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400. 빵의 지구사 (윌리엄 루벨)

서문에서 이 책은 빵의 일반 역사라기 보다는 실제 빵 굽는 사람을 위한 역사책이라고 했다. (이 서문은 '빵을 좋아하지 않는' 주영하 선생의 글이다.) 하지만 처음 4장에 걸쳐서 실린 내용은 기존에 나온 빵의 역사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효'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랄까. 저자의 심심한 문체 때문인지 소금도 넣지않고 자연 발효 시킨 사우어도 빵을 씹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장, "특집"에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서양떡, 빵의 역사가 근래 골목마다 들어선 빠리바케뜨와 뚜레주르 이야기와 함께 실렸다. 이 마지막 장은 책의 감수자 주영하 선생이 썼다.

 

이 책은 애매하고 심심하다. 빵의 역사를 다룬 부분(170여쪽) 에선 무난하고 익숙한 내용인데 책 마무리에 우리나라 사정을 끼워넣어 (20여쪽) 어째 전체 그림을 이그러뜨린 느낌마저 든다. 이어서 잘 익은 빵 겉껍질 색의 종이로 된 부록 부분은 어두워 읽기 힘들지만 작은 글씨로 빵 이름들과 이런 저런 레서피들도 담았다.(40여쪽) 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드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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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2-1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만두님은 빵보다는 만두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5-02-16 16: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네요. 그런데 전 만두도, 빵도, ..왠만한 먹거리들은 다 좋아한다는 게 함정이에요;;;; 이번 책은 너무 평범했어요.. 알라딘 책 설명에 나온게 전부였어요. 사진도 그닥 끌리거나 침흘리게 하지 않았고요. ㅜ ㅜ 슬펐습니다

라로 2015-02-1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으셔서 제가 읽고 싶었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셔서 좋아요~~~^^;;;(뭔말인지~~ㅋ)

유부만두 2015-02-16 16:01   좋아요 0 | URL
아롬님의 기대에 제가 찬물을 끼얹었나요? 위 댓글에도 적었지만, 알라딘 책 소개글에 나온 게 거의 다였어요;;;; 또 마지막 챕터의 우리나라 빵 역사는 좀 생뚱 맞고, 앞장들과 톤도 어긋나더라구요

라로 2015-02-18 00:55   좋아요 0 | URL
찬물 덕분에 책 한 권 내려 놀 수 있어서 좋아요!!!^^
 

89/400. 토요일 (이언 메큐언)

건조한 문장으로 토요일 새벽이 열렸고, 신경외과 의사인 헨리는 무심한듯 새벽하늘을 바라보다 비행기의 불시착을 목격한다. 이 사건이 불길한 시작인듯,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속되는 문장을 따라갔다. 이미 작가의 손이 내 목을 감아쥐고 있다.

 

토요일 단 하루의 시간이 소설의 전부다. 하지만 그 하루로 수렴된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미래가, 런던의 한 복판에서 중동과 미국 정세로 까지 뻗어나가며 서로 얽혀서 여러 만남과 사건을 이루어낸다. 그 정점에 백스터가 얼굴을 움찍거리며 서 있다. 한 문장을 더 읽어나가기가 힘겨울 지경인데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기 리듬을 지키는 헨리, 아니 이언 메큐언은 악당에게 선처를 구상하는 신경정신외과의 이기도 하고, 독자의 몇 시간을 철저히 장악한 사기꾼이기도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언 메큐언의 소설을 읽는다. 그에게 내 시간을 맡기고 수술실의 헨리의 손 아래에 썰려나가는 두개골을 보고, 기억이 부서진 헨리의 어머니의 수영복을 떠올린다. 유전자 몇 개의 운 나쁜 나열로 자신의 신체와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는 백스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헨리의 지나치게 운이 나빴던 혹은 여느 날과 같이 저문 바로 그 토요일은 어떤건가.

 

나의 토요일. 한 블록 건너 상가 앞의 교통사고로 꽉 막힌 찻길을 바라보며  도서관에 다녀왔다. 막내가 커다랗게 틀어놓은 만화 주제가를 들으면서, 손발이 뻣뻣해지도록 긴장되는 상태로 책을 읽었다. 잠시 세탁기를 조정하는 사이, 택배가 왔는지 막내가 문을 열었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일렀는데.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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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놀라셨겠어요!! 휴~~~ 그나저나 토요일 그런 책이면 전 패쓰~~~^^;;;;(새가슴~~~ㅠㅠ)

유부만두 2015-02-15 23:25   좋아요 0 | URL
네... 설날이 가까워서 택배가 많이 오니까 아이는 습관처럼 문을 열더라고요. 게다가 토요일, 소설 속 상황 때문에 더 놀랐어요...
 

88/400. 보통의 육아 (야순님)
저자 야순님이 보여준 보통의 육아는 평균의 의미로 보통이 아니라, 상식의 의미, 정석과 근본을 가리키는 보통이다. 아무렇게나 유행에 휩쓸려서는 이 보통을 지키기 어렵다. 하지만 보통의 육아가 별난 것은 절대 아니다. 보통의 육아 원칙은 아이는 기적 같이 생명을 키워낸 존재이며 이 존재는 아직 약하고 어리니 어른들이 마땅히 보살펴주고 그 어린아이의 눈높이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저자 야순님의 블로그 글을 책으로 옮기며 많이 정리했다지만 온라인의 문단 형식을 지킨 덕에 단단하고 알찬 글이 힘들게 읽히지 않았다. 가르치려 들거나 포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다른 가정의 육아에 섣부른 참견에 대한 일침이 인상깊다. 아쉽게도 야순님의 세 딸들의 귀여운 모습을 담은 컬러사진이 실리지 않았다. 야순님네 가족이, 더불어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많아진 나와 내 가족도 보통의 원칙을 지키며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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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00. 미스 럼피우스 (바버러 쿠니)

넓은 세상을 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았던 미스 럼피우스. 아름다운 그림 처럼 그녀의 일대기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제3 세계를 여행하는 백인인 그녀의 모습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그녀가 자신의 고향에서 얻은 별칭은 결국 "미친 노인네" 였다니. 그녀가 일했던 도시의 도서관에는 강아지들도 함께여서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림책을 즐기기엔 내 감성이 부족하구나, 깨닫는 독서여서 울적했다.

미스 럼피우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It's not you, it's me...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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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5-02-21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딱히 와 닿는 느낌이 없었다는... 그것만 생각나네요.
 

85/400. 세 자매 (체호프)

86/400. 벚나무 동산 (체호프)

 

지극히 현실적인 극의 마무리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기적같은 문제의 해결은 없고, 관객(독자)을 위로하는 전개도 없다. 인물들은 자기 배역을 맡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간다. 

 

그들 중에는 뻔뻔하고 고민 없이 남을 착취하는 이들도 보이는데, 세 자매의 "순수한 여인" 나타샤야말로 현대의 '시월드, 처월드' 를 묘사할 때 나와도 어울릴 만하다. 멍청할 정도로 경제 문제에 어쩔줄 몰라하는 류보피 안드레예브나도 그저 아름답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유산을 낭비하고 정부와 프랑스로 도망가서 배신당하며 살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옛 영지, 벚나무 동산을 빚에 쫓겨 팔아버리고 결국 다시 그 '놈팽이'에게 돌아가고만다. 그러면서 계속 입에 올리는 말은 "아름다운 벚나무 동산", "보석같은 내 딸". 구름 위에 둥실 떠다니는 이런 인물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체호프의 희곡에는 없다. 그렇다고 이런 구세대들에게 복수를 내리는 게 아니라, 출생이나 계급 개념이 아닌 "생겨먹은 대로" 살고 처신하는 사람들을 거리를 두고 지켜 보는 듯하다.

 

주말연속극에서 재벌2세를 구원하려는 캔디형 여주인공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설정은 없다. (아, 그런데 또 캔디는 알고보니 재벌의 잃어버린 아이였어...라는 게 황정음 케이스라네? 대한항공의 가족경영과 갑질 행태에 그리 분노하면서, 혈통에 집착하는 대중 정서는 티비 드라마에서 사라질 줄 모르는지) ...쨌건, 티비 드라마 (에 대한 네이버 기사를 읽는 것) 보다 몇 배는 재미있는 체호프를 읽었다 (고 자랑하며 급마무리).

 

안드레이: 모스크바에서 레스토랑의 드넓은 홀 안에 앉아 있으면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그러면서도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질 않거든.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고 모두가 나를 알아보지. 그런데도 낯설어... 낯설고 외로워.
페라폰트: 뭐라굽쇼? (세 자매, 제2막)

마샤: 오, 내 동생... 어떻게든 우린 자신의 삶을 살게 될 거야, 그게 어떤 삶이 될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안의 모든 일들이 너무 진부하고 뻔해 보이지. 하지만 너 자신이 사랑에 빠지면 남들은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때는 오로지 너 자신이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될거야... 내 사랑스러운 동생... 두 사람에게 고백했으니 이제 침묵할거야... 고골의 소설에 나오는 광인처럼... 이제부터 침묵...침묵 (세 자매, 제3막)

올가: 오, 사랑하는 동생들아, 우리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가는 거야! 음악이 저리도 명랑하고 즐겁게 울리는 걸 들으니, 우리가 왜 사는지, 왜 고통을 받는지 알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아...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알 수만 있다면! (세 자매, 제4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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