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표지에 제목도 노란 얼굴. 의도적으로 갸름한 눈매에 저자의 이름까지 Kuang. 굳이 찾아 읽고 싶지는 않았다. 인종차별, 특히 아시안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담고 있을 '소설'이라 관심을 껐다. 그런데...


종종 들르는 독서 블러거의 감상은 "I devoured this book"이었다. 말 그대로 허겁지겁 삼키듯 읽었다고. 그냥 뻔한 아시안 주인공의 칙릿도 아니고 무거운 레이시즘 규탄만도 아닌 책이었다. 


매일 글쓰기 약속 덕분에 읽고 그냥 지나쳤던 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 매일 한 권 씩 읽을 순 없으니까요)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 


Athena Liu is a literary darling. June Hayward is literally nobody. Who wants stories by basic white girls anyway? But now Athena is dead. And June has her unfinished manuscript. From the New York Times bestselling author of The Poppy War Trilogy and Babel comes a darkly funny literary thriller. (알라딘 책소개)


주인공 화자 준 헤이워드(백인)는 아테나 리우(중국계 미국인)과 대학부터 친구 사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부자인데다 작가 재능까지 겸비한 아테나는 승승장구하는 반면 준은 책을 내긴 했지만 빛을 못 보고 있다. 뭔가를 쓰고는 있지만 편집자는 함께 신나하지 않아. 하지만 어찌어찌 준과 아테나는 남들 눈에 (과한) 우정을 나누는 상황이 되는데 준의 마음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날 아테나와 술을 마시고 그녀의 호화 아파트에서 간식을 먹다가 사고가 난다. 아테나가 음식물이 식도에 걸려 질식사했다. 


여기까지가 아주아주 초반에 빠르게 나온다. 


119를 부르고 당황하고 황망한 사이, 준은 아테나의 미발표 원고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글을 자기 식을 고쳐 발표한다. 이렇게 손 봤으니 이건 준 자신의 원고다. 아무도 이 원고의 존재를 모르니 (아테나는 늘 손으로 글을 쓰고 친구도 없다)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다. 다만 ... 이 책의 주제가 너무 아시안인 것이 걸린다. 1차대전 시기의 중국인 노동자. 그러니 조금 아시안스러운, 하지만 거짓말은 아닌 이름을 쓰기로 한다. 엄마의 처녀적 이름인 자신의 미들네임 Song으로 준 헤이워드는 주니퍼 송이 된다. 책은 엄청난 호응을 받는다. 리뷰도 좋고 판매실적도 좋다. 하지만 막상 행사에서 준을 만난 사람들은 그녀가 백인인 것에 놀라고 뭔가 미심쩍어 한다. 중국계 미국인의 커뮤니티 초청 행사에서도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사실 아테나도 미국서 나고 자라 중국어도 제대로 못했기에 준보다 더 중국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제발이 저린 준은 아테나의 엄마를 찾아가 혹시나 남은 증거가 있을까 살피는데 트위터에 준 송 (헤이워드)가 아테나의 살인범이며 원고를 훔쳤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준은 알 것만 같다. 여기까지가 중간. 


흥미진진진이라 사흘도 안 걸려서 밥책밥책책 하면서 읽었다. 특히 미국에서의 아시안 컬쳐에 대한 이야기와 출판계 뒷모습이 흥미로웠다. 아시안 문화는 누가 쓸 자격이 있는가. 


예전에 읽은 sf소설 <전갈의 아이>는 디스토피아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아프리카 문화에 관심이 많아 <아프리카 소녀 나모>도 썼으며 애리조나 주 출신 백인이다. 그가 다룬 멕시코와 아프리카 문화가 시혜를 베푸는 시선 아래 대상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프라 북클럽의 <어메리칸 더트>가 실제 중남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지 않고 대상화 하며 진짜 목소리를 담지 않았다며 멕시코 난민 이민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작가는 푸에트리코 출신의 이민자의 자녀이며 미국에서 성장해 아일랜드인과 결혼해서 미국 백인 사회에 더 가까운 배경을 가지고 있다. 반면 같은 소재를 다룬 청소년 소설 <장벽 너머 단 하나의 길>은 난민 출신 작가의 작품이다. 그럼 난민 기차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서 "더 진짜"라고 말할 수 있나? 증조부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리사 시Lisa See는 어떤가. <해녀들의 섬>은 한국의 해녀를 다루고 다른 책들은 <상하이 걸즈> <차이나 돌즈> 등 중국 문화를 다뤄  '21세기의 펄벅'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프랑스 태생의 엘에이 거주 중인 이 아시안 이름의 작가는 누가봐도 백인이다.  


그럼 아시안 문화와 소재는 그 혈통과 문화를 물려받은 집단에서만 창작 되어야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섣부른 '문화적 소유권 내지 자신감'으로 박상영 소설 안톤 허의 번역을 고친답시고 망쳐버린 재미교포 에디터의 일화를 기억한다. 더해서 한국 문화를 미국(백인) 독자의 입맛에 맞춰 멋대로 만든 한국 출신 작가의 소설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문화를 다룬다는 것은 작가의 출신보다는 태도와 실력에 달려있다. Yellowface 이 소설은 중국계 미국 작가가 백인 화자를 내세워 그 양면을 매우 재치있고 살벌하게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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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10-24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고맙습니다

유부만두 2023-10-24 19:20   좋아요 1 | URL
재밌게 읽으세요!

다락방 2023-10-24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옐로우 페이스 겁나 읽고 싶은데 번역서는 아직이네요.. ㅠ

유부만두 2023-10-24 19:21   좋아요 0 | URL
곧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올해 정말 인기있었대요.
영어 원서 도전 해보시면 어때요? 문장이 평이하고 전개가 빨라요.
 


<맡겨진 소녀>를 읽고 클레어 키건의 최근작, 작년 북커상 쇼트리스트에 올랐던 Small Things Like These를 읽었다. 맡겨진 소녀와는 다른듯, 비슷한 이야기. 역시나 사람들 사이의 보살핌과 연대를 고민한다. 

만40살을 앞둔 석탄, 목재상 빌리 퍼롱은 딸 다섯을 두고 성실 근면하게 일하며 산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의 일은 더 바쁘다. 매일 매일 챗바퀴 돌듯 사는 와중에 문득 가슴 한켠이 허전하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좀 생각도 하고 그러면 어떨까 하는 어쩌면 복에 겨운 고민이 움틀거린다. 실은 그가 특별한 성장과정을 거쳤기 때문인데, 거짓말처럼 만우절날 아비 없이 태어나 이만큼 가족을 이룬 것만 해도 감사할 처지인 것이다. 만일 그때 16살에 임신한 자신의 어머니 사라를 주인집 마님이 (다른 마을 주민들 처럼) 몰라라하고 내쫓았더라면 어쩔 뻔 했나. 

날은 추워지고 나무는 헐벗고 집집마다 석탄을 주문하고 마을 위 수녀원과 그 부속 세탁소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어려운 이웃들이 눈에 밟히는 빌리. 경기가 안좋아 문을 닫는 공장이나 일터가 늘어가고 술로 도피하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커가는 딸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세상의 고난을 빗겨가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생활력이 강하고 다부진 부인은 그런 그를 보며 '자신의 과오 탓으로 고생하는 이들'까지 생각하기엔 자신의 가족 보살피기가 더 바쁘다고 말한다. 남편의 무른 성정이 못마땅하지만 그의 성실함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성탄절 사흘 전 새벽, 수녀원 부속 세탁소에 간 빌리는 벌 받는 중인 게 분명한, 그 추운 날 헛간에 있는 소녀를 본다. 그녀는 아이를 빼앗겼다고 벌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수녀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영 마음에 걸리는 그 소녀의 이야기는 성탄절 이브 미사 내내 빌리를 괴롭힌다. 그리고 평생 갖고 싶었던 성탄절 선물인 아빠 그리고 직소 퍼즐을 생각한다. 누가 내 아버지일까. 누가 내 진정한 크리스쳔 이웃인가.

소설은 성탄절을 배경으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소외된 모자 가정과 그들을 냉대하거나 보살피는 공동체/개인들을 보여준다. 마리아는 나이 많은 요셉의 선의가 없었더라면 제대로 출산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예수가 태어남을 축하하는 성탄절에 말없이 노동에 착취당하며 아이 마저 빼앗긴 많은 미혼모들이 실제로 20세기 후반까지 아일랜드에 있었다.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희생당한 여성과 아이들(죽거나 해외로 입양보냄)이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일랜드 정부는 2013년에야 총리Enday Kenny가 정식으로 이 악행에 대해서 공식 사과했다. 이 소설에 Enda라는 아이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2022년 작고한 퍼트리샤 버크 브로건은 수습수녀로 접하게된 이 세탁소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한 착한 남자의 성탄절 이야기로 보이는 이 소설은 자모원 세탁소의 가혹한 상황에 집중하면 사회 고발 소설로도 읽힌다. 소설의 결말에 다가갈수록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빌리는 성탄절 이브,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일 그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거리를 헤매고 크리스 마스 트리와 아이싱 까지 완벽한 케익을 만든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에 결단을 내린다. 

소설 중에 몇 번이나 언급되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처럼 이 책은 성탄절의 새로운 클래식이 된 것 같다. 성탄절의 사랑을 베풀겠다고? 위선을 벗고 진짜 그들이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하고 행동해봐! 우리 빌리처럼. 성탄절에 멋진 표지의 번역서가 나오기를 바란다. (빌리네 딸들처럼 편지도 써볼까?)


페이퍼백이지만 앞 뒤 표지 겉날개를 크게 디자인하고 접힌 안쪽에 그림이 더 있다. 아름다운 시골 마을 표지 만큼 멋진데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은 외로운 새 한 마리 씩. 이 책의 전체 분위기를 알려주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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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5-23 0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_@;; 원서까지 이미 읽으시다니요@_@;;; 클레어 키건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하셨는데 바로 행동으로 옮기셨군요. 존경합니다^^

유부만두 2023-05-23 07:57   좋아요 1 | URL
짧은 소설이라 바로 행동!! 했습니다. 이 소설은 ‘맡겨진 소녀‘보다 더 묵직했어요.

Jeremy 2023-05-28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나서 Claire Keegan 한테 관심 생겨서
여러 잡지에 기재된 단편도 찾아보고
<Foster> 과 <Antarctica> 까지 읽었는데
<Small Things Like These>에 대한 페이퍼 알라딘에서
읽게되니 반갑네요.

유부만두 2023-05-30 08:14   좋아요 1 | URL
작년부터 키건의 소설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표지 때문에 앨리 스미스 사계가 생각났어요. 그만큼 어려울까봐 미뤄두었다가 Foster의 번역본을 읽고 너무 좋아서, 그리고 책이 얇아서 용기를 냈지요. 역시 읽기를 잘했어요. ^^
성탄절 모티브가 과하게 반복된다 싶다가도 인물들의 섬세한 속내 묘사가 맘에 듭니다. 단편집도 주문해 두었고요.

psyche 2023-06-18 0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맡겨진 소녀 읽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유부만두 2023-07-01 09:49   좋아요 0 | URL
얇은 책에 여러 겹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겨울에 읽으시면 (웨이팅이 길다니까... ㅎㅎ) 더 어울릴 책이에요.
 
Galatea: A Short Story (Hardcover)
매들린 밀러 / Ecco Press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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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셀” 피그말리온의 우윳빛깔 대리석 여인 갈라테아 이야기.

현실의 여자들을 혐오하며 만든 순수 완벽 여인, 그 여인이 “인간”이 되었을 때 피그말리온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뭘까? 그는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며 비너스에게 빌었을까? 바로, 육체를 가진 여인과의 결혼! 하지만 부인이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부정한다. 그는 인생의 동반자를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부리고 주인 대접을 원했다. 대리석 여인의 탄생 순간을 못잊는 나이든 조각가의 집착어린 행동은 끔찍하다. 그는 갈라테아를 윽박지르고 급기야 가둬버리는데 <누런 벽지>와 피츠제랄드도 생각난다.

여혐 신화를 다시 쓴 매혹적 단편. 결말은 아쉬움이 남지만 여성의 침묵 위의 흔한 마무리 happily ever after 를 부순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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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찟한 단편 소설집 <제비뽑기 the Lottery>를 읽고 특히 그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표제작을, 그 집단광기를 다룬 작가 셜리 잭슨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어쩐지 마음에 들어. 그런데 그 작가가 1940-50년대에 아이 넷을 키우며 지방 소도시의 백년 묵은 고저택에 세들어 살았다고. 작가가 남긴 육아 기록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당탕탕 야만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대 환장쇼. 


큰 아이가 세살, 둘째가 갓난아이인데 도시에 살던 셜리 잭슨은 집주인에게 이사 나가라는 연락을 받는다. 안그래도 이사할 생각이었는데 한달 열흘 남기고 이러다니? 친구가 있는 소도시로 집을 보러 다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저택을 구경'만' 했는데 그 주인이 수리 다 했다고, 월세 깎아준다고 해서 얼결에 이사를 간다. 그리고 그 저택에서 셋째가 태어난다. 유치원에 간 첫째가 이야기하는 같은 반 말썽장이 '챨리' 이야기가 바로 단편집의 그 <챨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아 .... 어쩌면 잭슨 소설의 그 '성'도 그 '귀신들린 집'도 바로 이 가족들이 사는 바로 이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박쥐를 잡느라 아빠는 총을 꺼내든다!  


아빠는 출장을 가고 아이 셋과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남은 엄마는 망가진 보일러 때문에 기술자를 부른다. 아, 그런데 현금이 없.... 어서 아들 저금통을 식칼로 짼다. 그 모습을 보는 기술자의 표정이라니. 상상 친구가 매우 많은 (실은 상상 속의 대 가족임) 딸 제니는 부를 때 마다 이름을 달리 하기 때문에 집밖에서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상상 친구 만큼이나 상상 이야기가 현실과 섞여서 가족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런데 엄마는 그 상상을 구별해 내는 재주가 비상도 해서 아이와 '놀아준다'. (엄마들은 일 안해! 엄마들은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거야!라고 둘째 제니는 주장한다) 셋째 아이를 분만하러 병원에 가서 셜리 잭슨이 직업이 작가라고 말하니까 병원 간호사는 '가정주부'라고 받아친다. 아이 아빠 이름을 묻자 진통으로 짜증난 셜리 잭슨 왈 '아 몰라요!' 간호사는 '남편 아이가 아니란 말이에요? 남편이 그걸 알아요?'라고 다그친다. 이런 식의 시트콤 같은, 생활 밀착형 엣세이다. 책 끝부분엔 넷째 아이가 태어나고 위의 세 아이들은 갓난 동생을 보며 '왜이리 작아요? 이거it 말고 다른애 없었어요?'라고 묻는다. 짜증난 엄마는 '응 더 큰 애 데려 오려고 했는데 의사가 남는 애가 얘 하나래서 그냥 데꼬 왔어'라고 대답한다. 책 마지막엔 짧은 부록으로 남편 Hyman이 쓴 광고문이 달려있는데 내용인즉슨 그들이 사는 집이 바로 귀신 들린 집이라는 반쯤 농담, 하지만 반쯤은 진담인 글이다. 


셜리 잭슨은 알콜(+마약) 문제가 있었고 성격도 별났으며 남편은 외도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엣세이엔 마약이나 외도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술 커피 담배 이야기가 임신 육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호러 작가의 가족 이야기라니 정반대의 이미지가 주는 재미도 있고, 작가가 당연히 사생활을 포장해서 썼겠지만 가정주부(아니고 작가!!!)가 아이들 키우고, 먹이고, 가르치고 (맞고 오면 그 애 엄마랑 싸우고), 면허 없어서 운전 면허 따고, 중고차 속아서 사고, 차는 자꾸 고장나고, 아이들은 말썽이고 등등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웃으면서 동시에 서글픈 마음이 든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대출 연장하러 어린 딸들 데리고 (동정심 유발 작전) 은행에 가는 장면에서. 


한편, 독자들에게 더 잘 알려진 다크 버전의 셜리 잭슨은 Merrell의 "소설" <Shirley>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2020년에 나왔다. 









그래도 나는 아직 소설과 작가를 분리해 놓고, 생활 엣세이의 셜리 잭슨 쪽을 더 읽고 싶다. <Life among the Savages>의 후속작으로 <Raising Demons>도 있고 (아, 제목 봐바... 야만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아도 결국 괴물을 키우는 게 엄마들 일이라니) 2015년에 나온 사후 엣세이집 <Let me Tell you>도 있다. 표지의 엄마는 도망치는 중일까, 외박 후 숨어 들어가는 (대낮에) 중일까. 치마에 힐까지 신고서 2층에서 저런 모습은 어느 쪽으로도 불안하다. 마치 셜리 잭슨의 소설이나 아이 넷 키우며 글을 쓰는 엄마의 생활처럼. 아이 둘에 가끔씩 단기 알바로 연명하는 나는 그 어두움, 고딕호러에 어쩔 수 없이 끌리고 만다. 그러하다. 나는 이제 발톱에서 벗어나서 셜리 잭슨 고딕 월드로 들어갔다! 


이제 셜리 잭슨 평전을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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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1-19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이징 디먼스 저 고앵이 표지 마음에 들어서 이 책부터 읽어야 하는구나하고 에세이집 세권 다 구해는 놨지만 느낌을 알 수 없었는데 덕분에 호기심 생겨요. ㅎㅎㅎ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였너 그것도 고저택 이야기가 녹아있었겠네요.

유부만두 2023-01-19 09:51   좋아요 1 | URL
savages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성 잡지에 발표 했을 때도 꽤 인기있었대요. 재치있는 주부 생활 엣세이 장르의 시초라고도 하더라고요. 아이들 그것도 넷씩이나 키우면서 교외에 살면 에피소드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고저택, 집단 광기,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악 ... 이 모든것들을 생활에서 끌어다 소설을 만들었겠다 생각해요.

유부만두 2023-01-19 12:40   좋아요 1 | URL
평전 읽는 중인데요, 셜리 잭슨의 외가쪽 증고조 할아버지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축가였대요. 유명한 건물들 저택들을 많이 지었다고요. 고객중 유명인은 스탠포드가 있어요. 그래서 힐사이드의 유령 쓸 때 자료 조사 위해서 친정 엄마에게 질문하는 편지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저택들은 모두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무너져서 제대로 탐사는 못했지만 헌티드 하우스라는 주제, 이미지는 아주 오랫동안 잭슨의 마음에 있었나봐요. 꼭 자기가 살게 된 고택 말고도요.

persona 2023-01-19 15:36   좋아요 0 | URL
에세이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고택 이야기들도 꽤 조사하고 쓴 작품이군요. 재밌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북극곰 2023-01-19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워라.
간만에 와서 또 혹 하고 갑니다. 헤헤. 잘 지내시죠. 늦었지만 복 많이 받아요!!!

유부만두 2023-01-26 16:36   좋아요 0 | URL
셜리 잭슨 생활 엣세이 꽤 재밌어요.
북극곰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

psyche 2023-01-23 0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끌리는데!

유부만두 2023-01-26 16:37   좋아요 0 | URL
재밌어요. 평전 말고 생활 엣세이요.
평전은 아직 초반이지만 소설을 셜리 잭슨과 동일시 하고요.
 

장안의 화제작 로맨스 소설 Book Lovers를 나도 드디어 읽었다. 재미있는데 또 기대 만큼은 아니어서 (제목이 이토록 매력적인데), 싫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티비 시트콤 프랜즈, 길모어 걸스의 그 유모어 섞인 말 주고 받기, 쎈척 툭하면 F-word 쓰기, 이런 저런 문학 인용하기(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 너무 좋았다?) 뉴요커가 시골가서 찐사랑 찾는 이야기(앨러배머 어쩌고 하는 영화) 등 너무나 90년대~2000년 초반 분위기였다. 셰릴 크로까지 언급하는 부분에서 저절로, 그치? 작가님 내 또래 아니셔? 생각했지. (작가는 그 시절 어린이, 난 이미 어른으로 다른 세대려나) 어쨌거나 흔한 로맨스 플롯을 책 서두에서부터 까고 있더니 이 소설은 그 틀 안에 얌전히 들어앉는다. 







30대초 작가 에이전트 노라는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인) 동생 리비와 시골 마을로 여행온다. 그런데 그곳에서 밥맛 편집자 (비싼옷 입음. 쫌 생김. 뉴욕에 집 있음) 챨리랑 자꾸 맞닥뜨린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작은 동네이기 때문. 그런데 그 동네서 리비는 언니의 인터넷 소개팅을 주선하고, 언니는 길가다 훈남도 만나고, 그러니 그 세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 친척 사이고 . 챨리랑 같이 교정보게 된 원고에 어째 노라를 닮은 영화 에이전트가 등장하고. 일 같이 하면서 정들고. 그런데 노라는 동료랑은 선 안 넘기로 했는데 자꾸 금 밟고 금 넘고. (니 심장을 따라가요!) 동생과도 갈등이 생기고 묵은 '슬픔+걱정'이 터져버리고 사랑을 확인하고 (이야기가 늘어지면 뽀뽀함. 책 전체에 f-word는 넘치는데 이 사람들이 l-world는 쑥스러서 아낌. 에로틱한 장면도 은근 공들여서 순하게, 따뜻하게 묘사해서 읽으면서 흐믓했음. *^^*). 그리고 완독. 267쪽 인용과는 달리 이 책의 마지막은 내게 surprise를 안겨주지 않았다. 


Bye bye, Emily Henry. 우린 여기까진가 봐요. 

If you could have any treat, from any book, I asked her, what would you choose?
She picked turkish delight, like Edmund ate in Narnia. I picked fronbscottle from The BFG, because itcould make you fly. That night, the three of us watched Willy Wonka and cleaned out the remains of our Halloween candy. - P223

Libby and I used to joke that Freeman Books was our father. It helped raise us, made us feel safe, brought us little presents when we felt down.
Daily life was unpredictable, but the bookstore was a constant. - P225

Sometimes, even when you start with the last page and you think you know everyting, a book finds a way to surprise you.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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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5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셰릴 크로, 검색해 봤어요. 상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제가요 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이 아마존 로맨스 1위더라구요, 작년에요. 저도 읽은거라 나도 모르게(베셀도 좋아하는 1인) 좋아했습니다.

쫌 생김 아니고 잘생김이라고 저는 이해했단 말이지요. 남주 아닙니까. 하하하하하.

유부만두 2023-01-15 23:06   좋아요 1 | URL
ㅋㅋ 셰릴 크로가 도핑 문제로 시끄러운 랜스 암스트롱과 약혼했었어요. 그때 나 노란 밴드 팔찌 산 사람;;;;

아, 그쵸. 챨리 잘 생겼어요. 뉴욕에 부동산도 있고. 어휘력도 있고 근데 툭하면 F.... 라고 내뱉어서 아유 싫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촌형 나오는 설정은 너무 손가락이 오그라들어서 ... 그래도 재밌게 봤어요. 베스트 셀러는 이유가 있는거죠.

단발머리 2023-01-15 23:08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사람 책 두 권 더 읽었다는 이야기… 유부만두님께 했던가요. 이게 제일 재미납니다. 탁월한 선택이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01-15 23:12   좋아요 1 | URL
아아니 그럴수가!!! 이건 순두부 로맨스던데요??
뭐 배신도 양다리도 없고 사람도 안 죽고 서로 말로 상처도 주다 말고

이 책이 제일 나았다...흠.. 역시 제목이군요. 책 러버. 됐어요 그걸로.
나 히스클리프에요. (알죠, 이 인용? - 눈 찡끗. 이 부분 읽으면서 폭풍의 언덕 다시 읽고 싶더라고요)

단발머리 2023-01-15 23:17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부분 기억나요 ㅋㅋㅋ 줄도 막 그었습니다 ㅋㅋㅋㅋㅋ 나는 히스클리프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