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본능적으로 안다. 자기가 읽고 있는 책이 저자의 책이자, 출판사의 책이며 동시에 자기 책이라는 걸 말이다. '구매해서 읽고 소장하고 있다'도 아니고 '읽었다(또는 읽다 말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책에 일정 정도의 지분이랄까 권리(최소한 발언권)를 갖는다는 것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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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스타프 님의 추천으로 읽었다. 함께 추천하신 오페라 <외투>의 영상을 보고 도밍고의 노래도 듣고 했더니 유진 오닐의 극을 이미 읽은 기분 마저 들었다. 하지만 <애나 크리스티>와 <외투>는 다른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나라도 다르고 바지선의 의미도 다르고 무엇보다 결말이 아주 다르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은 서로 매우 닮았다.


다섯 살 이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만나러 뉴욕의 한 술집으로 오는 애나. 스웨덴에서 이민와 미국 중서부 농촌에서 성장해 이십대 초반인 그녀는 이미 몸과 마음이 망가져 버렸다. 바다와 남자, 무엇보다 이 둘을 합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이다. 하지만 순진하게도 딸이 와서 기쁜 바지선 선장 오십대 크리스. 그는 문제가 생기면 맞서 해결하기 보다는 도망 가거나 숨기는 스타일. 함께 지내던 사연 많은 여인 마티는 눈치를 채고 바로 퇴장한다. 크리스는 뒤늦은 아버지 행세를 하려들고 애나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가 조금씩 안개와 함께 바지선에 사는 그녀에게 스며든다. 


폭풍우가 치던 밤, 몇 명의 난파선 선원들을 구출하게 된다. 그중 웃통을 벗은 떡대 맷 버크는 애나에게 반하고 청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바다와 뱃사람보다는 뭍의 농장을 높이 치는 크리스는 맷을 반대하고 그 사이에서 애나는 갈등한다. 아버지와 맷 둘다 애나의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애나는 폭발한다. "내가 내 주인이야!" 애나는 아버지와 다르다. 애나는 문제를 덮지 않고 밝힌다. 나 이런 과거가 있어, 하지만 널 향한 마음은 진심이야. 놀란 크리스와 맷. 맷은 분노하며 애나를 죽이겠다고 날뛴다. 자신의 비겁함과 이중 잣대는 뭉개면서 애나의 과거를 저주하고 윽박지른다. 크리스는 이번에도 덮고 도망가기 바쁘다. 그럴리 없다 없다 없다 술이나 마시자. 크리스나 맷이나 똑같은 뱃놈들. 결국 바다와 남자 때문에 이런 인생 이런 결말이라니. 인물들 모두 자신이 제일 불쌍하고 힘들고 소중해서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다. 세 명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소리지르고 울고 뒹군다. 그나마 생각을 조금 더 할 줄 아는 애나는 가방을 싼다. (알고보니 다른 두  남자들도 가방을 싸고 있었음)


그리고 <외투>와 닮은, 하지만 아주 다른 결말로 4막이 채워진다. 팔스타프님 따라 나도 안 알려드림. 


유진 오닐의 극은 소설 읽는 재미를 주는 지문이 많다. 인물 표현은 연출과 배우 몫이겠지만 독자들도 연극 공연장에 있는 기분이 든다. 크리스가 함께 지내던 여인 마티는 "남자 같은 목소리로 커다랗게 이야기하다가 끝에는 거친 웃음을 한바탕 웃으며 마무리 한다. 핏발이 선 푸른 눈에는 고단함이 꺾지 못한 삶을 향한 젊은 욕망이 있고, 조롱이 섞였지만 착한 심성에서 우러난 유머 감각도 있다." 과연 이 여인은 젊고 고단한 애나와 얼마나 겹치는가. 


백 년 전 남자들 맷과 크리스의 대사를 읽다보면 복장이 터지지만 참고 읽다보면 바지선이라는 장소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깨닫게 된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 그 위의 바지선. 극을 다 읽었는데 어쩐지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수습될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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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2-1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우, 이 장면 함 보셔요.
https://youtu.be/46ybS7cebuU?si=ZPbdNmD-JO0iLMgf
그레타 가르보가 애나 역을 하는, 그레타 역사상 최초의 유성영화 장면이랍니다.
전 이 영상 보기 전까지 가르보의 매력을 거의 몰랐답니다. 맨인블랙에선 그레타가 외계인이라고 하잖아요. ㅋㅋㅋ

유부만두 2023-12-11 17: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뒤에 해설을 읽고 그 영화가 궁금했더랬어요!
 

고전동화집에 실린 이야기 중에서 낯선 이야기 하나 더.

“미녀 바실리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재혼한 아버지, 새어머니와 의붓 언니 두 명과 산다. 상인인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운다. 바실리사의 친엄마가 돌아가실 때 마법의 인형을 주며 힘든 일이 생기면 이 인형에게 ˝밥을 해 먹이고 고민을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팥쥐네처럼 새어머니와 언니들은 바실리사를 구박하고 힘든 일들을 시킨다. 그때마다 콩쥐처럼 바실리사는 비밀 인형을 잘 모셔 도움을 받는다. 밭을 갈고 청소를 하고 물을 길어오는 일은 다 이 인형이 해준다. 몰래. 어느날 새어머니는 바실리사에게 ˝불을 구해 오라˝며 마녀 바바 야가에게 보낸다. 바바 야가는 러시아 민담에 전해 내려오는 마녀의 이름이라고 한다. 사놓고 어딨는지 모르는 나의 바바야가의 밤 책이 이제야 생각난다.

숲속의 마녀는 새어머니랑 똑 같이 군다. 힘든 집안일을 시키고 구박하는 데다 잡아먹겠다고 위협까지 한다. 이때에도 콩쥐 아니 바실리사는 적은 음식이나마 인형에게 주고 도움을 받는다. 결국 마녀 바바 야가는 해골에 담긴 불을 내주고 바실리사는 집으로 돌아간다. 정의의 불로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은 불타 사라진다. 만세! 아버지는 죽었던가 어쨌던가 존재감이 없다. 돌아와봤자 새장가나 들고 자식들은 보살피지 못할 놈. 자유로워진 바실리사는 마을의 한 할머니와 살면서 고운 실을 잣고 고운 천을 만든다. 인형의 마법은 베틀을 마련하는 데 까지만 작동한다. 이야기에서 거의 처음으로 바실리사는 자기 손과 노력으로 실과 천을 만든다. 왕에게 진상된 이 훌륭한 천은 다시 바실리사가 손수 옷을 만들고 그녀의 뛰어난 솜씨와 더 뛰어난 미모에 반한 왕은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녀는 자기를 거둬준 마을의 할머니와 그 비밀의 인형을 끝까지 잘 보살폈다고 한다.

바바 야가와 나중의 할머니는 결국 동일인 아닐까. 혼자 사는 할머니, 불쌍한 여자 아이를 거둬서 원하는 복수와 중매를 해주는 사람. 낮에는 뭐가 바빠서 밖에 싸돌아 다니고 밤엔 외딴집에 돌아와 약초를 빻고 불씨로 뭘 만들고 밥먹고 식곤증으로 쓰러져 자는 사람. 요술 인형을 남겨준 친엄마도 그런 이상한 할머니의 도움으로 성장했던 이전 세대의 콩쥐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요술 인형은 딸을 낳으면 전해주는 도움의 손이지만 결국 엄마는 일찍 여의게 되는 저주가 아닐까. 인형은 일은 해주지만 먼저 밥을 차려줘야 하니까 귀신주머니 같은 느낌도 든다. 만약 밥을 주지 않는다면 인형은 대신 뭘 먹을까. 그나마 왕이 받는 소녀의 천과 옷이 인형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마음에 든다. 만약 그게 인형의 작품이었더라면 결혼 후 인형이 ˝내 왕비 자리 내놔˝라며 소녀에게 때늦은 정산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뭔가 반전 혹은 뒷통수가 있을까 겁먹었는데 이 인형은 의외로 현명한 조언으로 미녀 바실리사에게 조언한다. ˝저녁을 먹고 기도를 하고 잠을 좀 자두도록 해요. 아침이 되면 밤보다 현명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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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펠슈틸츠헨

제목도 살벌한 이 책은 조이스 캐럴 오츠, 셜리 잭슨, 닐 게이먼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다시 쓴 옛 이야기 후속편 모음집이며 앤절라 카터에게 헌정되어 있다. 41편의 단편 중 두 편이 롬펠슈틸츠헨 이야기다. 


"로라 시티"의 작가 케빈 브록마이어가 쓴 "반쪽 룸펠슈틸츠헨의 어느 하루"는 옛 이야기 결말에서 반으로 쪼개진 한 쪽 룸펠슈틸츠헨의 그 이후 이야기다. 


아침에 그는 꿈을 꾸다 깬다. 자신의 지푸라기 몸 오장 육부가 물레를 통과해 금실이 된다. 곧 금실 뭉치만 남고 지푸라기는 없다. 그리고 그 자신 룸펠슈틸츠헨도 없다. 놀라서 깬 그는 그야말로 반쪽, 별을 반 접은 꼴이다. 몸을 굴리거나 한쪽 발로 깡깡이를 하며 움직인다. 어려운 몸 동작으로 세수를 하고 아침을 챙겨 먹고 직장에 가서 창고 정리를 하거나 마네킹 옆에 서있다가 그의 반쪽 몸을 만지는 껄렁한 십대 청소년을 놀라게 만든다. 직장 상사에게 핀잔을 듣고 퇴근 후 먼 곳에 따로 떨어져 사는 다른 반쪽의 롬펠슈틸츠헨이 보낸 편지를 읽는다. 그곳 삶도 녹녹치는 않다. 지역의 여성개발센터에서 강연을 한다. 여성 청중들은 동화의 결말과 그 디테일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그와 숲속의 늑대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왜 그가 개명하지 않는지 묻는다. 그는 자신이 룸펠슈틸츠헨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반쪽일 지언정. 


그는 반쪽이다. 지금 여기 오른쪽 몸만 있으니 다른 곳에 있는 왼쪽 뇌와 연결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그가 가진 오른쪽 뇌가 느끼는 건 저 먼 곳의 왼쪽 몸일테고 그것이야 말로 진짜 그의 정체성인가. 그는 소외되고 길을 잃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묘기하듯 큰 솥 주변을 구르고 뛰며 음식을 하고 먹고 노래를 부르고 TV를 보고 "영원히 파편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다 잠에 든다. 


우습고도 슬프게 쓸쓸한 이 반쪽이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야기의 그 왕비는 잘 살고 있냐?!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약간의 분노를 "너스 베티"를 감독한 닐 라뷰트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키워서 그 여인과 대면시킨다.


"금실로 자은 머리카락"은 롬펠슈틸츠헨 옛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왔다. 옛이야기의 롬펠슈틸츠헨, 금을 만들어주고도 배신당한 '작은' 남자가 왕비를 찾아왔다. 화자는 바로 그 과거의 남자다. 어때? 놀랐어?라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Instant karma라는 존 레논의 노래를 인용한다. 열여섯의 청소년은 고등학교 상담 여교사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혹은 눈을 뜨게 되며 사랑에 빠지고) 함께 하는 미래를 믿고 여자가 간절히 원한 '그것'을 주었지만 여자는 떠나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남자는 여자를 찾아냈고 여자의 남편과 아이가 모르는 비밀을 들이민다. 


"인터넷, 거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에요. 당신과 나 같은 사람, 이 세상의 거짓말쟁이, 허풍쟁이, 유령 같은 존재들을 위한 공간이죠. 몸을 숨기고 자신을 가장하기에 참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지요. 나는 금실로 자은 듯한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서맨사라는 이름의 귀여운 10대 소녀로 가장했어요." 


이제 여자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일은 단 하나, 자신의 과거와 거짓말이 탄로나 지금의 행복을 흔들지라도, 이 작은 남자의 이름 롬펠슈틸츠헨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그의 정체를 알려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존 레논의 노래처럼 업보인데? 그러면 이야기처럼 이 남자도 분에 못이겨 둘로 쪼개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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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2-09 2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니까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고딕의 여왕은 앤절라 카터라니까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23-12-10 16:54   좋아요 2 | URL
그쵸. 피로 물든 방을 반쯤 읽고 놔뒀었는데 제대로 완독해야겠습니다.
 

스티븐 킹의 페어리 테일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는 옛이야기는 "잭과 콩나무/콩줄기"다. 지하세계에 들어가서 금덩어리를 들고 온 보디치씨가 잭이고 그를 쫓다 실패한 거인 해다와 악한 왕이 거인에 해당한다. 어쩌면 음산한 귀신의 집에 금을 쌓아두고 홀로 살다가 (콩나무 대신)사다리에서 떨어진 보디치씨가 거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찰리는 그의 금을 훔치는 대신 도움을 베푼다. 





잭은 어리숙해서 소를 팔러 가다 낯선이의 말에 속는다. 그에게서 소값으로 콩 다섯 알을 받는다. 잭의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콩을 집 밖에 던지고 하룻밤 새 콩은 거대한 줄기를 하늘로 뻗었다. 잭은 그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거인의 집에 닿는다. 거인의 아내는 거인에 대해 경고하며 잭을 숨겨주고 잭은 금화 주머니를 훔쳐 집으로 돌아온다. 그 금화로 생활을 하다 금화가 떨어지자 잭은 다시 거인의 집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도 거인의 아내가 숨겨주고 잭은 두번째 도둑질, 금알을 낳는 닭을 훔쳐온다. 닭은 황금알을 낳았고 잭의 욕심은 더 커졌다. 삼세번의 법칙. 세번째 상경/승천해서 거인 집에 이르자 이번에는 거인의 아내도 모르게 혼자서 큰 솥단지에 숨는다. 그리고 틈을 노려 노래하는 하프를 훔쳐 도망친다. 하지만 하프가 소리를 지르자 거인이 쫓아오고 먼저 땅으로 내려온 잭이 콩줄기를 도끼로 내려 찍자 거인은 거꾸로 떨어져 죽고 만다. 잭은 훔쳐온 보물 두 가지로 잘 먹고 잘 산다. 



동화를 프로이트식으로 분석하는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 이야기 역시 성숙을 향한 투쟁으로 본다. 젖이 마른 암소를 내다 파는 것은 구순기가 끝나 유아기 낙원에서 추방되는 것이라 했다. 잭은 암소를 돈으로 바꾸는 대신 마법 콩알로 바꾸었으니 아직 현실을 직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행동은 잭이 자발적으로 한다. 밤새 뻗어올라간 콩줄기는 남근기를 나타내고 (아 지겹..) 남근적 국면에서 오이디푸스적인 대칭, 즉 거인에 맞선다. 거인의 집에서 두번이나 도움을 주는 거인의 아내는 잭을 구박하는 친엄마의 다른 변형이다. 그가 숨는 솥단지는 ... 그렇다 자궁. 보물을 훔쳐 달아나고(황금알 낳는 닭은 항문기, 마술하프는 예술적 단계;;;) 도끼질(!!)로 거인을 죽이면서 잭 자신이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촌스러운 해석 아님니까. 그냥 어리숙한 아이가 마법을 믿고 싶어서 믿었고, 그 마법이 벌어졌을 때 욕심을 한 번 두 번 세 번 부렸고, 삼세 번 만에 도둑질이 완성되면서 살인범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벌을 안 받네? 왜? 죽은자가 이미 어린이들을 습관적으로 납치 살해 식인해온 반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 거인의 아내는 높은 하늘의 그 집에 혼자 살게 되나? 그녀는 거인의 공범이었을까, 방조자, 아니면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을까. 거인의 뒷수발을 들지 않아도 되니 그녀에겐 이득일까. 


찬호께이는 이 콩나무 이야기를 거인 살해 사건이라며 법정으로 가져온다. 

소설의 주인공은 귀족이며 법학자(이지만 본업보다는 유럽 각지의 민담을 수집하는) 호프만 선생이고 화자는 그의 비서 안데르센이다. 그들이 영국의 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9살 소년 잭이 강도살인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법정에 참석해서 지방 판사의 독단적 판결을 저지하며 이는 마법(마법의 콩, 황금알을 낳는 닭, 요술 하프)이 연루되었으니 종교 재판이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교가 오기 전 며칠 동안 호프만 선생은 사건을 재수사한다. 잭의 아버지의 의심스러운 돌연사, 잭에게 콩을 준 비밀스러운 남자, 악명 높은 거인이 사실은 가파른 언덕 위에 살던 대장장이로 키는 2미터를 넘는 사람이었다. 잭의 주장에 따르면 금화는 거인의 부인이 주었으며 닭이나 하프도 부인이 가져가라고 강권했다고 했다. 물론 거인의 부인은 부정하며 남편의 죽음이 잭의 탓이라고 주장했다. 호프만 선생은 콩줄기가 어디에 떨어져 어떤 모양으로 바위벼랑 옆에 뻗었는지 (지금은 타버려 흔적도 없다) 조사한다. 하지만 그날밤 자객이 호프만과 안데르센을 습격하는데.... 설화를 현실로 가져오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 또 납치, 살인, 절도, 강간 등 얼마나 폭력이 많은지 생각하게 된다. 귀족 주인공 호프만 선생이 모든 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린다. 하지만 거인을 되살릴 수는 없다. 이 단편에서 그는 애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나은 셈이다. 


옛이야기 엔딩은 대부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지만 비극에 호러다. 피를 밟고 선 행복과 돈이냐! 이런 걸 아이들에게 꼭 읽혀야 하느냐? 그래도 옛이야기는 구성이 헐겁고 상징적이라 여러 해석을 나름대로 붙여보는 재미가 있다. 구순기 항문기 이런거만 있는 게 아니라니까. 며칠 옛 이야기 관련 책들을 쌓아 놓고 읽자니 내가 지금 뭐하나 싶다. 현실을 살아야해. 우리집 먹깨비들이 몰려오기 전에 솥에 밥을 안쳐야 한다. 쿵쿵쿵, 피 파이 포, 소고기 냄새가 난다아아아. 그래, 얘들아 오늘 불고기했어. 근데 밥은 콩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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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2-08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의도적인 오타 있는 거 알아요?

반유행열반인 2023-12-08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도 좋은데 잭과 뽕나무 하는 순간 무언가 음탕해짐요... 저도 거인 불쌍해 잭은 강도살인마야 했는데 그걸 생각만 안 하고 법정스릴러(?) 만드는 분들이 역시 작가가 되는 거 군요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2-09 19:57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그러네요. 뽕나무!!! 80년대 에로 영화 포스터도 생각나고요.
어쩌면 뽕나무에서 떨어진 거인은 오디 때문에 더 붉은 몸으로 죽었을 거에요.

찬호께이의 소설은 스릴러라기 보다는 그역시 짧은 옛이야기에요. 유럽판 암행어사 박문수 억울한 누명을 벗기다, 자잔, 그런데 재미가 없다는 게 반전이죠. 하하

psyche 2024-01-05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찬호께이에게 저런 작품이 있었네? 읽어볼까 했는데 재미가 없다는 게 반전이라니 패스 ㅎㅎ

유부만두 2024-01-05 16:27   좋아요 1 | URL
패스. 이건 별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