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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 p.63 어제는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예스터데이) 』
대학에 갓 입학했을즈음 20대에 들어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한 권 있었다.
양귀자의 "모순"
그동안 학교나 교과서 속에서 배워오던 세상과는 사뭇 달랐던 소설 속 현실이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충격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인간이란 논리와 이성과 윤리가 아닌 어쩌면 다들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은 데서 온 그 무엇이었다. 아마 '어른'이라는 세속적인 존재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양귀자의 '모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그때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 속을 관통하고 있는 삶의 '모순'들.
특히 남자와 여자, 같은 종족이지만 가깝고도 먼 그 존재들이 겪는 사랑이란 이름의 모순들.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그 내연남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남자.
소꿉친구로 같이 자라며 연인이 된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친구와 데이트를 해보라는 남자.
평생 독신으로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게 유부녀나 애인 있는 여자와만 즐기지만, 결국 스스로 금기를 깨고 사랑이란 덫에 걸려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남자.
아내와 직장 동료의 정사를 목격하나, 화 한번 내지 않고 전혀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떠나는 남자.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이런 남자들과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얼핏 말도 안되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 '모순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그 모순들을 접하며 놀라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새 '어른'에서 '나이듦'으로 나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09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예스터데이) 』
하지만 책 속 구절처럼 이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굴레일테니, 억울해하지 않기로 하자.
세월이 흐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이를 반복하고.
그럼 연습이 되고, 습관이 되고, 면역력이 생겨,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51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드라이브 마이 카) 』
『 p.166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 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독립기관) 』
『 p.169 생각건대 그 여자가 (아마도)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의미는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지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작용이었다. 제 삼자가 나중에야 뭘 좀 아는 척 왈가왈부하며 자못 슬프게 고개를 내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독립기관) 』
『 p.214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
그렇지 않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상처 받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한다.
이런 것들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며,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일 테니까.
『 p.265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기노)』
모순, 상실, 상처, 공허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던 단어들이었다.
표지에서의 얼음달처럼 한없이 차갑기만 단어들.
그런데 또한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치유(힐링)라는 단어 또한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나만 잃어버리고, 상처 받고, 아픈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마 이런 점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 p.327 어느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여자 없는 남자들) 』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 한 편으로 첫인상이 굉장히 거칠고 낯설고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작가였다.
그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 열풍이 인다 해도 그의 작품은 나에게 철저하게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다 이제 그 견고했던 선입견을 어쩌면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히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오마주는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잠자가 사랑할 수 있어서, 그래서 그로인해 또 상처 받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그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주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 p.308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사랑하는 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