난 엄마의 목소리가 담긴 실린더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무기력하고 유약한 아버지가 가게에 침입한 다른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유치장에 갇힌 틈을 타 직접 그 실린더를 찾으러 가기로 한다. 1년 전 지구에서 도착해서 멈춰 있을 뿐인 우주선 조종사 조가 사일러스 일당 중 일부와 접촉하는 걸 본 애너벨은 그에게 앞장을 서도록 협박하고, 왓슨의 다리를 무한궤도로 개조한 뒤 조가 소개한 사막 배달부 샐리와 함께 붉은 사막으로 향한다.<br>스페이스 웨스턴이라기에 읽을까말까 망설였다. 난 웨스턴은 별로고 스페이스도 딱히... 그런데 이건 정말 재밌었다. 사실 배경이나 설정 등은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환상 문학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나는 화성을 모르니. 중요한 건 애너벨의 성장 서사였다. 어떤 어른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아이라는 이유로 정보조차 주지 않고 제대로 된 설명도 해주지 않으며 설명을, 정의구현을 요구하는 아이의 눈도 바로보지 못하면서 묵살하기만 하는 상황에서 애너벨은 움츠러들고 때론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기를 쓰고 자신의 길을 간다. 울고 싶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하고 싶지만 자기도 모르게 울먹이고 자기도 모르게 숨기도 하면서도 목적을 잃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 애너벨. 그리고 이 대견한 소녀의 마지막 선택까지. 심드렁하게 시작했다가 뭉클하게 끝냈다. 부디 애너벨이 끝까지 평안하길.&nbsp;<br><br>14. 도깨비불 게스트하우스(범유진. 모모. 2026. 316쪽):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헤어진 언니가 '먼 곳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변호사에게 전해 들은 모미. 180일 동안 언니가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조카를 돌보면 돈을 준다는 말에 어차피 대학 기숙사에서 쫓겨날 상황이던 모미는 산 속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그런데 열네 살 조카는 눈도 잘 안 마주치고, 게스트하우스 건물도 좀 이상해서 갑자기 벽에서 알 수 없는 존재들이 튀어나온다. 사실 이곳은 사연있는 요괴들이 머무는 곳. 가끔 이곳을 발견하는 인간들도 묵어가는데, 아무나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심연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요괴들은 이렇게 방문하는 인간들의 어둠을 흡수한다.<br>그저그런 힐링 소설이면 어쩌나, 나 이 작가 좋아하는데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인간 군상들도, 요괴들도 또 그들 각각의 사연도 어느 하나 전형적이거나 짐작 가능하지 않았고 캐릭터들이 모두 생생했다. 못된 인간이라고 모두 개과천선하지도 않았고 엄청나게 사이다가 폭발하듯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입체성, 누구도 완벽하게 착하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악하지 않은 모습들을, 약하디 약하지만 힘을 내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잘 스케치했다. 모미와 언니의 사연도 현실적이면서 환상적이었고. 즐겁게 읽었다. 뒤의 작가의 말에 그려진 귀여운 캐릭터들을 먼저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책 읽기 전에 조금이라도 스포 당하는 게 싫어서 알라딘도 안 보고 읽었더니 작가가 상상했던 요괴들과 내가 상상한 요괴가 엄청 차이가 컸다. 이 책의 후속작이나 프리퀄이 나왔으면 좋겠다.<br><br>15. 첫 여름, 완주(김금희. 무제. 2025. 224쪽): 성우 일을 하는 열매. 친하게 지내던 언니 고수미가 돈을 빌린 후 잠적하고, 집 보증금까지 날린 열매는 고수미의 고향 마을에 가보기로 한다. 수미가 늘 얘기했던 완주. 그곳으로 향하던 시골 버스에서 어딘가 이상한 동네 청년 어저귀를 만나고, 매점과 장의사를 같이 하는 수미 엄마 집에 살면서 매점을 돌보고 동네 사람들과 조금씩 안면을 튼다. 옆집 중학생 한양미, 완주로 내려와 틀어박힌 중견 배우 정애라, 완주 개발에 적극적인 수상쩍은 흰옷 신사 등.<br>(스포)<br>어저귀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 좀 담백한 사람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굳이 설탕 안 뿌려도 맛있을 거 같았다구요. 그치만 위로가 되는 따뜻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역시나 결말 부분도 어저귀... 뭐 그래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지. 완주라는 마을에서 아직도 열매가 그렇게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nbsp;<br><br>16. 하우스메이드 3(프리다 맥파든, 정미정 역. 북플라자. 2025. 488쪽): 밀리는 엔조와 결혼해 벌써 첫 아이가 12살이다. 둘째는 7살. 뉴욕의 작은 집에서 비좁게 살던 가족은 무리를 해서 롱아일랜드의 낡고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오는데, 이사 첫날부터 옆집 여자는 엔조에게 추파를 던진다. 엔조 앞에서 밀리를 깔아 뭉개는 것도 서슴치 않고. 게다가 둘째 스쿨버스 배웅을 나간 아침, 둘째와 동갑인 아들이 있는 또다른 동네 엄마는 음모론과 편집증을 숨기려 하지 않으며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옆집 여자네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간 밀리네는 억지로 그 집 가정부를 자기 집에 일주일에 한 번 들이게 되는데, 이 여자가 좀 이상하다. 밀리의 물건을 뒤지는 것 같고, 밀리를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게다가 밤에는 집에서 이상한 삐걱 소리도 난다.<br>초반부터 엔조 때문에 짜증나서 혼났다. 정말 전형적으로 눈치없고 속 터지게 하는 스타일. 예전 시리즈에서 읽었던 단호하고 결단력있는 모습은 어디갔지? 밀리가 느끼는 감정들도 주위에서, 인터넷에서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다. 대체 이 이야기가 이전 시리즈와 연속성이 있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사건의 해결도 뭐... 마지막에 작은 반전(?) 때문에 그나마 '하우스메이드'라는 제목을 쓸 만 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읽으면서 그 부분을 짐작 못 한 것도 아니다. 추리 실력이라고는 바닥인 내가 알았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알겠지. 이 시리즈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였다.&nbsp;<br><br>17. 고양이가 정답이다(장우석. 나비클럽. 2026. 240쪽): 연작 소설집. 고등학교 수학교사 주관식이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겪는 이야기들이다. 사건 해결에 수학이 중요한 키가 된다.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들이지만 또 현실에선 그렇게 확실하게 해결되지 못할 거 같기도 하다. 대체로 대부분은 해피엔딩이라 잘 읽었지만 개중에는 새드 엔딩도 있다. 그게 현실이니까. 아니, 현실에는 새드 엔딩이 더 많긴 하지만. 주관을 가진 고등학교 교사이자 고양이 탐정으로도 활약하는 주관식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졌다.<br><br>18. 도깨비 사냥(임이정. 안전가옥. 2024. 288쪽): 어린 시절, 집에 불이 났다. 수오는 형을 따라 숲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왔는데 부모님은 숲에 도깨비가 있다고 가지 말라고 했지만 형은 괜찮다고 했다. 결국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둘만 남은 형제는 삼촌 집에서 학대를 견디며 힘겹게 살아오지만 쫓겨나 쉼터를 전전하고, 어느 순간 형 태오는 사라져 수오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형을 찾아 나선 수오는 마지막으로 형과의 접점이 있던 조아랑을 찾아서 그녀를 미행한다.<br>읽으면서 인생의 순간마다 해야만 하는 선택에 대해 생각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또다른 잘못된 선택을 부르고야마는 연쇄성에 대해. 처음 한 번, 그 결정적인 순간에 태오가 솔직했더라면 형제는 과연 어떤 생을 살았을까? 태오는 왜 그렇게 착하면서도 악한 걸까? 동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동생이 뭘 원하는지는 왜 생각 안 하는 거지? 그냥, 인생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젊을 때의 착각 때문인가? 어쩌면 이런 얘긴 현실에서 흔할 지도 모른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이걸 그냥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라고만 안타까워 하고 말 건가?&nbsp;<br><br>19. 옛날에 대하여(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역. 문학과지성사. 2010. 384쪽): 저자의 '마지막 왕국' 시리즈 중 두번째. 난 첫번째는 안 읽었다.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에세이 같기도 하다. 중간중간 작은 에피소드들이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저자가 고찰하는 '옛날' - 과거나 추억과는 구분되는 -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옛날을 소환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저자가 다룰 수 있는 모든 언어 - 그리스어, 라틴어 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히브리어에 더해 저자 자신이 만들어낸 신조어(프랑스어) 까지 - 를 동원해 옛날을 이야기하는데, 각 챕터는 짧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문장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책을 읽는 자체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br>위의 책을 읽고 머리와 가슴이 쓰려서 집어들었는데 충분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 책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약간의 답을 얻은 느낌. 특히 "물고기는 고체 상태의 물이다. 새들은 고체 상태의 바람이다. 책은 고체 상태의 침묵이다.(48쪽)"는 문장은 오랫동안 입 안에서 굴렸다.&nbsp;<br><br>20. 라비우와 링과(김서해. 위즈덤하우스. 2024. 128쪽): 대학생인 주영은 알바로 정신없는 와중에 전공과목에서 D를 받는다. 기숙사에서 쫓겨날까봐 걱정이 된 주영은 담당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고, 성적을 정정해 줄 순 없지만 자신이 하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지원하면 다음 학기에 유리할 것이라고 권하고, 주영은 어쩔 수 없이 합류하는데 그곳에서 방학 동안 기숙사 룸메이트인 이네스와 마주친다. 사실 방학 동안 있을 기숙사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짐을 한가득 쌓아놓은 채 메모만 한 장 남기고 일본 여행에 가버린 이네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마주친 이네스는 상냥하다.&nbsp;<br>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독자들이 제목을 읽고 '라비우는 누구고 링과는 누구야?'라고 생각하길 바랐다는데 정확하게 내가 그랬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독자도 많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아름답게, 단어 뜻 그대로 상냥하게 풀어낸 작가의 필력이 좋았다. 일상 속의 특별한 순간. 숨가쁜 삶에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주영에게 이런 순간들이 찾아와서 정말 다행이었다.&nbsp;<br><br>21. 작은 종말(정보라. 퍼플레인. 2024. 372쪽): 단편집. 출간된 지 좀 된 작품집이라 상당수의 작품들은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던 것들이었지만 다 다시 읽었고, 다 좋았다. 최근 작품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비판을 하는 것도 좋았고. 가장 좋았던 건 「은둔자의 영혼」.<br><br>22. 마음만 먹으면(장진영. 자음과모음. 2021. 128쪽): 세 편의 단편. 첫번째 작품 「곤희」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나머지 두 작품들도 각자의 느낌으로 다르게 인상적이었다. 각각의 소재로 더 긴 이야기를 읽고 싶을 만큼. 그리고 각 작품 등장인물들의 미래를 알고 싶을 만큼.&nbsp;<br><br>23. 안나 O(매슈 블레이크, 유소영 역. 문학수첩. 2025. 504쪽): 법 심리학자이자 수면 연구가인 벤. 4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안나 O'사건의 의뢰를 받는다. 안나는 상류층 출신 여성으로, 가족과 놀러 갔던 농장 오두막에서 함께 동업하던 친구 둘을 죽이고 부모에게 '미안, 내가 죽인 거 같아'라는 메시지를 남긴 후 잠에 빠져들어 4년 동안 깨어나지 않고 있다. 대중들은 그녀가 살인을 저질렀을 당시 의식이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 그렇다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며 아직도 격렬히 토론 중이다. 정부에서는 국제인권위원회에서 안나의 석방을 촉구함에 따라 서둘러 안나를 깨워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그래서 벤이 투입되는 것이다. 안나는 벤이 일하고 있는 런던 한복판의 수면 클리닉으로 이송된다.<br>'체념증후군'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의학적으로 인정된 용어는 아닌 것도 같다. 다만 이 책 본문에서 벤이 언급하는 스웨덴에 들어온 난민 아동 이야기는 진짜인 듯 하다. 이 사례는 마음 아프지만 안나의 사례는 좀 이상하긴 하다. 오랫동안 몽유병에 시달린 안나는 자신이 자는 도중 폭력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사건 직후 부모에게 문자까지 보냈다. 그럼 그녀는 의식이 있는 상태였을까 아니면 몽유병 증상인걸까? 사실 벤이 안나를 깨우기까지 긴 얘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안나는 꽤 적절한 시점에 깨어나고 그 뒤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론 부분이 지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부차적인 여러 사건들과 과거 얘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스릴러들처럼 속도감이 있지는 않다. 게다가 부수적인 피해들이 좀... 뭐랄까, 억울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재밌게 읽었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출간된다면 읽어볼 것 같다.&nbsp;<br><br>24. 카카듀(박서련. 안온북스. 2024. 360쪽): 1920년. 화자 이경손은 사촌 누이가 남편이 있는 상해로 아이 여덟을 데리고 가는 길을 도운다. 이때 경손은 신학교를 나와 영화학교에 들어가려던 참. 한때 존경하고 따랐던 매형은 3.1에 연루되어 옥살이 끝에 상해로 피신했고 누이 또한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나왔다. 그나마 신문을 통한 모금 운동으로 상해로 갈 여비를 마련하여 이주하는 참에, 경손보다 한 살이 많은 첫째 조카 미옥은 경손에게 "에수보다 예술"이라는 말을 던진다. 6년 후, 이제 영화감독이 된 경손은 부산에 내려와 관부연락선을 찍으려 하는데 마침 터미널에 고운 여성이 지나간다. 이는 이름을 '앨리스'로 바꾼 미옥이었다. 사실 미옥은 포와(하와이) 생으로 미국 여권을 갖고 있는 미국인. 결혼하고 이혼 해 아이를 품은 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미옥 아니 앨리스. 그리고 1년 후, 경손의 새 영화 오디션장에 앨리스가 나타난다. 앨리스는 경손에게 끽다점을 차릴 거라면서 동업을 제안하는데...<br>경손의 마음을 따라가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내가 그 시절 그곳에 살았다면 그러했을 듯. 물론 딱 경손과 같은 집안과 성장 배경을 가졌다면 말이다. 아마 난 그 시대에 태어났어도 그렇게 돈 많이 쓰는 예술가 노릇은 못 했겠지... 화자가 경손이기에 그의 눈으로 본 앨리스는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절에 아무리 미국 국적을 가졌을지언정 여성으로서 그만큼의 활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래서 이들이 다 실존 인물이라는 데에 놀랐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지뭐야. 나운규외 심훈, 박헌영, 이애리수 등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그냥 시대상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하 가져다 쓴 건 줄 알았는데 꽤 근거 있는 언급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특히 앨리스가 실존 인물이어서 좋았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앨리스와 같은 인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nbsp;<br>PS.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희곡은 읽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책에 몰입할 수 있었지 싶다. 하지만 희곡의 내용을 알았더라도 이 책이 재미 없었을 것 같지는 않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Everyday, Every night</category><title>위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 [위대한 피아니스트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86571</link><pubDate>Tue, 01 Sep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865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734745&TPaperId=174865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084/32/coveroff/k9227347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734745&TPaperId=174865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위대한 피아니스트 1</a><br/>해럴드 C. 숀버그 지음, 박유진 옮김 / 클 / 2021년 10월<br/></td></tr></table><br/>지난 250여 년 간의 피아니스트들을 훑은, 피아니스트 백과사전 격의 책. 모차르트부터 시작해서 바흐와 헨델은
물론 베토벤과 쇼팽도 다룬다. 하지만 이들이야 초창기 인물들이고 - 피아노는
크리스토포리가 1720년 처음 개발하여 제작했다 - 작곡에
더 매진한 사람들이었다. 그 뒤로 시대별로 유명하거나 혹은 잠시 동안 반짝 빛났다 사라진 피아니스트들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책이 첫 출간됐을 때로부터 거의 60년이
지났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름들이 현대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예술가들이 가진 사연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경우가 많았고, 예술가들답게 기벽도 많았으며 궁금했던 연주자들 – 루빈시테인이나 부소니, 호프먼과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마르타 아르헤리치,
호로비츠, 리흐테르, 길렐스 등 유명인들 - 의 이야기도 당연히 빼놓지 않아서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br>



사실 정말 재밌었던 건 피아니스트들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외적인 상식들. 예를
들면, 모차르트 시대에는 루바토에 관한 공식(?)이 있었는데, 왼손은 반드시 정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1권. 34-35쪽, 62-63쪽). 현대에는
피아노 교습에 이런 공식이 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난 문외한이니… <br>



또한 요즘처럼 연주자들이 자신의 해석을 과하게 반영하지 않고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하기 시작한 건 1차 대전 이후부터라고 한다(2권.
302쪽). 그전에는 작곡가가 써놓은 지시어를 아예 무시하고 임의로 바꾸기도 했던 듯. 이 부분과 관련해서, 저자가 ‘정서적
억제로 이어졌(2권. 302쪽)’다고 평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책이 첫 출간되던 당시에도
또 지금도 피아니스트들의 감수성에는 아무 문제 없다. 또한 요즘처럼 엄격한 관람 문화가 생긴 것 – 라흐마니노프 시기까지만 해도 관객들이 악장 사이에 박수는 물론 해당 악장이 맘에 들면 앵콜을 외치기도 했다고
라흐마니노프 전기에서 읽었다 - 도 시기를 같이할까 하는 의문이 생겨서 챗GPT에게 문의하였더니 연주자들이 악보에 충실하기 시작한 게 조금 먼저라고 확인해 주었다.<br>



그리고 연주회에서 오늘날처럼 피아니스트가 관객에게 오른쪽 얼굴을 보이며 앉게 된 건, 바로 얀 라디슬라프 두셰크 부터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순회연주를
다닌 비르투오소(1권. 98쪽)였던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고귀한 옆모습과 피아노의 곡선을 청중에게
보여줄 수 있었고 세워놓은 피아노 뚜껑을 공명관 삼아 음색을 객석에 바로 전달할 수 있었다(1권. 97쪽)’. 그런데 현대에는 충분히 바꿀 수 있지 않나? 2 piano가 아닌 이상 굳이 요즘에도 피아니스트들이 관객에게 오른쪽 얼굴을 보이는 방향대로만 앉을 필요는
없을 텐데. 왼쪽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연주자도 분명 있을 테고. 하긴, 보여지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 아무도 이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겠구나. 게다가
두셰크는 처음으로 페달 사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악보에 페달링 기호를 표기한 연주자라고 한다(1권. 100쪽). 그럼에도 오늘날 그의 이름은 일반 청중에게는 그리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br>



또한 실력이 없이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던 파데레프스키도 인상 깊었다.
1890년대에 활동했던 그는 오직 자신의 매력만으로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피아노 실력은
없어서 어려운 악절은 단순하게 바꾸거나 속도가 빨라야 하는 부분은 느리게 연주하는 식(2권. 96쪽)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의 연주를 극찬했고 관객들은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비싼 입장권도 마다하지 않고 구입하고 그와
악수하기 위해 무대 위로 기어오르는 사람이 1천 명이나 되기도 했다고(2권. 103쪽).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음악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br>



이렇듯 상당수의 피아니스트를 빼놓지 않고 언급하면서 간략하게나마 그들의 생과 연주 특징을 이야기하고 시대적 흐름도
놓치지 않는 이 책은 충분히 시간을 내어 읽을만한 가치를 갖고 있었다. 물론 어색한 번역이 종종 거슬리긴
했지만 난 문학 외 분야에는 꽤 관대한 독자라서…<br>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의 예측(?)이 틀리기도 했다는 것. 저자는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반짝 스타라고, 곧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2권.
432쪽) 플레트네프 옹은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신다구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084/32/cover150/k9227347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843220</link></image></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Everyday, Every night</category><title>생이란... - [바다의 긴 꽃잎]</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86211</link><pubDate>Tue, 01 Sep 2026 11: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862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240X&TPaperId=174862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27/96/coveroff/89374424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240X&TPaperId=174862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다의 긴 꽃잎</a><br/>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02월<br/></td></tr></table><br/>스페인 내전, 의학도인 빅토르는 이미 심장이 멎은 어린 병사 라사로의
심장을 직접 마사지해서 그를 살려낸다. 빅토르는 공화군에서 의료병사로 복무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빅토르의 동생 기옘도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다. 빅토르의 집에는 피아니스트 지망생인 로세르가
머물고 있었는데 기옘이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오자 그를 극진히 간호하다 그와 연인이 된다. 하지만 기옘은
전선으로 복귀한 후 전사하고, 아버지 마르셀도 사망한다. 당시
전황은 공화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빅토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 카르메라와 임신한 로세르를 데리고 프랑스로의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도중에 어머니는 사라지고, 로세르와 빅토르는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 국경을 넘지만 그곳의 박대와 핍박에 당황하고, 타의에 의해 헤어지게 된다. 역시나 타의에 의한 이송과 고생 끝에 간신히 재회한 둘은 칠레가 이들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파블로
네루다의 인도 아래 위니픽 호를 타고 칠레로 향한다.<br>



아껴두었던 아옌데의 소설이다. 이 책이 『비올레타』보다
먼저 출간됐고 먼저 구입했지만 일부러 두었다가 정말 힘들고 울고 싶은 날 꺼내 읽었다. 빅토르와 로세르의
생은, 나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게 굴곡이 심하니까. 단지
남의 나라에서 정착하기 힘들었음 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건,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운과 나 자신을 내려놓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마음만은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거잖아. 바라보아선 안 되는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닿는 눈길과 어떤 어려움도 뚫고 맞잡는 두 손과 맞닿는 가슴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사랑이 남은
생에 미치는 영향도. <br>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아파도, 아프지만 계속 살아내야 하는 생. 살아있는 한 어떻게든 생을 살아내야
함은, 인생의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또 그게 어떤 일이건 충분히 기다리고 겪고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겪어낸 후 내게 남은 것이 어떤 것일지는 아무도 미리 짐작할
수 없다. 짐작한다 한들 그 짐작은 반드시 틀릴 것이다. <br>



그래서 난 오랜 후의 그 재회 장면 – 전시회에서의 - 이 마음 아팠다. 그게 최선이고,
그래야 했고,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정작 빅토르의 마음은 괜찮았겠지. 그게 바로 시간이 주는
위로이고, 생의 예측불가능함이며, 인간의 회복력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잘 견디고, 잘 보내야 하는 것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27/96/cover150/89374424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279614</link></image></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Everyday, Every night</category><title>어떤 라라가 가장 좋은가요? - 『닥터 지바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82883</link><pubDate>Mon, 31 Aug 2026 13: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8288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628&TPaperId=17482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975/12/coveroff/89374636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61X&TPaperId=17482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975/10/coveroff/893746361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949&TPaperId=17482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93/87/coveroff/893646494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930&TPaperId=17482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93/82/coveroff/893646493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39X&TPaperId=17482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46/coveroff/893292239x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yujin/1748288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강 스포. 긴 글 주의.    <br><br><br><br><br><br>

<br>    <br><br><br><br><br><br><br><br>얼마 전, 『닥터 지바고』를 읽었다. 내가
읽은 건 박형규 번역의 열린책들 2001년 판. 그런데 초반에
라라와 빠샤의 대화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빠샤는 라라와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냈고 라라보다
몇 살 어리지만 라라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라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빠샤에게 결혼을
종용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라라는 빠샤에게 존댓말을 쓰고 빠샤는 라라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다. 빠샤의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난 챗GPT에게 이 부분의 러시아 원문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고 챗GPT는
둘이 서로에게 같은 주어를 쓰고 있음을 확인해 줬다. 그래서 난 다른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궁금해졌고, 내가 구할 수 있는 – 내가 갈 수 있는 범위의
도서관에 소장된 – 책들의 몇몇 장면들의 라라의 어투를 확인했다.<br>



라라는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다. 당시 상황은 여성인 라라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혁명, 전쟁, 기근, 정치적
폭력,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라는 자기자신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분명히 말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한다. 선택지가 없더라도 선택하는 행위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다. 힘든
현실에 무기력하게 굴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이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라라의 캐릭터를 각
판본의 역자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br>



(각 장면은 내 선택에 따라 임의로 선정했고, 각 장면의 러시아어 원문을 확인하긴 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고 내 러시아어 실력은 0(zero)이어서 GPT가 틀렸어도 정정할 길이 없으므로 생략한다.)<br>



가. 열린책들. 박형규
역. 2001.

나. 열린책들. 홍대화
역. 2022. 

다. 창비. 최종술 역. 2024.

라. 민음사. 김연경 역. 2019.<br>





* 라라가
빠샤에게 빨리 결혼하자고 말하는 장면

가. “내 말을 들어 봐요, 빠뚤라.” 라라가 말했다. “난 곤경에 처해 있어요. 내가 헤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요. 놀라지는 말고 묻지도 말아요.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돼요. 나는 언제나 위험 속에 있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파멸로부터 구해 주시려면, 연기하지 말고 곧 결혼해요.” “그거야말로
내가 항상 바라던 것 아니야.”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곧
날을 정하도록 하지. 당신이 그렇게 원하다니 무척 기쁘군.(하략)”

- 상권. 134-135쪽<br>



나. “들어봐, 파툴랴.” 라라가 말했다. “나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어. 거기서 벗어나도록 나를 도와줘야 해. 놀라지 말고 나에게 꼬치꼬치
캐묻지도 마. 하지만 우리가 모든 이와 같다는 생각은 말아 줘. 평온한
마음으로 있지도 말고. 나는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어. 만일
자기가 나를 사랑하고 파멸에서 건지고 싶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어서 결혼하자.”

“그건 내가 늘 바라던 일이야.”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얼른 날짜를 정하자. 당신이 원하는
날짜면 언제든 좋아. (하략)”

-상권. 154쪽<br>



다. “내 말 들어봐, 빠뚤랴.” 라라가 말했다. “난 곤경에 처했어. 거기서 헤어나올 수 있게 날 도와줘야 해. 놀라지 말고 캐묻지도
마. 다만 우리가 남들과 같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 가만히
있지 마. 난 늘 위험에 처해 있어. 만약 네가 날 사랑하고
나를 파멸로부터 지키고 싶다면 미루지 마. 우리 빨리 결혼하자.”

“하지만 그건 내가 늘 바라던 거잖아.”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서 날을 잡자. 네가 원하는 날이면 언제라도 좋아. (하략)”

- 1권. 133쪽<br>



라. “들어 봐, 파툴랴.” 라라가 말했다. “곤란한 일이 있어. 거기서 벗어나도록 나를 도와줬으면 해. 놀라지도 말고 캐묻지도 마,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은 버려. 계속 침착하게 굴어도
안 돼. 나는 항상 위험한 상태야. 네가 나를 사랑해서 파멸하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싶다면 미루지 말고 얼른 결혼하자.”

“ 하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계속 바라던 일이잖아.” 그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얼른 날을 잡아 봐, 네가 원하는 날이면 나는 언제라도 좋아(하략).”

- 1권. 152쪽<br><br>





* 라라가
권총 소동 후 빠샤에게 자신을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



가. “난 나쁜 여자예요. 당신은
나를 몰라요. 언젠가 말해 드리겠어요. 당신도 보시다시피
눈물 때문에 목이 메어 말하기 어려워요. 날 단념하고 잊어 줘요. 난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 상권. 162쪽<br>



나. “나는 나쁜 여자야. 당신은
나를 몰라. 언젠가는 당신에게 말해 줄게. 말하기 힘든 얘기야. 당신도 보다시피 난 눈물 때문에 목이 막혀. 나를 버려, 그리고 잊어, 난 자격이 없는 여자야.”

- 상권. 187쪽<br>



다. “나는 나쁜 여자야. 너는
나를 몰라. 언젠가 말해 줄게. 보다시피 지금은 눈물에 목이
메어 말하기가 힘들어. 하지만 나를 버려, 잊어줘. 난 너한테 자격 없는 여자야.”

- 1권. 162쪽<br>



라. “나는 나쁜 여자야. 너는
나를 몰라, 언젠가 얘기할게. 지금은 말하기가 힘들어, 보다시피 눈물 때문에 목이 메어. 하지만 나를 단념하고 잊어 줘, 나는 너를 만날 자격이 없는 몸이야.”

- 1권. 183쪽<br><br>





* 빠샤의
입대 결정



가. “왜 당신은 나와 까쩬까를 버리는 거예요? 그건 안 돼요, 안 돼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내가 모든 일을 바로잡아 놓을게요. 당신은
의사에게 보이지도 않았잖아요. 당신 심장으로 부끄럽지도 않아요? 처자를
미친 짓거리의 희생물로 내던지다니, 부끄럽지 않느냔 말이에요? (중략) 빠샤, 당신을 누가 바꾸어 놓기라도 한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 들리기라도 한 거예요?”

- 상권. 184쪽<br>



나. “이러지 마, 제발
하지 마!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모든 걸 고칠게. 당신은 의사에게 가서 제대로 진찰도 받지 않았잖아. 당신 심장은
어쩔 건데? 부끄럽지도 않아?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에
가족더러 희생을 하라니, 부끄럽지도 않아? (중략) 파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신을
못 알아보겠어! 사람이 바뀐 거야, 아니면 뭘 잘못 먹은
거야?”

- 상권, 211쪽<br>



다. “나랑 까젠까를 버리고 가면 어떡해? 하지 마, 그러지 마!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다 바로잡을 게. 그래, 당신은 신체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잖아. 당신 심장은? 마음을 바꾸는 게 창피하다고? 처자식을 미친 짓거리에 제물로 바치는
건 창피하지 않고? (중략) 빠샤, 당신을 모르겠어! 누가 당신을 바꿔치기한 거야, 아니면 뭘 잘못 먹었어?”

- 상권. 183쪽<br>



라. “이러지 마, 제발! 아무 것도 늦지 않았어. 내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게. 게다가 의사에게 진찰도 제대로 안 받았잖아. 당신 심장 말이야. 부끄럽지? 가족을 광기의 희생양으로 만들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중략) 파샤, 왜 그래, 너무 당신답지 않잖아!
누가 당신을 바꿔치기한 거야, 아니면 못 먹을 걸 먹은 거야?”

- 1권. 205-206쪽<br><br>





* 라라와
유리의 야전 병원에서의 대화

가. “당신 왜 어제 노크하지 않으셨어요? 마드무아젤이 내게 말해 주었어요. 하지만 잘하셨어요. 그땐 벌써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들어오시라고 못했을 거거든요. 그건
그렇고, 어떠세요? 조심하세요. 더러워지지 않도록. 숯불이 튀어요.”


- 상권. 237쪽

“요즘 내가 얼마나 정직하고 보람되게 살기를 바라는지! 사로잡고 있는 모든 기쁨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미지의 곳을 찾아 헤매는 듯한 당신의 신비스럽도록
슬픈 시선을 만났소. 그것이 없어서 나는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르오. 당신이
운명에 만족하고 어느 누구에게 바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당신 얼굴에 씌어질 수 있다면 난 무엇이고 아낌없이 바칠 것이오. 당신과 가까운 어떤 사람, 친구라든가 남편(그 사람이 군인이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되는 분이 내 손을 붙잡고, 당신의 운명에 대해 애태우지 말고 관심을 보임으로써 당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러면 난 손을 뿌리쳐 들어올리고는……, 아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용서하시오, 제발.”

(중략)

“아, 이렇게 돌까 봐
얼마나 두려워했는데!” 중얼거리듯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이러지 마세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면 안 돼요. 아유, 당신
때문에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 좀 보세요!”

- 상권. 242-243쪽<br>



나. “어제 왜 제 방문을 두드리지 않으셨어요? 제게 마드무아젤이 말씀해 주셨어요. 하지만 제대로 행동하신 게 맞아요. 전 이미 자리에 누웠기 때문에 선생님을 방에 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자, 안녕하세요.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곳에 숯불이 튀거든요.”

- 상권. 273쪽

“당신이 운명에 만족한다고, 그리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표정이 당신의 얼굴에 나타날 수 있다면 전 무엇이든 할 겁니다. 당신에게
가까운 사람, 당신의 친구나 남편이(만일 그 사람이 군인이라면
더 좋겠지요) 제 손을 붙잡고 당신의 운명을 걱정하지 말라고, 그
관심으로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부탁한다면…… 저는 손을 빼고 두 손을 털 겁니다.” (유리의 말)

(중략)

“아, 이렇게 될까 봐
늘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요!”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말했다.
“이 무슨 숙명적인 망상이에요! 그만두세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지 마세요.”

- 상권 279쪽<br>



다. “왜 어제 문을 두드리지 않으셨어요? 마드무아젤이 말해줬어요. 하긴 잘하셨어요. 이미 잠자리에 들어서 당신을 들어오시게 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건
그렇고, 잘 지내셨어요? 조심하세요, 여기 탄가루를 흘려서 옷 버려요.”

- 상권 235쪽

“당신이 운명에 만족하고 누구한테서도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말이
당신 얼굴에 쓰일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바칠 겁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가까운 어떤 사람이, 당신 친구나 남편이(그 사람이 군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내 손을 붙잡고 당신의 운명에 대해 애태우지 말라고, 내 관심으로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도록 말이오. 그러면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 내가 정신이 나갔군요! 용서하세요.”

(중략)

“아, 이렇게 될까 봐
늘 얼마나 두려웠는데!” 그녀가 혼잣말하듯 조용히 말했다. “이
무슨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인지! 그만두세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면 안 돼요.”

- 상권 240쪽<br>



라. “어제 왜 노크하지 않았어요?
마드무아젤이 말해 주더라고요. 하긴 잘한 거예요. 이미
잠자리에 들어서 당신을 들어오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 안녕하세요. 조심해요, 옷에 묻어요. 여기
숯가루를 흘렸거든요.”

- 1권 265쪽

““최근에는 정말 정직하고 보람되게 살고 싶어 미치겠단 말이죠! 이 보편적인 생기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요! 그리고 모두를 사로잡은
기쁨 한가운데서 나는 천국인지 지옥인지 통 알 수 없는 곳을 헤매는, 수수께끼처럼 우울한 당신의 시선을
만났소. 그것이 없어지도록, 당신의 얼굴에 당신이 운명에
만족하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쓰이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뭐라도 내놓았을 거요. 당신과 가까운 사람, 친구든 남편이든(군인이라면 제일 좋겠지만) 아무나 내 손을 잡고 당신의 운명 따위는
걱정하지 말라고, 괜한 신경을 써서 당신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부탁할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손을
빼내고 손사래를 치고는…… 아휴,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죄송합니다, 정말.”

(중략)

“아, 이렇게 될까 봐
항상 두려웠는데!” 그녀가 조용히 혼잣말처럼 말했다. “정말
치명적인 실수로군요! 그만해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면 안 돼요.”

_ 1권 270-271쪽<br><br>





* 라라와
유리의 재회

가. “언제 한번 찾아오셔서 도와주시지 않겠어요? 마룻바닥과 언저리에 난 틈을 함께 막았으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그럼,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시면서 현관에서 기다리세요. 오래 걸리지 않으니. 곧 당신을 부르겠어요.”

(중략)

“지바고 씨!”

- 하권. 489쪽<br>



나. “혹시 언제 한번 들러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함께 바닥에 널빤지를 박는 건요. 어떠세요? 층계참에서 기다리며 뭐든 좀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 않고 곧 부를게요.”

(중략)

“지바고 씨!”

- 하권 92쪽<br>



다. “언제 한번 와서 도와주시겠어요? 바닥과 굽도리에 난 틈을 함께 막으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그럼 현관에 계세요, 뭐든 잠시 생각하면서. 오래 걸리지 않아요. 곧 부를게요.:

(중략)

“지바고!”

- 하권 74쪽<br>



라. “혹시 언제 한번 들러서 도와주지 않을래요? 마룻바닥과 모퉁이의 틈새를 함께 다 막아요, 어때요? 그럼 층계참에 있으면서 뭐 좀 생각해 봐요. 오래 안 기다려도 돼요, 곧 부를게요.”

(중략)

“지바고!”

- 2권. 88쪽

<br><br>
* 라라가 유리에게 남긴 쪽지 – 유리가 빨치산에게 잡혀갔다 돌아왔을 때



가. “주여, 참으로 행복합니다! 당신께서 살아 계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시 근처에서 당신을 본
사람이 나한테 달려와 알려 주셨습니다. (중략)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어디에도 나가지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그렇군요. 당신께서는
그것을 모르시지만, 나는 지금은 앞쪽에 살고 있어요. 한길
쪽으로 난 방에서요. (중략)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 하권. 630쪽<br>



나. “주여,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사람들 말로는 당신이 살아 있고, 당신을
찾았다고 해. 교외 지역에서 당신을 본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해 주었어.
(중략)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아무
데도 가지 마. 맞아, 당신은 모르겠군, 우리는 지금 거리 쪽으로 난 아파트의 전면부에 살아. (중략)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아.”

- 하권 245-246쪽<br>



다. ”주여, 참으로 행복합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고, 당신이 나타났다고 하네요. 근방에서 당신을 보았다고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해 줬어. (중략)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기다려요. 참, 당신은 모를 텐데, 지금 나는 집의 앞쪽, 거리로 난 방들에서 살고 있어. (중략) 난 기뻐 미칠 지경이야. ”

- 하권. 211쪽<br>



라. “맙소사, 얼마나
다행인지! 당신이 살아 있고 무사하다고 하더군. 당신을 근처에서
본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와 말해 주었어. (중략)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줘. 그래, 당신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집의 앞쪽 부분, 거리와 면한 방들에 있어. 하긴
당신이 알아서 짐작할 테지. 안주인의 가구 일부를 팔아야 했기 때문에
(중략) 너무 기뻐 미치겠어.”

- 2권. 240쪽<br><br>





* 라라와
유리, 바리키노에서

가.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 손아귀에 언제나 꽉 쥐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도록 해주세요. 난
당신 사랑의 노예이고, 생각하거나 따지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걸 자꾸만 상기시켜 주세요. (중략)중요한 건, 사랑의
선물도 다른 선물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그 선물이 아무리 크더라도 축복이 없이는 드러나질 않아요. 당신과 나는 하늘 나라에서 입맞춤을 배우고 함께 이 세상으로 보내진 것 같아요. 우리가 배웠던 것을 시험하도록 하기 위하여 말이에요.”

(중략)

“우리의 처지가 같지 않다는 걸 모르시겠어요? 당신에겐 구름 위로도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주어져 있지만, 여자인
저에게는 땅 가까이를 날면서 어린 것을 감싸 줄 수 있는 날개만 주어져 있어요.”

- 하권. 724-725쪽<br>



나.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를 계속 복종하도록 붙잡아 줘. 내가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자기
사람이라는 것을, 판단하지 않는 종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내게 상기시켜 줘. (중략) 사랑의 은사는 다른 모든 은사와 매한가지야. 그건 위대할 수 있지만 축복 없이는 발현되지 않는 거야. 하늘에서
서로 입을 맞추도록 우리를 가르친 후, 나중에 서로에게 그 능력을 시험해 보도록 동시대의 아이들로 살게끔
우리를 보내셨지.”

(중략)

“우리가 서로 다른 상황에 있다는 걸 알겠어? 당신에게는 구름 너머로 날아가라고 날개가 주어졌지만, 나 같은 여자에게는
땅에 달라붙어 위험으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라고 날개가 주어진 거야.”

- 하권. 345-346쪽<br>



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나 자신도 모르겠어. 계속 당신에게 굴복하도록 나를 붙들어줘. 내가 당신 것이라는 걸, 맹목적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생각 없는 노예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줘. (중략) 사랑의 재능은 온갖 다른 재능과 같은 거야. 그건 위대할 수도 있지만, 축복 없이는 발현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마치 하늘에서 입맞춤하는
법을 배운 다음, 그 능력을 서로에게 확인하기 위해 같은 시대에 살도록 어린아이로 내려보내진 것 같아. ”

(중략)

“알아요? 우리는 처한
상황이 달라. 당신에게는 펼쳐 구름 너머로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가 주어졌지.. 여자인 내게는 땅에 바싹 붙어 어린 새끼를 감싸서 위험에서 보호하도록 날개가 주어졌고.”

- 하권 295-296쪽<br>



라.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항상 나를 꼭 붙들고 있어 줘. 내가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판단력을
상실한 당신의 노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줘. (중략)사랑의
재능은 다른 온갖 재능과 같아. 위대할 수는 있지만, 축복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천상에서 키스하는 법을 배운 다음 서로 이 능력을 시험하도록 같은
때에 어린아이처럼 살라고 보내진 거야. ”

(중략)

“이해하겠지, 우리는 서로
처지가 달라. 당신은 날개를 달고 구름 너머로 날아갈 수 있지만, 그런
자유가 있지만 여자인 나는 땅바닥에 붙어 어린 새가 위험하지 않도록 날개로 감싸주어야 해..”

- 2권. 334-335쪽<br><br>





* 라라의
마지막 고백

가. “안녕, 나의 위대한
분이여. 당신은 나의 보람이었어요. 안녕, 나의 빠르고 깊은 시냇물이여. 나는 온종일 흐르는 당신의 물소리를
사랑하였는지도 몰라요. 또한 당신의 차디찬 물결 속에 잠기기를 좋아했는지도 몰라요.”

- 하권. 834쪽<br>



나. “안녕, 안녕, 내 사랑, 내 자부심이여, 안녕, 내 빠르고 깊은 강이여, 안녕. 내가
하루 종일 철썩이는 당신의 물결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당신의 차가운 물결에 뛰어드는 걸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

- 하권. 465쪽<br>



다. “안녕, 내 위대한
사람이여, 내 사랑이여, 안녕, 나의 자랑이여, 나의 빠르고 깊은 강이여, 안녕. 온종일 당신이 철썩이는 소리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차가운 물결로 뛰어드는 걸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 2권. 397쪽<br>



라. ”잘 가, 나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그대, 잘 가, 나의 자랑, 잘 가, 나의 빠르고 깊은 시냇물이여, 하루 종일 출렁이는 당신의 물소리를 정말 사랑했고, 당신의 차가운
물살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을 정말 사랑했어.”

- 2권. 446쪽<br><br>





박형규 역자의 라라는 일관되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다른 역자들이 라라와
상대방의 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말로 전환한 것과는 다른 점이다. 물론 계속 존댓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라라의 강단있고 중심잡힌 성격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다만 가장 오래된 판본이라 시대적으로 좀 old한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박형규의 라라는, 말투는 부드럽지만 행동은 확실한 사람이다.<br>



홍대화의 라라는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관계를 주도한다. 박형규의 라라가 말투와 행동의 주도권이 달랐다면
홍대화의 라라는 말투와 주도권이 일치한다. 홍대화의 라라는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일도 확실하고 적극적이다.<br>



최종술과 김연경의 라라는 내가 읽기에는 비슷하게 생각됐다. 상대와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이런 라라의 성격은 박형규와는 완전히 다르고,
홍대화와도 결이 다르다. 특히 최종술의 라라는 가장 최근인 만큼 가장 자연스러운 말투를
구사한다. 이는 그녀의 비극을 독자로 하여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마치 지인의 이야기인양. 반면에 김연경의 라라는 전반적인 캐릭터는
최종술의 라라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문어체적 단어/말투가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br>





라라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주는 고통까지 감내한다. 앞에서 말했듯 라라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선택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구하지 않았다. 빠샤도 유리도 라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라라를 떠나지만 라라는 그들의 명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라라가 스스로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픈
방식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도 아니었고. <br>



라라가 유리의 관 앞에서 하는 마지막 고백, ‘당신의 차가운 물 속에
잠기는 것까지 사랑했다’는 말이야말로 강한 라라가 유약한 유리를 마지막으로 용서하는 말이다. 유리가 했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한 상실들. 유리는
라라를 잃고, 라라는 유리를 잃었다. 상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리는 라라와 자신의 딸을 잃었고, 라라와 유리의
딸은 전란의 와중에 어머니와 보호자를 잃었고 아버지를 알 기회를 잃었으며, 까덴까(빠샤와 라라의 딸)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그리고 저자가 얘기해 주는 이후의 일들 또한 독자로서는 마음 아플 따름이다.
유리는 그 모든 것을 겪기 전에 (행복하게도) 죽음에
이르렀고. 하지만 라라는 자신이 원해서 유리라는 차가운 물에 뛰어들었음을 이야기한다. 물론 라라가 고백하는 시점은 내가 위에서 서술한 상실이 모두 일어나기 전이긴 하지만, 라라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유리를 용서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으므로. 이는 ‘당신이 옳았다, 그러므로’ 하는 용서가 아니다. ‘그 때 당신은 틀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br>



유리가 빠르고 깊은, 차가운 시냇물이었다면 라라야말로 짙푸른 바다와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삶을 살아내는 수많은 라라들을 위하여&nbsp;기도하고
싶은 날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8/cover150/8932903581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810</link></image></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Everyday, Every night</category><title>거울같은 연주자, 리흐테르 -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43005</link><pubDate>Mon, 10 Aug 2026 17: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430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698802&TPaperId=174430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30/coveroff/89956988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698802&TPaperId=174430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a><br/>브뤼노 몽생종 지음, 이세욱 옮김 / 정원출판사 / 2005년 10월<br/></td></tr></table><br/>라흐마니노프는 누가 연주해도 아름답지만 리흐테르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더욱 특별했다. 어쩌면 그날 내 기분이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냥 호르몬이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다른 연주자였으면 너무 속주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그의 피아노에 난 심장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확신에 찬 타건이 위로가 되는 날이 있는 법이다. 리흐테르에 대한 내 애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br>



그의 비르투오소로서의 삶이 궁금했지만 그의 전기보다는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br>



사람들은 나에 관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 그런데 그 말이나 글들이 너무나 거짓되고 터무니없다.

-&nbsp;&nbsp;&nbsp;&nbsp;&nbsp;
47쪽. 머리말<br>



그의 말대로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마냥 화사하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과 자연스럽게 음악에 몸 담게 되었던 것, 뒤늦게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 교육을 받고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만났던 사람들… 사실 이 책은 그가 만난 음악가들에 대한 회상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br>



그 중 내가 가장 관심 있었던 두 사람은 프로코피예프와 마리아 유디나. 이전에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읽으면서 난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갖게 됐다. 이기적이고
조금은 기만적인 사람. 리흐테르 또한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마냥 칭송을 하지는 않는다. 그의 난폭한 기질에 대해 이야기하고(101쪽), 그가 라흐마니노프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를 싫어했던 것에 대해 비판하며(102쪽) 자신은 인간 프로코피예프보다 그의 음악과 더 많은 관계를
맺었다(133쪽)고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칭송해 마지않는다. 난 그게 너무나 신기했다. <br>



프로코피예프가 살아 있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늘 기적을 기대할 수 있었다. 마치 마술 막대를
휘둘러 무엇이든 신기한 보물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마술사가 우리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가 휙 하고 마술 막대를 휘두르면 「돌꽃의
전설」이나 「신데렐라」 같은 작품이 출현하곤
했다. 

&nbsp;그의 걸작 가운데 하나인
「축배」라는 짤막한 합창곡이 생각난다. 이것은 음악 작품이라기보다 하나의 계시다. 드라이포인트 판화처럼
치밀하고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교향조곡 「1941년」도 생각난다.

-&nbsp;&nbsp;&nbsp;&nbsp;&nbsp;
163쪽. 프로코피예프에 관하여<br>



리흐테르는 프로코피예프를 마치 신화적인 존재처럼 우러른 듯 하다. 심지어는
그가 죽었을 때조차 슬퍼하지 않았다. <br>



나는 프로코피예프를 생각했다. 하지만 슬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달리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이든이나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슬퍼했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nbsp;&nbsp;&nbsp;&nbsp;&nbsp;
165쪽. 프로코피예프에 관하여<br>





리흐테르 덕분에 난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전에 그를 엄청나게 미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에게 심술궂게
굴었던 건 사실이었으니. 그렇다고 그의 음악을 안 들은 것도 아니지만.<br><br>



마리아 유디나에 대해서는 더 흥미롭게 읽었다. 전에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리뷰에서도 얘기했듯 난 마리아 유디나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리흐테르의 언급에 대해서도
흥미 있게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리흐테르는 유디나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유디나의 특이한 성정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 하다. 리흐테르의
뉘앙스는 유디나가 먼저 그를 싫어해서인 것 같지만 그건 알 수 없지 않나. 물론 리흐테르도 유디나의
자선 활동에 대해서는 존경의 뜻을 보인다. <br>



마리아 베냐미노브나 유디나는 정말이지 굉장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녀를 알기는 했으나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워낙 기이하다 보니 모두가 그녀를 피했다. 그녀 쪽에서는 나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고 석연치 않아 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에 관한 그녀의 평은 이러했다. “리흐테르? 글쎄, 라흐마니노프가
딱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지.”

&nbsp;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건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그녀 자신도 이따금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연주했지만 말이다.

-&nbsp;&nbsp;&nbsp;&nbsp;&nbsp;
111쪽. 전쟁의 시기<br>



물론 존경할 만한 점도 없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집으로 맞아들여 거두었으며, 스스로
부랑자처럼 생활했다. 참으로 기이한 여인이었다. 요컨대 그녀는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던 비범한 예술가였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기분에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정직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했다. 라흐마니노프를……<br>
- 113쪽. 전쟁의 시기<br>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유디나가 스탈린 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리흐테르가 싫어했던 ‘기행’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강단을 보였기 때문이니. 그러나 리흐테르가 유디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유디나가
작곡자의 의도를 헤아리기는커녕 자신의 의도를 덮어씌워 연주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흐테르가 생각하는
연주자란 작곡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구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br>



연주자란 하나의 거울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음악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lt;온전한&gt;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곡가가 써놓은 &lt;모든&gt; 지시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것이 안 되니까
&lt;해석&gt;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찬성할 수 없다.

-&nbsp;&nbsp;&nbsp;&nbsp;&nbsp;
233쪽. 거울<br>



이건 사실 리흐테르만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당시 음악계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기도 했다. 내가 어제 읽은 헤럴드 숀버그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에는 연주자의 해석을 지양하고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를 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br>



이
밖에도 이 책에서 리흐테르는 네이가우스를 비롯해서 에밀 길렐스, 로스트로포비치와 쇼스타코비치, 오이드라흐 등 자신이 만났던 많은 음악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자신의 삶과 음악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일화들이 흥미로웠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리흐테르 자신이 연주자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이었다. 물론 그럴 만 하다. 그는 평생 동안 음악을 사랑했으며 고뇌했고 고민을 통해 얻은 원칙을 실현했던 사람이니까. <br>



나는 어떤 작품을 내가 이해한 대로 연주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의심을 가져본 적은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다른 식이 아니라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았다. 처음부터 늘 그러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의 확신은 악보를 주의 깊게 보았던 데서 나온 것이다. 악보에
담긴 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데에는 오로지 악보를 잘 보는 것만이 필요하다.

&nbsp;쿠르트 잔데를링이 어느 날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주를 잘 할 뿐만 아니라 음표를 읽는 법도 알고 있다.”

&nbsp;그건 나를 별로 나쁘지 않게 보아준 것이다.

-&nbsp;&nbsp;&nbsp;&nbsp;&nbsp;
246쪽. 거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9/30/cover150/89956988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3005</link></image></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독서목록</category><title>7월 독서목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23808</link><pubDate>Fri, 31 Jul 2026 14: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23808</guid><description><![CDATA[1. 쇼스타코비치, 그 삶과 음악(리처드 화이트하우스, 김형수 역. 포노. 2014. 148쪽):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을 순서대로 개괄하며 그에 따른 그의 삶을 살핀다. 사실상 그의 삶은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정보에 지나지 않는 느낌. 저자는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은 안 읽은 듯 하다. 회고록을 훑어만 봤어도 알 법한 정보들을 (내 기준으로는 ) 틀리게 써 놓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뭐, 회고록을 아예 안 믿었을 수도 있고). 예를 들면 "쇼스타코비치도 현역 입영은 거절당했지만 소방수로 자원했고(44쪽)" 같은. 쇼스타코비치는 자원하지 않았다. 자원을 강요당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처럼 작품들을 위주로 정리해 놓은 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초심자에게는 꽤 도움이 되었다. 뒤의 부록이 특히 더.&nbsp;<br><br>2.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M. T. 앤더슨, 장호연 역. 돌베개. 2018. 546쪽)<br><br>3.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남궁인,손원평,이정연,임현석,정아은,천현우,최유안,한은형. 문학동네. 2024. 268쪽): 직장 생활 앤솔러지. 다들 견디고 있는 지리멸렬한 삶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이정연, 「등대」는 결이 약간 달랐다. 작품 자체로는 재밌었지만 앤솔러지 전체에서는 조금 튀는 느낌. 그래도 다 좋았다.&nbsp;<br><br>4. 안데르센 동화전집(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윤후남 역. 현대지성. 2016. 1280쪽): 완역본이라는 의미도 크고, 제본이 잘 되어서 책 어디를 펼쳐도 책등이 꺾이거나 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좋으나 종이가 지나치게 반들거려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선 읽을 수 없어 자연광에서만 읽느라 진도가 너무 느렸다. 잊을만 하면 하나씩 등장하는 오탈자도 옥에티.<br><br>5. 근접한 세계(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최고은 역. 북다. 2026. 204쪽): 두 작가가 쓴 다른 이야기. '윤리적 딜레마'가 주제라는데,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주제에 충실했지만 히라노 작가의 작품은 이게 대체 왜 딜레마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명백한 범죄를 덮을지 말지가 딜레마라고? 범죄자가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노장이라한들, 아무리 죽었다한들 범죄 사실을 덮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니 덮는다고도 생각조차 안 하는 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딜레마'라고? 딜레마가 무슨 뜻인지 모르나? 도대체 어떤 성 의식을 갖고 있으면 이딴 걸 딜레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가? 이건 그냥 윤리 의식이 없는 거다. 아동 인권, 젠더 의식 따위는 없는 나라, 일본.&nbsp;<br><br>6. 급발진(서귤. 안전가옥. 2024. 316쪽):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김사장'의 소개로 얼결에 탐정사무소에 취업한 고주운. 작디작은 사무실보다 더 도망치게 싶게 만든 건 사수라고 소개받은 곽재영의 썰렁한 아재 개그. 그러나 곽재영의 수려한 외모에 넋을 잃고 그냥 눌러 앉는다. 첫 사건으로 급발진을 주장하는 은퇴한 교사 안경숙의 약점을 잡아내는 일을 맡은 고주운은 차 안에서 내내 잠복하며 곽재영의 아재 개그와 한결같은 햄버거 사랑을 견디던 중 사건사고를 다루는 PD로 위장하여 우연히 안경숙과 친분을 쌓게 되고, 급발진 사고의 피해자들을 조사하던 중 그들이 모두 마약 거래와 관련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br>급발진이라는 소재로 꽤 큰 사건을 빌드업한다. 나름 치밀하게 짜인 플롯이 흥미롭다. 주인공들의 행적도 그렇고. 하지만 결말이 좀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하다. 난 확신의 해피엔딩을 좋아해서. 결말을 읽고 나서야 처음에 왜 '빌런 탄생기'라고 했는지는 알겠다 싶었지만, 단지 이 책의 살짝 열려 있는 결말을, 정확히는 그 사람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후속작을 읽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조금 궁금하긴 하다.&nbsp;<br><br>7. 외로운 남자(외젠 이오네스코, 이재룡 역. 문학동네. 2010. 176쪽): 그는 정말 외로웠을까? 그냥 혼자였을 뿐이지 않은가? 서른다섯의 남자가 예기치 못했던 큰 유산을 받고 퇴사한 후 혼자 살아간다. 오랫동안 지내왔던 초라한 호텔에서 나와 괜찮은 셋집을 얻고 근처에 단골 식당을 만들고 최애 자리와 단골 웨이트리스를 정하고, 근처를 산책하며 매일의 한가한 일상을 살아가는 날들. 그러는동안 오래전 교류가 있었던 철학자와 통화를 하기도 하고 여자와 함께 살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혼자다.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고 세상이 바뀌지만 남자의 생활은 그냥 지속된다.<br>솔직히 얘기하자면, 이건 내가 원해오던 삶이다. 경제적 걱정 없이 하루하루 비슷하게 흘러가는 평온한 삶. 권태롭고 의미 없어보일지언정, 그건 외부의 시선일 뿐. 모든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몇몇을 제외하면 어차피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한다. 꼭 기록에 남길만한 삶이 아니라해도, 무의미하다 해도 그 자신에게만 평화로웠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누구도 해하지 않고 누구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원제인 "Le Solitair"는 물론 '외로운 남자'라고 번역하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그냥 '혼자인 남자'로도 번역할 수 있지 않은가. 혼자라고 꼭 외로우리라는 법은 없다. 그의 삶은 혼자여도 괜찮은 삶이었지 않나.<br><br>8. 레시피 월드(백승화. 한끼. 2025. 276쪽): 음식과 관련된 능력자들의 이야기. 연작 소설이라고 해도 되고, 중간에 삽입된 '여담'으로 연결된 장편으로 볼 수도 있을 듯. 우리나라 방귀쟁이 며느리 설화(&lt;방귀 전사 볼 빨간&gt;)나 좀비 이야기(&lt;살아있는 오이들의 밤&gt;)는 재밌었고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의 이야기(&lt;깜박이는 쌍둥이 엄마&gt;)는 오히려 현실적이라 마음이 좀 아팠다. 가장 재밌었던 건 첫번째 이야기지만 마지막 이야기가 없었다면 소설집이 마냥 가벼워졌을 듯.&nbsp;<br><br>9. 작별 너머(다비드 디옵, 목수정 역. 희담. 2025. 352쪽): 식물학자였던 미셸 아당송은 딸 아글라에에게 일체의 유품을 남기고, 아글라에는 이 모두를 자신이 구입해서 고치고 있는 성으로 가져온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무궁화 나무가 있는 서랍장이 문득 눈에 띄고, 서랍 속 비밀 서랍을 연 아글리에는 낡은 수첩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부터 아카데미 회원이 되길 바랐던 미셸 아당송은 연구를 위해 세네갈에 가게 됐고, 그곳의 자연에 매료되었다. 백인으로서 아당송은 많은 특권을 누리는데, 부족의 왕자를 보좌관처럼 데리고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식물 표본을 수집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돌아온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마을 족장의 조카인 마람은 마을에 이르는 한적한 길 한중간에서 백인들에게 납치되어 끌려갔으나 몇 년 뒤 한 남자를 통해 자신이 그 마을에서 죽은 자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려 했고, 이는 그녀가 세네갈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는 뜻. 백인에게 노예로 팔려갔다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아당송은 호기심을 누를 수 없고, 그녀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br>(강력 스포)<br>18세기 세네갈의 생활상과 당대 노예 무역의 실상, 백인들의 제국주의 정책과 인종차별 등이 잘 드러나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아당송의 사랑이야기를 위한 배경일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말로 달콤한 슬픔. 비록 젊은 아당송은 순진하게도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든 장애를 극복하고 나아갈 것이라 믿었지만 아무리 소설 속일지언정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난 이 이야기가 아당송에게만 새드 엔딩이리라 믿는다. 마람은 처음 고래 섬에서 도망칠 때, 수영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므로 마람이 마지막 순간에 아당송의 손을 놓고 바다에 뛰어든 건 그녀 자신을 믿고 행한 일이었다. 난 그녀가 그 믿음에 응답받았으리라 믿는다. 마람은 계속 그녀의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아당송 없이. 그게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옳았을 것이다, 그 때에도 혹은 지금이었어도.&nbsp;<br><br>10. 재구성(민병훈. 민음사. 2020. 292쪽): 이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 『달력 뒤에 쓴 유서』)이 정말 좋았어서 선택했는데, 이 책이 더 먼저 출간된 책임에도 내게는 왠지 후속작처럼 읽혔다. 표제작이 내가 먼저 읽은 작품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에도 난 소설집의 제목 때문에, 그리고 첫번째 작품(「장화를 신고 걸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연꽃 사이를 헤치며」)을 비롯해 다른 작품들에서도 『달력 뒤에 쓴 유서』의 이야기가 조금씩 반복되기에 그렇게 느껴졌고 그게 날 조금은 피로하게 했다. 사실 마음과 상황이 좋을 때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작품들이지만 내게는 꽤 무거웠고, 가끔 지루했다. 더이상 도시에서 부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다.<br><br>11. 검은 모자를 쓴 여자(권정현. 자음과모음. 2021. 264쪽): 새벽 2시, 민은 문득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민의 집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민은 얼른 달려나가지만 분명 헌옷수거함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온데간데 없다. 남편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고, 작은방의 동수도, 강아지 무지도 아무 일 없지만 민은 불안하다. 사실 3년 전 아들 은수가 약수터 앞 공터에서 민이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유아차에서 목이 꺾여 죽은 후 민은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은수의 죽음 이후 힘들어하던 민은 강아지 무지를 입양해 키우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던 중, 눈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네 교회의 잠긴 문 앞에 버려져 있던 은수와 비슷한 개월수의 동수를 발견하여 입양했다. 동수 품에 안겨 있던 검은 고양이 까망이도. 그러나 민은 동수에게 깊은 정이 가질 않는다.&nbsp;<br>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이었을까? 진실이 있기는 한가? 병원에서 공연했던 마술사가 한 말처럼 삶이란 모자 속 고양이를 꺼내는 일의 연속이다. 그냥 꺼내는 거.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다.(213쪽) 민은 과연 몇 마리의 고양이를 꺼냈을까? 난 민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끝까지. 민이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사실은 민이 그 행동을 하길 바라고 있다. 결말에서 작가가 하지 않은 그 이야기처럼.)<br><br>12. 빛의 마녀(김하서. 자음과모음. 2019. 272쪽):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니콜은 횡단보도 옆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여자를 발견한다. 한겨울에 맨발로 얇은 코트만을 입은 채 스물 여섯 시간밖에 살지 못한 딸의 죽음에 병원 과실을 묻는 여자, 태주. 200년이 넘게 살고 있는 마녀 니콜은 문득 딸 샬럿이 기억나고, 태주에게 아이를 되살려 주겠다며 자신의 모든 말을 따르겠냐고 묻는다. 니콜은 자신을 쫓는 마녀 헌터 에드워드의 눈을 피해 이곳에 얼마나 더 머물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태주에게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려준다.<br>태주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지금 하는 일들과 니콜의 과거가 엇갈린다. 왜 니콜이 태주를 한눈에 알아볼 수 밖에 없었는지. 같은 상처를 지녔다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씻어낼 지는... 결말이 조금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책 속에서나마 진실이 이렇게 대놓고 드러나지 않았으면 좀더 여운이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 자체는 좋았다. 이들이 한 방식이 건강한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그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사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게 위로가 되기도 했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br><br>13. 너무나 많은 시작(존 맥그리거, 이수영 역. 민음사. 2010. 456쪽): 데이비드는 이제 막 장모의 장례식에서 돌아왔다. 아내 엘리너는 가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다시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려야 한다. 데이비드는 장례 기간 동안 함께 있던 딸 케이트의 성숙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뿌듯해 하고, 엘리너의 마음을 달래 주려 한다. 그리고 엘리너는 이제 곧 데이비드가 가야 하는 여행길에 동행해 주겠다고 한다. 이 여행은 무엇을 위한 여행일까? 어릴 때부터 여러 물건들을 수집하고 물건들의 이야기를 상상했던 데이비드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큐레이터가 되고 출장길에 애버딘 박물관 카페에서 일하던 엘리너를 만나&nbsp;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한 끝에 그녀와 결혼한다.&nbsp;<br>사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일하러 온 메리 프리엘이 일하는 집 주인에게 강간 당하고 사생아를 출산하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하지만 읽으면서 난 프롤로그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나중에야, ***의 세상이 뒤집어진 후에야 다시 기억해낸다. 이 소설 속에는 그만큼 많은 삶들이, 줄리아와 도로시와 엘리너의 삶이, 그리고 데이비드의 삶이 있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고 또 하나하나가 소중한 그들의 이야기가. 도로시의 이야기는 평범했지만 줄리아의 이야기는 조금 안타까웠고 엘리너의 이야기는 화가 났다. 어쩌면 평범하고도 흔한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삶은, 모든 삶은 저마다의 응어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옹이가 진 부분은 더 단단하기에.&nbsp;<br>소설의 목차가 데이비드가 여행을 위해 챙기는 물품의 목록이라는 걸 다 읽고서야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 걸.&nbsp;<br><br>14. 골렘(구스타프 마이링크, 김재혁 역. 책세상. 2003. 398쪽): 예술품 복원을 업으로 하는 페르나트. 그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없다. 게토 지역에 있는 그의 작업실 겸 거주지의 1층에는 고물상 바서트룸이 살고 있고 다른 층에는 지적 장애인 형제와 이들이 사랑하는 빨강머리 로지나가 있다. 페르나트는 그저 언제부턴가 이곳에 있으며 예술품 복원을 해왔고, 가끔 작가, 화가, 구두장이인 친구들과 어울린다. 어느날 페르나트에게 묘한 분위기의 손님이 와 '이부르'라는 책의 복원을 의뢰한다. 페르나트는 이 책을 복원하려 하지만 확신할 수 없고, 손님의 형상 또한 희미할 뿐이다. 이런 페르나트에게 친구들은 골렘 전설을 이야기해 준다. 페르나트는 파편적으로 돌아오는 자신의 과거 기억과 게토 지역에서의 여러 사건, 그리고 세무 공무원이지만 통찰력이 있는 정신적 지주 셰마야 힐렐과 그의 딸 미리암과의 관계, 젊은 시절 연인이었고 현재는 바서트룸의 복수 대상인 사비올라 박사와 불륜 관계인 안겔리나에 대한 연민과 보호 사이에서 부유한다.<br>줄거리를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페르나트의 모든 행동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다만 모든 행동이 공감이 되진 않았고. 골렘의 존재 또한 그가 필연적으로 골렘의 문 없는 방을 발견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골렘의 상징성에 대해선, 읽는 동안에는 꽤나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페르나트의 또다른 자아일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내 추측으로 인해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므로. 솔직히 말하면, 예상대로여서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안겔리나를 기다리던 성당에서의 환상과 그 의미를 나중에 깨닫는 페르나트의 모습은 내가 이 소설에서 기대했던 그대로여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되었다.<br><br>15.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예소연,전지영,한정현. 다람. 2025. 152쪽): 앤솔러지. 솔직히 말하면, '금지된 말들'이라는 주제보다는 각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단편 자체의 내용이 좋았다. 읽으면서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했고 읽다가 '아, 여기서 앤솔러지의 주제가 드러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세 편 다 좋았고, 뒤의 작가들 대담도 좋았다. 가장 공감됐던 건 한정현. 나머지 두 편도 당연히 좋았지만 '나'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br><br>16. 레드 닥&gt;(앤 카슨, 민승남 역. 한겨레출판. 2019. 208쪽): 『빨강의 자서전』의 게리온은 이제 자랐다. 중년이 된 그는 그저 다닐 카름스를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우연히 만난 Sad But Great와 차를 몰고 북쪽으로 향한다.&nbsp;<br>『빨강의 자서전』보다 조금 덜 반짝이고 조금 더 슬프다. 어쩌면 시간이 닳게 하는 건 표피가 아닌 마음이겠지. 이제 사랑은 없다. 완벽한 아내는 그저 아내일 뿐. 그래도 난 그녀가 좋았지만, G의 북녘행은 멈추지 않는다.<br><br>17. 해파리 만개(김초엽. 마음산책. 2026. 204쪽): 단편집. 첫번째 작품이 너무 뻔해서, 마치 청소년들에게 해주는 우화 같아서 멈칫했다. 하지만 두번째 작품 「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에서 이전의 김초엽이 보여서 다시 맘 편하게 읽어 나갔다.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한 존재들에게 주목하는 작가의 시선이 여전히 좋았다. 가장 재밌었던 건 「젤리의 우울」이지만 인상 깊었던 건 피그말리온 효과를 떠올리게 했던 「사모나」.&nbsp;<br><br>18. 불필요한 여자(라비 알라메딘, 이다희 역. 뮤진트리. 2026, 436쪽): 72세 알리야. 오래전 남편과 이혼하고 그동안 혼자서 삶을 꾸려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집안에서 밀어붙인 조혼으로 원하는만큼의 교육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 사는 집의 주인이 알리야의 권리를 인정해 주어서, 그리고 (전)남편의 집안과 친했던 한나의 소개로 서점에서 일할 수 있어서 혼자서 잘 살 수 있었다. 알리야는 매년 1월 1일에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바로 소설 번역. 지금까지 37권을 번역했지만 이 종이뭉치들은 그저 가정부 방과 그 옆 화장실에 쌓여 있을 뿐이다.&nbsp;<br>알리야는 평생을 칩거한다, 책과 함께. 사실 난 그게 부러웠다. 너무 철없는 소리일 지 모르지만 알리야에게 삶은 문학이고, 문학으로 그녀 자신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특히 페소아의 문장들로. 혼자 사는 여성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그저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줄 무언가. 알리야에게는 그게 책이었고 나에게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만의 삶을 잘 꾸려가는 그녀에게도 역시 연대는 필요하다. 그래서 난 계단 위의 '세 마녀'가 고마웠다. 그녀들이 그저 막무가내가 아니어서 좋았고, 셋이 다 배경과 직업이 달라서 좋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나이들고 고립된,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은 외로웠던 여성이 구원받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세 마녀는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줄 것이고 알리야의 노력은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다. 적당히 담백하고 적절히 따뜻한 게, 그게 가장 좋다.&nbsp;<br>ps. 레바논에서도 대학원생은 '노예'라니.... 전세계 공통인건가? 웃기면서 슬프다.<br><br>19. 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성해나,김기태,박연준,박민정,성혜령,김경욱,하성란,윤성희,정한아,김유담,김병운,문지혁,이미상,송호근,정용준,정소현,안톤 허,권김현영,정대건. 은행나무. 2026. 216쪽):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짧지만 응축된 이야기들 속에서 나와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조금은 외면하고 싶은 모습도 있고 설마 싶은 모습도 있었지만. 물론 내가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어딘가에 있던 안톤 허.&nbsp;<br><br>20. 파트타임 여행자(반수연. 문학동네. 2025. 276쪽): 디아스포라 단편집. 저자는 10년 동안 글을 못 썼다고 했는데 그렇게 꾹꾹 눌러담은 마음이 진하게 녹아있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하나같이 마음 아픈, 길 위의 이야기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다음 발걸음이 단단할 것임을, 이들의 내일은 오늘보다 밝을 것임을 믿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들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표제작.&nbsp;<br><br>21. 다시, 몸으로(김초엽,저우원,김청귤,청징보,천선란,왕칸위. 김이삭 역. 래빗홀. 2025. 308쪽): '몸'을 주제로 한국과 중국의 소설가들이 쓴 앤솔러지. 세 가지 주제로 각각 한국 작가 한 명과 중국 작가 한 명이 단편을 실었는데, 주제는 사실 크게 상관 없을 듯. 신체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실은 인간 자신의, 어쩌면 정신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인간을 구성하는 건 무엇인지, 인간 존재에서 신체란 어떤 역할인지... 주제나 소재를 생각하지 않고 읽어도 좋기만 한 여섯 작품들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몸'과 가장 관련이 적은 이야기였던 청징보 &lt;난꽃의 역사&gt;.&nbsp;<br><br>22. 하우스메이드 2(프리다 맥파든, 황성연 역. 북플라자. 2025. 400쪽): 밀리는 여전히 전과 기록 때문에 직장을 얻기 힘들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지만 생활비는 벌어야 했기에 예전처럼 하우스메이드 일을 계속하는데, 이번에도 어이없이 해고당했다. 구직 사이트에 올려두고 연락을 기다리던 밀리는 한 남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맨해튼 부촌의 펜트하우스를 방문한다. 보통의 경우처럼 아내가 연락한 게 아니지만, 좋은 인상의 성공한 기업가 더글러스는 바로 일을 시작해 달라고 한다. 다만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손님방에 칩거하고 있다면서 절대 아내를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말도 걸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밀리의 눈에 아내 웬디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손님방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나고, 웬디의 식사는 늘 더글러스가 가져다 준다. 게다가 빨래의 검붉은 얼룩과 세면대에 찍혀 있는 피묻은 손자국...<br>흥미를 유발하는 글솜씨는 여전하지만 전편보다는 재미는 좀 덜하다. 웬디의 이야기는 짐작 못했지만. 그래도 권선징악이라는 면에서는 전편보다 낫지 싶다. 전편보다 더 확실해서. 3권을 읽을지말지 모르겠다.&nbsp;<br><br>23. 전혀 다른 열두 세계(이산화. 읻다. 2024. 208쪽): 매월 1편씩 연재했던 소설을 묶은 것. 소설집 제목처럼 각 작품의 세계관이 다 다르다. 부담없이 읽기는 했는데 뭔가 조금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작가가 열두 편의 다른 이야기를 썼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가장 좋았던 건 &lt;이무기 시절도 한때&gt;.<br><br>24. 글쓰기에 대하여(찰스 부코스키, 박현주 역. 시공사. 2016. 332쪽): 저자가 작가나 편집자 등 문학과 관련있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들. 약간의 편집(?)도 있는듯 한 게, 어떤 편지는 문학을 언급한 부분만 실려 있기도 하다. 부코스키는 여전히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일관되게 마초스럽고, 자신감있다. 시대상을 감안해도 맨정신으로는 인정해 주기 싫은 젠더 의식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코스키를 애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책에 실린 부코스키의 육성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걸 엮어낸 편집자에게 고맙다.&nbsp;<br><br>25.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이하진. 열림원. 2024. 376쪽): 2000년 크리스마스에 뉴욕의 종합병원에서 갑자기 이능력자들의 능력이 폭발한다.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이후, 이능력자들은 별도로 관리된다. 그리고 잠재자들이 이능력자의 피를 수혈받거나 상처에 닿으면 '교란'이 일어나 10여년 동안 신체는 점점 약해지고 종국에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열을 다루는 이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미르. 학교 주위를 맴도는 이상한 트럭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경찰과 학교측에 알리지만 어른들은 애매한 태도만 보이고, 결국 트럭의 테러를 혼자서 막아내고 쓰러진 미르를 절친 건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다 건에게 교란이 일어난다. 10년 후, 미르는 이능력의 무효화를 연구하는 RIMOS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건을 소속 병원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게 한다. 하지만 건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미르는 RIMOS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교란 상태에 들어간 서현주 씨의 딸 서해수와 인연이 닿는다.<br>일반적으로 장르 소설이라 할 때 기대하는 무드의 소설은 아니다. 일단 세계관이 상당히 정교하면서도 깊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 속에서 전개하는 물리학 이론의 깊이와 비례한다. 그래서 이야기 초반에는 살짝 지루했다. 재밌어지는 건 3부부터. 해피엔딩을 믿었지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만큼 소설의 분위기는 묵직했기에. 탄탄한 이론과 재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이유없는 빌런이 없던 것도.&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Yujin</author><category>Everyday, Every night</category><title>그 시절 우리가 가여워했던 소녀, 인어 공주 -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yujin/17415020</link><pubDate>Mon, 27 Jul 2026 16: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ujin/174150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535258&TPaperId=174150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32/79/coveroff/s2826369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535258&TPaperId=174150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a><br/>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br/></td></tr></table><br/>인어 공주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다 밖의 세상을
동경해서 난파선에서 주워온 물건들로 자신의 화단을 꾸몄던 소녀. 언니들이 들려주는 바다 밖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나갈 수 있게 되길 손꼽아 기다리던 소녀. 열일곱 살이 되어 처음 바다 밖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던 날 우연히 마주친 왕자님을 폭풍 속에서 구해내어 바닷가로 밀어내고 자신은 그저 숨어서 수도원에 머물고 있던 인간 소녀가 왕자님을
데리고 가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소녀. 이후 그를 그리워하여 그와 함께하기 위해 목소리를 대가로
인간의 다리를 얻어낸 소녀. 바다 밖으로 나가 꿈에 그리던 왕자님 곁에 있게 되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도, 자신이 그에게 해주었던 일을 이야기해 줄 수도 없었던 소녀. 그래서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이자 자신의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수도원 소녀와 결혼하는 걸 지켜만 보았던 소녀. 그리고, 언니들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머리칼을 주고 구해온 칼을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소녀.<br>



어릴 땐 왕자가 미웠고 왕자를 찌르지 않은 인어 공주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남은
가족들은 어떡하라고. 언니들이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조금
커서는 글을 배우지 않은 인어 공주가 답답했다. 왕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글도 배울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글을 배워서 고백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을 거 같긴 하다. 글로 설명을 했더라도 왕자는 처음부터 인어 공주를 여동생처럼 사랑했을 뿐이니 결말이 바뀌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왕자는 잘못한 게 없다.
이웃나라 공주도 해안가의 왕자를 발견해서 돌봐주었으니 구해준 거 맞고. 이들 인간들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다.<br>



다만 여전히 인어 공주는 가여울 수 있다. 사랑을 이유로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녀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안타까운 소녀일까? <br>



아니다. 인어 공주는 사라진 게 아니다. 물거품이 되어버렸을지언정, 그리하여 공기 중에 흩어졌을지언정.<br>



이번에 인어 공주를 다시 읽으며 난 결말에서 전에는 미쳐 몰랐던 걸 알게 됐다.<br>



형상 중의 하나가 대답했다. “넌 공기의 딸들과 함께 있단다. 인어에겐 영혼이 없지.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인어가 영혼을
얻으려면 다른 힘에 의존해야 한단다. 공기의 딸들도 영혼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여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중략)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인간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단다.” (96쪽)<br>



인어 공주는 자신의 힘으로 영혼을 가질 수 있게 된 거다. 남자의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일방적인 희생도 아니다. 인어
공주는 사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이다. 자기를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기존의 해석처럼 그저 인간이 소중해서, 인간을 위해서 인간 외의
존재인 인어가 희생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응답을 받았다. 삼백 년만 있으면, 삼백 년 동안 다른 존재를 해하지 않는 지금의
마음만 지키면. <br>

인간은 필멸의 존재여서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난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사후 세계도. 그러나, 인어 공주를 위해서는 영혼이 있었으면 한다. 인어 공주 자신이 공기의
딸에게 얘기했듯, 삼백 년 후에는 하늘 나라로 가기를.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다.<br><br>



PS. 사실 안데르센 동화에서 정말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진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lt;나무요정&gt;의 드리아스. 드리아스는 자신이 살던 나무를 답답해했고, 수명이 깎여도 좋으니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단 하룻동안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다닌 후 다음날
첫 햇살 아래 진주 같은 이슬 한 방울만 남긴 채 영원히 사라진다(996쪽). <br>



난 드리아스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일 뿐이지만 드리아스는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가고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드리아스가 남을 해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건 아니니. 드리아스도
자신의 선택으로 갈망하던 것을 얻었다. 그러니, 사후 세계
따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832/79/cover150/s2826369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32797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