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그 “잃어버린 시간”을 색을 입혀 생생하게 보여준다. 살아본 적 없는 시대와 사회에 뜬금 없는 향수 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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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2-27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지도가 곁에 있으면 확실히 더 와닿겠어요.

유부만두 2021-02-27 19:49   좋아요 0 | URL
지도가 정말 좋았어요! 소설 내용도 그림으로 표현되니 혼자 상상한 것과 비교도 하면서 느낌이 새롭고요. 이 책은 기대 이상이에요. 소설의 대신은 절대 할 수 없겠지만 아주 멋진 ‘커버’작품이에요.

바람돌이 2021-02-2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만화로도 나와있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화로도 그려질 수 있는 작품이라니, 순간 충격받았습니다. ^^ 그림이 너무 좋네요. 살펴보니 이 책 출판사가 열화당이네요. 주로 미술쪽 책들 전문으로 많이 내는 곳인데 거기서 나온 만화라면 뭔가 그림이 진짜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팍팍 하게 하네요. ^^

유부만두 2021-02-28 07:13   좋아요 0 | URL
아주 멋지죠!!!! 당시의 의상과 건물, 장소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책이에요. 소설과 또 다른 감동이 있어요. 책 만듬새도 훌륭해요. (그래서 비싸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교계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스완이 오데트를 만나기 위해 발을 들이기 시작한 베르뒤랭 부부의 모임으로, 이 얼치기‘ 사교계는 당시 발흥하기 시작한 신흥 부르주아 계층으로 대표된다. 다른 하나는 진정한 의미의 사교계로,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여왕벌처럼 군림하는 파리 최고급 사교계 생 제르맹이다. [...] 베르뒤랭 부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엄청난 재산을 배경으로 ‘신도들 에게 군림하며 사교계 놀음에 탐닉한다. 온갖 종류의 협잡과 기만, 저열한 책략이 난무하는 베르뒤랭 사교계는 희화화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만, 한 시대가 저물고 어김없이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는사실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위선과 자기기만에 관한 한, 생 제르맹 사교계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얼굴이 바뀌고, 양상이 다를 뿐이다.


특히 [...] 갈라르동 후작부인을 통해, 생 제르맹 사교계 역시 베르뒤랭네 사교계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왜냐하면 베르뒤랭 부부가 그네들이 넘볼 수 없는 귀족들을 ‘진저리나는 인물들로 치부하고 경원시하는 (이솝의 신포도 와도 같이!) 반면, 갈라르동 후작부인은 말끝마다 게르망트 공작부인과의 친밀감(그녀는 공작부인의 먼 친척뻘이다)을 훈장처럼 내세움으로써 자기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게르망트 공작부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 역시 갈라르동 후작부인과는 또 다른 식으로 속물근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순수혈통(sang pur)‘ 인 게르망트 가문의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이를테면 구귀족을 대표하는 맹주 격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당시 새로 부상하기 시작한 신귀족(나폴레옹 황제의 출현으로 형성된 귀족)을 향한 적대적인 우월감을 여지없이 표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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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22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은 심지어 만화도 어렵다고, 그래서 읽다가 치워버린다는 전설이 있는데, 아닌가요? ^^;;

유부만두 2021-02-22 17:29   좋아요 4 | URL
글이 많고 의식의 흐름/연상이 자주 끊겨서 소설의 맛은 다 못살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스완의 사랑’ 부분은 파리의 1870-80 년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어서 풍성하게 즐길 수 있어요.

Vita 2021-02-22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용을 막상 보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게 아니네요! 성인용인걸요!

유부만두 2021-02-22 17:27   좋아요 2 | URL
절대 아니죠. 스폰과 성매매 이야기가 있는데요;;;

붕붕툐툐 2021-02-22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만화다 만화~ 책 다 읽고 도전해 봐야겠어요~ 만화는 그림까지 봐야해서 더 어려울 거 같아요!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2-22 19:25   좋아요 0 | URL
책을 안 읽고 본다면 내용 따라가기가 어려울지도 몰라요. 총천연색 그림은 매우 화려해서 눈에 호강이구요. ^^

바람돌이 2021-02-28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마차 장면 그림 정말 끝내주는데요. 당대 여객 마차를 생생하게 복원한게 아닐까 싶은데 맞을까요? 이거 주문하고 싶어서 지금 손가락이 후덜덜하고 있어요. ^^

유부만두 2021-02-28 07:08   좋아요 0 | URL
네, 그쵸?? 소설에서 마차 종류가 몇 가지 언급되고 그때마다 분위기가 다른데요, 저 승합마차(?)는 낮에 스완이 의사부인과 마주치는 장면이에요. 그림으로 보니 그 상황이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17권 기획으로 이제 7권까지 나왔고요, 소설 순서와 약간 차이가 있어요. ^^
 

우리는 이미 프루스트가 <되찾은 시간>에서 말하는 문학에 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고 앙쿠안 콩파뇽은 단언한다. 그것은 '내적인 책의 번역'으로서의 문학이란 개념으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책을 각자 자기 고유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곧 문학이라는 견해다. (410)




[프루스트는] 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명문 콩도르세 중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대학에서 법학사와 문학사를 공부했고 아버지의 성화에 도서관 사서로 취직했지만 한 번도 근무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포부르생제르맹 귀족들의 살롱에서 보냈다. (411)



모든 것이 시간에 의해 변화하고 해체되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현란하게 교차되는 세계에서, 고정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매일매일 사멸하던 자아는 이제 뜻하지 않은 기억의 힘으로 비로소 저 끔찍한 존재의 해체와 죽음이라는 시간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412)




생시몽이 루이 14세 시대 사회상을, 발자크가 왕정복고시대 사회상을 보여 주려 했다면 프루스트는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대 사회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러나 19세기 문학이 보여주는 단순한 사회 재현이 아닌 외적 현실이 의식에 투영하는 '반사성'을 통해 재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발자크와 플로베르를 결합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413)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서구 문학사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나는 프랑스적 전통인 라신과 프루스트로 이어지는 일종의 편집증 환자이자 질투하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독일 낭만주으이 전통인 슈베르트와 슈만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연인들의 행복한 결합이나 상호 이해와 믿음을 바탕으로하는 독일 낭만주의자들과 달리 프랑스적인 사랑은 질투와 부재의 동의어다. (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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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완네 집쪽으로” 3부는 이름, 장소, 기억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장소의 이름에서 그 곳들의 인상과 날씨, 색깔과 (상상과 기억의) 추억들, 더해서 이름의 철자와 발음에서 피어나는 풍성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여수나 부산이 어떤 특정한 시간의 날씨를 연상시키고 코로나 시기에도 제주도가 특별함을 갖고있는 것처럼.


부활절 방학 때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다가 그 찬란한 연상작용에 그만 흥분에 겨운 어린이 혹은 청소년 화자는 병이 나 버린다. (1부 침실에서 징징대던 아이보다 조금 자란 화자는 파리 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민음사에선 열네 살 즈음으로 추정하지만 학교가 파하는 오후 3시에 하녀겸 보호자로 프랑수와즈가 데리러 가고 눈싸움과 술래잡기도 하는 걸 봐서는 더 어린 나이 같다.)햇볕 찬란한 이탈리아 여행은 취소되고 상심이 큰 화자는 보호자겸 감시원 프랑수와즈와 함께 샹젤리제 공원으로 운동 겸 산책에 나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이름'으로 흥분하게 되는데 바로 질베르트. 1부 콩브레에서 언뜻 보았던 그 드세보이던 아이다. 질베르트는 스스럼 없이 또래인 화자를 대하고, 실은 아주 친하게 군다. (눈을 뭉쳐서 목덜미에 넣고 막)


질베르트가 자길 좋아한다고 상상하고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노트에 수십번 수백번 적어보는 아이. 아마 이름 글자 획으로 사랑점을 쳤을지도 모르지. 맞아 질베르트는 날 좋아해! 나한테 마노 구슬도 사줬고! 내가 부탁한 책 (바로 그 베르고트 작가가 쓴 절.판.도.서.)도 구해줬어! 내 앞에선 날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내일 아니면 모레엔 나한테 고백할거야! 라고 생각해보았자, 맘 속의 조용한 '여자 직조공'은 차분하게 관계의 실을 고르며 이야기 해준다. '응, 아니야. 걘 너한테 관심없음. 그냥 그 앤 용돈이 많고, 네가 그 구슬 앞에서 불쌍해 보였을 뿐임' 


프루스트는 2부의 스완이 꿈을 통해 둘로 나뉜 자아를 만들어 현실 파악을 하도록 도운 것처럼 3부에서는 어린 화자 속에 '여자 직조공'을 초대해 관계의 팩트폭격을 담당하게 한다. 그 덕에 어린 화자는 너무 심하게 질베르트에게 집착하지는 ....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애가 참 남달라요. 하지만 그 시절을 (어른의 시간에 서서 어른인 화자가) 돌아볼 땐 안타깝고 불안하기만 했지 순간순간의 찬란함을 즐기지는 못했다. 불안과 기대를 번갈아 겪어내느라 그 어린 눈에는 즐거움의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질베르트의 고백과 편지를 상상할 시간에 그냥 뛰어놀지 그랬니. 그 아이가 어느 길로 올지 모르고 시간도 어림할 뿐이어서 그 구역 전체가, 그 오후 전체가 설렘으로 가득찬 어린왕자-여우 스러운 그 황금빛 설렘이 아깝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번 이야기는 '이름'이 포인트. 인물들은 지명 뿐 아니라 이름을 아주 능숙하고 감각적으로 다룬다. 질베르트가 화자의 이름을 그 입 속에 넣어 발음해 줬을 때! 자신의 껍질이 벗겨지고 확실히 둘 사이의 뭔가를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변태 맞음) 그리고 질베르트의 이름이 그 애 앞으로 날아가 실체를 만나서 긍정해 줬듯이 화자가 그 애 이름을 종이 위에 적으면 어떤 약속을 만드는 것만 같았지. (직조공 언니 다시 왈, 응 아니야) 화자는 질베르트의 이름과 그애가 사는 동네 길 이름을 자꾸만 입에 올린다. 아버지가 (그 눈치 둔하신 양반이) 알아차리실 정도로.  
 

그런데 화자의 진짜 찬양은 실은 질베르트의 '사생활' 즉 그 부모를 향한다. 2부 '스완의 사랑'에서 채 다 펼치지 못한 변태의 모습이려나. 이 어린 화자는 스완씨를 그리고 스완 부인을 길이나 공원에서 기다리느라 불쌍한 프랑수와즈를 끌고 파리를 쏘다닌다. 스완씨를 자꾸 좋아하면서 그의 이름에 집착하고 그가 눈을 비비는 습관을 따라하고 질베르트를 향하는 고심은 스완을 본뜬 면이 완연하다. 아, 심지어 스완의 대머리까지 닮고싶다고 고백하는 화자라니. (너, 잘 생각해봐라)

"그 스완이라는 이름이 [...] 이제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단어였다." 
"내가 그 단어를 분해하여 하나 하나를 읽었고, 나에게는 그 철자가 하나의 놀라운 현상이었다." (펭귄1, 634-5)

스완은 이미 1부에서 화자에게 저녁시간의 고통을 안겨준 인물이지만 이제는 그 별나고 신비로운 사랑이야기와 우아한 차림새와 질베르트까지 더해서 '역사적 위인' 같이 보인다. 스완 부인은 아예 여왕 같다. 화자의 묘사는 어느새 어른의 시선 비중이 커져서 스완 부인 오데트의 과한 복장과 한물간 미모와 추문을 언급하고 있지만 소년이 어색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하자 (아직 소년을 알지 못했던 - 하지만 그 예전 알베르트 할아버지 댁에서 스친 적이 있었는데) 스완 부인은 공원의 거위에게 빵 조각을 던지듯 관심과 미소 한 조각을 적선했다. 

그리고 불현듯, 컷, 하는 감독의 소리와 함께, '지금'으로 돌아온 작가의 시간. 책을 읽으면서 단락은 넓은 공백으로 바뀌고 조명마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 이름들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다음 볼로뉴 숲을 찾은 화자. 11월 오전,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을 즐기고 싶었는데 실은 어떤 그리움, 그 장소,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우아한 여인들과 신사들의 마차 대신 자동차가, 심플한 모자 대신 과장된 과일 바구니 같은 머리쓰개, 더해서 남자들의 상스러운 민머리가 참담할 따름이다. 이런 변화라니. 내가 너무 늙은건가. 한탄하는 화자의 문장에 겹치는 내 심정, 내 맘 속의 직조공은 꼼꼼하게 알려주겠지, 프루스트가 독자 너님이랑 동갑이었음. 세월은 가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부질없는 시도라도, 집요하게 기억해내서 하나하나 적어내려가 먼 훗날 독자들이 한줄 한줄 읽어 가는 것이 하나의 답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지.
  

이렇게 갑작스런 장면과 시간 변화는 그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고 있다. 
책은 준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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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2-21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이뽀요! 😍😍😍
전 읽지 않고 감탄만 하는 걸로 할께요!

유부만두 2021-02-21 16:30   좋아요 1 | URL
예쁘지요? 애초에 저도 저 표지에 홀려서 이 대장정을 시작했어요.

psyche 2021-02-26 04:04   좋아요 1 | URL
저도 단발머리님께 동의 ㅎㅎ

유부만두 2021-02-27 21:07   좋아요 0 | URL
격한 감탄이 독서로 이어질지도 몰라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데트의 얼굴에서 보티첼리를 보는 순간, 스완의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카틀레야 난초로 둘 만의 비밀 암호를 정하고 피아노 소나타에 전율하는 순간일까. 그걸 사랑이라고 그 말고 누가 부를까. 친구 amie도 연인amie도 바로 그녀 '상스럽고 저속하며 무식한' 오데트만을 가리킨다면. 하지만 세력 관계는 뒤집어져서 '무조건' 달려오겠다던 오데트는 이런 저런 사유로 공공 장소에서 동행을 피하고 베르뒤랭 부부의 연회에서 스완이 미움을 받아 더이상 초대되지 않는다. 돈과 보석을 그녀에게 보내면서도 주인은 오데트라고 여기는 스완은 바로 그녀의 물주. 그의 돈으로 가지는 '쾌락'과 이 속물성이 그는 편안하다.


스완이 없는 장소, 모르는 시간에 오데트가 누구와 무얼 하는지 스완은 불안하도록 궁금하고 계속 자신의 부재를 지우려 애쓰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갑자기 애인 집에 찾아가거나,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쓴 편지를 훔쳐 읽거나, 그녀의 과거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아, 차라리 그녀가 사고라도 당해서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란다. 침략 전쟁에서 소피아 성당을 지켰던 마호메트 2세가 자신의 총애는 사랑에 겨워 죽여버렸다지요? 그의 비틀린 심장이 스완 가까이에 있었다. 그렇다. 변태의 사랑과 집착은 범죄가 된다. 우리는 이미 많은 소설과 현실에서 그 공식을 확인했다. 바로 다음 줄에 프루스트는, 아니 스완은 반성하고 취소하지만 그가 겪는 사랑은 시작 만큼이나 그 전개도 유별나다. 그런데 읽으면서 뭔가 알 것만 같은데, 이 느낌, 뭘까. 여느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 


그가 불안한 마음에 꾸는 꿈마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거나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인데 그 곳에서 그녀는 멀어져간다. 그런데 그 꿈 안에는 울고 있는 자기 자신, 젊은 스완이 비틀거리고 있어서 꿈꾸는 주체 스완은 위로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스완은 오데트에게 밀당을 시도해 보지만 그 역시 통하지 않는데, 계산을 특별히 하지 않는 오데트에게 남자들이란 한결 같이 욕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라서. 몇번이나 이별을 하겠노라, 사랑의 끝은 내가 맺겠노라, 스완은 결심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사랑에서 칼 자루 대신 칼날을 쥐고 있었다.


오데트의 추문, 과거, 그중의 최고는 졸라의 '나나'에서도 있었던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다.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매달리고 윽박지르고 따지다가 들은 답에 심장은 칼로 서억 베인 것만 같다. 하지만 사랑은 불치의 병이라 완치를 바라고 사랑을 떼어내려다가는 스완이 죽고말지. 계속 징징 울다 희망에 차다, 조울의 시소를 탄다. 독자는 흩뿌려진 참깨알 같은 단어들을 줍다보면 눈이 아프다. 스완은 병자 비유와 외과의 수술 비교를 반복한다. 나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이 망가져도 아주 조그만 부분, 상류층 사교계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수의처럼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의 시체를 (그는 이제 툭하면 죽는 상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낭만적 비통함을 하는 인물이 사십대, 이마가 좀 벗겨지고 아주 잘생기지는 않은 돈많은 아저씨다) 감쌀 것이다. 이전의 자신을 알고 아껴주는 사람들, 콩브레의 이웃 - 1부의 그 변태 소년의 나름 이상하지만 따뜻한 가족 - 이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콩브레가 소설의 화자에게 기억의 향기와 그 두근거리는 '첫 글쓰기'의 감동을 함께 했다면 스완에겐 사랑이라는 병에 걸리기 이전, 그 정상이었던 건강체임을 증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의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난봉꾼이었다) 그래, 가자! 그곳 콩브레로! 


하지만 만약, 사랑이 치유된다면? 사랑이 끝나는 걸 스완은 용기있게 맞서서 쳐다볼 준비가 아직은 (몇백 쪽에 걸쳐서) 되지 않았다. 아직. 아직도. 


어쩌면 허무가 진실이며, 우리 모든 꿈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 꿈에 비해 존재하는 이런 악절이나 개념 들도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죽어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우리 운명을 뒤따를 이 성스러운 포로들이 볼모로 있다. 그래서 이포로들과 함께라면 죽음도 덜 비참하고, 덜 치욕스럽고, 어쩌면 덜 가능해지리라. (민음2, 277)


가슴은 썩어 문드러져서 오데트는 친구 샤를뤼스 ('약간 정신 나간 사람'같고 '신경증 환자' 같고 '최악의 인간' 이라고 묘사한 프루스트의 친구 몽테스큐 백작의 소설 속 인물, 그래서 그 시대의 '댄디' 몽테스큐 백작이 소설화 사실을 알고 프루스트와 절교 했다고)와 그녀의 재단사가 산다는 허름한 동네 서민 주거층 6층의 냄새나는 복도를 걸을 동안 스완은 공작부인의 파아뤼에 간다. 그곳에서 만나는 정복 입은 하인들, 외알 안경 쓴 상류층 남자들과 음악에 맞추어 자신의 감동 혹은 속물 근성을 시스루로 드러내는 여인들을 돌아본다. 생생한 묘사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그 파아뤼에 독자 나도 서 있는 것만 같은 건 역시, 나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아 지금 다시 들리는 자신의 러브테마곡 소나타. 과거 사랑의 기억과 아픔에 전율하는 스완. 그녀가 주었던 하얀 국화꽃 (이 꽃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완은 몰랐지)과 편지들을 넣어둔 마음 속 서랍을 괴롭게 다시 열어버리는 그 음악. 그래, 나쁜건 오데트야! 더 나쁜건 나의 "기억력"이야. 이 망할 생명력으로 생생하게 과거를 불러오다니! 


“Il admirait la terrible puissance recréatrice de sa mémoire.” 

 기억의 무서운 재창조력(민음) 자기 기억의 무시무시한 재생능력(펭귄)


아, 그러니까 오데트, 당신은 나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 특히 다른 여자랑 쾌락을 맛보았소?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그래야 내가 살겠...다지만 그가 원하는 진실은 포주의 진실이라고 프루스트는 잔인하게 적어두었다. 그리고 쓸쓸하게 찾아가는 사창가에서 스완이 아주 어린 창녀에게 듣는 말은 "이렇게 당신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어쩐지 오데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알겠나요, 신사 양반? 그래, 당신의 사랑은? 


퉤, 하고 침 뱉는듯 내던지는 스완의 마지막 대사는 프루스트의 펜 아래 농락 당하는 인물이 19세기 벨에포크의 변태 부르주아 중년남 스완 뿐 아니라 '속물'이 쓴 속물 이야기라서 진지한 소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원고를 거절하려 했던 담당자 앙드레지드, 더해서 21세기 침침한 노안의 중년 아줌마도 포함된다. 두 번역본을 불어 GF판 1권과 번갈아 읽으면서 그 소소하고 잔잔하게 깔려있는 많은 오역을 만났고, 19세기에 이미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우월했는데 무슨 깡으로 없는 살림에 부르주아 이야기나 읽으면서 사는지 나 자신이 한심했다가, 이 백인 변태남의 성매수 이야기를 공들여 읽게 하는 프루스트의 원령이 불현듯 무서워졌다. 여느 소설 처럼 인물들의 이야기로 건너가는 대신, 단어들과 문장들이 펼쳐지는 세세하고 촘촘한 조직의 얼개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다)


그의 묘사는, 그러니까, 독자를 넘어뜨린다. 


변태는 변태를 알아보는가. 아니면 변태를 연성하는가. 남편이 나보고 '너 많이 이상해' 라고 말했다. 스완의 사랑, 1984년 영화 dvd를 주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연은 그말고는 없지, 제레미 아이언스, 불사출의 변태 험버트 험버트, 그가 돌아왔다. (친구 샤를뤼스는 불사출의 불란서 미남자 알랭 들롱) 예고편이 바로 그 마차 장면, 바로 그 카틀레야 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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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13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파아뤼에 독자 나도 서 있는 것만 같은 건 역시, 나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ㅋㅋㅋㅋㅋㅋ 생생한 묘사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오늘도 중간중간 섞인 만두님 유우머에 깔깔대다 갑니다 ㅋㅋㅋㅋㅋ 만두님 남편님 큰일나셨네요. 많이 이상한데, 아는데, 근데도 좋으면 끝인데... 😇

유부만두 2021-02-14 07:33   좋아요 1 | URL
하하하 이 동네 변태 아줌마는 저입니다. 무서우시지요? 하지만 이미 친구라지요? ^^

scott 2021-02-1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구석 몽상1人~마르셀 프루스트 ㅋㅋㅋ

유부만두 2021-02-14 22:14   좋아요 0 | URL
꼼꼼한 몽상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