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책을 읽어가며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김춘수 시인이 아닌 '콜린'이라는 인물이 쓴 시가 '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 속 화자와 소설 속 콜린은 닮았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는 '콜린'

그리고 '캐서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고 싶은 '콜린'

이 이야기는 콜린이라는 17세 소년의 '꽃'을 찾는 여정이 담긴 성장 소설이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들만 보면 사랑에 빠지는 콜린이라는 소년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날 콜린은 19번째 캐서린에게 차였다. 매우 아프게.

콜린은 천재 소리를 듣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과거에는 신동이었지만 현재는 범인(凡人)이 되어버렸다 생각하여 상심에 빠진다.

실연의 아픔, 이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상심.

실의에 빠진 콜린을 달래주는 건 단짝 친구인 하산뿐이다.

하산의 제의로 콜린과 하산은 폐차 직전의 고물차를 끌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시카고라는 대도시를 벗어나 건샷이라는 시골 동네에 도착한 하산은 거기서 린지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린지의 어머니의 제의로 건샷에 머무르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랑과 이별에 관한 '공식'을 만들기에 전념한다.

그 공식이 완성되면, 실연의 아픔도, 보통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상심도 벗어나리라 믿으면서......

과연 콜린은 공식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콜린의 '이름'을 불러 줄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공식을 완성시켜 보려는 콜린의 노력이 눈물겹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러한 그의 시도와 노력은 자신은 중요한 '존재'이며 '의미'가 되고 싶다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콜린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도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애매하고 불안한 시기가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의 매력적인 인물 하산.

그는 이미 1년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도 합격한 상태지만 등록을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한다.

아마도 그 또한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들의 불안이 나는 오히려 부럽기만 했다.

그들의 불안은 '청춘'이기에 오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한단계 성장 시키는 것은 바로 '여행'이라는 장치이다.

이 여행 속에서 콜린과 하산은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기 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역시 여행이란 것은 현실 속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참 매력적이고 가치로운 것이다.

 

그들의 앞으로의 '인생'이라는 여정 또한 때론 아프고, 고되고, 슬프고, 즐겁고, 기쁘고 하겠지만,

그 여정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지길 빈다.

 

덧) 아직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작가 참 위트 있고 유쾌한 것 같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도 책장에 고이 꽂혀 내가 펼쳐 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해야겠다. 내가 기울인 관심만큼 충분한 애정을 내게 돌려 줄 수 있도록^^

 

 

 

 

 

 

p.156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결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만큼 사랑할 수는 없을거야. 콜린은 생각했다.

p.163 읽다가 내려놓으면 책은 당신을 영원히 기다릴 것이다. 관심을 기울이면 항상 받은 만큼 애정을 돌려줄 것이고.

p.214 난 그저 얼마 전에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지 않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p.303 이 이야기의 교훈은 과거에 일어난 일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과거가 되어버리지.

p.309 린지의 말처럼 과거는 논리적인 이야기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 기억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p.312 반대편 차선에서 차들이 지나쳐가는 동안 콜린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격, 우리가 예측하는 일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격에 대해 생각했다. 그 간격 사이에 자신을 다시 만들어 낼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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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김영하 작가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행복해지기 위해 ‘감성 근육’을 키우라는 조언을 했지요. ‘감성 근육’이 없는 사람은 뭔가를 느끼려 해도 쉽게 피곤해진다며 ‘감성 근육’을 키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라는 답을 제시했습니다. 참으로 소설가다운 답변이었고, 또한 굉장히 공감이 가는 명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나는 탄탄한 ‘감성 근육’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 제 ‘감성 근육’을 탄탄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저는 책을 읽음으로, 특히 ‘소설’을 읽음으로 매우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성인 1년 평균 독서량이 10권도 안된다고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과거에 평균을 한없이 낮추는데 한 몫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년에 책 한권을 읽을까 말까 했지요. 그야말로 ‘감성 근육’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던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1년에 50권 정도의 책을 읽습니다. 비록 읽는 책의 99퍼센트가 소설인, 지독한 편독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1년에 1권도 안 읽던 책인데, 이젠 저의 너무도 소중한 취미 생활이 독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과정엔 저의 ‘감성 근육’을 단련시켜, 책을 읽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몇 권의 소설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말입니다.

 

 

 

 

 

 

 

 

 

 

 

 

 

 

 

 

[미야베 미유키 – 모방범] 起 - 장르 소설에 눈뜨다.
제가 처음 책과 친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장르소설을 읽은 것이었습니다. 한때(지금도 그러하지만) 한창 일본 추리 소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초동급부에 귀가 얇은 저는 ‘어디 그럼 나도 한번?’이란 마음으로 일본 추리 소설을 읽어 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가시노게이고나 미야베미유키라는 작가의 소설들을 권하더군요. 그래서 저와 마주하게 된 소설이 바로 ‘모방범’입니다. 그즈음 ‘추격자’라는 영화가 흥행했었고, 그 영화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기에 ‘모방범’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사실 저는 여전히 이 소설을 ‘추리 소설’로 분류해야하나 의문입니다. 제가 느끼기엔 굉장히 잘 쓰여진 사회소설 같았거든요. 며칠 전에도 팔달산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무서운 소식이 있었지요. 우리는 이렇게 내 주변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살인사건을 뉴스에서 자주 접하곤 합니다. 이 소설은 여타 다른 추리 소설들처럼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왜 죽였는가? 등의 답을 찾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즉 그러한 사건 후 피해자의 가족(유족이라 해야겠지요.)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 범인을 쫓는 경찰과 그 주변의 이야기, 사건의 진실을 보도하려는 기자와 그 주변의 이야기, 사건의 용의자와 그 주변의 이야기들이 매우 리얼하게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분명 이런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겪을 일반 대중들의 이야기까지 묘사합니다. 바로 이 점이 저는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고, 그래서 상당한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러하였기에 1년에 책 1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던 제가 1800페이지라는 어머어마한 분량의 책을 단숨에 독파해 버렸습니다. ‘무서운데 재미있다.’ 이런 모순을 두고 친구가 저에게 묻더군요. 그런 소설이 도대체 왜 재미있느냐구요. 글쎄요. 왜일까요? 공포나 두려움도 결국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장용민 – 궁극의 아이] 承 - 한국 장르 문학의 자존심을 만나다.
‘추리소설’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셜록홈즈, 히가시노게이고, 미야베미유키, 명탐정코난, 소년탐정김전일 등등의 답변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저 역시 이런 답변들을 내놓았을 겁니다. 대부분 일본의 것들이지요. ‘모방범’ 이후 저는 일본의 추리 소설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지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장르소설(사실,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저는 이렇게 ‘장르’라는 단어를 넣어 선긋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그냥 모두 소설인 것이지 ‘순수’네 ‘장르’네 구분하는 것 자체가 참 마음에 들지 않지만 편의상 계속 사용하겠습니다.)이 없는 것일까? 이왕이면 친숙한 우리 소설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만나게 된 소설이 바로 장용민 작가의 ‘궁극의 아이’입니다. 주인공은 ‘신가야’라는 한국인이지만 소설의 모든 배경과 다른 인물들은 여러 외국과 외국인인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소설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미’가 담겨 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렇고, 치밀한 플롯이 그렇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그렇고, 결말의 통쾌함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일본의 장르 소설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세련됐고, 너무도 매력적이고, 결정적으로 너무도 재미있었으니까요. 저는 독서는 곧 휴식이고 오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에겐 ‘재미있는’ 책이 가장 훌륭한 책이지요. 이런 이유로 ‘궁극의 아이’는 제게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그리고 분명 일본 추리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도 ‘우리 소설도 결코 일본 소설에지지 않아!’ 하는 참 유치한 자존심을 지켜준 소설이기도 하니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 여자 없는 남자들] 轉 - 견고했던 선입견에서 벗어나다.
10년도 훨씬 전부터 불기 시작한 하루키 신드롬은 여전하네요. 아니 오히려 더욱 뜨거워진 것도 같습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제가 귀가 얇은지라 한창 ‘상실의 시대’가 붐을 일으켰던 때 저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그 소설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어렸던 걸까요? 아니면 감성 근육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걸까요? 제겐 너무도 어렵고, 낯설고 거칠고, 그래서 이 작가는 결코 나하고는 친해질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첫인상이란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도, 그리고 책도 말이지요. 이런 부정적인 첫인상 덕에 하루키라는 작가는 제게 늘 철저하게 관심 밖의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이립(而立)의 나이를 훌쩍 넘긴 올해 여름 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어졌던 겁니다. 그냥 느닷없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말이지요. 어쩌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선입견이 혹시 졸렬한 아집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하루키에게 놀랍게도 저는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상실의 시대에서 느꼈던 낯섦이 이제는 친숙함으로 느껴졌던 겁니다. 저는 하루키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우리 현실의 모습이 ‘모순’과 ‘공허’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의 소설을 기피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립을 훌쩍 넘긴 나이이기에 지금은 오히려 솔직한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하루키의 소설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감성 근육을 갖게 되었습니다.

 

 

 

 

 

 

 

 

 

 

 

 

 

 

 

[천명관 – 고래] 結 - 진정한 ‘이야기꾼’의 종결자, 그것은 천명관의 법칙이었다.
혹시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한국 소설 추천’ 이라고 검색하면 보이는 가장 많은 답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천명관 작가의 ‘고래’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그것은 바로 ‘놀라움’입니다. 일단 날 것 그대로의 거친 문장이 놀라웠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서사가 놀라웠고, 어느 소설 속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문체가 놀라웠고, 희극인지 비극인지 판단하기 애매한 낯섦이 또한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문학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분명 그동안 접했던 여러 (순수)문학상 수상작들하고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런 낯섦과 신선함이 좋았습니다. 메타포니 뭐니 해도 일단 소설은 ‘이야기’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서사에 충실한 소설들이 좋습니다. 게다가 이 ‘고래’라는 작품은 소설의 기본적인 서사에 충실하면서도 그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은 또한 굉장히 신선하니까요. 저는 아직 ‘고래’를 읽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늘 ‘고래’를 읽어 볼 것을 적극 권하곤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제게 간단한 줄거리를 말해 달라 하지요. 하지만 저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어느 누가 ‘고래’라는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줄여 소개할 수 있을까요? 이는 아마 천명관 작가 본인조차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고래’라는 작품은 이야기라는 용암이 폭발하는 활화산 같은 소설입니다.

 

어떤 책 속에서 ‘상냥함은 상상력이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희노애락애오욕’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감정을 상상해 보고, 이해하고, 그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냥함이고 그래서 ‘상냥함은 곧 상상력’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인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감정들을 잘 느낄 수 있어야 인간은 행복해진다고도 생각합니다. 아마 김영하 작가가 말한 ‘감성 근육’이라는 것도 ‘희노애애락애오욕’과 같은 감정에 충실 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성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해, 그리고 조금 더 상냥해지기 위해, 그래서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도 소설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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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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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조조모예스의 '미 비포 유'라는 소설은 아마 올 한해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소설이 아닐까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어떤 멋진 재벌남과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닌데, 그 열기가 너무도 뜨거웠던지라 어떤 소설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 심리가 원래 그런 법이지 않은가. 마치 허니버터칩 대란처럼 말이다. 게다가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감성이 촉촉해지는 소설이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해서 미비포유를 읽어 보려던 찰나, 같은 작가의 신간이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고 원래 뒷북 역주행이 특기인 나는 미 비포유에 앞서 '원 플러스 원'이라는 신간을 먼저 읽기로 했다.

 

<다중 서술자의 매력>

나는 시점이 다중적인 소설들이 참 좋다. 각각의 인물들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각 인물들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고 그렇기에 각 인물들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도 다중적인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 된다. 청소부&바텐더의 투잡을 뛰며 가족들의 생계를 힘겹게 책임지고 있는 싱글맘 제스, 머리는 새까맣게 염색하고 눈에 진한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다니며 게이로 오해 받아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 니키,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가르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수학 능력을 갖고 있는 천재 소녀 탠지, 유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한 회사의 경영인이었지만 작은 실수 하나로 큰 위기에 봉착한 에드가 그들이다. 거기에 서술자는 아니지만 서술자들만큼이나 중요한 인물로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는, 돼지인지 개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크고 특기는 침흘리기와 방귀 뀌기인 탠지의 애완견 노먼까지. 다섯 인물들 모두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개성들을 자랑하며 매력을 발산한다.

 

<여행이라는 로맨틱한 장치>

이 소설은 일종의 기행 소설이다. 영국의 남부 끝에서 북부 끝까지의 3박 4일 동안의 여정. 그리고 이들의 여행은 곧 일탈을 의미한다. 제스는 경제적 압박감으로부터의 일탈, 탠지와 니키는 피셔라는 악의 무리로부터의 일탈, 에드는 현재 자신에게 떠 안겨진 회사 문제와 아버지 문제로부터의 일탈. 하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 어디 여행이 편하고 즐겁기만 하겠는가? 비록 3일이지만 3년쯤은 흘러버린 것 같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그들의 관계는 점점 끈끈해져 가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서는 불꽃도 튀고 말이다. 낯선 남녀가 짧은 시간 동안 사랑에 빠지는데 여행만한 장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원래 여행이란 것의 묘미는 이것이 아니겠는가? 이 소설은 그런 여행이라는 장치를 백분 활용하고 있다.

 

<식상하지만 괜찮아>

사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트렌디 드라마와 비슷하다. "에이, 말도 안돼!" 라고 외치면서도 어느새 주인공에 몰입해 같이 울고 웃고 가슴 설레게 되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그래서 늘 비슷비슷하게 느끼지만 그게 또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보게 되는 그런 로맨스 드라마. 그런 드라마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중간쯤 어디선가부터 제스에게 몰입하여 에드와 사랑에 빠지고 에드를 생각하며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트렌디 드라마는 즐겨보지만 로맨스 소설은 잘 안읽는 편이다. 이상하게도 영상이 아닌 활자로 그러한 것(?)들을 접하면 내 스스로 오글거려 못견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러한 오글거림이 거의 없었다. 이는 아마 유치함과 식상함을 자연스러운 문체로 감추어버리는 작가의 역량 덕분인듯 하다.

 

<원 플러스 원의 의미>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대형 마트 할인 상품을 떠올렸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해서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리고 답은 매우 간단했다. 인간과 인간,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는 비단 제스와 에드의 만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스와 딸인 탠지의 만남이기도 하고 제스와 니키(니키는 제스의 전남편의 아들이다. 정작 아버지가 버린 아들을 제스가 키운다.)의 만남이기도 하며, 니키와 그와 같은 종족들간의 만남이기도 하다. 즉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 우리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에게 상처받지만 또한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현실은 참으로 각박하지만 또한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살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36.5도의 사람의 체온은 그리 뜨거운 온도는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 온기에 온기를 더하고 또 한 사람이 만나 온기를 더하여 만들어진 그 온기를, 그 비싸다는 명품 구스다운이 이에 비할 바 있겠는가?! 이 소설은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급격하게 추워져 외출이 꺼려지는 요즈음 따뜻한 유자차 한 잔 곁에 두고 읽으면 마음과 더불어 몸까지도 따뜻해지는 소설이 될 것이다.

 

 

 

 

 

p.290 YOLO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번 뿐이다.

p.444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원하면 결국에는 어떻게든 그들에게로 가니까.

p. 550 대수의 법칙과 결합한 확률 법칙에 따르면, 불리함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떤 일을 점점 더 많이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더 많이 할수록 성공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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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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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설레는 그 이름 이사카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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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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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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