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일 때 사두었고,

이제는 오에 겐자부로를 읽어야 하겠어서

책꽂이에서 묵힌 책을 꺼내 들었다.

 

두께에 비해서 가벼운 책을 아무런 사전 정보 (심지어 책 소개글도 안 읽는 나...) 없이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터지는 사건에 놀라고, 그 관념적이랄까 혼잣말을 계속하는 주인공에 얄미운 동생에, 그 불쌍한 아가에.... 이야기는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심지어 배경도 일본 산골, 도쿄, 미국...) 문장은 차분하다. 그리고 묘하게 계속 책장은 넘어간다. 꾸역꾸역 아니고 조분조분.

 

조선인 부락 이야기가 폭력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지만, 작가가 말하는 "폭력"은 타자로 부터 오는 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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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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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은 사랑을 잃은 사람들, 아니면 이제 막 그 여자들의 부재를 깨닫기 시작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하루키의 정규 10번째 정규 앨범(단편집)이라는데, 어디선가 이미 읽은듯, 새로운듯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오십대 연극배우 남자가 나오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쓸쓸함은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상실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다. 적어도 여자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익숙한 남2여1의 '상실의 시대'스러운 "예스터데이"에서는 그 쓸쓸함이 풋풋한 청춘의 노래 같기도 해서 어쩌면 내가, 그리고 "꽃보다 청춘"의 세 뮤지션들도 부를 것만 같다. 차분히 이어지는 문장들에  아, 나 알거 같아, 싶을 때쯤  강한 펀치로 훅 날라오는 "세에라자드"의 이야기는 아직도 칼자루는 하루키 상에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기노"의 외딴 곳의 바, 라거나 고양이, 빗 속의 뱀이나 그 의문의 남자....(아, 나는 왜 헤밍웨이를 떠올렸을까, 이 남자는 대머리! 라는데!)는 또다른 레벨의 환상 이야기로 나를 쑥 떠밀었다.

 

'사랑하는 잠자'는 카프카를 하루키 만큼 읽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나에게 <변신>의 또다른 버전을 보여주였고 맨 마지막 "여자 없는 남자들"은 무게를 더해가는 쓸쓸함의 추를 내 뱃속 아래에 꽉 붙들어 맨다. 한밤중, 갑자기 울리는 전화로 듣는 옛여자의 부고는, 아, 그 지우개 나눠 주던 소녀는 ..... 잔망스럽게도 가버렸구나. 안녕, 첫사랑인지 아닌지...소녀, 그녀야.

 

이제 여자 없는 남자들은 무얼 할까, 굶어서 천천히 사라져 버릴까,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기도나 할까?  왜 하루키의 여자들은 이리 냉정하게 뒷통수를 치는지.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 윤종신의 뮤비에서처럼 .... 홀연히 정우성으로 재탄생 하는 일이 없더라도, 남자 셋 (남편+아들 두개) 있는 나는, 그들의 쓸쓸함을 감사히 읽고 먼 곳의 얼음달을 꿈 꿔본다. 얼음달이 녹지 말기를.

 

이렇게 서늘하고 세련된 쓸쓸함, 맞아, 이런 게 하루키 읽는 맛이었어. 그러니 나는 땡큐, 하고 다시 첫번째 이야기 "드라이브 마이 카"로 돌아간다. 오토 리버스.

나는 자주 똑같은 꿈을 꿔. 나와 아키가 배에 타고 있어. 기나긴 항해를 하는 커다란 배야. 우리는 단둘이 작은 선실에 있고, 밤늦은 시간이라 둥근 창 밖으로 보름달이 보여. 그런데 그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고. '저건 달처럼 보이지만 실은 얼음으로 되어 있고, 두께는 한 이십 센티미터쯤이야.' 아키가 내게 알려줘.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동안 잘 봐 두는 게 좋아.' 그런 꿈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꿨어. 무척 아름다운 꿈이야. 언제나 똑같은 달. 두께는 언제나 이십 센티미터. 아래 절반은 아름답게 빛나고, 우리 단둘이고,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려. 하지만 잠에서 깨면 항상 몹시 슬픈 기분이 들어. 얼음달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예스터데이, 97쪽)

두 사람 문제는 이제 그 두 사람의 몫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에 더이상 깊이 말려드는 것은 그다지 건전한 일이 못된다. 나는 내가 속한 자그마한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예스터데이, 103쪽)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독립기관,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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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9-01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아직 안 사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읽어야겠습니다. 읽어야겠어요. 인용해주신 문장들을 보니 역시 하루키구나, 싶어져서요. 아 전 하루키가 좋습니다.

유부만두 2014-09-03 08:51   좋아요 0 | URL
하루키의 문장과 그의 이야기는 역시나, 그 느낌!
이런 세련된 기분이 그리웠어요~
 
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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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분위기의 초반은 점점 신중해지더니, 일수의 성장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안겨줍니다. 초등 2학년 아이에게는 어려운듯하지만 여러번 읽을 책입니다. 역시 작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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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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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듯 새롭고 심심한듯 흥미로운 이야기의 세련된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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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3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유부만두 2014-08-31 12:00   좋아요 0 | URL
네~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해서, 사실 좀 망설였는데요,
아, 역시, 하루키는 이런 느낌이었지, 했어요. 좋아요.
 
제르미날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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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천여 명에 가까운 여인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쉬자 않고 달려오느라 머리가 헝클어지고 산발이 된 여자들은 해질 대로 해진 누더기 사이로 굶주림으로 죽어갈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느라 지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품에 안고 있던 어린 자식을 초상과 복수의 깃발인양 번쩍 추켜들고 흔들어댔다. (93)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101)

그의 입에 쑤셔넣은 흙은 그가 내주기를 거절했던 빵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빵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그에게도 전혀 득 될 게 없었던 것이다. (122)

그는 지금까지 자기 마음속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째서 갱들을 가로지르며 광란의 질주를 벌인 이튿날 그토록 역겨움이 느껴졌는지를 자문해 보았다. 하지만 차마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차례로 떠오르는 기억들은 그에게 혐오감만을 안겨주었다. 동료들을 지배하는 천박한 탐욕과 상스러운 본능, 바람에 실려 전해지는 처절한 빈곤의 냄새, 그는어둠이 안겨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탄광촌으로 되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 그들의 지도자라는 자부심과 끊임없이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마음이 서서히 떠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부르주아의 정신을 스스로에게 불어넣고 있었다. (137-138)

에티엔은 자신들의 불행이 저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대 자본의 무소불의의 힘 앞에 또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의 패배를 이용해, 지쳐 쓰러진 이들의 주검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다. (144)

"그렇게 길게 얘기할 필요 없소이다." 참다못한 마외가 불쑥 퉁명스럽게 말했다. "백 마디 말보다 우리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가져와보란 말입니다." (162)

부자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여야 하다니, 이렇게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197)

그는 그녀와 결혼해 깔끔하고 아담한 집에서 함께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빵만 먹고 살아도 충반할 터였다. 빵이 한 쪽 밖에 없다면 그건 그녀 몫으로 내줄 것이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사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265)

한 남자의 마음 속에 여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끝난 것이다. (268)

공포와 싸우는 동안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잠들어 있던 믿음이 다시 깨어났다. 그들은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이것은 대지가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대지의 동맥을 잘라냈기에 대지가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320)

"오, 맙소사! 꿈이 아니었어! ... 다시 시작되고 있어, 맙소사!"
또다시 악몽을 떠올린 카트린은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327)

"그럼 어쩌겠나? 그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따르는 수밖에... 다들 탄광에서 차례로 죽어간 것처럼 그 아이들도 결국 그렇게 되겠지." (359)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그들을 벌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들은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총을 쏘았던 것처럼 언젠가는 주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될 터였다. (360-361)

그의 발밑, 깊은 땅속에서는 고집스레 리블렌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그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에티엔은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369)

여전히, 땅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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