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엣세이인데 생활 엣세이 같고...(그 차이점은 모르겠지만) 여행의 멋짐, 좋음, 자랑과 허세로운 사진 대신 여행을 가기 전과 가서 고생한 이야기가 뻥 없이 덤덤하게 쓱쓱 그려진다. 돈 아끼는 이야기와 낭만을 즐기는 이야기, 그 사이를 오락가락 했던 경험들. 한 가지만 고집하거나 우기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나보다 젊은 저자인데 속으론 언니....라고 부르면서 읽었다. 나는 쫄보라 혼자선 여행을 못다니는데, 난 게을러서, 또 남 눈치도 많이 보는지라 이런 저런 여행엔 후회와 속상함만 남는데 이 언니는 자기 여행에 쿨하게 후회도 기쁨도 보여준다. 매년 여행을 여기 저기 다닌단다. 얼마나 멋져. 다른 곳을 본 사람. 여기로 돌아와서 바쁘게 생활인으로 살고 또 비 추적추적 내리는 외국 어느 거리를 혼자 씨익 웃으면서 걷는 사람.

 

난 리뷰 하날 제대로 못 쓰네.... 뭔 말이 이리 오락가락인지. 그래서 이 책이 좋다는 말입니까? 네. 여행 정보가 없는듯 조금은 있고요, 사진도 조금 있고 (말 내장 요리 사진이 없어서 정말 궁금했음) 음식 이야기 고생 이야기, 뭣보다 사람 관계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빗소리 들으며 와인 마시며 읽었다. 그 다음날 책을 쳐다보니 나도 여행을 다녀온듯 씨익 웃음이 났다. 여기도 좋고 어디라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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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7-08-23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쓰시는데요 유부만두님. 저를 낚으셨어요. ㅎㅎ 읽어보고싶게. 그게 제일 잘 쓴 리뷰 아닐까?

유부만두 2017-08-26 17:0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언니 낚이셨나요? 제가 솜씨 좋은 리뷰어 인가요?
 

북클럽 이야기이지만 매월 소개되는 책보다는 북클럽의 뉴비, Ava의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다. 북클럽 책들은 정말 곁다리라 큰 이야기의 양념으로 보기에도 미미한 정도.

 

Ava의 가족 비극은 어린 시절 여동생과 어머니를 잃고, 결혼후 이십년을 함께한 남편의 배신, 방황하는 딸의 막가는 행동으로 첩첩 산중이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너무 전형적이고 파리에서의 딸 메기의 기행도 뻔해 보인다. 파리에서 글을 쓰겠다고 하고, (21살의 여대생이 헤밍웨이가 자기 Hero라며 그 족적을 더듬는건 ...뭐랄까, 엄마 옷 입은 아이 같...) 우연히 만난 프랑스 남자는 돈많고 예술일을 하고 술과 마약을 .... 앗, 이런거 너무 많잖아요. (피츠제럴드의 '밤은 아름다워라'가 생각나고요...뭐 롤리타 설정도 좀 보이고요) 미국 중부 아줌마들의 판타지 같은거죠. 아들뻘 젊은 남자랑 사랑은 아닌 육체적 관계. 자긴 책을 읽고 프랑스어도 해, 그런데 책 안읽는 아버진 너무 무식해서 싫었어, 이런거요. 독서를 즐긴다는 게 무슨 대단한 특별계급인거 마냥....그러면서 책토론 장면도 너무 무식해 보여...(아 괴로웠어요) 문장들도 참...말이 얄팍하게 많다는 거. 책읽기를 통한 치유...가 안 보이더라구요.

 

에바의 과거 이야기에선 조금 흥미가 생겼지만 먼로나 스트라우트 흉내내는 티가 너무 났다. 그런데 문장과 이야기 마무리가 너무 촌스러워서..특히 마지막 장면...하아....한숨이 나왔다. 그냥 먼로 이야기를 읽을걸 그랬어요. 인생의 책 이야기라며 넣은 마지막 책이 ... 어쩐지 그럴거 같더니만, 딱 고만큼의 쉽고 적당히 감동적인 '파리' 이야기에요. (저자의 로망이 너무 적나라해서 민망함) 행크의 회상에서 샬롯 대신 부인 얘기만 나오는거 우스웠고, 에바 남편의 '다시 우리...'하는 부분은 헛웃음만 나오게 했다. 그러니까 인생과 책을 가지고 뻔하지 않고 아프며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먼로나 스트라우트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깨닫게 되는 값진 독서였다고 위로를 .... ㅜ ㅜ 궁금하신 분들은 번역본 소개(내 인생 최고의 책)를 보신다면 아시겠지만, 책 소개는 정말 혹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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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7-08-23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가서 책소개 보고 왔잖아. 정말 혹하게 쓰여있네. 근데 인생의 책 이야기 마지막 책은 뭐야? 이것만 궁금하다는 ㅎㅎ
얼마전에 처음(ㅜㅜ) 먼로책 읽었는데 (라로님 처음 만난날 선물로 주셨다는..) 아 좋더라구. 대가가 괜히 대가가 아니었어. 내가 그동안 왜 안읽었지? 싶기도하고 내가 이번에 읽은건 dear life 인데 다른거 추천 좀 부탁해용

유부만두 2017-08-26 17:05   좋아요 0 | URL
실은요.....저도 먼로 책은 사놓기만 하고 ..... 흠....

마지막 책은 가상의 책으로 스토리상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요. 그리고 끝엔 그 다음해 책 주제를 노벨상 수상작가로 정하고, 먼.로. 책으로 시작하기로 하죠. 나름대로 오마주겠죠? ㅎㅎ
 

가끔 확인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삥 뜯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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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고, 다음주 수요일까지 온다고 하더니 오후 늦게 소나기만 내렸다. 계속 눅눅한 날씨. 어쩌란 말이냐, 나의 빨래는. 고성능 세탁기가 빨래는 아주 잘 하는데 건조는 그냥 뜨끈하게 짜주는 정도라 햇볕이 많이 아쉽다. (아, 아니에요. 취소. 더운 건 더이상 사절)

 

세탁기가 고장나고, 연인도 갑작스레 이별을 고했는데, 불면증 까지 겪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아빠도 떠났고, 엄마는 전에 돌아가셨고, 언니도 미국에서 사연 품은 가족을 꾸린다. 

 

제목이 왜 '옷의 시간들'인지 천천히 감이 왔다. 옷을 입고 벗고 빨고 말리고 다리고 다시 입는 그 모든 시간들의 여러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빨래방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라 단편집을, 연작소설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전작과 차기작들의 등장인물들도 친절한 주석과 함께 카메오 출연한다.

 

읽으면서 계속 '뭐, 이런...' 하며 헛웃음을 지었는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당돌하달까, 꾸몄달까, 아니 드라마나 소설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연, 사건이 툭툭 벌어지는 게 인생이잖아. 내친구 J가 그렇게 갑자기 갈지 아무도 몰랐듯이. 어떤 범죄 사고에 내가 아는 사람, 같이 밥 먹었던 사람이 연루되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 혼자 그 얼굴이 떠올라서 무섭기도 하고. 리서치 하는 그 여자, 미치씨 (미친X으로 읽어서 미안해요), 술마시던 어머니, 아버지, 기타리스트 그 사람, 유치원 그 선생님, 225호 그 간호사, 콧수염 그 할아버지, 불문학도 그 남자, 다 사연이 있겠지....만 촌스럽고, 생생하지는 않아. 어쩔 수 없네요.

 

갑자기 세탁기가 고장나는 일 처럼. 사건은 툭 벌어지거나 끊어진다.

 

빨래방이라니 유학시절 생각이 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찝찝함에 싸이클을 한 번 더 돌리곤 했다. 세제없이 그냥 강한 사이클로. 그래서 옷이 쉬이 상했지. 내 옷의 시간들은 바래고 닳고 짧았다. 이 소설 등장인물들은 찬물빨래/뜨거운물 빨래/흰빨래/색깔빨래 구별 없이 한 번에 돌리기에 아줌마가 속으론 걱정이 됐다. 이러면 옷이 엉망이 됩니다. 주인공의 새 세탁기의 건조기능은 (가스 연결 따로 안 해도) 보송하게 되는건가? 그럼 세탁기가 500만원 350만원은 넘을텐데. 그걸 (애인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친구가 선물로 준다? 와우. 디테일이 아쉽고요. 눅눅한 공기. 미국서 썼던 건조기에 넣던 바운스 얇은 종이랑 그 냄새가 생각난다. 따끈하고 뽀송하게 건조된 타월이 그립다. 빨래 빨래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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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7-08-1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만원짜리 세탁기 갖고싶다요. ㅋㅋ

유부만두 2017-08-18 11:39   좋아요 0 | URL
가격을 잘못 올렸음. 350 넘는거.... ㅎㅎ 요즘 날씨엔 건조 기능이 너무 아쉽고요.

목나무 2017-08-18 11:40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나 지금 쌓인 빨래 보며 한숨만. . ㅋㅋ

유부만두 2017-08-18 22:16   좋아요 0 | URL
이 밤에 빨래 하고 있다우. 좀 덜 마른 건 다림질을 해보는데...그냥 걸어두고 잘까봐.... 소설 내용과 정말 딱! 맞는 밤이다.

psyche 2017-08-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미국와서는 왜 이리 좋은 햇빛을 놓고 건조기에 돌리지 했었는데 이제는 건조기 없이는 못살거 같아.

유부만두 2017-08-18 22:14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따끈하게 잘 익은 타월로 닦는 즐거움은 얼마나 좋은건지요! ㅎㅎ
맑은 햇볕과 바람에 잘 말리는 게 서울선 쉽지 않아 더더욱 건조기가 그리워요.
 

일요일 아침,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좋다. 오메, 이러다 가을 되겄네.

 

처음 읽는 오현종 작가의 책. 작가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작가 프로필의 사진을 보면 자동으로 이야기를 대하는 안경을 바꿔쓰게 된다. 깔끔하다. 얼마전 읽은 다른 작가의 책과는 달리 계산해서 꾸민 티가 덜 났다. 읽고 덮으면서 울거나 찜찜해 하지도 않았다. 그냥 깨끗하다. 시시하다는 말이 아니라 담백한 느낌. 작가 하나를 새로 만나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 그 세계가 다른 작가들과 이리 저리 연결되어 내 안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몇 년 전 유행했다던 '방탈출 게임'이 또 등장한다. 김영하 소설에도 있었지. 갇힌 젊은 남녀들의 공포. 그리고 스릴인지 뭔지로 (지켜보는 정체모를 '사이코패스'의 시선 아래서) 막 죽을듯 할 때, 딱 고만큼의 결말이 난다.

 

해설(혹은 발문)에서도 언급되는 '호적을 읽다'가 제일 좋았다. 각 단편의 제목들이 서로 교차해서도 어울리겠다.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읽히는 여러 편이 연결되는 세계. 벗어날 수 없는 밀실. 깔끔한 문. 손잡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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