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멋을 부렸거나 너무 잔인해서. 보다 만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 와 "올드보이" 고 그럭저럭 보았던 건 "스토커" 와 "박쥐". 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글에 관심을 가진 건, 어느 팟케에서 그가 책을 꽤 많이 읽는다고 칼럼도 많이 썼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지 한참 지나서 그가 복수3부작을 완성한 즈음 때 까지 쓴 칼럼과 한 인터뷰 꼭지를 모은 책을 읽었다. 십일 년 전에 나온 책이 생각보다 덜 촌스럽고, 그동안 저자가 심하게 상하지 않아서 괜찮다. 책도 기대 이상.

 

1부의 신변잡기성 짧은 토막글들은 그럭저럭 허영기 있는 감독님 느낌, 2부는 자부심 넘치는 감독님 느낌에 3부는 (하, 난 하나도 본적도 없는 영화들 이야기) 열정 넘치는 덕후 느낌이다.

 

그가 책을 많이 읽은 건, 글의 스타일이나 내용, 구성에서 보인다. 할 말과 쓸 글이 넘치는데 그는 누르고 있는 중... 이 책을 읽고 그의 영화를 더 찾아 볼 것 같지는 않지만 그가 추천하는 책은 읽어볼 생각이다. 우선 "소리와 분노". (이 책에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의 추천 내용 역시 팟캐에서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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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난 글을 읽고 이야기를 따라갔는데 남은건 이미지, 그림, 색깔. 신화인지 설화를 노래로 듣고 그들의 툭툭 끊어지는 말과 폭발하는 감정을 황금빛과 녹색, 푸른 색으로 받아 들였다.

아름다운 표지...캐서린이 누워서 보았을 새벽의 숲.

인물들은 서로 대화 대신 텔레파시로 소통한다. 그냥 보고 느끼고 행동한다. 기대와 다르게 캐서린이 땅속에서 솟아나오지 않아 아쉽고...그렇다. 여성 작가의 소설이지만 (나의 선입견...) 생생하게 분노하고 미쳐 날뛰는 건 남자들이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남/남 커플을 사랑하나보다. 시몽이 외쳐부르는 것도 숫소, 닭도 수탉. 카미유가 사랑을 완성하는 시점도 "쌍둥이 처럼" 그 남자와 닮아 있을 때라니. 캐서린도 아홉 형제들의 어머니나 외할머니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기도문을 읊조리고 생각을 할 뿐. 사랑한다지만 포근한 살덩어리만 묘사되고 그녀들의 입에선 제대로 된 언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난....아홉 숲의 형제들이 나오고 부터는 옛날이야기 처럼 읽었고..아니 이미지를 보았고,...수탉 키우는 아저씨의 짝사랑이 그나마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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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다른 책들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제목으로 ˝어른스러운 초등학생˝ 인줄 알았는데, 그냥 어른인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생 나의 이야기가 그림책 소개와 함께 소소하게 나온다. 좋다.

무민으로 기억했던 그림책이 ˝바바빠빠˝라는 걸 알았다...삼십 년 이상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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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11-1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무민이랑 바바빠빠가 닮아 보이네요?ㅋㅋㅋ

유부만두 2016-11-10 23:1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죠?! 무민이 귀가 달렸던가 한참 생각했는데 바바빠빠 였어요;;;
 

유아원 교사로 일하는 수짱.
급식을 먹지 않는 아이에게 강제로 밥 먹이려 들지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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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6-10-3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짱 시리즈 참 좋죠- 강요하지 않는 배려의 힘이 느껴져서 맘이 편해져요^^

유부만두 2016-10-31 07:44   좋아요 0 | URL
네. 배려하는 마음이죠. 소심하다 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서 위로가 되나봐요.
 

세기의 요부, 나나는 상대하는 남자가 셀 수도 없습니다. 전 빨간 입술의 반양장판으로 읽었는데 새로 나온 양장본은 그가 상대한 남자의 수를 세다 세다 지쳤는지 회색이 되었습니다. 전 곧 깨달았지요. 남자는 숫자에 불과하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그것도 유부녀 독자를 설득시킬 만한 치명적 매력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나나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아니, 이 여자의 어디가 그리 잘났어? 그래서 모든 남자들이 그 난리야?... 소설 속의 묘사도 주위 인물들의 찬사로 시작해 은근한 안티로 끝나기 십상이고요.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관심을 나나의 몸(뚱아리)에 쏟는 대신, 그녀 주위에서 침을 흘리는 숫캐들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녀는 그러니까,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거죠.

때는 바야흐로 1860년대 즈음, 프랑스는 제2 제정 시대입니다. 모든 체제가 예전대로, 올드 시스템에 돈 있고 지위 높은 사람들은 다시 혁명 이전의 안락을 찾고, 서민들은 더 힘들어지는 시대였습니다. ‘제르미날’의 에티엔을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에티엔은 나나의 이부 동생이었으니 동시대의 두 사람이 아주 다른 모습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나는 (목로주점에서 그녀의 과거 조화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을 그려주고 있다는데) 첫 등장부터 화려한 여배우입니다. 발연기에 음치이지만 탱탱한 엉덩이에 과감한 노출신으로 금세 파리의 사교계를 주름잡습니다. (어쩐지 익숙하지요?) 그녀를 원하는 (거의 모든) 남자들 중, 그녀가 간택한 사람은 뮈파 백작입니다. 여기엔 그녀의 계산도 있는 듯한데, 그녀를 위해선 무엇이든 바칠 준비가 되어있던 은행가도, 어린 조르주와 그의 형도 줄을 섰습니다.

제르미날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 졸라는 한 인간이 시궁창에 콱 쳐박힐 때까지 안전망 따위는 없이 몰아댑니다. 독자를 위한 보호막도 없지요. 그저 등을 탁 떠미는 작가의 문장에 주인공들과 함께 진창에 빠질 수 밖에요. 그럼, 나나에서 우리가 만나는 건 화려한 여배우가 사교계를 농락하다 파멸하는 이야기냐? 뮈파 백작이 배비장도 아니고,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지요.

나나는 하얀 엉덩이가 빵빵한 사람이라기 보단, 인형입니다. 이 여자 캐릭터에게는 생각이라고는 도무지 한 조각도 없어 보이는데 나름 이 여자는 자신의 “신념”을 토로하지요. (하지만 단 한 쪽만 넘기면 딴 소리를 해대는 그 천진난만함이란!) 바로 그녀의 속빈 “신념” 반전에 쓴 웃음을 참으면서 독자는 따라가지만, 한 점 너그러움도 없는 작가는 나나의 이 순진함을 자근자근 와작와작 부숴버립니다. 그 예로 나나의 소설관은 짓궂기까지 하고요.

그녀가 뮈파 백작을 파멸시키면서, 퐁탕과의 파괴적인 사랑(?)을 견디면서, 사틴과 아슬아슬 줄다리기를 타면서, 젊은 형제들을 파괴시키면서, 갖길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전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이 여자는 도대체 앞뒤가 맞는 말을 한 적도 없고, 욕심이 많은 듯 허망하게 다 놓아버리는데, 나나는 누굴 제대로 진짜로 사.랑. 한 적인 있던 걸까요?

저는 나나라는 여주인공을 도대체 이해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미워할 수도 없더라구요. 다만 그녀는 자신을 통해서 여러 인물들을 바라보도록 만든 거울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나는 자신의 허연 몸뚱아리를 거울에 비춰보면서 혼자 황홀해 합니다. “난 예뻐~”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에스메랄다에게 집착하던 프롤로가 떠올랐던 뮈파 백작은 그보다도 더 물러터진 인간이었기에, 그가 정작 자신의 부인의 외도를 확인하는 순간은 가슴 아플 정도였습니다. 뮈파 백작의 부인은 의도적으로 나나와 똑같은 점(!)을 갖고 있다고 나오는데 (아내의 유혹도 아니고..) 결국 타락하는 인간에게는 사회적 지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나나와 사랑을 속삭이는 친 형을 질투하는 청년은 또 어떻구요, 그 아해가 엄마에겐 거짓말을 하고 소풍을 가는데, 길에서 엄마랑 엄친들을 마주치는 장면은 하, 장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나, 라는 금발의 통통이 비너스를 통해서 그 시대의 또 오늘날의 수컷들의 욕망, 그리고 허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암컷들의 가증스런 거짓말과 변심도 빠질 수 없고요. 얽히고 설킨 분탕질을 저 위에서 3인칭 전지적 관점에서 졸라님과 즐겨보세요. 나름...재미있습니다. 쯧쯧,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등장 인물들은 속이 타고, 사랑에 들뜨는데, 왠일인지 독자들은 그들을 좀 떨어져서 바라볼 수가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19세기의 화려한 사교계 인물이 아니라서 일까요? ...어쩜 그래서 나나와 그 시대 사람들은 졸라의 이 소설을 욕한거겠죠?

다시 한 번, 제르미날 에서처럼 “말(馬)” 얘기도 나옵니다. 하늘 없는 갱 속에서 일하는 말이 아니라 푸른 하늘 아래 기수를 업고 내달리며, 돈 놀이 게임을 벌이는 장면이지요. 나나와 같은 이름의 암말이 나오는 경마장 피크닉 장면은 나나가 말인지, 사람인지, 과연 나나가 사람 취급을 받기나 하는지 아리송해지면서 그저 놀고 보자,는 파리 사교계의 흥청망청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돈 걸고, 따기, 그리고 그 막간에 벌어지는 사기극과 자살 소동! 이어지는 한몫이야기, 파리 만국박람회에 보불전쟁까지 얼핏 잊고 있던 “진짜 세계”가 소설 안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전설처럼 혹은 농담처럼 전해지는 나나의 마지막 모험담은 그녀가 꺾었던 남자들의 수나 그들의 돈 만큼 씁쓸하기만 합니다. 아, 이 소설 속 사람들은 남들의 좌절, 파멸에 동감이나 동정을 표현하질 않아요. 그저 차갑다 못해 서늘합니다. 그래서 수다떠는 인간들 옆에 덩그러니 누워 빠르게 식고, 썩어가는 나나의 시신은 ... 다시 한 번 `거울`로 이들을 비춰줍니다.

그래서, 도대체 몇 명인겁니까? 나나가 잤....아니, 사랑했던 사람은?있기나 했습니까? 그런 상대가?
그래서 더더욱, 연예계의 라이벌 로즈가 나나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준 것은 의미심장하지요.
이제 와서 누가 나나를 욕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 과연, 그녀는 있었던 걸까요? 그 시대, 그 자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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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0-19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두껍더라고요. 그래서 양장으로 사려는데 마침 유부만두님이 양장으로 올려주셨네요. 땡투를 제가 드리겠습니다! ㅎㅎ

유부만두 2016-10-19 20: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의 나나 리뷰 벌써 기대돼요~

moonnight 2016-10-19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다락방님과 유부만두님의 에밀 졸라 리뷰에 마음이 들뜹니다. 사놓기만 한 책들이었는데 읽어야겠어요. 두근두근^^

다락방 2016-10-19 08:57   좋아요 1 | URL
읽어보세요! 목로주점이 먼저입니다!! ㅎㅎ

유부만두 2016-10-19 20:54   좋아요 1 | URL
제르미날도 잊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