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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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 네스뵈란 이름, 참 무던히도 들어 왔습니다. 한없이 얄팍하여 쉽게도 팔랑대는 귀 덕에 그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전부 모아두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리 홀레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게으름도 한 몫 했고, 한번 시작하면 내리 해리 홀레만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많이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 느긋하게 읽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구요. 해리 홀레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첫 만남이 있기 전의 설렘을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참 쓰잘데기 없지만, 제 딴엔 매우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해리 홀레가 주인공이 아닌 스탠드 얼론이 나온다는 소식을요. 심지어 이런 제 속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 처럼 띠지엔 '이 책으로 요네스뵈를 시작하라.'는 문구까지 떡! 하니 박혀있더군요. 그래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해리 홀레와의 첫만남 전의 설렘은 여전히 아껴 두되, 요네스 뵈와는 안면 좀 터 보기로요. 드디어! 저에게도 요 네스뵈란 딱딱한 호칭이 아닌, 요쌤!이라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권한(...왠지 책 한권 읽지 않은 사람이 요쌤...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아 한번도 요쌤이란 호칭으로 불러보지 못했습니다...ㅠㅠ)이 생긴 겁니다. 그렇게 저는 후디가 몹시 잘 어울리는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p.302 모든 아들은 언젠가 자기 아버지처럼 될 거라고 믿죠. 안그래요? 그래서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실망하는 거에요. 자신의 결함, 미래의 패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그 충격이 너무도 커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리죠. 』

 

아버지가 우상이었던 한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찰이 되길 꿈꾸었고, 촉망 받는 레슬링 선수였으며, 학업 성적 또한 우수했습니다. 그런데 우상이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부패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의 아버지는 자살로써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는 마저 잃게 된 소년은 모든 것을 놓아버립니다. 자신을 달래주는, 아니 잊게 해주는 마약이란 것에 육체와 영혼마저 맡겨버린 체 말이죠.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그는 마약을 제공 받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12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출감 직전의 한 죄수로부터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누명을 썼단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소년은 마약을 끊고 달라지기로 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가 미처 마치지 못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 p.551 그러니까 소년은 뭘 복수하고 싶은 걸까? 뭘 이루고 싶은 걸까? 구원받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 사실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만 결코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세상의 모든 악을 말살시키는 것? 하지만 범죄 없는 세상, 바보들의 멍청한 반란도 없고 새로운 움직임과 변화를 야기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더 나은 혹은 더 나쁜 세상에 대한 기대 없이는. 이런 지독한 불안감, 산소 결핍으로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

 

저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을 좋아합니다. 개성 강하고, 유쾌하고, 그래서 응원해주고 싶은 인물들. 그런데 그런 인물들에게 느끼던 감정과 이 소설 속 '소니'라는 인물에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 이 남자에게 짝사랑에 빠져버렸거든요. 마약쟁이에,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남자에게 말이죠. 저는 그가 너무나 가여웠습니다.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타락을 본 것도. 때문에 부모 모두 잃고 고아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게 타락하여 20대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것도. 그런데 그가 겪은 이 잔인한 모든 것이 결국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칼을 든 붓다가 되어 죄인들의 죗값을 물으러 다니는 것도. 그런 그의 행위가 그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까지 전부 말입니다. 십여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속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불쌍해서 좋은가요? 좋아서 불쌍한가요?' 제가 소니에게 느낀 감정이 이것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제목 덕택에 어쩌면 그를 저도 '아들'처럼 생각하며, 위기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되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그가 저지르는 일들에 (조금은 통쾌했지만) 한없이 안타까웠고, 또 한편으론 모순되게도 그가 (경찰에게든 쌍둥이에게든) 잡히면 어쩌나 내내 애가 탔습니다. 그가 무사하기를, 그가 행복해지기를, 그가 구원 받을 수 있기를 얼마나 애타게 빌었는지요... 때문에 저에겐 이 소설이 '감성 느와르'가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이런 제 안의 애달픈 감성의 흐름이 전 너무도 좋았습니다.

 

몇 해 전 참 재밌게 보았던 영드가 한 편 있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드라마였는데, 드라마 속 고등학생들은 마약을 마치 술처럼 복용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이란 단어가 텔레비전 9시 뉴스에서나 볼 법한 소재인지라 문화 충격이 꽤 컸었죠. 그런데 제가 영국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마약 문화(...라고 해도 될른지... 망설여지는군요;;)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인가 봅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노르웨이의 오슬로라는 도시의 어두운 면면이 아주 세밀하면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딜가나 쉽게 볼 수 있다는 마약상들, 인신매매범들. 그리고 이를 결코 바로잡을 리 없는 부패한 경찰들, 정치인들.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어떻게들 살아가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꼭 한번쯤 가보고 싶어집니다. 오슬로라는 곳에 묘한 애정마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요쌤, 그의 어마무시한 필력을요. 그의 오슬로에 대한 애정이 그 필력에 고스란히 담겨 독자인 저에게까지 전해졌다는 뜻이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보통 감옥에서 시작되는 복수 소설은 주인공들의 과거사가 작품 초반을 장식하는지라 자칫 지루해져버리곤 하는데, 이 작품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단 한페이지도 지루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절정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이미 초반부터 시작되는지라 이런 장면이 벌써 나와버리면 이 두께의 책을 대체 무슨 이야기로 다 채워나간다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그렇게 뿌려지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복선들. 그 복선들로 이루어낸 반전들. 그렇게 독자들은 소니의 동선을 따라 조마조마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지요. 주윤발이나 장국영이 등장하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를 기억하시는지요? 경찰, 조직, 첩자, 우정, 사랑, 배신 등등. 저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며 그시절 참 재밌게 보았던 그 홍콩 영화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옛날 홍콩 느와르 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세련되었지요. 긴장감 넘치고, 때론 감성적이며, 심지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멋진 느와르입니다. '아들'도 이미 판권이 팔려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영상화가 될 지 기대됩니다. (제가 책을 내내 '소니'역을 하면 딱 어울리겠다 싶은 배우가 있었는데, 그가 캐스팅되면 좋겠네요^^;;)

 

후디를 뒤집어 쓰고 빨간 스포츠백을 메고 다니던 소니. 많은 사진에서 후디를 쓰고 있는 요쌤. 이렇게 후디가 잘 어울리는 두 남자에게 저는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또 다른 한 남자를 생각합니다. 해리 홀레. 그도 후디를 즐겨 입는 남자일까요? 만남 전의 설렘을 충분히 즐기고, 곧 그도 만나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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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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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대륙에서 6초마다 팔린 책, 새로운 세대를 위한 앨프레드 히치콕.

 

이 책 띠지에 붙은 수식어들입니다.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걸어놓는 수식어를 곧이 곧대로 믿어선 안되겠지만, 저는 귀가 얇아 이런거게 쉽게 팔랑거리거든요. 그래서 엄청난 기대를 품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어라? 이거 원래 스릴러 소설 아니었던가? 하고 책을 읽는 초반에 책 정보를 다시 찾아 보게 됩니다. 전개되는 이야기가 너무도 막장스러웠거든요. 마치 사랑과 전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막장 드라마라는 것이 욕을 해가면서도 자꾸만 보게 되는 중독성이 있지 않습니까? 이 책 또한 그랬습니다. 달리는 기차와 함께 책장은 쉽게 잘도 넘어갑니다. 다만 자주 자주 유발되는 짜증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 명의 여자 서술자들. 그 중에서도 레이챌은 가장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 문제가 좀 많습니다. 심각한 알콜중독자에 관음증도 있고 망상도 심하고 리플리 증후군의 증상도 보입니다. 그런 병적인 레이챌의 행동 묘사나 심리 묘사가 아주 섬세합니다. 덕분에... 독자들은(실은 제가) 짜증이 치밀기도 합니다. 전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 당한 후의 트라우마 비슷한 것 때문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런 그녀의 유일한 낙(?)은 기차를 타고 오가며 행복한 부부 제스와 제이슨을 관찰하는 겁니다. 아마 그들 부부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망상을 즐기며 버림 받은 자신의 과거를 보상 받으려는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어느날 제스가 실종됩니다. 그렇게 전개는 급물살을 타며 기차는 가속도를 냅니다.

 

세 명의 서술자와 그들의 몇 안되는 주변인물. 다 꼽아 보아도 열 명도 안되는 인물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사건 전개나 범인 등은 쉽게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전 사실 아주 초반 부터 범인의 정체를 알아챘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시시하거나 김 빠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굉장히 재밌게 끝까지 읽었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막장 주인공들 덕에 짜증과 욕은 좀 유발되었지만요. 그런데 이는 바꿔 말하면 작가가 주인공들의 막장 행동이나 심리 묘사를 아주 절묘하게 해냈다는 반증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히치콕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아닐른지요.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에 내린 결론은....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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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 시선 : 해협의 로맨티시즘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8
임화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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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공 교육을 받았던 세대입니다. 때문에 교과서 속에서 만났던 문학인들은 극히 한정적이었고, 월북 작가나 북쪽이 고향이었던 작가들의 작품은 접할 길이 거의 없었지요. 때문에 카프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후에 월북하여 심지어 한국전쟁당시 문화공작대로 활동했던 임화라는 시인은 특히나 생소한 작가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선을 처음 접하고 임화 시인의 사진을 보고 일단 그의 수려한 외모에 놀랐습니다. 이토록 잘생긴 문인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이력을 보니, 그 외모에 맞게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했다는군요. 잘생기고, 능력있고.... 임화 시인만 보면 신은 참으로 불공평하네요. 하긴 그런 '잘남' 덕에 팔자는 좀 기구하고 말년도 비극적이었던 것 같지만요.. ^^;

 

제가 처음 임화라는 이름을 들었던 건 아무래도 수능을 준비할때(이 당시엔 그나마 반공 사상이 좀 덜하던 시절)였던 것 같네요. 이 시전에도 담겨있는 '우리 오빠와 화로'라는 작품으로요. 누이 동생이 투쟁중에 죽은 오빠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인데, 남겨진 남매의 고생과 그럼에도 오빠의 정신을 기라며 이어 받겠다고 하는 점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이 시선을 읽으며 다시 읽어보니, 다시 읽어봐도 굉장한 비장함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또 한편 눈에 들어오는 시가 있었으니 그것은 '월하의 대화'였습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고 노래하며 현해탄에 동반 투신했다는 윤심덕과 김우진이 생각이 났거든요. 시대가 만들어낸 씁쓸하고 슬픈 로맨티스트들... 게다가 오늘은 광복 70주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임화 시선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에 빠져 봅니다.

 

<월하의 대화>

 

몇 시...

두 시.

 

삐걱! 뱃전이 울었다.

 

물결이 높지요!

달이 밝습니다.

 

바가가 설레를 쳤다.

 

얼마나 왔을까요?

반 넘어 왔습니다.

 

아직 조선 반도는 안 보였다.

 

아버님이...

아니요, 조선이, 세상이,

 

달이 구름 속에 숨었다.

 

무서워요.

바다가?...

 

청년은 여자를 끌어앉았다.

 

아아! 당신을...

나도 당신을...

둘이 함께 '인생도 없습니다.'

 

물결이 질겁을 해 물러섰다.

 

그다음

여자가 어찌했는지,

청년이 어찌했는지,

 

본 이가 없으니, 울 이도 웃을 이도 없고,

나란히 놓인

남녀의 구두가 한 쌍,

 

갑판 위엔 유명한 춘화가 한 폭 남았다.

 

- 일봉이 좋기사 좋습듸더

- 아무덴 와? 없어 병이구마

 

삼등 선실 밑엔 남도 사투리가 한창 곤하다.

 

어느 해 여름 현태한 위

새벽도 멀고

마스트 위엔 등불이 자꾸만 껌벅였다.

 

(아티초크 - 임화 해협의 로맨티시즘 p.83에서...)

 

<이 리뷰는 출판사나 작가와 전혀 상관없는 몽실서평단에서 지원받아 읽고 내맘대로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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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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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출간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그리고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목을 두고 '와! 제목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사실 전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의 저런 반응을 보고 다시 제목을 되짚어 보니...그러네요, 목을 부러뜨리는 남자라니... 무시무시할만하구나...하고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제가 둔해서라기 보다는 책을 쓴 작가의 이름 덕에 결코 무시무시한 이야기일리 없다는 의식이 깊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사카코타로는 (설사 제목이 그렇더래도) 절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요. 저는 그의 오랜 팬으로서 한국에 출간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기에, 제목이야 어찌됐든 분명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유쾌하고, 따스할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거든요. 때문에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목 부러뜨리는 남자는 과연 그 닉네임(?) 처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전해줄지, 아니면 역시 따뜻한 여운을 전하는 반전의 캐릭터일지요. 게다가 목부남 뿐 아니라 오랜만에 구로사와의 이야기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더욱 즐겁고 설렜습니다.

 

 7편의 단편이 크게...혹은 작게 오밀조밀 연결된 이 연작 소설의 중심엔 역시 목부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거미가 줄을 치듯 이야기들이 뻗어나갑니다. 이런 비유가 좀 우습긴 하지만 마치 다단계 조직같은 소설이에요.(ㅋㅋㅋ) 목부남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그의 주변인물로...그리고 그의 주변인물들의 주변인물들로 마구 마구 뻗어나가거든요. 그러면서 아주 아주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추리소설은 물론이고, SF와 판타지, 로맨스, 심지어 괴담까지. 그래서 한편의 단편이 끝났다고 해서 방심(?)하시면 안됩니다. 다른 단편 어디에선가 어떻게 또 이야기가 이어질지 모르거든요. 어떤 유명한 야구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목부남이 바로 그런 소설입니다. 한편의 단편이 끝났어도, 7편의 단편이 모두 끝날 때 까진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소설이지요. 때문에 장담하건데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앞 부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험을 여러번 하게 되실 겁니다. 이런 플롯은 사실 작가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지라, 이에 익숙한 저는 책을 읽어가다가 그런 수상한(?) 부분들이 눈에 띄면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면서 읽어요. 그래서 가끔은 트릭이나 앞으로의 전개를 종종 맞추기도 하지만, 그건 드문 경우고 대부분은 '헐!' , '아아~~~!' 같은 감탄사를 내 뱉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제겐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을 읽는 가장 큰 재미이지요.

 

 

(*****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아주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

 

 

 이사카코타로의 소설들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늘 '좋다.'하고 진심으로 감탄하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그의 소설은 '재밌다.' 보단 '좋다.'의 형용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역시 저는 읽는 중간 중간,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좋다.'하고 혼잣말을 뱉어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느냐...하고 짚어보자면, 일단 7편 모두의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이 연작 소설 전체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균형과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좋았습니다. 목부남은 청부살인업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는 무시무시한 일에 대해 균형을 맞추려 주변에 친절을 베풉니다. 살인을 한 주제에, 친절 정도 베푸는 것으로 균형이 맞춰지겠느냐구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설에서 균형 만큼 강조하는 또 다른 하나는 권선징악입니다. 목부남은 두루 두루 친절을 베풀었고, 그 친절이 심지어 전염되기까지 하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이 목부남의 죽음을 저는 권선징악, 그리고 도플갱어와의 만남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작가의 의도 또한 그랬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네요^^;

 

  우리는 부당한 일을 겪거나, 혹은 목격했을 때 흔히 이렇게 말하지요. '진정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는 거라고...' 이 작품에서도 이런 비슷한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세상엔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다.'고. 그런데 이 작품에선 이에 대한 해석을 참 재밌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실은 하느님이 있긴 있는데 하느님이 늘 인간을 보고 있는게 아니라, 이따금 보고 있는 거라고요. 하늘의 그물이 크고 성겨서 (악의 장면들을) 은근히 놓치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권선징악을 아예 부정해 버리면, 세상은 악으로 넘쳐날테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부당한 일을 겪게 되는데 어차피 세상은 글러먹었다고 생각해버린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이 바쁘셔서 이따금씩만 인간을 보살피느라 그런거라니... 구보타(단편 '사람답게'와 '측근이야기' 주인공)만큼이나 저도 안심해버렸습니다. 분명 권선징악은 존재합니다. 언제 어느틈에 하느님이 우릴 지켜볼 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사람답게' '균형'을 맞춰가며 살아야겠지요^^

 

  또 하나, 이 작품이 좋았던 건 역시 캐릭터의 매력을 뺄 수 없겠네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큰 재미이지요. 살인청부업자 주제에 약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목부남. 목부남이 지하철역에서 발권하는데 애를 먹느라 뒷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노인을 돕는 방법을 보고는 굉장히 감동하고 그에게 반해버렸습니다.(무서운 살인청부업잔데 ㅠㅠ 하나도 안무서워요...오히려 매력터집니다...ㅠㅠ) 그가 노인을 돕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뒤에서 빨리 좀 하라고 마구 화내고 소리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사람이 나서서 화를 내면 다른 사람들은 가만 있게 된다고 합니다. 혹은 오히려 동정론이 형성이 되기도 하구요.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구요? 이렇게 화를 내기 전에 먼저 넌지시 노인분께 편안히 느긋하게 일 보시라고 언질을 미리 주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진심으로 감탄하고 감동했습니다. 목부남은 (비록 살인청부업자지만) 역시 멋진 인물입니다. 이런 그의 친절함이나 다정함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그가 듣고 싶어했던 피아노 협주곡이 장송곡처럼 울려 퍼지며 그의 넋을 기렸던 건 아닐른지도...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있지요. 바로 구로사와. 주로 이사카코타로 단편 작품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본업 빈집털이범이자 부업 탐정인 인물입니다. 보통 활자로만 이루어진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인물들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리곤 합니다. 저는 구로사와라는 인물을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그려가다 보면 아주 아주 섹시한 남자가 떠오르곤 합니다. 하루(중력삐에로 주인공)처럼 꽃미남은 아니지만 그는 분명 섹시가이일 거라고 제멋대로 상상해버리지요. 어쩌면 이름 때문에 검정색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중요한건 구로사와의 섹시함이 강하게 느껴질 때는 '탐정'일 때보다는 역시 '도둑'일 때라는 점입니다. 아아, 자기 일에 열중하고 몰입는 남자는 섹시해 보인다더니 바로 그런건가 봅니다.(ㅋㅋㅋ) 아무튼!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섹시한 구로사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서 반갑고 기뻤습니다.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은 이사카코타로라는 작가의 취향이 한껏 발현된 작품집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에 '작가의 성취감과 독자의 즐거움은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즐겁게 봐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의 취향이 독자이자 팬인 제 취향에도 꼭 맞는다니 일단 기뻤고, 때문에 앞으로 더욱 애정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역시 이사카코타로는 그 이름만으로도 책장을 열기도 전에 이미 설레고 즐거워 지는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목부남! 감히 단언하건데, 목부남은 그의 최고의 단편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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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스캔들
장현도 지음 / 새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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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역시 우리 몸엔 우리 건가 봅니다. 실로 오랜만에 미친 가독성을 자랑하는 소설을 만났네요. 쉴 새 없이 쭉쭉 넘어가는 책장에 미친듯이 몰입했습니다. 한국인은 주요인물 중 단 두명뿐인데다가 대한민국이 등장하는 장면은 단 한군데 뿐인데도... 같은 민족으로서 작가의 정서가 저와 맞기 때문일까요? 역시 이런 맛에 국산 소설 읽지...싶습니다.

 

 저는 음모론을 좋아합니다. 첩보나 로비스트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좋아하구요. 그림자 정부니...하는 소재들 또한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것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행해지는 세계 금융(특히 금)의 흐름, 그리고 그 속에 감추어진 거대한 음모. 세상을 뒤흔들 그 음모를 막으려는 사람들. 이들은 어쩌면 몹시 식상하게 느껴지는(이런 소재들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나요?) 소재들이지만, 식상하다는 건 그만큼 흥미를 끌기에 자주 다뤄진다는 말의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식상하지만 재밌습니다^^  

 

 1997년은 우리나라 역사에 굉장히 수치스러운 사건이 터졌던 해이지요. IMF 경제 위기.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그저 나라가 빚쟁이가 되었구나...정도로만 그 사태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에도 사실 구체적인 일들은 잘 모릅니다. 금융이니...하는 것들은 왠지 저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 일 같아서요...... 당시 나라 빚을 갚자고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했었는데(이런 점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성...좀 멋집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집 장롱안에 꽁꽁 감춰두셨던 금들을 기꺼이 내놓으셨었죠.  이 소설에 IMF 및 금모으기 운동,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가 언급이 되는데... 어디까지가 팩트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는 모르겠지만...와... 정말... 새삼 화가 뻗쳤습니다. 역시... 잘 살고 봐야해요....휴...;;

 

 그런데 그때와 비슷한 일들은 아마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새에 세계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겠지요.  이 소설은 바로 그 어딘가에서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결말이 열린 결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계속 실제로 행해질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열린 결말 속에서 저는 주인공들의 본격 대결을 그릴 후속편에 대한 기대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책 표지의 앞과 뒤를 장식하고 있는 두 여주인공의 대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그녀들을 소개하고, 그녀들이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임무였고, 다음 후속작에선 그녀들의 본격적인 활동담을 보여주려는 거구나...하고 제 마음대로 해석했는데... 후속작이 없는 거라면... 작가님... 이렇게 떡밥만 뿌리시고 낚싯대 거두시는 그런 일은 하시면 안되는겁니다... ^^;;;

 

 저는 펀드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금융이 무지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어려운 금융 용어들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습니다. 단, 앞에서 말했듯... 후속편...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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