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년의 왕국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6월
평점 :
어쨌든 거슬를 수 없는 트렌드이며, 유일한 보증수표가 되었나 보다.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것, 역사적 사실의 단초를 부여잡고 상상의 살을 보태 아득한 지난 날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이 널리 읽히고 있으며, “많이 팔리고” 있다.
역사의 종언을 고하고 그 종언을 부흥회의 간증처럼 서로 토해내며 한없이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에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발흥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역사의 운명이라는 것이 ‘현실과의 끊임없는 대화’에 의해 변주되고 뒤틀어질 고약한 것이라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역사와 대화를 하려고 마주 앉아있는 현실이라는 놈의 포즈가 어떠한지를 문제삼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포즈라는 것이 조정래와 김훈이 다르고, 김별아와 박경리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경욱이라는, 나로서는 낯선 화자의, 무엇보다도 가장 최근 포즈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평소 품은 한국 소설에 대한 편견을 입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경욱은 소설을 통해 벨테브레, 이방인이 본 조선 후기의 사회학을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재구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을 시의 나라로 읽는 벨테브레의 시선이야 말로 중상주의가 만개하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종교개혁과 과학사상이 폭발했던 서구의 산문정신과 또렷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느리게 살고, 슬픔이 많고, 울음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삶을 눈 파란 이방인, 그것도 무장을 앞세운 상선의 항해사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미리 정해진 길처럼 간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의 여러 갈피에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질문을 적지 않게 만났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개인의 전략과 집단의 전략사이의 긴장과 갈등, 젊은 관리가 보여 준 사랑에 대한 질문들. 돌아갈 곳 없는 자의 의탁처(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은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소설이 현실의 가파름을 피하는 방법으로 과거로 숨는 방식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 내 오래된 편견이지만, 과거와 현실의 어디에도 놓여있는 보편적 질문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에 그나마 김경욱을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끊임없는 직설과 대구, 조각조각 분해되어 이어지는 단문의 현란함. 이문열을 닮고 싶어하지만 김훈을 닮은듯한 김경욱의 질문에 나도 기꺼이 동참하고 싶어진다.
다만, 과거와의 대화에 현실이 좀 더 분명하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소설들이 더 기다려지는 것은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