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 - 달인편 건방진 우리말 달인 시리즈 2
엄민용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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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KBS1TV <우리말 겨루기>(월요일 저녁 7시 25분)의 열혈 시청자다. 지금은 사정상 월요일에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전에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챙겨 봤다.
 

작년에 13대, 14대 우리말 달인이 탄생한 이후 오랫동안 15대 달인이 나오지 않아 '달인 탄생'을 몹시 기다리고 있다.(그 주인공이 내가 된다면 더욱 좋겠고 말이다!)

 

"흥! 나도 우리말 달인이 될 수 있다고!"라고 말하는 건방진 폼의 강아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 책 읽으면 나도 우리말 달인이 될 수 있을까?' 부푼 기대로 책을 펼쳐들었다.

 

이 책은 <우리말 겨루기>의 달인 도전 둘째 문제 준비용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달인에 도전하는 마지막 한 명이 푸는 문제 중에는 헷갈리는 표현 두 개를 함께 제시하고 맞는 것을 고르도록 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사십구제/사십구재를 지냈다'

'정화수/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했다'

'걸판지게/거방지게 잘 놀았다'

이런 식인데, 달인 도전자도, 텔레비전 앞에서 함께 푸는 나도 틀리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헷갈리기 쉬운, 혹은 우리가 몰라서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표현들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있다. 무조건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가 아니고, 이 말은 이러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혹은 이러이러한 어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쓰면 안 되고 이렇게 써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몇 년 전에 '태껸'과 '택견'의 표기를 놓고 어느 게 맞는 건지 무척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사전에는 '태껸'으로 나와있지만, 인터넷 검색을 거듭 할수록 점점 아리송해졌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예전에 태껸이라 표기 했는데 88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택견이라 등록되어 택견이 맞는 말입니다.'라는 글도 있고, 위키백과에도 '택견 또는 태껸한국무술, 민속놀이이다.'라고 나와 있다. 그래서 '태껸'과 '택견' 둘 다 맞는 말인가 보구나, 혼자 결론을 내리면서도 내심 찜찜함을 떨치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정답을 알 수 있었다. 속이 다 시원하다!(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지만 '거짓 정보의 바다'이기도 하다는 점을 꼭 염두해 둘 것!)

 

이뿐만 아니라 사이시옷 규칙이라던가, 외래어 표기법, 띄어쓰기 원칙 등을 알기 쉽게 전해주고 있어서 무척 감탄했다. 전에는 아무리 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던 내용들이 어쩐 일인지 깔끔하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물론 돌아서면 까먹으니 틈틈이 반복해서 읽고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이 책에 앞서 <건방진 우리말 달인>이 나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책도 무척 기대가 되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나와 있는 한 문장이 무척 눈에 거슬려 아쉬웠다.

"자, 파이팅!"

저자 '우달(우리말 달인)'이 지금까지 실컷 바른 우리말을 전수해주고는, '파이팅'이라는 말로 마무리 하다니, 경악!

책에 보면 언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살아 있는 말이 내일은 죽을 수도 있고, 오늘 없던 말이 내일 탄생할 수도 있고, 지금은 표준어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표준어로 허용해야 할 타당성이 있다면 표준어로 채택하는 게 마땅하다는 주장이 여러 번 나온다. 혹 이 책의 저자가 '파이팅' 역시 그런 말로 생각하고 거리낌없이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파이팅'을 반드시 순화해야 할 말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파이팅'을 '힘내자'로 순화한다고 적고 있다. '힘내자'나 '아자' 또는 '아자아자' 같은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파이팅'처럼 의미도 맞지 않는 '가짜 외래어'를 쓸 필요가 있는가 씁쓸한 마음이다.

 

흥분해서 말이 좀 길어졌는데(앞서 말했지만 '파이팅'은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말이기 때문에!), 마무리가 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우리말이나 글 잘 쓰는 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특히 나처럼 '우리말 달인'을 은근슬쩍 노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흥! 나도 우리말 달인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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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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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데뷔작이 번역되어 나왔다. <엄청나게……>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지라 '조너선 사프란 포어'라는 이름만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은 대학생이던 작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해 준 한 여인을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떠났던 모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결국 그 여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두툼한 한 권의 소설로 재탄생 되었으니 결코 헛된 여행은 아니었으리라.

 

이 책은 주인공 조너선의 우크라이나 여행, 우크라이나에서 조너선에게 통역을 해주었던 알렉산더의 편지, 조너선 가문(?)의 과거 이야기 등이 계속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책을 괴로워하는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워낙 그 넘나듬의 경계가 뚜렷한지라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오타가 아무리 많아도, 문장이 아무리 이상해도 전혀 거리낌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은 최근 몇 년 들어 처음이었다.(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도 까칠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을지. 후자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모든 게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에서 보여준 '문학적 실험'들이 이 책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보여진다. 역시 조너선답다. 그 엉터리 문장들이 이 책의 묘미라면 묘미다. 알렉산더가 조너선에게 통역을 해주던 장면에서는 그 엉터리 통역과 엉터리 문장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만 지하철에서 정신줄 놓은 여인네처럼 웃어버리고 말았다나 뭐라나.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알렉산더, '맹인견'을 데리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맹인견', 그리고 그들에게 모든 여정을 맡겨야 하는 조너선의 기묘한 '여행'이 계속되면서 점차 이야기는 베일을 벗어가고, 모든 것이 밝혀지는 그때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앞에 등장한다. 아무튼 조너선 사프란 포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다 엄청나게 뛰어나고 믿을 수 없게 흡인력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에 한 표.

 

 

폭포 옆에 사는 사람은 물소리를 듣지 못한다고들 하지.

그런 얘기가 있어요?

……

폭포 옆에서 산다는 건 이런 것이란다, 사프란. 수년간 순수하고 확고한 비탄에 잠겨 나날을 보내던 과부들도 어느 날 아침 문득 깨어나 밤새 편안히 잤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침밥을 넘길 수 있게 되고, 남편의 유령이 항상 내는 소리도 가끔씩밖에는 못 듣게 되는 거지. 과부의 슬픔은 실용적인 슬픔으로 대체된단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도 어떻게든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 법이지. 목재도 빛이 바래기 시작한단다. 모서리도 무뎌지는 법이고. 상처도 사라지지. 어떤 사랑이든 상실로부터 깎여 나오는 거야. 내 사랑도 그랬고. 네 사랑도 그렇지. 네 5대 후손도 그럴 거다. 하지만 그런 사랑 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39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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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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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이야기는 감방에서 진행된다.
 

사람들이 '불멸의 신'이라 부르는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사령관은 사형수 네 명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의 내용은 이렇다.

다음날 아침까지, 준비 된 종이에 누구든 한 명이라도 '불멸의 신'의 이름을 적기만 하면 네 명 모두 살려준다, 이름을 적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염려할 것 없다, 하지만 누구도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경우에는 아침에 바로 사형이 집행된다.

'죽음과 치욕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두 종류의 치욕, 즉 치욕을 안고 사느냐와 치욕을 안고 죽느냐'(38)하는 선택을 던져준 것이다.

사령관이 떠난 뒤, 죄수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위안실'로 보내진 네 명은 마지막 순간 눈안에 품을 행복을 이야기하기로 하고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자신의 목이 둥근 구멍으로 들어가고 차가운 칼날이 내려와 목을 베이게 될 순간, 하고 많은 지난 세월들 중 어떤 모습을 눈앞에 떠올릴지'(60~61)에 대해서.

그리하여 나르시스의 사랑 이야기, 인가푸의 동생을 기리는 이야기, 아제실라오의 단검에 피를 묻힌 이야기, 살림베니의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이야기 들이 그들의 마지막 밤을 장식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시나브로 날은 밝아오고,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쳐다보는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과연 그들은 치욕을 안고 죽을 것인가, 치욕을 안고 살 것인가.

 

그리고 나라면, 내가 생의 마지막 밤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면 과연 어떤 추억을 끄집어낼 것인가 하는 생각에 가만히 잠겨보기도 했다.

 

한 번 잡으니 손에서 놓기 쉽지 않은 책, 멋진 책이었다. ★★★★★

 

 

"사랑은 부싯돌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불꽃이 아니라, 영혼의 자연스런 연소입니다. 날름거리던 영혼의 불꽃이 확 타올라 자신 밖에 있는 존재를 찾아서 불을 붙이는 것이죠. 사랑은 잡히지 않는 모호한 감정이고, 서로 모순된 성격이 들어 있어서 이름은 하나지만 증상과 결과가 아주 다양한 병과 비슷합니다. 사랑이 저를 어떤 지경으로 이끌어 갔는지 지금 여러분 모두가 보실 수 있습니다. 저를 파멸로 이끌었죠. 하지만 전 사랑을 저주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이 어떻게 이해될지 모르지만, 사랑 때문에 행복했으니까요."('강에서 구출된 나르시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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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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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드디어 만나봤다. 서너 권 사둔 책 중에서 일단 제일 흥미로워 보이고, 제일 얇은(!) 이 책으로 골라서.

아멜리 노통브의 책도 처음이지만, 희곡도 처음이다. 이렇게 얇은 책도 오랜만. (앨범으로 치자면 싱글 앨범을 듣는 기분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불쏘시개'로 쓰이는 것이 바로 '책'이니까, '불쏘시개=책'.

책을 불쏘시개로 쓰다니! 상상만 해도 무서운 제목이고 이야기다.

시집간 동생이 집에 다니러 오면 내 방 책장을 휘휘 둘러보다가(뭐 빼갈 거 없나 하고!)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언니, 만약에 집에 불이 났는데, 책을 한 권 밖에 못 가지고 나가게 되면, 무슨 책 가지고 나갈 거야?"

그러면 나는,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김연수 작가 책이지!!"라고 외친다,라고 하면 너무 빤한 대답이 될 거고,

내 대답은 이렇다.

"염려 마, 내 팔자에 불 사고 없대."(정말로 작년에 내 관상을 봐주신 분이 그랬다. 차 사고, 불 사고, 물 사고 하나도 없다고. 오예!)

아무튼, 겉으로는 태연한 척 사주팔자 운운하지만, 그런 질문 들을 때마다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부, 불이 난다면, 이 책들, 내가 사랑하는 이 책들 어떡하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원통하게 화재가 일어나서 책을 화염에 빼앗긴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책으로 불을 피운다. 때는 한창 전쟁 중이고, 겨울이며, 난로가 굶은 지 오래 되었고, 남자보다 추위를 더 타게 되어 있는 여자가 졸도할 것 같은 추위를 참지 못하고 책을 불태우면 얼마나 따듯할까 생각하게 되므로. 하지만 책을 태우는 것은, 어떤 책을 태울까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무인도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입니까?> 난 항상 이런 질문이 좀 어리석다고 생각하네. 말도 안 되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 질문을 거꾸로 한다면, 아주 중요한 질문이 되네. 이를테면 어떤 책이 없애기에 아주 손쉬울까?(26)

 

이 과정을 거쳐서 서가의 책들은 하나하나 난로의 밥이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전쟁과 추위에 지친 그들에게 잠깐이나마 온기를 마련해 준다.(책 한 권에 2분 쯤 탈까?) 과문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이 실제 있는 책인지, 그렇다면 그 책들이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인지 알 수가 없어 그들이 책 한 권 한 권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지켜봤다. 하지만 그 대상을 내 책장 속의 책으로 바꾸어 생각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쩐지 마지막 2분의 온기를 위해서 마지막 한 권까지 난로 속으로 던져 넣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마지막 책이 바로 내가 아껴 마지않는 김연수 작가 책이 될테니!)

 

'어떤 책이 없애기에 아주 손쉬울까'를 고민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책에 대한 내 마음을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내 결론은, 문학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심지어는 금전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느냐에 상관없이, 그저 내 마음에 가장 기쁨을 준 책,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 책이 내겐 최고 좋은, 없애기에 손쉬운 순위에서 꼴찌로 밀리는, 무인도에 가져갈 책이 될 거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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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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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을 보내던 사춘기 시절을 생각나게 해주는 제목이었다.

지금이야 머리에 꽃 하나 꽂으면 딱 어울릴 정도로 "인생은 즐거워~!" 주문을 외며 살고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모든 게 다 우울하고, 그 너머의 삶이 있기는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삶'이라는 말이 어쩐지 목을 옥죄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왜 사춘기라는 게 있을까?"

마시타는 그때 그런 말도 덧붙였다.

"그거, 그냥 하는 말일 거야."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버렸다는 겸연쩍음 때문에 그 화제를 일부러 가볍게 무시하려 했다.

"아니, 분명히 있어. ……어째서 인간은 이 시기에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될까……, 뭔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성욕의 충동이 강해져서 혼란스럽다, 그렇게들 말하지? 하지만 그 밖에도 뭔가……."(83~84)

 

'그 밖에도 뭔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던 그 사춘기 시절이 이 책과 함께 다시 떠올랐다(제목에서 받은 느낌이 맞았던가 보다). 실재인지 환상인지 모를 영상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 혼란스러운 남자, 오래 전에 일기장 한 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친구, 열여덟에서 몇 달을 지난 나이에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선고받은 소년, 사형을 집행하던 순간의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사는 교도관 등의 이야기가 순서없이 얽혀 나온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에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으로 인해 사형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적이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형 제도에 관한 교도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사형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다. 인간의 존엄이니, 유족의 심정이니, 이 책에서 여러 각도로 사형을 들여다보려 하고 있지만, 도대체 어느 저울로 그것들의 가치를 잴 수 있는 건지.(사형 집행 장면은, 솔직히 가슴이 아팠다. 지하철에서 그만 눈물이 뚝뚝 떨어져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을 이겨내지 못한 마시타가 남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마시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온갖 소소한 고민거리들에 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또 그때의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를 지금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는 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사춘기에 대해, 그리고 사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준 책이었다. 얇고 술술 읽히지만, 읽고 나서 머리를 묵직하게 만들어주는 책.

 

너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해. 이 세상에 얼마나 멋진 것들이 많은지.(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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