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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00. 임시교사 (손보미)

메리 포핀스의 현실 버전일까. 유능하고 따스한 보모의 환상은 헌신적인 어머니 환상만큼이나 위험하다. 배우고 가진 젊은 부부가 아이를 임시교사 출신의 여인에게 맡기고, 그 의존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가족의 위기의 순간, 임시교사의 능력이 발휘되는가 싶더니 그들의 관계는 결국 끝난다. 저자의 눈은 보모에게도 차갑고, 아이의 부모에게도 서늘하게 가닿는다. 그런데 ....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서 듣고 어디선가 본 것들의 합, 같다.

 

116/400.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헤밍웨이)

공짜라고 아무 책이나 다 읽을 리가..... 있지. 게다가 열린 책에서 기획한 세계명작.게다가 공짜. 공짜. .... 불편함을 무릅쓰고 작은 핸드폰의 액정에 헤밍웨이를 띄워 읽었다. 깨끗하고 환한 곳, 심야의 카페에서 노인, 젊은 점원, 그리고 늙은 점원의 심드렁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어, 이게 뭐야? 이게 다야? 싶을 때 이야기는 툭, 끊어진다. 그리고 이 전자책을 기획한 알라딘 MD와 출판사 편집자의 짧은 감상문이 이어진다. 헤밍웨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단언하는 이 사람들이 참 사랑스럽다고나 할까. 재미없고 시시한 이야기에 이렇게 감동적인 감상문을 쓰는 그들의 글이 더 마음에 남는다. 깨끗하고 불빛 환한 액정에 그들의 이야기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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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7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5-03-07 21:26   좋아요 0 | URL
전 카버를 아직 못 읽어봤어요;;;;
건조하고 차가운데... 드라마나 소설로 만난적 있는 것을 그닥 새롭지 않게 다시 보는 느낌이었네요..

보슬비 2015-03-10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예요. 관심은 가지만... 요즘 한국문학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구요.^^;;
그냥 유부만두님 글로 만족해요. ㅎㅎ
 

114/400.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플래너리 오코너)

표제작의 제목, 은 딸려있는 주석을 읽어보아도 어렵다. 모든 것의 '얼' 이 모이는 '오메가 포인트'가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진화가 거듭되면 물질과 정신이 한 곳에 모인단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이번에 읽는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은 꽤 두껍다. 그 안엔 전에 읽었던 '좋은 사람' 에 실렸던 작품도 보인다. 하지만 이미 제대로 충격을 받은 후라 이번 단편들에선 계속 반복되는 패턴이 지루하기만 하다. 시절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옛날의 가치관을 고집하는 사람들. 그들의 왕년은 화려했다지만 편협하고 낡은 그 세계는 이미 문이 닫혀 사라졌다. 그 세계의 끈을 붙잡으려는 '어머니'를 비웃듯 바라보는 아들은 이런 저런 상상놀이를 하며 어머니와 자신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세상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처지다. 어머니가 '같은' 모자를 쓴 '다른' 어머니에게 한 대 얻어맞고 정신을 놓아버리자, 당황해서 '엄마!'를 외치는 아들은 상상 속에서나 의사, 변호사 흑인을 친구로 삼았다. 이런 알량한 먹물놀이, 그의 위선이 역시나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된다.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이 분노를 차츰 키워나가고, 짜증을 쌓는다. '무지한' 상대 인물은 도저히 화자의 말을 들으려고도 이해하려고도 애쓰지 않는다. 화자가, 아니면 상대가 '과거'의 자신, 모든걸 제대로 알고 있는 자신을 힘껏, (상상 속에서만) 주장하지만, 그는 결국 "한 방" 얻어맞는다. 그러나 이어지는 건 깨달음 대신 넋놓음. 그 다음 단편에서도 시작은 비슷한 불만스런 인물이 나와서 짜증을 부린다. '좋은 사람'에선 폭력이나 큰 사건으로 충격적인 결말로 쌓인 짜증을 해결했다면 이번 책엔 그 많고 많은 짜증이, 불만이, 쌓여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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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400. 이발사 (플래너리 오코너)

보이 블루라고 놀림을 당하는 민주당 지지자 레이버는 선동가 후보에게 휘둘리는 '생각없는' 이발사를 설득하기 위해 연설문까지 준비하며 애쓴다. 하지만 도리어 비웃음을 당하고, 자신이 내건 가치는 외면당한다. 흑인을 위한 구호마저 흑인에겐 공허하다. 끝까지 '생각을 하는' 인간인 자신은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쳐 주기 위해 애쓴다고 믿는 레이버.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오코너의 다른 단편에서 본 것 처럼, 역시 여기서도 레이버의 위선, 혹은 한계가 답답하다. 이발사나 그의 조수 조, 그리고 단순한 잡담을 하는 이들은 과연 레이버 보다 '낮은' 사람들일까. 변하는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소설이 쓰인 시간보다 몇 세대는 흐른 지금, 이 이발소의 다른 버전이 여기 저기에 보이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자리에 있는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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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00.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산문이 아닌, 시를 읽는 다는 건, 노래 한다는 것.

타고난 음치 박치인 나는

흩어진 단어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울었다.

시어에 취한건가, 귀밝이 술을 너무 일찍 마셔버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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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귀밝이 술 하셨나봐요.
불혹 과 블랙홀이 왠지 힙합의 라임 같아요.^^
불혹이...흔들림 없는 나이라고 하지만
알 수없다는 블랙홀 ...역설하는 듯
스스로가 빠져버리는 나이 이기도 할지 모르겠기에..29와39 는 그래도 뭔가 여유
있어 보이는데..40은 물러날 곳 없어 뵈기도
하고 꽉 차서 넉넉해 뵈기도 하고..
그러네요.
^^

유부만두 2015-03-06 09:38   좋아요 1 | URL
ㅎㅎ 전 이미 블랙홀에 들어선지 오래입니다. ^^

귀밝이술로 마셨는데, 그 덕에 시를 조금 더 잘 읽은 기분이 들었어요.
 

111/400. 제라늄 (플래너리 오코너)

 

<풍성한 스포일러를 마련했습니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고 단정했던 작가. 사람 목숨은 질기기도 하지만 농담이나 거짓말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걸 보여준 작가. 설마, 그래도, 차마...는 없는 작가 오코너의 단편집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충격에서 배운 것이 있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아, 나는 왜 오에 겐자부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코너를 만났을까. 어깨와 양 손에 긴장으로 힘이 들어갔다) 도시의 아파트 6층에 사는 딸네 집으로 이사온 시골 할아버지. 딸은 멀리 시골에 혼자 사는 부모님을 몰라라 할 수가 없는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를 모셔왔다. 건너편 건물의 창가에 매일 오전마다 내놓는 제라늄 화분을 보는 낙으로, 그 제라늄에서 영감은 고향 마을의 친구들, 자신의 친구겸 종처럼 부리던 흑인 청년과 동네 할머니들을 떠올린다. (흑인의 등장만 제하면 우리나라 소설이라고 봐도 될 만큼 익숙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익숙한 설정 속에서 허둥대는 더들리 노인의 심정을 따라가는 오코너는 절대로 익숙한 문장을 내놓지 않는다.) 도시는 노인에겐 너무 복잡하고 좁고 낯설다. 게다가 옆집에는 (지하실이 아니라) 바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흑인이, 좋은 옷을 입고, 잘 손질된 깨끗한 손톱을 가진 흑인이 산다. 심지어 이 흑인은 백인 노인의 등을 두드리며 '어르신'이라 부르기 까지 한다. (영어로는 덜 공손한 표현이었으리라) 모든 게 무섭고 충격인 이 백인 더들리 노인에게 층계를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길은 사냥철의 산등성이를 오르는 것보다 버겁다. 아, 그리고 무슨 계시처럼 건너편 창가의 제라늄 화분은 저 바닥으로 떨어져 뿌리를 하늘로 쳐들고 깨져버렸다. (여기서 더들리 노인이 추락하고 말 것만 같아서, 큰 숨을 한 번 몰아쉰다. 아니면 그 이웃이 범죄를 저지르던가, 흑인이 실은 살인자일 수 도 .... 이런 최악을 준비하면서 책을 읽게 만든 건 오코너, 당신이에요) 다른 공간, 다른 시절 속, 화분에 옮겨 심은 제라늄 같은 더들리 노인은 잘 살아낼까. 아니면 매정한 이웃의 화분 처럼 깨져버릴까.

 

한번은 딸이 영감을 데리고 장을 보러 갔는데 그가 너무 느렸다. 그들은 '지하철', 그러니까 동굴 같은 땅속을 달리는 철도를 탔다. 사람들은 열차 밖으로 흘러넘쳐서 계단을 오르고 길거리로 나갔다. 또 길거리에서 계단을 내려가 열차를 탔다. 흑인, 백인, 황인이 수프 속 채소처럼 뒤섞여 있었다.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었다. 열차들은 터널을 나와 운하를 달린 뒤 갑자기 멈춰 섰다. 사람들은 타는 사람들을 밀치며 내렸고,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자 기차는 다시 떠났다. 더들리 영감과 딸은 그런 열차를 세 번이나 타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사람들이 왜 집 밖으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혀가 위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 같았다. 딸은 영감의 소매를 잡고 사람들 틈을 지나갔다.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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