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국어 활동책 6-1가, 를 읽었다. 활동책에는 본책보다 이야기가 더 많이 실려있다. 교과서에 실린 책 읽기로 1학기 숙제가 나오겠구나. '행복한 청소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호랑이 잡은 반쪽이' '나비를 잡는 아버지' 등이 길게 삽화와 함께 실려있다. 좋은 점은 원 그림/동화 책의 삽화가 실려있어서 온전한 작품을 읽는 기분도 들게 한다. 하지만 1단원에 실린 동시들이 너무 '어린이'시 같이 보여서 오글거렸다.
자신이 매일 하는 노동에 의미를 더하는 청소부 아저씨, 그러나 그 의미를 통해 직업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덕분에 거리 청소 일의 경계를 넓혀주었다. 청소부는 청소만 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작업을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게 자신의 일이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은 그의 이런 믿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은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갈지 모르지만 다른 청소부들에게도 같은 성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음악가와 작가의 이름과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는 청소부는 '행복'하지 않은걸까. 그럼 반대로 이 행복한 청소부는 자신의 경계를 좁혀버린 셈인데? 2단원은 다양한 관점,에 대해 배운다. 아저씨의 일이 여러 가지 의미를 준다고 생각한다.
장영희 작가는 몸이 불편해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지는 못해도 아이들의 놀이터에 나가 방석을 깔고 앉는다. 구경이라도 하게 하려는 어머니의 뜻이다. 친구들은 나름대로 어린 장영희 작가가 소외되지 않게 역할을 나눠주고 함께 한다. 엿장수 아저씨가 건네는 엿가락도 얼마나 달콤한지. 작가의 어머니가 딸아이의 불편한 몸을 한계로 받아들여 그저 방안에만 가둬두었다면 작가의 경험도 좁혀들었겠지. 아이들이 너무 착하게 굴어서 감동했다. 3단원 '마음을 표현하는 글'이다. 친구들의 배려만큼이나 장영희 작가의 '착한' 마음이 잘 드러난 글이라 따뜻하게 읽었다.
반쪽이 역시 청소부 아저씨 만큼이나 자신의 한계를 넓힌 인물이다. 어린 시절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 부모에게서 천대받고 다른이들에게도 무시당하며 살았다. 힘은 장사인 그는 형들을 구하러 호랑이집에 들어가고, 늘 하던 대로 찬밥을 먹고 마루밑에서 구겨져 잠을 청한다. 호랑이의 비밀을 듣고 강한 펀치를 날리는 반쪽이, 형들의 유골을 수습하고 호랑이에 걸린 현상금도 두둑하게 탄다. 불쌍하다, 하지만 장하다, 고 말하는 부모에게 '불쌍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뼈있는 말을 하는 반쪽이.
반쪽이는 온전한 몸을 가진, 하나도 아닌 두 형이 못해낸 과업을 해낸다. 그들은 익숙했던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실패했다. 반쪽이는 자신의 한계를 핑계삼지 않고 노오력해서 힘을 키우고 극복해낸 영웅인 셈이다. 장애인을 소재로 다루기에는 별로라고 여기지만 이 이야기는 '면담하기' 단원에 실려있다. 즉 자신만만한 형들이 호랑이(영감)을 무례하게 대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계획을 너무 다 드러낸 어리석음을 꼬집는걸까 싶으니 흥미롭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이야기다. 서울로 진학한 동네 땅주인집 아이 경환이를 시기하는 바우. 하지만 억울하게도 자기네 집 농사도 지키지 못하고 경환이 방학 숙제용 나비를 잡으려 껑충거리는 늙은 아버지를 보고만다. 아이고 아버지... 가슴이 쓰리다. 소작농 아이는 소나 몰고, 허리나 굽히고, 머리나 조아려야 하는 건데 말이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 주인집 아이에게 한 방 먹이지도 못하는 이런 뻔하고 요즘 세상에도 반복되는 갑질 이야기를 아이들은 이미 익숙해 할텐데 왜 또 읽히나요. 일제 강점기의 한일 관계를 비유로 읽어야 하나요. 아, 6단원은 낱말공부군요. 익숙한 이야기에 나오는 낯선 단어 공부하기겠군요. 소작농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그림 그리는는 걸 비웃는 건 아니면 좋겠어요. 마음이 쓰리다. 속이 쓰리다. 아침을 먹어야겠구나. 나의 한계, 공복을 견디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