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00. 골목 안 (박태원)

분명 식민지 시대의 서울 모습일텐데, 언뜻 오발탄과 난쏘공, 그리고 현대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후원회 모임에서 자식들 이야기를 풀어내는 노인의 모습에 마음이 헛헛하다.
황석영 선생님의 해설에서 작가 박태원의 두 기둥, 근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비를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박태원의 대표작 구보씨의 일일, 도 고작 식민지의 어항 속을 헤엄치는 모습이라니, 이 비유와 더불어 병마에 지친 그의 말년이 더욱 슬프다. 그가 남한에 두고 간 아들에게 북에서 박태원의 처가 된 권영희가 쓴 편지는 매우 서글프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이태준도 그러했지만 박태원 역시 근대주의자였으면서도 식민지 근대를 비판, 고통받는 당대의 민족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는 모더니스트로 출발하여 리얼리스트로 마친 자기모순이었으나, 어쩌면 이 땅에서 글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이었다.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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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 (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12)

 

 

어떤 문제가 이 정도의 규모로 인식되어 버리면, 고작 연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당 문제를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모든 정치는 구체적인 것이다. (122)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154)

 

 

문학, 그것도 세계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 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문학은 자유이다'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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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00.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여태껏 발췌문 정도만 읽었던 수전 손택, 자유와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매서운 발언을 하는 그녀. 그녀의 사망후 여러 권의 책이 더 나왔지만, 나에겐 이번이 처음.

팟캐스트 방송에서 "쉽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수전 손택은 처음부터 주장하는 바에 이르는 길을 분명하게 걸어간다. 그리고 그녀가 인용하는 이론서 내용들은 괜한 말장난이 아니라 내용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진을 통해보는 타인의 고통, 그 고통을 즐기는 혹은 멀리 떨어뜨려서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우리'에 대한 부분도 좋았지만, (사실, 손택의 '우리'는 미국 백인 지식인층에서 그다지 넓혀진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리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었다하더라도 손택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은건가, 하는 속좁은 생각도 든다)  "부록"에 실린 911이후 그녀가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발언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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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00. 멍청한 편지가! (황선미)

 

4학년 동주는 헐랭이다. 키가 작지만, 더 클거라며 부모님이 큰 옷만 입혀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같은 반 반장 아이는 키도 크고 벌써 변성기도 왔는데. 유치원 동창생 영서도 이젠 동주보다 머리 하나 만큼은 더 커버렸다. 그런데 영서가 동주 가방에 이별/고백 편지를 넣었다. 이걸 동주는 가방이 같은 메이커인 반장에게 보낼 것을 잘못 보냈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어찌 처리할 줄 몰라한다. 묘하게 일은 꼬이고, 영서와 반장 사이의 분위기를 지켜보는 동주의 심정도 복잡하다.

 

오늘 우리집 막내도 새학년을 위해서 가방을 샀다. 3학년 씩이나 되었으니 귀엽게 이런 저런 장식이 달린 건 싫다고 하면서 심플한 검정색을 고른 쿨한 열 살 소년. 자신의 세뱃돈으로 사겠노라, 큰소리 였지만 요즘 가방 값이 .... 그걸로 될 리가 ... 없잖아.

 

난 아홉 살만 지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어. 한 자리 숫자랑 두 자리 숫자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냐? 어린애랑 소년처럼. 근데 12월 31일 다음에 1월 1일이 되는 거랑 똑같더라고. 아홉 살이나 열 살이나. 보라고! 열한 살도 다를 게 없잖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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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2-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해볼래요.

난 서른아홉 살만 지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어....... 근데 서른아홉 살이나 마흔 살이나. 보라고! 마흔한 살도 다를 게 없잖아. 젠장!

가방 값이 음 얼마나 하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아 저도 새 가방 메고 학교 다니고 싶어요, 유부만두님...

유부만두 2015-02-23 08:06   좋아요 0 | URL
주인공 친구 재영이의 푸념은 모든 연령대에 통하네요~!

야나님.... 새 가방 대신 이삿짐 싸셔야죠? ^^;;

희망찬샘 2015-02-2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희망이 중학교 가방 사 주었는데 아주 심플하며 소박한걸 사줘서 땡큐~ 했습니다. ^^ 아이들 조금씩 크더라고요!

유부만두 2015-02-23 08:08   좋아요 0 | URL
희망이가 중학생이 되는군요!
축하합니다!!
심플 쿨... 의 사.춘.기. 부모세대로 들어서신 것도 축하(??!!)드려요~
 

99/400.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황선미)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어린 아이에게 일어났다니, 읽는 내내 나도 속이 상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이런 이야기를 동화라고, 아이가 좋아하는 황선미 선생님께서 쓰신 책이라고 막내에게 건네 줄 수가 없다. 다 읽고 나서도 아직 가슴이 아프다. 그나마 상황을 진정시키신 담임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긴 한데.... 너무 빤한 계집애 혜수는 바뀔 것 같지가 않다. 그애를 어떻게든 혼내고 싶은 내 맘이....더 어린 아이 같다.

 

"그날, 나는 내 어린 시절이 끝나 버렸다는 걸 알았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언젠가 이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 생각했어요.

여기에 큰 사건처럼 보이는 건 나오지 않아요. 세상에는 이보다 끔찍한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문제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드러내기 어려운 사소한 아픔도 사람을 외롭게 하고 상처받게 하고 분노를 가진 어른이 되게 합니다.

물어보고 싶었대요.

"그때 너희들도 나처럼 가슴이 아팠니?"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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