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세상에서 독서를 제일 사랑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천직이었다.

첫 문단을 읽자 단어들이 너무도 익숙하게 다가왔다. 책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진정한 독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책은 그 책을 쓴 시절로 우리를 데려갈 뿐 아니라 그 책을 읽던 내게로 데려간다.

사실 나는 아마 기만을 바탕으로 한 픽션의 왕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편견이 생겼을 테지만 화자를 믿지 않듯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결코 완전한 진실을 얻을 수 없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기 전에도 이미 거짓과 절반의 진실이 존재한다. 우리가 입은 옷은 몸의 진실을 가리지만 또한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다. 옷은 직조이자 날조다.

히치콕이 그러기를 원했다기보다는 프로덕션 코드(1930년대에 제정되고 시행된 미국 영화 신검열 제도-옮긴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 인물을 영화에 등장시수 없었을 거예요."
"헤이스 규약 말이군요. 현실도 그렇다면 좋을 텐데요."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사가 너무 많다》 페이퍼백이었다. 나는 고양이 이름을 네로(《요리사가 너무많다》의 주인공 탐정 이름-옮긴이)로 정했다.

사춘기를 열렬한 추리소설 독자로 보낸 탓에 나는 현실적인 삶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집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날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지는몰라도 목덜미에 꽂히는 누군가의 시선이 거의 몸의 감각으로 느껴졌다.

일레인 존슨의 집 내부는 예상대로 지저분하고 먼지투성이였으며 사방에 책이 쌓여 있었다.

나는 후세에 영원히 남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순수문학 작가들이 늘 못마땅했다. 차라리 스릴러소설을 쓰는 작가들과 시인이 더 좋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질 게 뻔한 싸움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실 그런 건 없다네."
"뭐가요?" 내가 물었다.
"자네가 쓴 리스트 말이야. 완벽한 살인은 없어."
"소설에서요, 아니면 현실에서요?"
"둘 다. 늘 변수가 너무 많거든. 그 리스트에 뭐가 있었더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이 있었지?"

자넨 내게 살인을 소개했고, 또 독서를 소개했어. 그리고 내 삶은 나아졌지."

내가 이 회고록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것이다. 정확하게 기록해두고 싶다. 완전한 진실을 밑하고 싶다.
[…]
진부하다고? 나도 안다. 하지만 때때로 진실은 진부한 법이다.

내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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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7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리만두

유부만두 2023-11-18 09: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요새 좀 그쪽이죠?
 

매일 책 이야기 올리기가 쉬운 게 아니었구나;;;

10월의 두 번째 금요일 오후 6시,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소각식은 11월 1일 오후 6시로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11월 4일에퇴실 절차를 밟아야 했다. - P272

로버트가 찾아낸 수집품으로 가득한 서재가 떠올랐다. 거기서리나가 즐겨 착용했다는 소품들을 본 적도 있었다. 샘이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연을 소개해준 적도 있었다.
"리나의 것을 자꾸 물어오는 로버트가 발트만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발트만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 갇힌 사람이야. 출구를 스스로 봉해버린 사람. 애초에 리나의 냄새라고 하는 것이그 사진 속 여자의 것이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었을 수도 있지. - P290

어떤 사람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고치면서매일을 살아나간다. 발트만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미 지나온 삶에 대해 뒤늦게 꿈꾸는 것이 무모한 일일까. 이미 흘러온 시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므로 영 가망 없는 일일까. - P292

"진실이요? 잘 보관하지 못해 부패해버린다면 다 의미 없는이야기죠. 때로는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버트 재단의 액자 틀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건 모두 믿고 싶은 얘기가 되지요. 그게 썩지 않는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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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1-04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어려운걸 하고 계신 만두님....

유부만두 2023-11-04 21:45   좋아요 2 | URL
으쌰!
 

이번 달 최고의 선택은 <소네치카, 스페이드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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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31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네치카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31 23:54   좋아요 0 | URL
우리집 양반이 세컨드를 두는 설정은 반대입니다. ㅋ
 

지난 달에 읽기 시작한 뇌과학 책들이 어렵지 않아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몇달 전부터 끌고 있던 챈들러 작품집 하권도 완독했고요. 그의 말년작에는 애잔할정도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말로 탐정이 나와서 측은지심도 느꼈습니다. 전자책 캐시백으로 읽은 <암컷들>은 넘치는 예시에 어지러웠지만 '여성다움'이란 편견은 쓰레기통에나 던져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교양고전독서>는 좀 쉽게 가볼까 싶어서 읽었는데 이 책이 고전 독서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저자는 따끔하게 얘기하더군요. 책은 자상한 문장으로 쓰였지만 선생님의 깐깐한 톤이 지배적이라 아주 재미있는 독서는 아니었고요. 이제부턴 읽고 몇줄이라도 기록을 남겨야지 요즘 북플에 예전 독서한 책이라고 올라오는 것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계속 놀라는 중입니다. 맞다. 그래서 뇌과학, 기억력 쪽 책을 읽기 시작했네요. <오토라는 남자> 영화에 나오는 책이라 읽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기대 이상으로 기괴발랄난리부르스심오문학 올인원이라 재독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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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01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치는 예시 ㅋㅋㅋ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저도 다시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불가코프는 왜 동물들에게 말을 하게 했는가.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02 15:12   좋아요 1 | URL
말 많은 사람들 만으로는 부족한가봐요. 개도 고양이도 다 할 말 참지 않고 쏟아내자!!!

단발머리 2023-10-01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he Brain> 저 안 읽었는데 표지 친근한 거 무슨 일일까요? 혹시 그 사정을 아시면 제게 좀 알려주시고요.
이 중에서 저는 <하비비>를 제일 먼저 도전하고 싶어요. 만화이고.... 에..... 성경과 코란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02 15:16   좋아요 0 | URL
하비비는 기독교인에겐 너무 쎈 이야기 아닐까 싶은데요? 근데 또 이게 미국백남 작가 작품이라 단발님의 관심사 중 하나인 “오리엔탈리즘”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을 거에요. 해주셈.

더 브레인 책은 알라딘 메인 화면에 많이 올라왔었어요. 저도 거기에 낚인…

호시우행 2023-10-02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쁜 목록표는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우고 싶네요. 알려주세요.

유부만두 2023-10-02 15:11   좋아요 0 | URL
북플의 독보적 칸에서 읽은 책 등록하고 히스토리 보기 화면을 캡쳐했어요. ^^

새파랑 2023-10-02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9월에 엄청 많이 읽으셨네요~!! 겹치는 책이 하나도 없다는... 10 월도 화이팅입니다~!!

유부만두 2023-10-02 20:58   좋아요 1 | URL
네, 10월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 새파랑님도 화이팅! 입니다.
 


누가 말을 하든, 음정이 낮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그 이유로 남성이 더 권위적으로 들리고 싶을 때 음정을 낮추는 것이다(어떨 때는 의식적으로, 어떨 때에는 무의식적으로). (258)








의도적으로 이런 남성적 낮은 목소리를 이용한 여성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스가 생각난다.



테라노스 사건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시리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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