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기 할망'이라고 불리는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다. 아직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음식을 먹을 때도 다른이들과 함게 할 수 없고 물질도,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 무엇보다 저녁노을이 붉을 때나 집을 잠시 나설 때도 '그날'이 살아나서 겁에 질려 서있기도 힘들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구덕에 든 해물을 나눠도 주는 따뜻한 할머니. 그림책은 아름다운 제주가 겪은 아픈 역사를 알려준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림을 오래 보기가 어려웠다.

 

할머니 주위 사람들이 '모로기 할망'에게 계속 손을 내밀고 있다. 이 그림책도, 함께 읽은 우리집 아이도. 사람이 증거고 그 목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둘 다 '저학년용 도서'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지우개똥 쪼물이'와 '조막만한 조막이'는 아주 다른 이야기다. 조막이는 전래 동화를 비틀어서 유머와 다시보기를 시도했고 쪼물이는 생활에 판타지를 가미한 동화다. 쪼물이는 얇고 스토리도 단순해서 저학년이 혼자 읽기로도 적당해 보인다. 그림도 귀엽고.

 

지우개로 쓴 글이나 그림을 지우면 지우개 밥이 나오는데 맞다, 똥. 그걸 모아서 동그랗게 뭉치면 말랑거리고 고무 찰흙 느낌도 나서 뭔가를 계속 만들고 싶어진다. 치우고 훅 불어버리자면 너무 많아 귀찮은데 뭘 만들려고 드니 아쉬운 양이다. 뭘 지워야하고, 뭘 더 그리고 써야 해. 이 과정을 기꺼이 하는, 공부 말고 딴거 다 재밌는 애들 모여바바!!!

 

아이들은 억지로, 꾸중 들으며 지울 때가 더 많다. 숙제가 틀려서, 잘못 그어서, 계산이 틀려서. 눈물도장, 노력도장을 받아서 한숨을 지으면서 지운다. 그런데 그런 지우개 똥은 냄새나고 맛이 없대. 재밌게 그리고 쓰고 놀다 나오는 지우개똥은 향기도 나고. 누가 먹게요? 지우개 똥 인형이요.

 

유진이네 반 선생님은 깐깐하게 아이들의 실수를 다 지적하고 지우게 하고 혼을 낸다. 그리고 칭찬을 아낀다. 아이들은 풀이 죽고 주눅들어 손가락으로 지우개똥을 모아서 쪼물거리다 인형을 하나씩 만들어 위안을 받는다. 또 금세 잊어버리고 자기들 끼리 논다. 그리고 집에 간다. 학교에 남은 지우개똥 인형들, 쪼물이 헐렝이 짱구 딸꾹이 들은 아이들이 시무룩한 원인, 선생님이 칭찬도장 대신 찍어주는 '눈물도장'을 없애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눈물 도장은 엄청 크고 또 힘이 세고 무서워. 게다가 부리는 벌레 부하들까지 여섯이나 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어야 힘이 나고, 지우개 똥 인형들은 지우개 가루를 먹어야 힘이 난다. 지우개 가루를 더 만들려고 쪼물이와 일당들은 샤프심을 하나씩 들고 낑낑 그림을 그려놓는다. 아이들이 그 위에 더 그림을 이어 그리고 글도 쓰고 또 지우면서 지우개 가루가 생긴다. 잘못 써서 혼나며 지우는 게 아니라 좋아서 놀면서 지우개 가루가 생긴다. 쓸모 없는 똥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주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들 집에도 따라가는 지우개 인형들. 아직 아이들과 교류가 없지만 아이들 대로, 쪼물이들 대로 다녀서 귀엽다.

 

어제 4월 15일은 '지우개의 날'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화학자 조셉 프리스트리(Joseph Priestley)가 고무의 지워지는 성질을 알아낸 날. 지우개의 날. 나는 어릴적에 지우개똥으로 뱀을 만들었었는데. 회색빛 뱀. 또아리를 틀어놓으면 똥처럼 보였.... 그런데 지우개를 닳도록 쓰는 아이들은 없다. 쪼개거나 잃어버리거나 지우개 따먹기로 빼앗기거나. 그 많은 지우개들은 어디에 갔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막만 한 조막이 휴먼어린이 저학년 문고 5
이현 지음, 권문희 그림 / 휴먼어린이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얼굴 비유로 쓰이는 말, '조막'은 주먹의 옛말이다. 주먹만큼 작은 아이, 조막이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나라 판 엄지공주 같달까, 하지만 다른 동화책의 조막이 보다 이현 작가님의 조막이는 조금 더 크다. 다행히. 서당에 다닐 만큼, 친구 심부름을 다닐 만큼, 도적떼가 주머니에 쏙 넣는 대신 다른 걸 덮어 씌워 잡아갈 만큼, 새가 채 가거나 소가 먹어버리지 않을 만큼, 그리고 입던 옷이 작아져서 소매가 쑤욱 배가 빼꼼 나올 만큼. 그리고 세상이 심심해서 꾀를 쓰고 장난을 칠 만큼.

 

조막이가 아이들보다는 엄청 작지만 그나마 키가 큰 비법은 '잠'이었다. 자고 또 자고 게으르게 뒹굴거리고 밍그적 거리는 이 잠뽀가 어쩐지 낯 익었어.... 지금 군대 가 있는 우리집 큰 애...키도 친구들 보다 작아서 맘이 짠했는데 잠도 많고 침대에서 늘 뒹굴어서 Bed Boy 였던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고 보초도 선다고 한다. 네 손에 우리 나라 국방이 달린게냐. 남북 관계가 '봄이 온다'지만 이 엄마는 잠이 잘 안온다. 이등병 잘 해야 한다.

 

세상에 나온 방식도 별나고 산골의 저 깊은 곳에서 부모 사랑 담뿍 받다가 슬픈 사연 안고 마을로 내려와 고생하며 사는 조막이네 가족. 뻔하세요? 흔한 전래동화, 조막이의 용기와 모험, 효도와 보은 이야기 같다구요? 아닌데요? 이건 .... 페미니스트이며 미래학자인 서당 훈장과 동네 아이들, 학교 내의 권력 관계 재고찰,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심리극, 박첨지와 결탁된 비리 공권력 패주기, 토지공개념과 아나키스트 재해석, 증시의 선물교환과 경제 교실 이야기, 고정관념의 위험성에 대한 걸랑요? 그렇고 그런 어린이 주인공이 나쁜 사람 혼내주고 성공해서 부모 어깨 뽕 넣어주는 전래동화로 아셨구나. 촌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읽는다고 애들이 깨달아서 스스로 공부하고 효도할 ... 리가 없잖아요. 아시면서. 그냥 재밌고 많이 똑똑한 이야기를 읽게 하는 게 더 나아요. 똘똘한 조막이, 남과 다른 조막이, 그런데 기죽지 않고 건강한 조막이 이야기를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16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72쪽 표현 고쳐줍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v책한엄마_mumbooker 2018-04-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다 넘어갔다는게..

유부만두 2018-04-12 20:04   좋아요 0 | URL
그쵸?....

북극곰 2018-04-1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옳소!
 

색을 잃는다는 건 선택과 자유, 그리고 인간성을 잃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는 생각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어딘지 괴짜인 열두 살 소년. 빨간 두건으로 얼굴 가리고 다니는 130년 후 미래 세상의 아이. 핵전쟁 참사 후 100년의 암흑기를 지났고 남아있는 인간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통합국 '미르국'을 세워 평화롭게 살고있다. (왜 미르, 하면 자꾸 다른 사람이 생각나고 그르지요?) 저 바깥 세상은 오염되고 황폐한 곳이라 안전한 미르국 '내'에서만 첨단 기술과 완벽한 기술 및 제도로 보호받는 인간들. 그런줄 알았지만. 띠로리.

 

상민의 엄마는 로봇, 할리의 제조자였고 늘 바쁘고 차가운 엄마였다. 큰 일 하시는 분이니 방해를 해서도 투정을 부려서도 안됐다. 그나마 친절한 운전사 할리 제이슨이 상민의 곁을 지켜준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강제로 급식하는 바누슈슈, 의식을 잃었던 친구 제제가 할리가 된 사실과 새 대통령이 실은 할리라는 비밀을 알게된 상민이는 도망쳐 나와버린다. 제이슨과 함께. 가출 서사. 빠라밤.

 

이제 어디로 가는가. 미르국 바깥으로. 방사능 오염으로 찌든 불모의 땅인줄만 알았던 바깥에 바다가, 깨끗한 해변의 우사카 섬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형형색색의 숲과 동물들. 그리고 자연치유까지. 마더 어셈블러 기계와 여왕 개미의 비유, 할리와 인간. 문명과 자연의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결국 전쟁과 화합이라는 무거운 주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안겨주며 소설은 끝난다.

 

한 줄에 한 문장. 짧고 빠른 호흡,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독자를 몰아가기 때문에 우리집 열두 살 소년은 흠뻑 빠져서 읽고 '엄마, 이거 읽으세요. 꼭 읽으세요' 독촉했다. 읽다보니 아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더라. 냉정한 엄마, 자신의 복제품으로서의 자식을 원하는 엄마,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자식을 '죽여 버리'기도 하는 엄마 이야기. 하하하 공부가 그리 싫고 매일매일이 섪더냐.

 

사랑을 믿고, 모든 걸 의심하고 네 자신을 찾아라. 이건 뭐 코기토 에르고 숨. ...  지나치게 안전하고 건전한 주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초반부터 (제이슨 (본?)의 아이덴디티는 눈치챘고) the Giver 기억전달자달빛 마신 소녀와 비슷해서 몰입이 힘들었다. 초반에 던져놓은 여러 소재들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끝내버리고 한국 특유의 정서, 핏줄이 최고,라는 믿음은 불편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v책한엄마_mumbooker 2018-04-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저도 읽자마자 뭔가 어디서 읽고 많이 붙여 놓은 동화같단 생각을 했어요.-0-마지막에 유부만두님께서 하신 말씀 제가 쓴 글인줄..그래도 꼭 애들이랑 읽어보고 싶네요.^^

유부만두 2018-04-12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클라이막스는 일부러 숨겼어요. 흐름이 빠르고 감정표현이 즉각적이라 아이들이 ‘시원하게’ 여기며 읽어요. ^^

단발머리 2018-04-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 마신 소녀>는 사 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었고, <더 기버>라면....
아아~~ <더 기버>는 정말 인생책이죠. 전 참 좋더라구요.
불편하신 지점은 공감이 되지만, 열두살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완전 귀가 쫑긋해지네요. 저희 집 소년의 마음도 좀 사로잡아달라~~~
컬러보이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유부만두 2018-04-12 20:09   좋아요 0 | URL
더 기버!!! 인생책이죠!

달빛...은 좀 지루하고 번역도 쫌 그래요. 큰 기대는 접어두고 읽으세요. 컬러보이는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읽을거에요.

단발머리 2018-04-12 20:30   좋아요 1 | URL
오늘아침에 도서관에 컬러보이를 상호대차 신청했어요. 브이^^

유부만두 2018-04-12 20:36   좋아요 0 | URL
빠르시군요! 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