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터리츠는 문헌 자료를 읽고 정리하느라 도서관에 있다. 기숙학교에서 부터 도서관은 그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나는 주중에는 매일 리슐리외 가에 있는 국립 도서관에 가서, 거기서 수많은 다른 정신 노동자들과의 말없는 연대감 속에서 대부분 저녁때까지 내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내가 찾아낸 책들의 작게 인쇄된 주석에 빠져있었으며, 내가 이 노트들에서 언급한 책이나 그 책의 해설에 몰두해 현실에 대한 학문적 기술로부터 점점 후퇴하면서 아주 기이한 세부적인 것까지 가지를 치며 뻗어 나가 곧 조망이 불가능해진 나의 기록물을 적어 가는 데 점점 빠져 들었지요."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자리를 옮겨 1995년에 현대적인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이 새 도서관은 자신의 과거와 역사를 찾는 아우스터리츠에게는 너무나 생경하고 심지어 적대적이다. "바빌론 같은 인상을" 주는 곳에서 번호표를 받거나 신청서를 내고 오랫 동안 기다렸다가 건물을 오르고 또 내려가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의 이름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통령 이름이라니! 


"유령의 목소리에 의해 통제되는 지하철로 이 황량한 무인 지대에 놓인 도서관역"과 통하는 도서관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아우스터리츠에게 다행히 옛 리슐리외 가의 도서관에서 알던 직원이 말을 걸어주었다. 


 "정보 체계의 급증과 더불어 동일한 정도로 우리 기억 능력이 상실되어 가는 것과 [...] 국립 박물관의 이미 시작된 붕괴에 대해 속삭이며 상당히 긴 대화를 주고 받았지요. [...] 모든 시설과 부조리에 가까운 내부 통제로 독자를 잠정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내쫓으려 하는 이 새 도서관 건물은 아직 생명을 가지고 있는 과거의 모든 것을 끝장내려고 하는 점점 다급해진 욕구를 알리는 공개적인 표시라고 르무안은 말했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새로운 도서관이 주는 이 공포에 가까운 감정은 무엇일까. 더이상 내 손에 잡을 수 없이 멀리서 통제되는 기록들, 그리고 이제는 어렵고 비밀스레 암호화되는 정보와 전산 표식들. 독자는 더이상 주도적인 자리를 가질 수 없고 거대한 건물과 조직, 보이지 않는 '기계망'에 압도되어 버린다. 이제 도서관은 유토피아거나 다른 이상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되지 않는다. 


아우스터리츠의 이런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세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문을 열었다. 컴퓨터! 하지만 이런 괴물같아 보이는 1980-90년대의 새로운 도서관도 또다른 시대 변화의 살벌하고 매서운 공격에 흔들리고 있다. 공공 도서관 하나가 곧 폐관한다는 뉴스를 봤다. 


파리의 도서관 관광 영상

두번째 나오는 현대적 건물이 바로 아우스터리츠가 치를 떨며 미워한 새 도서관 BNF고 영상 세번째 도서관이 아름다운 리슐리외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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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민음tv 서점 방문 영상에서 추천한 도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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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화진 작가는 <빙점>을 모른대.... 정말 젊은 사람

수이 2023-10-15 13:06   좋아요 1 | URL
빙점을 아는 이들은 우리 세대들임 ㅋㅋ

유부만두 2023-10-15 15:44   좋아요 0 | URL
수이님도 빙점을 아세요? 저기 김화진 작가랑 비슷한 세대 아니에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로 만든 영화가 곧 넷플릭스에 올라온다. 주인공들 얼굴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라서 당황했지만 (번역서 표지와도 다르다) 감독님의 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하다. 


내가 예전에 썼던 감상문은  

https://blog.aladin.co.kr/yubumandoo/category/75912403?CommunityType=MyPaper&page=17&cnt=85


http://bookple.aladin.co.kr/~r/feed/77609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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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14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영화로 나왔군요. 주인공 얼굴은 제 상상과도 다르네요. 전 1권 읽다 말았는데….. 책이 어딨더라…..

유부만두 2023-10-14 11:50   좋아요 0 | URL
그쵸.. 너무 나이들어 보여요.
2권도 읽어보세요. 잔잔하게 신파로 흘러갑니다만.

단발머리 2023-10-14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에는 저거 파란 거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직 재미있게 읽을 수 없다는 후문입니다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15 15:10   좋아요 1 | URL
지금이라도 손에 잡으시는 순간, 시간을 잊고 빠져들어 읽으실 겁니다.

책읽는나무 2023-10-15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영화 나왔군요?
적 만두 님 추천으로 다 읽었죠.
착하죠?ㅋㅋㅋ

유부만두 2023-10-16 19:22   좋아요 1 | URL
나무님 감사합니다.(?!?!) 추천 도서를 읽으셨다니 제가 막 고맙고 그래요.
마지막에 눈물 조금 났다/안 났다, 어느 쪽이에요?
저야... 헤픈 독자라 울었거등요.

책읽는나무 2023-10-16 20:23   좋아요 1 | URL
저야 뭐....
울었죠ㅋㅋㅋ
이게 결과가 예상가능한 이야기라 눈물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은근히..^^;;
근데 뭐 눈물을 흘려주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ㅋㅋㅋ
근데 전 마지막에 울었는지 중간부분부터 울었는지 그게 또 기억이 안나네요?
울긴 울었는데 말입니다.^^;;
 

아룬다티 로이가 13년전 발언으로 인도에서 고발당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8895 


"인도 뉴델리 경찰국은 11일(현지시간) "로이가 13년 전 카슈미르 지역 행사에서 했던 발언은 지금도 문제삼을 소지가 충분하다"며 작가에게 법적 처벌을 물을 것이라 밝혔다.

로이의 13년 전 발언은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역 분쟁과 연관돼있다. 파키스탄 및 중국령과 맞닿은 이 지역은 종교 및 인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도와 물과 기름 같은 관계다. 인도의 힌두교와 달리 이슬람교를 믿는 게 대표적 차이점이다. 그러나 인도의 오랜 앙숙 파키스탄과의 힘의 알력 등으로 인도에겐 정치적으로 놓칠 수 없는 지역이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카슈미르를 인도령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직접 통치하는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로이 작가 등은 그러나 카슈미르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정부 입장에선 눈엣가시가 됐다."  


아룬다티 로이는 카슈미르에 인도 정부가 '비공식적' 폭력을 행사해 그곳 주민들(대다수는 이슬람교도)이 죽고 다친다고 폭로한다. 정치적으로도 카슈미르 자치를 과격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파키스탄의 첩자거나 마오이스트 테러리스트가 되어 폐쇠적인 재판을 받고 처형된다. 다른 한 편으로 인도 정부는 '평화로운' 인도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커다란 경제 시장으로 서방 세계와 손을 잡는다. 엄청난 부와 자본이 극소수의 인도 지배층 손으로 간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카슈미르 지역의 댐 건설 개발 및 핵개발 사업은 인도 문화 축제와 눈부신 경제 개발 뉴스에 묻히고 만다. 이런 '고발성' 르포가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에 강한 어조로 담겨있다. 읽으면서 아룬다티 로이의 안위를 걱정했었는데.


1950년대 말부터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 지역에서는 적대적인 종교, 국가 감정을 고취시키며 관광에도 이용하는 국기하강식이 매일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카슈미르에는 1945년 인도/파키스탄 독립 이후 폭력과 공포는 계속 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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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스타프/골드문트 님의 중국판 감자, 아니 소금, 아니 복자거나 봉염 엄마 이야기 <샤오홍 이야기> 리뷰를 읽고 <소금>을 다시 읽었다. 지지리 고생과 억울함이 단락마다 턱턱 얹힌다. 해법이 안 보이는 가난과 고생 중 제일 아팠던 건 일하러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봉염의 애타는 장면. 


그는 못 견디게 어머니 품에 자기의 다는 몸을 탁 안기고 싶었다. 그는 목이 마른듯 하여 물을 찾았다. 그래서 봉희가 밥 말아 먹던 물을 마셨지마는 어쩐지 더 답답하였다.

이렇게 자리에 못 붙고 안타까워하던 그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 무엇에 놀라 후닥닥 깨었다.

[...]

어머니 못 봤다는 말에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그는 눈이 벌개서 찾아다니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 뒤뜰에서 무슨 소리가 나므로 벌떡 일어나 뛰어 나갔다. 

저편 뜨물 동이 옆에는 봉희가 붙어 서서 그 큰 머리를 숙이고 마치 젖 빨듯이 입을 뜨물 동이에 대고 뜨물을 꼴깍꼴깍 들이 마시고 있다. 그리고 머리털은 햇볕에 불을 덴 것 처럼 빨갛다. 



젖어멈으로 들어간 하층민 여자가 정작 자신의 아이는 내버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는 건 흔한 소재다. 흑인 유모의 아이들이 굶는 이야기는 모리슨의 소설에도 나오고 김정민 작가의 동화 창작물 <담을 넘은 아이>에서도 유모의 두고 온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유모로 간 엄마 대신 아버지 수발을 들며 갓난 아기 동생과 밉상 남동생까지 돌보는 (만 나이 아니고 옛 나이로) 열두살 여자 아이 푸실이. 계급과 신분, 가난과 성차별에 눈 뜨는 영특한 아이는 용기를 내어 담을 넘는다.....(넘었니) 그 아이의 발받침이 되어주고 어깨를 두드린 건 역시나 교육, 글 깨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의 힘이 아니고 귀한 양반댁 아가씨의 자비심으로만 가능한 이야기. 


올해 멋진 리커버로 나온 책인데 나는 4년 전 초판으로 읽었다. 초등 5학년일 나이의 푸실이가 혹독한 사회 속에서 고생을 하고 온갖 학대를 당하는 이야기는 읽기가 매우 힘들었고 마무리도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옛날 배경의 역사 동화는 흥미롭지만 이토록 엄혹한 상황의 아이를 보는 것은 학대에 일조한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괴로웠다. 밥 굶으며 아버지와 (미운) 일곱 살 남동생의 밥상을 차리는 아이라니. 아이에게 위로란 길에서 주운 책, 읽지도 못하는 책이었다니. 이 아이의 '구원' 혹은 담 넘기가 양반댁 아가씨의 돈과 힘으로 가능하다니 요즘 읽는 여러 동화의 해결이 건물주 할머니인 것(순례주택, 맹탐정 고민 상담소, 헌터걸, 나의 진주 드레스, 연동동의 비밀 등에서. 마법의 선녀님 대신 건물주님인가)과 비슷해서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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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2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을 넘은 아이/벽 타는 아이 헷갈리지 말것

단발머리 2023-10-12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리뷰만 들어도 넘나 가슴이 멕힙니다 ㅠㅠㅠ 에구… 실화 보다 더한 실제 ㅠㅠ

유부만두 2023-10-13 07:37   좋아요 1 | URL
실제는 더 했겠지요. 그들의 진짜 목소리는 남아있는 이야기들 보다 더 할겁니다. 그런데 동화에서 고생을 심하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들어요. 이게 ‘가난 포르노‘ 류의 글과 어떻게 다를지 고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