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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책을 읽어가며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김춘수 시인이 아닌 '콜린'이라는 인물이 쓴 시가 '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 속 화자와 소설 속 콜린은 닮았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는 '콜린'
그리고 '캐서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고 싶은 '콜린'
이 이야기는 콜린이라는 17세 소년의 '꽃'을 찾는 여정이 담긴 성장 소설이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들만 보면 사랑에 빠지는 콜린이라는 소년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날 콜린은 19번째 캐서린에게 차였다. 매우 아프게.
콜린은 천재 소리를 듣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과거에는 신동이었지만 현재는
범인(凡人)이 되어버렸다 생각하여 상심에 빠진다.
실연의 아픔, 이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상심.
실의에 빠진 콜린을 달래주는 건 단짝 친구인 하산뿐이다.
하산의 제의로 콜린과 하산은 폐차 직전의 고물차를 끌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시카고라는 대도시를 벗어나 건샷이라는 시골 동네에 도착한 하산은 거기서 린지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린지의 어머니의 제의로 건샷에 머무르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랑과 이별에
관한 '공식'을 만들기에 전념한다.
그 공식이 완성되면, 실연의 아픔도, 보통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상심도 벗어나리라
믿으면서......
과연 콜린은 공식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콜린의 '이름'을 불러 줄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공식을 완성시켜 보려는 콜린의 노력이 눈물겹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러한 그의 시도와 노력은 자신은 중요한 '존재'이며 '의미'가 되고 싶다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콜린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도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애매하고 불안한 시기가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의 매력적인 인물 하산.
그는 이미 1년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도 합격한 상태지만 등록을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한다.
아마도 그 또한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들의 불안이 나는 오히려 부럽기만 했다.
그들의 불안은 '청춘'이기에 오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한단계 성장 시키는 것은 바로 '여행'이라는 장치이다.
이 여행 속에서 콜린과 하산은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기 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역시 여행이란 것은 현실 속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참 매력적이고 가치로운 것이다.
그들의 앞으로의 '인생'이라는 여정 또한 때론 아프고, 고되고, 슬프고, 즐겁고, 기쁘고 하겠지만,
그 여정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지길 빈다.
덧) 아직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작가 참 위트 있고 유쾌한 것 같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도 책장에 고이
꽂혀 내가 펼쳐 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해야겠다. 내가 기울인 관심만큼 충분한 애정을 내게 돌려 줄 수
있도록^^
p.156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결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만큼 사랑할 수는 없을거야. 콜린은 생각했다.
p.163 읽다가 내려놓으면 책은 당신을 영원히 기다릴 것이다. 관심을 기울이면 항상 받은 만큼 애정을 돌려줄 것이고.
p.214 난 그저 얼마 전에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지 않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p.303 이 이야기의 교훈은 과거에 일어난 일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과거가 되어버리지.
p.309 린지의 말처럼 과거는 논리적인 이야기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 기억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p.312 반대편 차선에서 차들이 지나쳐가는 동안 콜린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격, 우리가 예측하는 일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격에 대해 생각했다. 그 간격 사이에 자신을 다시 만들어 낼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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