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웨이크 시리즈 - 전3권 - 꿈을 엿보는 소녀 + 끝나지 않는 악몽 + 최후의 선택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맥먼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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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엿보다.>

다른 사람의 꿈을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혹은 저주일까?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제이니는 다른 사람의 꿈을 엿보는 소녀이다. 결코 그녀가 원한 것이 아닌데 우연히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되고 말았다. 프로이드는 꿈이 마음의 상처와 억압된 욕구로 비롯된 것이라 보았다. 때문에 꿈은 보통 악몽으로 나타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타인의 악몽 속으로 제이니는 속수무책 빨려 들어간다. 그런 제이니의 능력 자체가 제이니에겐 '악몽'인 것이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제이니가 빨려 들어간 꿈을 엿보게 된다. 또한 이 책의 구성이 날짜와 시간을 표기하여 철저하게 시간적 흐름을 따르고 있기에 마치 제이니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꿈과 일기장. 개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아닐까? 그렇게 엿본다는 것에서 오는 스릴으로 독자들은 무섭게 책 속으로 빨려 들게 된다.

 

<성장하다.>

1권 '꿈을 엿보는 소녀'에서의 제이니는 17세 소녀이다. 그녀에겐 집에만 박혀 지내는 알콜 중독자인 30대 중반의 엄마가 있다. 때문에 그녀의 집은 무척이나 가난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다할 친구 또한 없다. 그런데 옆집에 '캐리'라는 소녀가 이사를 오게 되고 그녀와 절친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사연과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운 훈남이 앞에 등장한다. 그렇게 제이니는 타인의 꿈 속을 헤매는 자신의 저주 받은 능력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힘들어하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노력하고, 성장해 간다. 어쩌면 17세란 나이 자체가 사람들의 꿈 속처럼 혼란스러운 나이 아닐까? 제이니의 나이와, 그녀의 저주 받은 능력과 그녀의 성장기는 그런 면에서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력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능력을 컨트롤 할 줄 알게 되며, 그녀의 능력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1권인 '꿈을 엿보는 소녀'가 그녀와 그녀의 능력에 대한 소개와 그녀의 미스터리한 썸남과의 로맨스에 집중이 되었다면, 2권인 '끝나지 않는 악몽'에서는 좀 더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해지며 그녀의 능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3권인 '최후의 선택'에 가서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제이니의 내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렇게 3권의 시리즈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제이니는 성장해 간다.

 

<치유하다.>

마음에 상처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마음의 상처와 억압된 욕구가 꿈으로 나타난다. 이 시리즈 속 인물들도 다들 상처 하나씩을 마음에 품고 있다. 제이니도, 그녀의 엄마도, 캐리도, 제이니의 썸남도, 조력자도 모두. 때문에 제이니가 빨려 들어가는 꿈이란 대부분이 악몽이고, 그 꿈의 주인공 못지 않게 제이니 또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다 제이니는 문득 깨닫게 된다. 그들을 돕고 싶다고. 그런 찰나에 그녀는 조력자인 어떤 중요한 인물(후에 책을 읽으시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누군인지 밝히지는 않겠다.)의 도움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치유받게 되고, 제이니 그녀 또한 스스로 치유되기도 한다. 3권인 '최후의 선택'에서는 그 치유의 과정이 꽤나 뭉클하다.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에선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독자 또한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미드 같다.>

시리즈를 읽어나가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은 마치 미드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 소설 속에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장르 소설의 요소들이 거의 총집합 되어 있다. 판타지, 스릴러, 수사, 로맨스, 쥬브나일등. 이런 소재들은 또한 미드에서 흔히 보아오던 소재들이기에 제이니의 성장 과정과 그녀의 활약상을 미드 시리즈로 보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다. 게다가 제이니와 캐리와 제이니의 썸남이 모두 훈녀 훈남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영상화 되었을 때 또 얼마나 눈이 즐겁겠는가^^;

 

<꿈을 꾸다.>

주말 내내 제이니의 이야기를 붙들고 있어서였을까? 이틀 내내 꿈자리가 좋지 못했다. 내게도 곁에 제이니 같은 '드림캐쳐'가 있어서 이건 꿈이니까 괜찮아, 너 스스로 조정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사람들은 그저 기억하지 못할 뿐 매일 꿈을 꾼다고 한다. 매일 꾸는 이런 꿈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매일 버티고 견뎌내는 현실이 고단하기만 한데 꿈이라도 우리 마음대로 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도 악몽 같고 꿈도 악몽이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오늘밤에는 꼭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도와줘, 도와줘 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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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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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치바씨.>

이사카코타로는 원래 시리즈 물을 잘 내지 않는 작가이다. 유일한 시리즈물이라곤 '명랑한 갱 시리즈' 뿐. 그런 이유로 치바가 무려 8년 만에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그 반가움이 그 어떤 신간 보다 몇곱절이나 컸다. 게다가 '사신 치바'는 내가 이사카월드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기에 더욱. 이번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다. 이사카코타로 그 특유의 플롯은 단편 보단 장편에 더 적합하기에 또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을 몰고 오는 이 사신의 귀환을 나는 쌍수 들고 환영했다. 다만 맛있는 음식 아껴 먹는 심정으로 작년에 출간된 4권의 신간 중 제일 마지막으로 출간된지 7개월만에 치바씨와 재회하게 되었다.

 

<치바씨는 모범 사원.>

치바는 모범 사원이다. 조사의 결과가 '가'(가는 조사 8일째 죽음, 보류는 미래 어느 순간까지 죽음 보류이다.)일게 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신들은 조사 기간 일주일 중 처음 하루 정도만 조사 대상과 접촉하고는 나머지 6일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사신들의 행태에 치바는 화가 나기도 한다. 일이란 것은 절대 즐겁지 않고, 힘들지 않으면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치바. 그 역시 대부분의 조사 결과는 '가'일 테지만(그럼 이 작품 주인공의 조사 결과도 '가'냐고?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 보시라^^) 그는 결코 직무태만의 자세를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충실히 대상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일에 이리 엮이고 저리 엮이며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음악 오타쿠 치바씨.>

'사신'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데스노트'의 '류크'를 떠올리지 않을까? 나도 치바 보다 류크를 먼저 접했기에 처음 '사신 치바'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데스노트 같은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류크와 치바는 달라도 너무 다른 캐릭터이다. 류크에겐 사과가 최고라면 치바에겐 '음악'이 최고다. 인간들이 만들고 이루어 놓은 문명들에 크게 관심 없는 치바이지만 단 하나 '음악'만큼은 사랑한다. 아니, 사랑을 넘어선 '집착'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작품 전반에 여러 음악들이 소개가 되는데(이건 사실 이사카코타로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특징기도 하다.) 작품 전체 내용과 참으로 잘 어울려 bgm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이 작품에선 특히 The four seasons의 'sherry'라는 곡이 자주 언급이 되는데, 나 또한 유투브에서 찾아 듣고 완전 빠져 버렸다. 처음 들어보는 곡 아니고 익숙한 곡인데도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야마노베 부부에 감정 이입이 돼서 였을까 굉장히 애틋하게 다가온다.

 

<괜찮아요? 많이 어색했죠?>

8년 만에 돌아온 치바가 가장 달라진 점은, 본인은 의도 하지 않았지만 본격 개그캐릭터화 되었다는 것이다. 사신들은 인간이 아닌 '사신이기에' 당연히 인간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조사 기간 중엔 조사 대상의 주변 인물로 등장하기에 '인간처럼' 굴어야 한다. 그래서 치바는 본의 아니게 자꾸만 모모 아이돌의 로봇 연기도 울고 갈 발연기를 선사한다. 이런 점은 '사신 치바'에서도 당연히 드러나긴 했는데, 이번 작품이 장편이어서일까 그런 치바의 발연기가 너무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자주 튀어나와서 책을 읽는 내내 큭큭대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자주 대화의 초점에서 벗어나 버리는 치바의 대사들. 때문에 딸을 잃고 2년간 죽은 것처럼 살아있던 야마노베 부부조차도 치바 덕에 자꾸만 웃게 되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사신'인 그 덕분에 삶의 활력을 얻기도 한다. 이런 점이 바로 치바의 가장 큰 매력이고, 이런 이유로 치바가 이사카코타로 작품들 속 캐릭터들 중 단연 인기 1순위인 것이다.

 

<치바씨, 죽음은 무섭지만 무섭지 않아요.>

작품 속에서 치바는 야마노베에게 묻는다. "죽음이 무서운가?"라고. 딱히 답이 궁금한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꾸만 '죽음'에 대해 묻는다. 주인공인 야마노베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딸의 죽음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답을 얻었을까? 그는 파스칼의 팡세를 인용하여 답을 건넨다. "인간은 죽음과 불행과 무지를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일본 동북 지방의 대지진을 바로 눈 앞에서 겪고(이사카코타로는 동북 대지진이 직격으로 지나간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다.) 난 후의 작품이어서였을까, 죽음에 대해 한없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나도 자꾸만 나이가 들고 그에 비례하여 부모님도 계속 연로해지시며,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도 계신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니 딱히 무서워 할 일은 아니지만, 야마노베가 작품 말미에 던진 그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할 수 밖에 없겠다. "죽음은 무섭지만 무섭지 않아요."

 

<알고보면 퍽이나 상냥한 치바씨에게 경의를.>

작품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경의를 표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을 대신 해달라는 뜻이다.' 치바는 야마노베 부부와 일주일간 함께 하며 온갖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해낸다. 결코 자신은 딱히 그들을 도우려 한게 아니라 그저 조사의 일환일 뿐이라고, 그저 어서 일을 마치고 음악을 실컷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늘 쿨한 척, 인간에게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사실 그 어떤 인간들 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치바씨. 그에게 경의를!!!

그래서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가 성공을 했느냐고? 사이코패스 혼조는 죽고, 치바의 보고는 '보류'여서 야마노베 부부가 살아 남았느냐고?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하시기를^^ 그저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주 아주 '이사카코타로'다운 결말이었다고 밖에는.

 

<우리 또 봐요. 치바씨.>

사신의 7일 관련 어떤 인터뷰에서 속편을 또 쓸 생각은 없지만, 편집자의 '할아버지가 되면 과연 어떨까요?'라는 질문에 '그때는 생사관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답했다는 이사카코타로. 언제나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 있는 팬들을 위해 오래 오래 건필해주시고, 꼭 치바도 또 한번쯤 다시 만나게 해주시기를. 그리하여 먼,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또 봐요. 치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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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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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소설의 대가가 쓴 도둑 이야기>

경찰 소설의 대가라는 요코야마 히데오. 그의 최고의 경찰소설이라는 명성을 달고 있는 '64'를 나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내 돈 주고 산 책들은 숙제에 밀려 미루고 미루게 되니까. 그런데 그 경찰소설의 대가가 이번엔 도둑들의 이야기를 한단다. 원체 '도둑'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한탕 시원하게 털려나...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예상은 아주 깨끗하게 빗나갔다.

 

<도둑 탐정>

요즘 추리소설들을 보면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참 다양해졌다. 경찰과 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가나 동물이나 어린이 등등. 이 소설에선 급기야 그 탐정이 '도둑'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인 마카베 슈이치가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슈이치는 자신이 체포된 그 날 밤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출소하자 마자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그 인물들의 사연을 듣고, 거기에 따라오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진실을 캐낸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알아낸다.'는 점이다. 그렇다. 시원하게 한 탕 터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슈이치가 돈을 위해 집을 터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밤중털이를 할 뿐. 솔직히 일반인 입장에선 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가?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누군가 내 집을 털어간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이치(그리고 게이지)라는 인물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사연 있는 남자는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 탓일까? ^^;

 

<추리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다.>

7편의 단편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결되는 연작 소설. 한편 한편 기구한 사연들과 미스터리에 궁금증이 증폭 돼 무섭게 책장을 넘겼더랬다. 그리고 점점 그들의 기구한 인생에 한없이 연민이 느껴졌더랬다. 급기야 몇 몇 단편에선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추리 소설을 읽고 울어 보기는 처음이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인데...... 그렇지만 그전에 그들도 사람이기에..... 게다가 어쩌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 그들 스스로이기 보단 이 사회 그러니까 곧 우리일지도 모를 일이니. 그러면서 마음이 먹먹해지고, 또한 따뜻해졌다. 참 아이러니 하다. 저 밑바닥 범죄자들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다니.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단 반증이겠지.

 

<나에게는 아직 '64'가 남아있다.>

책을 읽으며 거듭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능력. 그림자 밟기는 먹먹하게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나에겐 아직 '64'를 비롯한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작품이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64'를 보고 있자니 그 책을 읽을 어느날이 벌써 부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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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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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작가의 초기작>

사람들에게 추리소설 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하고 묻는다면 아마 십중팔구 히가시노게이고와 미야베미유키(미미여사)라고 답할 것이다. 내게 있어 미미여사는 모방범이라는 대작으로 몇몇 일본 작가들덕에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던 편견(일본 소설은 어둡고 염세적이고 지루하다.)을 깨고 책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재미를 알게 해 준 작가였다. 해서 믿고 보는 작가 중 한명. 사실 그녀의 시대물(왠지 다른 나라의 시대물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은 읽지 않는 터라 실로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현대물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인지라 현대물이라고는 해도 배경이 1980년대 후반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역시 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에게 약한 것 같다.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물론 내용이 중요하지 않단 얘긴 아니다.) 일단 캐릭터가 (지극히 주관적인 내 기준에 의거하여) 매력적이면 80퍼센트는 먹고 들어간다. 책 제목에서도 보듯 이 작품의 주인공은 형사의 아이 '준'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형사인 아버지와 살게된 중학교 1학년 아이. 그리고 집에 거의 머무르지 못하는 아버지(미치오)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하고 준을 돌보는 가정부 할머니 '하나'. 하나 할머니가 모성 비슷한 감정으로 준을 보듬아서일까....이 두사람의 대화는 참 따듯하여 나마저도 힐링이 되곤 했다. 물론 형사인 미치오(준의 아버지)와 그의 파트너 '하야미'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역시 '준'과 '하나'의 콤비 플레이는 단연 돋보인다. 거기에 '준'의 친구인 '신고'의 헐랭하면서도 저돌적이며 예리한 매력. 모범적인 형사 스타일에 외양 묘사된 부분은 전혀 없지만 왠지 굉장한 미중년일 것만 같은 준의 아버지 '미치오'와 그의 파트터인 따뜻한 형사 '하야미'까지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이 소설. 별점을 후하게 줄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사회적인 메시지>

미미여사는 역시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이다. 그래서 그녀답게 (일본에 대한 식견이 좁아 몰랐는데 작품 해설을 보아하니) 1980년대 후반 도쿄의 상황을 잘 그렸다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인 '소년범 문제'. 어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기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범죄를 자행하는 아이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길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을 보아도 결코 지적을 해선 안되는....... 오히려 불똥이 튀지 않게 피해 가야하는 현실을 보건데.....우리나라도 심히 고민해 봐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상상력의 힘>

이사카코타로는 자주 '최고의 다정함은 상상력.'이란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도 비슷한 말이 하나의 입을 통해 나온다. 아이들의 범죄는 상상력이 부족해서라는 말. 내가 누군가에게 꼬집히면 아프듯 내가 다른 사람을 꼬집으면 그도 아플거다...라고 상상할 수 있는 그 능력말이다. 세상이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다보니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게 되고, 때문에 범죄도 늘어만 가는 것이라고, 미미여사도 이사카코타로도 말하는 것이리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길들여져 사색(생각)이 아닌 검색을 즐기는 수동적인 삶. 다 성장하여 이런 문명의 이기들을 접한 어른들도 이럴진데.....태어나면서부터 그것들에 둘러쌓인 삶을 사는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사람들이 점점 상상력을 잃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니 왠지 무서워졌다. (아가들아..... 상상력을 기르자.....그러니 책 좀 읽자....^^;;)

 

<시리즈에 대한 기대>

에필로그까지 읽고 책을 덮으며...... '준'과 '하나'의 콤비플레이가 더 이어지면 좋겠다 싶어 아쉬웠다. 시리즈물로 쓰여졌으면 참 좋았을텐데...하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선 역시 시리즈물로 나와 있다 한다. 그 초석이 발간되었으니 후속작들도 계속 번역되리라....나는 이미 기대하고 있다. 배추 절임을 만들며 나누는 영화 및 사건에 대한 '준'과 '하나'의 대화가 나는 벌써 그립다. 그러니 그 기다림이 그리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p.212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은 누구나 무장한다는 거예요. 다만 뭐로 무장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답니다. 갑옷을 입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총을 드는 사람도 있어요. 가라테를 배우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리고 어떻게 무장하느냐에 따라 걷는 장소도 달라져요.

 

p.256

"오키 쓰요시는 나도 엄청 열 받았단 말이야. 좀 더 엄하게 키워야 하는 거 아냐?"
"그보다 상상력을 키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상상력?"
"네. 다른 사람이 당할 불편을 생각하는 것도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누가 날 꼬집으면 아프다, 그럼 너도 꼬집히면 아프겠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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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범
권리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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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디스토피아>

 며칠전 100년 후의 세상을 그린 '강철무지개'를 읽었는데 이번엔 300년 후의 세상을 그린 '상상범'이다. 역시나 또 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쌓여 미래가 되는 것일 터, 과거와 현재가 디스토피아였으니 역시 미래 또한 그러리라 예상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 소설의 배경인 2322년은 환태평양 지진대 부근에서 일어난 대규모 지각 변동으로 인해 전세계가 하나의 대륙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소설의 무대는 그곳의 중심부인 URAZIL이라는 연합공화국이다.

 

<상상이 범죄가 된다.>

 이 URAZIL 연합공화국은 날로 늘어만 가는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범죄완화특별조치법을 시행하여 살인 이하의 조를 저지른 자를 전부 석방해 버린다. 하지만 이로 인해 범죄자들의 수가 격감하자, URAZIL 전체 생산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던 교도소 체인 로텍(Lawtech)의 생산량 또한 격감하여 위기를 맞게 된다. 하여 독특한 타개책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상상을 법으로 금하는 것이다. 모든 범죄의 시작은 상상이기에 이 상상을 원천 봉쇄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 획기적 법안은 불참석한 1명의 의원을 제외한 모든 국회의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만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설정인 반면 또한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역설적 공포를 느꼈다.  

 

<음모론>

 이 말도 안되는 법안으로 주인공인 배우 기요철은 재판을 받고 로텍에 수감된다. 요철은 도저히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가 겪고 있는 이 현실을 모두 연극이라고 생각하게된다. 그리고 이런 요철의 생각을 역이용하려는 음모가 있다. 왜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갖은 고초를 겪는 것이 실상은 윗분들의 음모라는 그런 설정 말이다. 그런 음모들을 접할때면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혐오감과 공포스러움도 느끼지만, 한편으론 지금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을 음모들을 전부 까발려버리는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하여 음모론은 항상 흥미를 끄는 소재이다.

 

<풍자와 조롱, 블랙코미디>

 처음 책을 펼쳐들고 URAZIL(United Republic of Asian Z-land)이란 단어를........우리 말로 옮겨 보았을 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라질! 정부라니......!! 이 얼마나 통쾌한가 말이다. 이처럼 이 작품 속 곳곳엔 이런 식의 풍자와 조롱이 가득하다. '숫자는 인간을 완전하게 한다.'라는 표어라든가, 율리가 발견한 공식(F=u*c/k)이라든가, 판사, 검사, 변호사에 붙는 사(事, 士)는 떼버리고 ‘상’(商)을 붙여 부르는 것 등. 평소 이런 식의 풍자를 좋아했던지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내게는 이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풍자나 블랙코미디의 웃음 끝에 오는 뒷맛은 역시 쓰디쓰기만 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지금이 과연 21세기인지 1970_80년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이 소설에서 그린 것처럼 개인의 '상상' 마저도 법으로 금해버리는 날이 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리라. 옛일들을 생각하니 무섭고, 현재를 생각하니 답답하고, 앞으로를 생각하니 깜깜하기만 하다. 이런! 나는 방금 우라질 공화국의 기준으로 중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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