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책의 장면들'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편집인이 책 편집하고 만드는 영화 장면들에 대한 현직 편집인의 엣세이 모음집이다. 편집인이 본 12편의 영화 장면들에는 원고, 책, 이야기 그리고 인생과 철학을 저자와 함께 (싸우며 어르며) 다듬는 편집인들이 나온다. 90년대 부터 코로나 시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나왔던 영화에서 편집인들은 한결같이 손에 들어온 그 원고를 멋진 책으로 변신 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는 영화도 많은데 (2편 빼고 다 본 영화다. 책 이야기라면 일단 내 영화 목록에 들어가니까) 특히 <행복한 사전>에는 마음이 동해서 부엌일을 하면서 틀어놓고 (두번째로) 봤다. 아 이렇게 무모한 작업이었나, 사전 만들기가. 또한 찰리 채플린의 일대기를 다룬 1992년 영화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에 편집인으론 안소니 홉킨스라니. 찜. 무엇보다 <미저리>에서 그 무시무시한 애니를 미저리 후속작의 편집인으로 이해한 것이 흥미로웠다. 독자도 그러니까 편집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스티븐 킹 소설 오탈자 좀 있더라요.


책 만드는 이야기를 편집인에 중심을 두고 풀어내는 엣세이라 주말에 안성맞춤이었다. 편집인들에겐 일이지만 독자에겐 흥미로운 무대 뒤 이야기, 번외편 같기도 하니까요. 참 열심이시네 하면서 책과 영화 제목 몇은 따로 적어두었다. 그러는 내내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설적인 맥스 퍼킨스나 거트루드가 아니라 잠자냥님. 자신이 만든 책을 꽁꽁 숨기고 안 알려주지만 그래서인지 내가 읽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그 책들을 상상하면 맘이 든든해진다. 일요일이니까 원고 말고 읽고 싶은 책 읽어요, 잠자냥님. 그런데 이 책은 업무 생각이 너무 날테니까 패스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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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03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3-12-0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 그래야 여러분이 마음 놓고 욕도 하고 칭찬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들 다 잘 보고 있습니다. (시장 조사) 그리고 책에 반영할 때도 있고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23-12-03 12:23   좋아요 0 | URL
아 다 보고 계십니까?! 책에 독자들 의견도 반영하시고요?!
훌륭한 편집자님!!! 이러니 은오가 사랑에 빠질만하죠! 인정 인정.

잠자냥 2023-12-03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개봉한 영화 <싱글 인 서울>에서 임수정 직업이 출판사 편집장이던데 스틸컷 이미지 보고 좀 웃었습니다. 편집자 이미지가 저렇구나?! 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2-03 12:2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예고 영상 보고 왔어요.
전 더 깔끔한? 편집자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임수정은 과장한 거 아닌가 싶은데요.
근데 저 영화에서 편집자(들)은 몇 명이나 고양이와 함께 살까요? 그건 궁금해요.
 

찰리는 동화와 마법의 세계,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서 소년에서 어른으로, 주변인에서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보고 다시 자신의 세계로 귀환한다. 모든 페어리 테일이 그렇다. 주인공은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그 위에 미인의 키스를 받고 만인의 존경과 금은보화를 안고 귀환한다. 심지어 고딩은 성인인증을 한다. 


찰리가 벌인, 하지만 자신이 진짜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 최후의 전투는 살벌하고 지독하며 쉽지 않았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찰리는 되뇌인다. 이거 진짜네, 이거 거짓말 같지만 진짜야. 지독해. 페어리 테일이 이야기로 안전하기 위해서는 저 건너편에, 멀리, 아니라면 종이나 액정, 화면 위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덮거나 꺼버릴 수 있게. 


페어리 테일은 끝났고, 찰리의 세상이 어떻게 이어질지 바뀔지에 대해 작가는 쉬운 답을 내놓는다. 자, 여기 있소, 댁들이 원하는 해피 엔딩. 아닌데요? 이런거. 조금 더 나갔어야지요? 킹 선생님. 모든 사람들 안에 꿈틀거리는 욕심과 사악한 기운을 잘 아시는 양반이. 그냥 그 통로를 닫아버리는 것으로는 부족하지 않나요. 뭔가 미운오리 새끼와 리처드3세의 혁명을 시작했으면 더 뭔가를 보여주... 하지만 뭐 페어리 테일의 공식이 이렇다. 왕의 귀환. 평민들은 다시 평화로운 노동으로. 푸른 하늘 은하수 두 개의 달. 폭력과 사악함이 왕자나 악마 쪽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강조하며 작가는 찰리의 어깨를 토닥인다. 하지만 이 녀석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기 인간의 세상에도 나름대로 페어리 테일이 이어진다. 권선징악과 벽장 속의 금덩어리 이야기는 끝났지만, 법과 규칙을 잘 알기만 하면, 디지털 장난 같은 코인 및 부동산만 많다면 그 아이템빨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인용되는 여러 이야기들의 원전과 변주곡들을 찾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번 킹 소설은 기대보단 지루했다. 폭력의 수위가 높아지고 괴수의 모습이 징그러울수록 주인공이 게으른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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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2-02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티븐 킹, 두 번이나 읽으려고 도전했다가 다 읽지 못하고, 나중에는 너무 무서워서 책도 버렸어요 ㅠㅠㅠ
그게 좀 순한 맛이었는데도요. 유부만두님 리뷰로 만족하겠습니다.
이제 29일 남은건가요.... 아.... 슬프다.....

유부만두 2023-12-02 09:59   좋아요 1 | URL
이번 “동화책”은 잔인한 장면이 많아요. 하지만 원초적 공포를 불러내는 기존 킹 소설과는 좀 다르고요. 덜 무서웠어요. 얼마전 나온 빌리 서머스 읽으셨나요? 킹 소설 중 가장 해맑은 이야기인데요.
하지만 저의 최애 킹 소설은 미저리 입니다. 너무 무서운데 너무 재밌죠!!!!

저 내년에도 매일매일 끄적여볼까 하는데요. 그렇담 윤년 366 더하기 29 남았습니다! ^^

단발머리 2023-12-02 20:17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 내년 계획에 기립박수!!
👏👏👏👏👏
 

문제의 도시 릴리마르로 레이더와 함께 들어선 190센티미터를 넘는 장신의 고딩 찰리. 해가 지고 사악한 무리들이 그를 잡기 전에 거인 해나의 눈을 피해서 마법의 해시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도시 성문 밖으로 나와야 한다. 


스티븐 킹은 아슬아슬 조마조마 숨거나 도망치는 장면의 긴장감을 잘 그린다. 또한 피와 살점이 튀기는 육탄전 혹은 살육전도 박진감 넘치게 펼쳐 보여준다. 2권은 반려견을 위하는 소년 주인공이 사악한 무리에 맞서 약자들을 돕는 왕자님으로 변신 혹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는 피, 땀, 눈물이 (배설물과 함께) 배어있다. 사악한 무리들은 악취를 풍기며 역겨운 외모와 천박한 말을 달고 있다. 페어리 테일의 공식이다. 예쁘고 멋진 사람, 금발에 푸른 눈이면 귀족에 주인공, 착한 사람. 몬난이에 뚱보 바보는 나쁜 사람 망할 넘들. 적/악인에 대한 증오심이 차오르자 찰리는 어머니의 사고 후 아버지가 술에 빠져 살 때, 어린 자신의 내부에 어두운 '우물'이 있었고 나쁜 행동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여기 그 비슷한 증오와 사악함이 덩어리로 뭉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적에 대한 증오로 살인에 이르는 폭력이 폭발한다. 이것이 정의일까. 폭력의 두 얼굴을 보는 것 같다. 2권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피노키오, 오즈의 마법사 등이 활용된다. 어쩌면 인어공주와 백조왕자도. 


"네가 전설의 왕자님이구나! 우리를 구하러 왔어!"라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심지어 경의를 표하는 행동을 보면서 덩치 큰 찰리는 민망해 한다. 하지만 기꺼이 그들을 돕고 함께 행동하기로 한다. 마법? 그까이거 자꾸 보니까 익숙해 지는 거네. 말하는 빨간 메뚜기, 푸른 오라를 풍기는 해골 군단, 6미터가 넘는 흉칙한 거인 아줌마와 그 딸, 하늘을 덮는 나비 떼, 비밀의 지하 통로, 박쥐 떼, 그리고 두 개의 달. (혼자 샤이니의 노래 '셜록'을 흥얼거렸는데 가사가 '두 개의 달~'이 아니라 '두 개의 답~'이었다)


120쪽 쯤 남았고 이제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두 개의 '달'이 가까이 빛나는 밤이 지났다. 곧 만악의 근원, 릴리마르의 지하 어딘가에 봉인된/숨은 볼드모트인 고그마고그를 해치워야 한다. 찰리는 이제 왕자로서의 책임감 마저 느끼고 마지막 결전에 나선다. 하지만 자꾸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가 걱정하실텐데. 그런데 나는 고딩 찰리의 대입도 좀 걱정된다. 너 공부는 언제 할... 아니다, 일단 살고 보자. 찰리가 릴리마르를 구하고 옛 왕족을 돕고 (페어리 테일의 기본인 왕조 중심 + 고귀한 핏줄 만능) 그래야 자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잘못 하면 지구의 21세기 미 중서부 세계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 (아, 물론 스티븐 킹 월드에서) 그런데 늙은 독자는 너무 졸려서 찰리야, 일단 오늘은 자고 내일 12월 1일에 마저 싸우자, 응? 내일 꼭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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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로 건너간 찰리에게는 임무가 있다. 새 반려견 레이더에게 생명을, 시간을 더 주는 것이다. (황금을 얻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신비로운 거대 해시계를 조작하는 이야기는 '사악한 것이 온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시계가 있는 도시로 가는 길은 험하고 저주에 걸려 회색빛으로 말라 쪼그라드는 중인 피난민들이 그곳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예전에 에이드리언을 알던 인물들이 찰리를 돕는다. 이들은 각자 악당 거인의 저주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 "말 못하고, 못 보고, 못 듣는 원숭이 트리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들이 불도 혹은 덕을 좇느라 악행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 장애로 그저 완벽한 이야기를 만드는 불완전하고 불편한 퍼즐의 역할을 하고있다. 그래도 그들은 한마음으로 찰리의 모험을 응원하며 그를 거둬 먹이고 지켜야 할 규칙을 당부한다. 어둠이 내리면 돌아다니지 마라, 소리를 내지 마라, 선배(?)의 자취를 잘 따라 가라. 무엇보다 잔인한 거인을 피해야 한다.   

다른 세계의 묘사는 의외로 심심하다. 찰리는 이야기 속에 들어가 이야기의 일부가 된 것에 감탄하지만 옛이야기 페어리 테일 '공식' 속에 들어가자 이 책의 이야기는 갑갑해진다. 찰리만 신이 났고 그를 따라가는 레이더나 나는 심심해졌다. 책장 넘기는 속도가 느려졌다. 늑대들도 달이 두 개나 떴는데 예상보다 얌전하다.


멀리 성의 탑이 보이고 하늘을 뒤덮는 이상한 존재가 바로 표지의 그것이라는 게 밝혀진다. 반지의 제왕의 험난한 산길이나 동화 재해석 영화에 흔히 나오는 어두운 숲속 장면들이 생각난다. 첫 닭이 울면, 아니 새벽의 첫 (교회)종이 울리면 바로 도시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저주 받고 숙청된 옛 왕족들이 고귀한 품성으로 모험가(왕자)를 돕는다. 아직 좀 미흡한 느낌이 든다. 1권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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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11-30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말엔 그저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한다는 생각에
저도 <Fairy Tale>을 이 책만큼이나 두꺼운
<Grimm‘s Complete Fairy Tales>을 옆에 끼고 읽고 있는 중인데
책에 언급된 영화랑 음악 일일이 찾아보는 Digression 때문에
진도가 거의 기어가는 수준입니다.

제 책 p. 30 Keen‘V 의 <Rien Qu‘une Fois> 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 노래 들어보셨나요? French 랑 진짜 안 친한데 이 노래는
Charlie 가 말한 것처럼 들을수록 좋아지는 노래인데다
저한테는 earworm 이 되도 질리지않는 수준.
이런식으로 책 읽다가 딴 짓만하는 것도 책 읽는 묘미!


유부만두 2023-11-30 16:41   좋아요 1 | URL
전 대만 작가 찬호께이가 쓴 동화 재해석 단편집 “마술피리”를 챙겨놨어요. 역시나 연말이라 옛이야기가 당기네요.
근데 이 책이 번역은 좋은편이지만 스티븐 킹은 영어로 읽는 게 나은 것 같고요. 네, 저도 그 노래 찾아서 들었어요. 흥얼 ~ 거리게 됩니다.

전 지금 찰리가 격투장 순번 기다리는 데 까지 읽었어요. 지루해 지다가 다시 긴장감 재미가 살아납니다. 역시 이야기꾼입니다, 킹은.

2023-11-30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30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3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30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30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권을 100여쪽 남겨두었다. 아마 오늘 밤에 다 읽게 될 텐데. 그전에 오늘의 숙제/약속을 하러 왔다.


화자 찰리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촌/숲 동네에 산다. 1996년생 찰리가 열 살 때 엄마가 마을의 다리 위를 건너다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후 아버지는 넋을 놓고 술에 빠진다. 찰리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아버지가 술을 끊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그렇게만 된다면 뭐라도 하겠노라고 하늘에 목숨을 걸고 약속한다. 운을 쌓는 오타니의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찰리. 어느날 고등학생 찰리는 마을의 귀신집 (영화 사이코의 그 집을 닮은)의 홀로 사는 노인을 구한다. 그리고 그와 어색하지만 특별한 우정을, 그리고 그의 비밀을 나누게 된다. 


노인의 집에는 헛간이 있고 그 안에 뭔가가 있다. 이 책이 서양의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동화의 잔혹버전을 재해석 한 것이라는 걸 (책소개 방송에서 들었고 제목부터 도옹화아 라고 되어있다) 알지만 화자가 자꾸 '잭과 콩나무'를 언급하는 것 말고는 예의 스티븐 킹 공포 소설 그자체다. 외딴 마을, 외로운 소년, 홀로 사는 노인, 늙은 개, 어두운 곳에서 들리는 끼기긱 문 긁는 소리. 밤에 깨는 소년, 벽에 어리는 그림자. 화자는 이 이야기가 믿기 어려울 거라고, 그 노인의 헛간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300쪽이 되어서야 그 헛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준다. 작가/화자는 급할 게 하나도 없이 느긋하고 노련한 이야기에 독자는 그저 따라갈 뿐이다. (재미있어. 재미있어. 그런데 헛간에 뭐 있는 거야? 보여줘. 나 안 무서워할게. 아니 좀 무서운데 재미있어서 괜찮아. 야 손 떨지마.)


그리고 헛간에는 하루키가 있었다. 


돌/시멘트로 눌러 덮어 놓은 다른 세계로의 통로, 어둡고 기분나쁜 통로, 벌레(공기번데기 대신 바퀴벌레), 소년, 에메랄드 도시를 닮은 그 성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바로 그 도시다. 게다가 그 곳의 광장에는 너무나 큰 ... 그렇다 시계가 있고 심지어 달도 두 개가 뜬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키의 세계가 아니다. 여기는 스티븐 킹, 제왕의 공간. 우리의 잭은 콩나무를 오르는 대신 지하로 내려왔으니 곧 황금 보물을 찾고/훔치고 도망치게되리라. 그곳에서 황금길 대신 붉은길을 걷는 찰리는 도로시가 아닌 얼굴이 괴이한 도라를 만나고 커다란 흰 토끼가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모자장수나 공중부양하는 고양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의 모티브들이 '다른 세상'을 킹의 버전으로 그리고 있다. 화려해도 음산하고 조용해도 불안하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냥 따라가게 된다. 쿰쿰한 냄새가 난다면 그런 것만 같고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이 언급되는 곳에는 태그를 붙여두며 읽는다. 실은 소설 첫부분부터 애 엄마를 죽여놔서, 아버지랑 다른 아버지(노친네)와 소년끼리만 연결시키고 옆집 할머니는 봐도 못보는 무의미한 관찰자며 지하의 도라도 단춧구멍 눈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전달자로 나오는 등 여자 캐릭터는 죄다 뭉개놔 버린 것에 화가 난다. 스티븐 킹은 애처가라지만 소설 속에서 여혐 넘치게 한다. 하지만 독자가 먼 힘이 있겠어요. 욕하면서 (하지만 정작 책 읽으면서는 숨도 못 쉬고 따라간다. 에잇 빈정 상하게스리) 계속 읽을 것이고요. 


찰리는 고백하듯 말한다. 실은 자기는 나쁜 애라고. 착한 소년의 이미지를 삼백 쪽 넘게 쌓아온 주제에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는 건 스티븐 킹이 이제 솜씨를 부려서 사악한 동화 이야기를 질펀하게 펼치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좀 죽이고 칼부림 총질도 하고 괴생명체가 스윽 나오고 육탄전도 하고. 하지만 아직은 왕년의 맹수 노견 레이더가 (쿠조랑 닮았대매) 낑낑대며 찰리 옆에서 웅크리고 있다. 아직은 소년이 콩나무 위의 거인을 만나지 않았다. 곧 피냄새가 진동을 하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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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11-30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새 소설은 미국에선 내년에 출간된답니다.
나머지는 제가 종이책으로 다 가지고 있고 읽은 책들,
그리고 현재 읽고 있는 King 의 책.
<1Q84> 는 저로서는 매우 드물게 한국어 번역판 3권 다 가지고 있는데
아들이 관심있다고해서 이 번에 드디어
장장1156 pages 의 Paperback 을 샀답니다.
책겉표지는 ˝허걱˝ 이지만 책 속안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국어판 영어판 비교하며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Ray Bradbury의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는
King 의 Literary Critique 랑 같이 읽으니까 더 좋더라구요.
문장 하나하나 정말 시적인데 너무 과한 느낌!
뭐니뭐니해도 몇 몇의 단편 빼고는 <The Martian Chronicles> 와
<Fahrenheit 451> 가 최고!

유부만두 2023-11-30 16:32   좋아요 1 | URL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 건 그냥 제 느낌이고요, 책에선 브래드버리를 언급해요. 화씨451만 읽었는데 이번에 사악한 것이~ 를 읽고 싶어졌어요.

유부만두 2023-11-30 16:49   좋아요 1 | URL
1q84 미국판 표지… 얼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