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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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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자연이나 사물들이 전하는 소릴 갑자기 듣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것 같나요? 현대 세상의 기준에선 분명히 비정상적인 증상이라 여기며, 혼란스러울 겁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고 싶은 심정에 이르기도 하지요. 하지만,우리의 감각이 이미 죽어있어서, 그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고 인지해보는 건 어떨까요? 조용한 공간에 가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보며, 자연과 사물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집중해보면, 제법 흥미로울 것 같아요. 여기, 사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단절될 뻔한 세상과 다시 연결되어 진정한 소통을 배워가는 소녀의 이야기 《우주를 듣는 소년》 있습니다.



● 우주를 듣는 소년 줄거리


아빠 켄지를 갑작스럽게 잃은 10대 소년 베니. 베니에겐 남편을 잃은, 저장강박증이 심한 엄마 애너벨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 없었습니다. 베니가 갑작스럽게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다며 과민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를 보고 흐느끼는 유리창의 울음소리, 선생님을 가해하라고 지시하는 사악한 가위의 목소리까지, 베니의 귀와 마음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엄마 애너벨은 베니의 증상이 심각하다는 걸 눈치채곤, 소아정신과병동에 입원을 시키게 됩니다. 베니의 증상을 정신과적인 측면에서 비정상적으로 바로보는 시선들. 소아정신과 멜러니 박사를 비롯해서 학교 관계자들과 친구들에겐 베니는 이상한 존재입니다. 마음과 집 안팎으로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움에 힘겨워하는 베니. 베니의 도피처는 도서관이였습니다. 사물과 책들은 도서관에선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서, 베니는 여름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생활했고, 개학 후에선 무단결석을 자처하면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만난 알레프와 철학자이자 시인 부랑자 슬라보이를 만나면서,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 느낀점


소설의 제목만 봤을 땐 환타지 소설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심오한 인생철학소설이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지요. 이야기 전개를 위해 등장하는 장르들도 다채롭습니다. 심리, 역사, 철학, 사회, 환경과 인류애적인 관점이 방대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방대한 맥락의 소설임에도, 이야기의 흐름은 잘 연결되어 몰입감을 더합니다.

소설은 베니와 책의 입장이 교차되면서 전개됩니다. 참 독특한 전개인데요. 이런 전개는, 책이 마치 베니의 삶을 만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하고, 베니 자신의 자산의 삶을 이야기로 엮어서 책으로 만들어가는, 두 가지 느낌을 다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베니는 어린시절부터 추억을 만들어준 사랑하는 아빠 켄지의 죽음 이후로,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니다. 현대정신의학적인 관점으로 봤을 땐, 베니의 감각은 비정상적입니다. 그런 시선때문에, 베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엄마 애너밸과 소아정신과 담당자 멜러니에겐 함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오해가 더 증폭되고, 베니는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리의 부랑자 슬라보이와 미지의 소녀 알레프를 만나면서, 베니가 사물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베니만이 고유한 능력이자 재능이라는 걸 인지하게 됩니다. 베니과 그들과 함께 하면서,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연생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연결 매개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인연들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는 베니와 베니의 엄마 애너벨에게 도움을 손길을 전하면서, 고립될 뻔한 그들이 세상과 연결되어,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우리 각자 서로 구분짓지 않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이 소설의 메시지가 그렇게 친절하게 와닿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사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베니를 보고, "과연 베니가 비정상일까? 베니를 이상하게 몰아가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주변사람들이 비정상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귀를 기울리고 자연과 주변이 전하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있는가?"라고요. 갓난 아일 키우고 아이의 감각을 키우고 감각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다보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과 본능에 집중하게 되고,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를 자연에 가장 먼저 데리고 갑니다. 즉,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베니는 감각이 잘 발달한 아이이고, 자신의 감각을 어찌 다룰줄 몰라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어른들은 그를 비정상으로 몰아갔지요. 감각을 잃은 베니가 비정상이 아니라, 베니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감각을 잃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베니의 말에 조금더 귀를 기울여본다면,그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더 면밀히 살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재는 이미 미래세상이라고 여겨질만큼, 기술문명이 우리 일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가 스스로 느끼지 않아도 무엇이든, 아주 자동적으로 얻으며, 시각적으로 혹사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몰입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꺼려합니다. 이미 자본주의에 기반한 미래기술문명이 편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지요. 편리해진 삶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감각에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썩 편치 않아보입니다. 부정적인 얘기만하는 것 같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지 않으려하지요.

허나, 자신의 감각과 마음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차가운 기계가 되어, 우리는 미래사회 속에 부속품으로 살게될지도 모릅니다. 미래사회에 도태되지 않으려고 인간 본연의 감각과 본능을 무시하게되고 편견과 선입견은 극대화될 것이며 차별은 일반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감각을 다시 깨우지 않는다면, 물질문명과 풍요 속에 살아도 편협해지는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는 감각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하며, 마음의 시야를 넓혀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되찾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각기 다른 입장이나 환경의 사람이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연생기>를 한번쯤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서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될 것입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 있으나, 현대 삶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배척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한 공간에서 존재하고, 떨어져있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만 가져도, 지금을 살아가는데 호기심을 잃지 않게됩니다.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아도 함께 살아가는 힘도 생겨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타고난 오감과 본능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더 절실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맘에 와닿는 글귀


p. 55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책의 존재 이유도 그거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표지와 표지 사이에 최대한 오랫동안 안전하게 간직하는 것. 우리는 당신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에 대한 당신들의 믿음을 지속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기분에 관심을 쏟고 당신들을 완전하게 믿는다.

p. 55 책에게도 기분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비운의 여인들에 대한 이 낭만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떤 기분일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로 끝나고 '너'로 시작하는 경계선이 피부에 표시되어 있다면, 열정적으로 그 경계를 넘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런 순간들에 사실 우리는 당신들을 부러워한다.

p. 64 다른 목소리들은 꿈속에서도 나타났어. 그렇게 시작된 거야. 마치 한 목소리가 문을 열자, 나머지가 따라 들어온 것 같았어. 꿈을 문과 같아.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거지. 그리고 일단 그 문이 열리면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p. 65 어두운 면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쪽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아. 그보다 사람들은 밝은 면에서 안전하게 머무는 편을 선호하지. 하지만 예술가와 작가와 네 아버지 같은 음악가들은 어두운 매력에 저항할 수 없어. 그건 책들이 잘 아는 영역이고, 좋건 싫건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게 우리의 임무야.

p. 95-96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일이 시작되었을 떄도 당장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미친짓을 하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온갖 일상적인 물건과 옷,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입과 눈, 태도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마치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행동한다면 결국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유의지. 물건들은 정확히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돼지갈비와 플란넬 셔츠. 포춘쿠키와 고무 오리. 심지어 젖가락도 뭔가 하말이 있었다.

p.96 -97 처음에는 그것이 목소리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인간이 내는 소리다. 아, 맞다. 동물도, 새들도 목소리가 있다. 그러니 목소리는 생물에게서 나온다고 치자. 그리고 보통의 경우 목소리가 말을 할 때는, 뭔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소리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지껄였고, 설령 그런 소리가 뭔가를 의미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지독히 답답했을 것이다.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났는데, 하필 그것이 멍청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항상 짖어대는 것 같고 짜증 내는 것처럼 들렸던 것도 놀랍지 않다.

p. 97 처음에는 목소리들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떨 떄는 생각이 머리와 동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는데 실은 머리 안에 있는 것이지 않나? 음,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내 생각이 아니었다. 그건 외부에 있었다. 그것은 달랐다.

p. 98 내가 목소리에 귀를 맞추는 법을 배운 건지, 아니면 사물들이 내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거다. 아마 우리가 서로를 훈련시켰을 거다. 그리고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 몇 달동안 목소리가 왔다 갔다 했고,몇 주씩 들리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p.181 사물들은 여전히 속삭였다. 그들은 여전히 말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이곳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이곳은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는 모든 것에 제자리가 있고, 사서들이 그렇게 되도록 관리한다.

p. 191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단어들이 그 의미로 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말하려는 것을 이해하려면 시작으로, 문장과 문단과 장, 그리고 책의 첫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책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첫 장의 첫 음절에서 시작해서, 그는 입술을 움직여 단어들을 읽었고 단어들이 결합하여 문장이 될 때 입밖으로 소리 내어 발음했다. 마치 단어들이 그의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의 혀를 빌려서 세상에 속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p. 248 도서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공공도서관은 꿈의 사원이고, 사람들은 늘 여기서 사랑에 빠지지. 어쩌면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이야. 책은 결국 사랑의 작품들이야. 우리의 몸이 육체적 결합의 신비를 즐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도, 우리 중ㅇ에 가장 재미없고 딱딱한 책들, 가장 낭만적이지 않은 책들조차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어.

p. 275 몇 년 동안 나는 어조와 목소리를 이해하는 데 능해졌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조금 힘들었는데, 사람들의 거짓말과 농담은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아서 처음 글 읽는 법을 배우고 음절을 소리 내어 읽어야할 때처럼 연구하고 연습해야 했다. 우선 사람들의 말소리를 익힌 다음 기계적으로 암기해야 했다. 사물들은 정직해서 더 쉬웠다. 그것이 사람과 사물 간의 차이였다.

p. 301 어쩌면 늙은 부랑자 취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말은 이상하게 말이 되는 것 같았고 갑자기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백만 개쯤 생겼다. 정확히 철학적인 질문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용적인 질문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당신은 어떤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나요? 목소리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고, 당신은 목소리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하나요? 목소리가 친절한가요, 잔인한가요? 그것이 자해를 하라고 말하나요? 늘 목소리를 듣나요? 목소리가 특정한 사물에서 나오나요, 아니면 그냥 허공에 무작위로 떠다니나요?

p. 328 내가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해서 꼭 창의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어. 보틀맨이 그렇게 말했고, 그는 시인이기 때문에 알아. 그는 내가 과민하고 초자연적인 청력을 지녔으며 그래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라고 말했어. 내게 필요한 건 그저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그것을 이용해 스스를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했지. 그것이 보틀맨이 하는 일이야.

p. 354 (등장인물 부랑자 시인 슬라보이의 말) "어린 학생, 내가 시에 대해 말을 좀 하겠네. 시랑 형상과 공백의 문제야. 내가 빈 종이에 어떤 단어를 쓰는 순간, 나는 혼자서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네. 거기서 나오는 시는 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형상이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결국 해결책은 없어. 더 많은 문제가 있을 뿐이지. 하지만 이건 좋은 일이네. 문제가 없다면, 시도 없을 테니까."

p. 356 (등장인물 부랑자 시인 슬라보이의 말) "나는 자네를 믿는다네. 그건 그 의사의 문제야. 자네는 자네의 문제만을 처리할 수 있어. 자네가 목소리를 듣는다면, 도와주는 게 자네가 할 일이야. 자네는 비서가 되어야 해. 대필자가 되는 거지. 혹시 대필자가 뭔지 아는가? 그건 받아쓰는 사람이야. 받아쓰기가 뭔지 아는가? 그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적는 것이지. 어쩌면 그게 시야. 어쩌면 그게 이야기이고. 남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자네가 목소리에 형상을 부여하는 걸세."

p. 359 사물들의 꿈 이야기가 바로 그래. 사물들의 느낌 혹은 목소리는 말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자마자 이야기가 증발하기 시작하지. 그래서 내가 받아 적은 것이 그토록 형편없는 거야.

p. 360 나는 목소리가 들릴 때면 대체로 목소리를 차단하거나 대체카드를 이용해 쫓아버리려 했어.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그의 덥수룩한 눈썹이 이마로 올라갔어. 그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어. 내가 목소리를 드는 것은 재능이라고, 그것들을 차단하거나 쫓아버리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어. 그리고 내가 식탁 다리 이야기를 잘하는 걸 보니 재능이 상당히 뛰어나다면서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했지. 자기가 쓴 글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으니 닥담할 것 없다고 했어. 나는 글쓰기에 대해 잘 모르고 국어 과목을 잘해본 적도 없어. 그래서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몰라. 너는 알거야. 너는 책이니까. 아는게 마땅하지.

p. 458 그것은 이상한 감각이었다.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진짜로 귀 기울이는 습관이 사라졌다. 목소리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듣거는 되지만, 굳이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부분은 그러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그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너무나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상승했다가 하강하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가 점점 줄어들었다가 다시 커졌다. 그것은 진짜였다.

p. 571 그리고 우리도. 넌 우리도 안에 받아들였고, 일단 네 안에 들어가니 우리는 너의 감각의 관문에 도달하여 마침내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피부로 만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지. 결국 책이 원하는 건 바로 그거야. 우리는 몸을 원하고, 우리는 처음으로 몸이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있었지. 우린 몸이 불러일으키는 의식을 지각할 수 있었어. 우리가 너에게 묶이지 않은 세상을 주었다면, 이건 네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어.

p. 610-611 여자들은 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신이 충분한 존재가 아니라는 지속적인 두려움을 떨여낼 수 없는 걸까? 그들은 왜 늘 뒤쳐져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그들은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나아져야 한다고 느끼는가? 그들이 티셔츠를 개키고 아이들을 키우고 경력을 관리하고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통제하기 위한 단순한 규칙들을 원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다고 믿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것이 있어야만 했다! 옳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찾고 규칙을 배울 수 있다면, 삶의 모든 부분들이 제자리를 찾고 그들이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p. 616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책은 단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책'이라는 개념은 그저 편리한 허구일 뿐이며, 우리 책들은 그것이 출판업계에서 경리 담당자의 필요와 두말할 필요없이 작가의 에고를 충족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따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물론 개별적 책들이 존재하며, 어쩌면 당신은 지금 손에 한 권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자만심 덩어리처럼 보일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이기도 하고 다수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변하는 다수이며, 무형의 흐름이다.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는 책장 위의 검은 표시로 인간의 눈을, 그리고 소리의 분출로 인간의 귀를 만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당신네 인간의 마음속을 여행하고, 따라서 우리는 융합하고 증식한다.

p. 664 우린 진짜여야 해. 그리고 그건 '네가'하고 있는 일이야. 그것이 너의 철학적 질문이었잖아. 기억나? '진짜란 무엇인가?' 모든 책은 가슴에 질문을 하나 품고 있고, 그게 너의 질문이었어. 일단 그 질문을 던졌으니, 네가 답을 찾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그래, 맞아. 우린 네 책이야, 베니. 하지만 이건 너의 이야기야. 우린 널 도울 수 있지만, 결국 네 삶을 살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네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것도 너뿐이야.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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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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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자기계발서나 성공적인 삶을 위한 방법론적인 이론서들을 읽다가, 머리도 식힐겸 오랜만에 로맨스 소설 12월의 어느 날을 읽었습니다. 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어떤 스토리로 전개될지 궁금해서 책장을 바로 펼쳐봅니다. 



■ 12월의 어느 날 줄거리


그냥 그저 그런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로리의 2008년 12월 21일. 버스 안에서 온갖 복잡한 생각을 하던 중, 버스 차창 밖으로 어느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문제는 차창밖의 남자와 로리가 같은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러나 서로에 대한 강렬한 끌림에도 불구하고 버스 밖에서 마주하지 못한 그들은, 만나지도 못하며 바로 이별해야만 합니다. 버스 차창 밖의 남자에 대한 여운이 너무나 컷는지 로리는 그를 잊지 못하고 1년의 시간을 날려 버릴 뻔한 찰나, 차창 밖 버스보이는 세라의 남친이 되어 로리 앞에 나타는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을 마주합니다. 세라는 로리에겐 절대 없어선 안될, 자매 그 이상의 소울 메이트며, 그녀의 남친 잭은 로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자라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잭과 로리의 관점을 교차하면서 전개됩니다. 로리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잭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누릅니다. 잭 또한 1년 전 겨울 버스 안에서 로리와 눈이 마주친 이래로 로리를 자주 생각했지만, 세라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버스 차창 밖의 남자라는 사실을 로리에게 숨기지만, 로리에 향한 마음을 최대한 감추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 느낀 점 


사람은 나이가 어리나, 나이를 적당히 먹으나 사랑에 서툽니다. 마음은 통하지만 이해관계에 얽혀서, 혹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사랑이 어긋나거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거나,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개인적으로 20대에 이성에 눈을 뜨고 누군가를 좋아해도 좋다는 표현을 못해 시간만 끌다가, 그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좋아할 타이밍을 놓쳐서 땅을 치고 후회한 적이 있어요. 반대로, 분에 넘칠 정도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처음 좋아한 사람한테 마음이 꼿혀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멀리하는, 미련한 사랑도 해봤습니다. 내 마음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면 갑자기 복잡해지고, 어리석어지기도 하며 우유부단하는, 갈길을 종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사랑"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서툴러지는, 젊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소설 -, 12월의 어느 날을 읽고, 사랑 때문에 힘겨워했던 지난 20대가 떠오르더라고요. 참, 지금의 사랑을 얻기까지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낸 것도 생각났고요.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는데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데요. 이 소설에서는 자그만치 10년의 시간을 두고,복잡 미묘한 사랑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소설은 읽으면, 영화 "러브, 로지"가 생각납니다. 이 영화에선 여주인공인 남자주인공을 오랜시간 짝사랑하는, 고구마를 수백개 머금은 듯한 답답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도 생각납니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어긋나는 사랑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답답합니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 로리가 "때로는 인연을 잘못된 때에 만나기도 해요(p. 489)"라고 언급한 것처럼, 내가 원하는 사랑을 제때 이뤄내기도 힘들고 그만큼 인내의 쓴맛도 필요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두 사람만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랑은 이뤄지기 전 쓴맛을 제대로 보게 한 후, 이를 극복하면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죠. 사랑은 수학공식만큼, 아니 수학공식처럼 복잡 미묘합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안 울어본 사람 없잖아요.


앞서 언급한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이 바로 맞으면 좋지만, 사랑은 타이밍이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고, 특히 이뤄지지 않거나 이별 후에 느껴야하는 상실감은 말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에 갈증을 느끼며, 사랑을 채우거나, 사랑을 이루기 위해나름의 인고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랑에 상처를 받지만 사랑으로 치유하지만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큰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로맨스소설입니다. 다만, 극적인 클라이막스는 없습니다. 로리와 잭의, 서로를 향한 사랑에 대한 내면적인 갈등이 소설 전반을 이끌어 나가는데, 사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듯 하여 살짝 지루한 면도 있습니다. 사랑을 품은 사람들의 감정이 전부 거기서 거기라는 건 알지만, 사랑을 두고행복한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버거운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책글귀


p. 62 운명의 장난으로 세라와 내가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새해 각오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내 마음은 털끝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몰랐을 때가 훨씬 편했다. 그때는 그를 상상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때는 붐비는 바에서 그와 마주치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를 발견하고, 그의 눈이 내 눈과 만나고, 우리 둘 다 서로를 기억하고, 다시금 기적이 일어나 준 것을 기뻐하는 공상이 허락됐다. 


p. 71 로리와의 사이가 어색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어색하다. 그게 내 탓이란 것도 안다. 그녀는 아마 나를 보기 드물게 따분한 별종으로 생각할 거다. 내 화술이 그녀 옆에만 가면 말라버린다. 한 번 보고 계속 생각나는 여자였던 로리를 세라의 친구로 재설정하려 용쓰는 데 정신 에너지가 몰린 탓이다. 거기다 끔찍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여파도 크다.


p. 81 우리는 다시금 침묵에 빠진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뭐라도 할 말을 이리저리 찾는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할까봐, 그에게 나를 버스 정류장에서 본 기억이 없느냐고 물어보게 될까 봐. 조망간 내가 이 망할 충동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기를, 그 기억이 내게서 중요성도 타당성도 잃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p. 82 내가 실제로 생각한 건, 내가 두 사람 다 많이 좋아한다는 거고, 바로 그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p. 93 이제 어젯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잭과 어떠한 부도덕한 짓도, 적어도 오늘 아침 전통적인 의미에서 낯을 붉힐 어떠한 짓도 하지 않았다. 막말로 그에게 젖가슴을 내보인 것도 아니고, 사랑 고백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떳떳한 기분은 아니다. 솔직히 선을 넘은 건 사실이니까. 비록 가늘어서 거의 보이지 않는 선이었지만. 지금껏 낚시줄처럼 발목에 엉켜 있던 그 선이 언제라도 내 발을 걸어 넘어 뜨리고 나를 결국 거짓말 쟁이로 만들 것만 같다.


p. 160 사랑을 찾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깨달음 같은 건 나도 작게나마 챙기고 있다. 나는 회복실에 입원 중인 환자와 비슷한 상태다. 내 실수들을 스스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잭과 저지른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고, 여전히 좋은 사람이며, 여전히 세라의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는 내게도 행복해질 자격이 생길지 모른다.


p. 257-258 꽃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때는 더없이 화려하게 만발해서 사람의 관심을 요구하고, 우리도 그 더없는 아름다움에 넋을 놓는다. 하지만 한순간에, 그야말로 한 순간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된다. 꽃은 시들고 꽃병의 물까지 갈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흉물이 된다.


p. 410 나는 내 인생과 엮어 있는 잭 오마라라는 뿌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는 나의 너무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고, 나도 그의 일부가 되어 있다. 뿌리가 끊기는 문제점은 그것이 가끔은 나무를 완전히 죽이기도 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내 결혼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무두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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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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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리얼라이즈> 이후 T.M 로건의 새로운 소설 《29초29를 만났습니다. 저자는 주로 현대의 사회문제들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전개합니다. 지난 번에 읽었던 소설 <리얼라이즈>도 SNS로 인한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힘, 즉 판단력이 약해지면 얼마나 큰 혼란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소설로 보여준 작품이라면, 이번 소설 《29초29》은 힘을 가진 자가 지신만의 권한으로 힘없는 자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9초 줄거리 


내게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이름을. 내가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지(p. 144)


두 남매의 엄마이자, 대학 계약직 강사로 간간히 생활하며 정규 교수를 목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세라. 설상가상으로 남편 닉은, 자신을 찾아야겠다며 세라와 가족을 떠나있는 상태.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하는 그녀의 절박한 상황에, 그녀를 옥죄는 한 사람 앨런 러브룩이 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아주 뛰어난 학자이자 재능있는 연구자이며, 특히 그의 전문 분야에 있어서 이미 세계 최고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미 사회적 세계적으로 그의 역량은 정편이 나있어서, 대학은 그를 통해서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어서 그의 이면에 어둡고 비열한 모습이 있다할지라도, 눈을 감아 주는 상태. 앨런 러브룩은 그런 그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세라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하며 그녀의 절실함을 쥐고 흔듭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디어도 그가 자신의 것인냥, 중간에 낚아채며 뻔뻔하게 굽니다. 세라는 치욕적인 상황임에도 겨우 버텨내고 있던 어느 날, 세라의 딸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목격합니다. 아이를 위협하는 남자를 향해서 세라의 차를 몰아붙이고 그를 들이받고 아이가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들이받힌 남자의 동료가 세라의 차 번호를 찍은 후 그 자리에서 뜨는데, 세라는 그들이 그녀에게 보복할까봐 극도로 불안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를 평소에 주시하고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그녀에게 복면을 씌우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세라가 구해준 아이의 아빠, 볼코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마피아이자 대부호였습니다. 세라로부터 소중한 딸을 지키는 신세를 졌다며, 신세를 갚을 기회를 주라고 합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사라졌으면 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볼코프에게 알라주면 볼코프의 전문방식(?)대로 그녀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사리지게 해주겠다는, 썸뜩하지만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느낀 점


이 소설을 읽으면 미투운동이 생각납니다. 각 분야의 최고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꿈과 성공을 갈망하는 힘없는 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암묵적으로 묵혀서 세상에 털어낼 수 없던 진실들을 표출할 수 있었던 그 운동. 저자인《뉴욕타임즈》가 할리우드의 성추문 관련 보도하기 1년 전인 2016년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추측하자면,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절대 권력자들이 이미 꿈이 크고 성공을 원하는 힘없는 여성들에게 성상납을 강요하며, 꼭 성공의 동아줄이라도 되듯, 변태적인 행위가 이행되고 있었으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묵혔던 진실이 언론의 보도로 인해서 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권력은 꿈이 절실한 여성들의 경력 혹은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치욕적인 폐해를 시사했습니다. 


소설 초반부터 앨런 러브룩은 세라를 희롱하는데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세라의 입장에 감정이입되는 건 당연한거고요. 그녀와 같은 성희롱을 당한 건 아니지만, 내 위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 치열한 노력을 해도, 결국엔 힘있는 자들의 한마디에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규 교수의 자리를 두고 세라와 같이 성상납을 요구받는 입장이 된다면, 상상만해도 너무나 끔찍합니다. 정규교수직에 대한 절실함을 볼모로, 절대 권력자 앨런 러브룩의 압박을 견뎌내는 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살고자 허우적대는 고통과도 같은데, 그 순간, 신세를 갚겠다면 그녀에게 나타난 러시아의 대부호인 볼코프의 제안에 그녀는 고민하다가 29초의 통화로 앨런 러브룩이라는 이름을 남깁니다. 그리고 앨런 러브룩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그를 사라지게 한 것이라며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왠걸, 독자가 상상했던 당연한 전개로 이야기는 흘러가지 않습니다. 실종되어 사망했을 것이라 짐작했던, 러브룩은 살아서 돌아와, 그의 실종이 세라와 관련있다고 확신하는데, 아오- 솔직히 이 장면에서 정말로 환장합니다. 앨런 러브룩은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을만큼 훌륭한 인재라는 점에서, 상또라이지만, 엄청나게 치밀하게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힘없는 세라의 상황은 이전보다 더 심각해집니다. 그렇게 확신에 차서 세라에게 신세를 갚겠다던 볼코프의 허술함에도 화가 났습니다. 활활 불타오르는 세라의 절박한 삶에 석유를 드립다 붙는 형국같아 보였으니까요. 진짜, 여기서 "볼코프의 힘은 세라를 돕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일까"라며, 세라의 입장에 다시 한번 몰입하면서, 읽었던 소설 《29초29》. 


소설의 초반에선 화가 솟구치고, 중반에 들어서면서 세라의 힘겨운 내적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그저 답답해서 책장을 덮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내가 예측했던 사실과 다르게 급커브를 터는 듯 전개되는 반전에 사실 깜짝 놀라기도 했고, 세라는 후반에 가서도 앨런 러브룩의 똑똑한 치밀함에 극으로 내몰립니다. 책장이 몇 장 남지 않았는데, 끝나지 않는 치욕적인 세라의 처절함. 세라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지, 손에 땀을 쥐며 결말을 집중해서 들여다봤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곤 하지만, 단순히 추리소설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29초29》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허다하고, 특정 음흉한 엘리트 카르텔 무리들은 힘없는 자들의 꿈과 성공을 자신의 손에 달렸다며 우쭐대고 있으니까요. 문명이 발달하고, 지성인이 많아지면 힘없는 자들은 비이성적, 비인간적, 야만적인 처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교활해지고 심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너무나 씁쓸했습니다. 비난 해외에서만 그렇습니까, 언어와 문화만 다를 뿐, 사람이 가진 욕망은 누구나 비슷하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더욱더 쓰라립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힘을 길러서 용기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지금 생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 책글귀


p.80 그런 다음 스테레오의 음향을 최대로 높이고 운전대를 꽉 쥔 채 소리를 질렀다. 좌절감과 굴욕감에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 모든 부당함에 대해 소리를 질렀다. 억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리고 너무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단지 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 이상이었다. 그건 분노였다.


p. 133 "아닙니다. 진정한 선행이란 조금의 사심도 없는 행위지요. 보상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겁니다. 그 특성상, 진정한 선행에는 사실 보답이란 걸 할 수 없습니다."

p. 215 그동안의 노력이, 그 모든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 그 모든 공부와 시험, 박사 학위, 면접, 잠 못 들던 밤과 단기 계약직, 고군분투, 희생, 트라우마, 가끔 찾아와준 작은 승리. 다 아무것도 아닌 게 디었어. 0. 무(無). 러브룩이 모든 패를 다쥐고 있으니까.

p. 414 계획이 파편들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러브룩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세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때 조차,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합쳐지고 있던 조각들이다. 마지막으로 던질 주사위가 될 계획이었다. 


p. 462-463 세라가 일어났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서서, 자신이 만든 무기를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쥐고 있었따. 굴복하고 싶은 마음이 자신에게서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그 모든 이성이, 논리와 상식이, 걱정과 우려가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지난해의 그 모든 좌절과 분노를 끌어올리고 몇 달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 그 모든 두려움을 들이켜며, 이 감정이 온몸에 퍼지도록, 전부 이 남자에게로 향하도록 했다. 그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본모습을 감춰왔던, 그렇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 남자를 향해. 끝을 내야 했다,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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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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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에세이를 읽다가, 동기부여를 위한 자기계발서를 일고,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전을 읽어왔습니다. 그러다가 또 가끔은 심장이 쫄깃쫄깃한, 스릴 넘치는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 무료한 일상에 긴장감을 더해봅니다. 이번에 선택한 스릴러 소설은 B.A 패리스의, "나를 돌려놔줘"를 뜻하는 브링 미 백입니다. B.A 패리스의 소설 브레이크 다운 다음으로 만난 신작 스릴러 물입니다.


브링 미 백 줄거리 및 구성


12년 전, 핀의 연인 레일라가 사라졌습니다. 소설 초반은 핀이 12년 전 레일라가 사라진 상황을 진술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레일라가 사라진 12년의 시간이 흘러, 핀은 레일라의 언니 엘런과 약혼하여 나름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핀과 레일라가 세인터메르스에서 살 때 이웃이었던 토머스 영감으로부터 그가 레일라를 봤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갈등과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핀의 현재 약혼자인 엘런이 레일라와 함께 한 세트씩 가졌던 , 인형이 겹겹이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산책하면서 집 밖 길바닥에서 발견했다고 핀에게 전합니다. 러시아 인형을 보고 긴장하는 핀. 엘런은 인형 세트 속 가장 작은 인형이 갑자기 사라져서, 그 행방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인형이 발견되고, 엘러은 레일라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걱정 반 기대반 하며, 핀의 감정을 요동치게 합니다.


소설은 12년 전 핀의 진술, 레일라가 사라지기 전 과거와 핀의 현재를 담은 1부, 레일라와 핀의 관점을 오고 가는 2~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남자 주인공 핀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흘러가고,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중되는 주변 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 전개 속 복선 등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합니다. 


느낀 점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자료 참조 : 위키피디어)"라고 합니다. 주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B.A패리스는 가스라이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몰랐는데, 다른 리뷰어들을 통해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어요. B.A 패리스의 소설 브레이크 다운에서도, 가장 가까운 주변인물들이 상황을 조작하여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피폐하게 만들어가는,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브링미백에서도 가스라이팅을 전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전 연인 레일라가 사라지고, 그녀의 언니 엘런과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핀. 레일라의 흔적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면서, 죄책감, 자괴감, 불안, 걱정, 분노,원망 등 다양한 감정들이 그를 옥죕니다. 사람은 지켜야할 것이 많거나, 진실이 감추는데 집착하다가 스스로 파국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설 초반은, 12년 전 핀의 진술, 1부에선 핀이 레일리와 인연이 되었던 과거와, 사라진 레일라의 흔적이 나타나서 갈등을 겪는 핀의 현재를 오고갑니다. 그리고 2~3부에선 핀의 관점과 레일라의 관점이 교차되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거야? 누가 범인이야? 아니면 엘런이야?? 혹시 핀이 절친한 형 해리?? 엘런과의 관계를 질투하는 핀의 전 여친 루비?" 와 같이 소설 속 인물을 교차하면서 모두를 의심합니다. 즉, 핀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을 활용한 소설의 전개는 아주 참신하긴 하지만, 뭐랄까, 진실과 거짓을 오고가며, 진실이 드러나기 까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 살짝 찜찜하기도 합니다. B.A 패리스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을 확율이 높고, 우리 모두는 들춰내기 싫은 진실이 있어 그걸 지키기 위해 가까운 이들에게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소설을 통해서 자주 보여줍니다. 결국, 인간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스스로를 망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심리를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 책 속 글귀


p. 157 대신 조심해야 했다. 그가 나를 원하는지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그의 인생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더라도 아주 천천히 가야 했고, 잘될 가능성도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p. 224 게임이란 결국 칼자루를 누가 쥐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나는 늘 예상을 빗나갔다. 핀은 내 다음 해보를 알지 못했다.

p. 241 하지만 사랑은 자기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걸,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도 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며칠 전에 해리 형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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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새움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를 통해서 "번역은 원래 작가 문자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감동을 줍니다(p.6)"라며 원작자가 쓴 서술 구조 그대로 번역해야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번역가 이정서만의 번역에 대한 소신을 처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서야 다시 번역공부를 다시하고,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번역가 이정서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 개정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번역가 이정서는 지금부터 약 2년 전에 위대한 개츠비 번역서를 출판한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 의욕만 앞선 탓에 여러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곤 책을 즉시 절판시키고, 이번에 다시 재번역한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 위대한 개츠비 내용 


고전문학 위대한 개츠비는 화자 닉 케러웨이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닉의 이웃인 개츠비는 매일 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호화롭고 성대한 파티를 엽니다. 사람들 사이에선 개츠비라는 인물은 아주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데, 어느 날, 닉을 그의 파티에 정식으로 초대한다는 초대장을 받고, 개츠비의 파티 현장(?)을 찾아가고, 거기서 비로소, 닉과 개츠비는 만나고 그들은 아주 가까워집니다. 개츠비가 닉을 초대한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개츠비의 옛 사랑 데이지와 재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닉은 데이지와 육촌이었거든요. 닉의 도움으로 데이지와 개츠비는 만납니다. 그들은 오랜만에 지난 추억을 상기하며, 환상적인 사랑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를 눈치 챈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이, 질투에 눈이 멀어서 개츠비를 경계하며 개츠비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개츠비를 몰아 세우게 됩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극에 달할 때쯤, 데이지가 끔찍한 뺑소니 사고를 내고, 그녀 대신 개츠비가 운전한 것으로 하여, 그의 사랑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개츠비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 구성


위대한 개츠비 번역개정판은 "왜 '위대한 개츠비일가?"라는 제목으로 역자의 말을 포함해, 총 9 챕터로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원작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필력이 그대로 전달되는 영어 원문과, 번역가 이정서가 우리말로 번역한 내용이 나란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난 다음엔, 역자노트도 있어요. 역자노트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기존에 번역된 문장 중, 번역이 모호해서 이야기가 이상하게 전개되는 부분들을, 비교 분석하고 정정하며, 번역가 이정서만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심지어 기존 역자들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괌감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제일 마지막엔 원작자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이해를 돕는 그의 연보도 담겨져 있습니다.





느낀 점 


번역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원문 단어와 문장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원문의 뜻을 크게 다치지 않는 "의역"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조금 부자연스러워도, 원문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직역"이 옳다고 주장하는, 번역은 솔직히 종잡을 수 없는 분야이긴 합니다. 하지만, 의역이든 직역이든, 진심으로 원문 내용과 의미를 벗엇나지 않는 선에서 번역한다면, 용서할 만하지만, 지나치게 우리나라 정서에 맞추려다 원문을 편집하여 없는 문장을 창작하거나 삭제하는 번역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독자는 원문 내용을 그대로 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가가 중간에 나서서 지나치게 중재하려다가, 원문을 다치게 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에선 동의합니다. 번역가 이정서를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를 통해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소신은 서문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원작자가 서술 구조 그대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여정이 번역"이라는 소신을 내놓고, 원문의 서술 구조대로 어린 왕자를 번역했고, 위대한 개츠비 또한 원작의 서술 구조에 따라 번역했습니다. 서술 구조에 맞춰 번역하면 번역된 내용이 다소 딱딱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어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서술 구조에 따른, 즉 직역에 가깝지만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번역, 혹은 번역체에서 번역은 여전히 연구해야 하는 부분인듯 합니다. 그럼에도 번역가는 인물들의 뉘앙스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의 맥을 짚어가며 번역했고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의, 상황 혹은 심리적인 측면에 따른, 표현과 이야기 전개 등은 다소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다만, 번역가가 언급한바대로, 위대한 개츠비의 속 모든 문장들은 은유적이라, 영문으로 들여다보든, 번역체로 보든 이해하는 건 여전히 도전과제라는 걸 인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대한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데이지는 진짜 속물적인 여인이었나?"와 같은 의문 섞인 질문에 대해서, 독자로서 해석의 영역이 넓이진 건 사실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책으로 읽기도 전에,영화로 접했고, 영화 속 개츠비는 옛 사랑 데이지를 향한 미련해 보일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에 온몸을 던진 인물이라고 인지했습니다. 개츠비의 맹목적인 사랑과 대조적으로, 데이지는 부자가 되어서 돌아온 개츠비에게 (제벌가 남자 톰 뷰캐넌과 결혼 했음에도) 빠져 들다가 그녀 자신에게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땐, 개츠비를 처다보지도 않고 자기 살 궁리만 하는 모습에 사실 너무나 화가났습니다. 그런데, 번역가 이정서의 번역을 보곤, 그들에 대한 오해가 살짝 가시는 분이 듭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바와 크게 다를바 없으나, 그들에겐 심리적 변화가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개츠비는 맹목적으로 데이지를 찾겠다는 환상만 가지고 5년의 시간을 들여 성공하여 돌아왔고, 그렇게 원하는 그녀와 재회했으나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와닿는 대목과 그 현실을 넘어, 사랑을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대목(위대한 개츠비 속 글귀 p. 278-279/역자노트 p. 551 아래 ↓)언급합니다. 그리고 데이지 또한, 자신의 남편이 아주 이기적이며 자신을 두고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내색하지 못하는 외로운 삶을 살다가, 개츠비를 만나, 개츠비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성공한 사실에 감동받은 대목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은 데이직 개츠비의 부에만 꽂혀 있는 속물적인 존재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개츠비에게 감동을 느끼고, 그를 진심으로 그리워했고 사랑했습니다. 다만, 그녀의 남편이 데이지와 개츠비의 묘한 기류를 알아채고, 베일에 쌓인 개츠비를 추궁하는 중에, 개츠비가 불법적이고 위험한 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합니다. 질투에 눈이 먼, 데이지 남편 톰은 개츠비를 지속적으로 비방하는데, 개츠비는 톰을 죽이고 싶을 만큼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때, 데이지가 개츠비를 무섭게 봅니다. 그리고 그녀의 맘이 닫히고, 결정적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녀는 자신만 살려고 개츠비를 뒤로 하고 돌어섭니다. 즉, 개츠비가 위대하고, 데이지가 속물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이야기의 맥락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개츠비가 맹목적으로 사랑만 추구했던 답답한 바보가 아니였으며, 데이지 또한 자신을 향한 개츠비의 진심어린 사랑을 인지했으나, 특정 복선으로 인하여 인물들의 심리가 변했다는 것을 이야기 흐름에 따라 알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배경은 1920년대 뉴욕으로, 물질만능주의로 만연하고 도덕적으로 퇴락하던 시대였습니다. 물질 자체의 가치를 아주 높여주고, 도덕적인 가치는 바닥으로 내모는 시대여서, 인간이 가장 위협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도덕적인 건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물질적으로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비열한 군상을 보여줍니다. 개츠비의 장례를 치를 때, 호화롭고 성대한 개츠비의 파티에 왔던 사람들은 개츠비의 장례에 절대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개츠비의 장례식은 초라했습니다. 반면, 개츠비에겐 부와 명예는 절대 전부가 아니었고, 그가 원하는 건 사랑이었고 사랑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알았지만, 그 시대는 절대로 사랑만 선택했을 때 아주 비참할 수 있다는, 씁쓸함과 허무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초월해서도 도덕적 가치는 물질적 가치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를 제대로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문학 번역에 관심이 있고, 원문을 번역하고 번역 내용을 해석하는데 시야와 통찰력의 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분들에겐 새로운 참조도서가 될 것입니다. 



■ 위대한 개츠비 속 글귀 


p. 124-125 I had been actually invited. A chauffeur in a uniform of robin's-egg blue crossed my lawn early that Saturday morning with a surprisingly formal note from his employer: the honor would be entirely Gatby's, it said, if I would attend his "little party." that night. He had seen me several times, and had intended to call on me long before, but a peculiar combination of circumstances had prevented it-signed Jay Gatsby, in a majestic hand. 나는 실제로 초대를 받았다. 청록색 제복을 입은 운전사가 토요일 아침 일찍 그의 주인이 전하는 놀랍게 격식을 갖춘 초대장을 가지고 내 잔디밭을 건너왔다. 그것은, 만약 내가 그날 밤 그의 작은 파티에 참석해 준다면 개츠비로서는 전적으로 영광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 나를 봐왔고, 오래 전부터 나를 방문하려 했지만, 특수한 상황들이 겹쳐 그러지를 못하겠다고 했다-거기에는 위엄 있는 필체로 제이 개츠비라고 서명되어 있었다.


p. 144-145 He smiled understandingly-much more than understandingly. It was one of those rare smiles with a quality of enternal reassurance in it, that you may come acrosee four or five times in life. It faced-or seemed to face-the whole external world for an instant, and then cocentrated on you with an irresistible prejudice in your favor. 그는 이해심 있게 미소를 지었다-이해심을 가진 그 이상을 담아. 그것은 영원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보기 드문 미소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인생에서 네댓 번 접할 수 있을까 말까 할만한. 그것은 일순간 외부 세계 전체를 직시하고는-또는 직시한 듯하고는-그러고 나서 당신의 호의에 저항할 수 없는 편견으로 당신에게 집중하는 미소였다.


p. 266-267 He had been full of the idea so long, dreamed it right through the end, waited with his teeth set, so to speak, at an inconceivable pitch of intensity. Now, in the reaction, he was running down like an overwonded clock.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 생각에 가득차 있었고, 끝까지 정확하게 그것만을 꿈꿔 왔고, 이를 악물고, 말하자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렬한 강도로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그는 태엽을 너무 감은 기계처럼 멈추어 서 있는 중이었다.

p. 278-279 There must have been moments even that afternoon when Daisy tumbled short of his dreams-not through her own fault, but because of the colossal vitality. It had gone beyond her, beyond everything. He had thrown himself into it with a creative passion, adding to it all the time, decking it out with every bright feather that drifeted his way. No amount of fire or freshness can challenge what a man will store up in his ghostly heart. 그날 오후 데이지가 그의 꿈의 일부를 허물어뜨렸던 순간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터무니없는 착각의 지속성 때문에.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창조적 열정으로 그 자신을 그 속에 내동댕이쳤고, 내내 더해 가면서, 그의 길에 떠 있는 모든 빛나던 깃털로 그것을 때려눕혔던 것이다. 열정이나 신선함의 양만으로 한 남자가 자신의 유령 같은 심장에 묻어 두려던 것에 도전할 수 없는 것이었다.


p. 522-523 Gatby believed in the green light, the orgastic future that year by year recedes before us. It eluded us then, but that's not matter-tomorrow we will run faster, stretch out our arms fathers....and one fine morning-/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개츠비는 녹색 불빛을,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 가치를 잃어 가는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것은 그때 우리를 피해갔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다…그러고 나서 어느날 아침-/그리하여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 역자 노트 속 글귀


p. 530-531 어떤 문장이고 따로 떼어 놓고는 그 의미를 정확히 번역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저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 속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위아래 문맥에 비추어 보면 그것이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가 정확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단어,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원래 정확히 하나였으므로, 그게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원래 의미와 다른 번역을 한 건 어찌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어떤 문장이든 잘못되면 자연스럽지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문법적이든 의미든 말입니다.

p. 532 (중략) 중요한 것은 저 단어들이 담고 있는 의미의 '해석'이 아닙니다. 그 해석은 독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자만큼 그 의미를 해석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 그대로를, 즉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를 '번역'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연히 번역이 끝나면 그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 돌아가 '해석'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일터이지요. 다시 말해 비록 자신이 '번역자'라고 해서 그 해석을 독점해 독자들에게 가르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p. 535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개츠비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오해는 극단적일 정도입니다. 번역서를 읽은 이들은 대부분 개츠비에 대해 어느정도 거짓말쟁이에, 불법으로 큰도을 벌었지만, 한 여자에 대한 병적으로 집착하다 파멸하는 인간쯤으로 여깁니다. 그러고는 개츠비가 왜 '위대하다는 것이냐?'며 의아해합니다. 왜 이런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요? 바롯 잘못된 번역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번역이 뭐라고 그런 차이까지? 하고 의아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수식어하나만으로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에 그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p. 547 His bedroom was the simplest room of all-except where the dresser was garnished with a toliet set of pure dull gold. / 이 문장은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일까요? 왜 저자는 줄표를 넣어 보충 설명을 하면서까지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짧은 한 문장 속에는 사실 많은 게 담겨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파티를 열어 주는 개츠비에 대해 허영과 허세로 가득 찬, 화려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데이지를 위한 것만 제외하고는 검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술 구조 그대로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그의 침실은 모든 방들 중 가장 소박했다 묵직한 순금의 화장용품이 정돈되어 있는 화장대만 제외하고는.(이정석 역)


p. 551 It had gone beyond her, beyond everything. He had thrown himself into it with a creative passion, adding to it all the time, decking it out with every bright feather that drifeted his way. No amount of fire or freshness can challenge what a man will store up in his ghostly heart. 그날 오후 데이지가 그의 꿈의 일부를 허물어뜨렸던 순간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터무니없는 착각의 지속성 때문에.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창조적 열정으로 그 자신을 그 속에 내동댕이쳤고, 내내 더해 가면서, 그의 길에 떠 있는 모든 빛나던 깃털로 그것을 때려눕혔던 것이다.(이정석 역) /개츠비의 '위대함'은, 한 여자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어찌 변하냐고 믿는 숭고한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빛나는 깃털로 때려눕혔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엄연히 은유적으로 그렇게 쓴 것입니다.)

p. 562 (중략) 이 소설은 이른바 '언어적 유희'가 아주 심합니다. 그 '유희'는 보통 원어민이 보기에도 잘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복잡합니다. 그래서 영미소설 중 최고의 문장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것일 테고, 100년이 지나도록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할 터입니다. 아무튼 이 소설에서 개츠비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그의 표준어가 아닌 영어로 인해 발생하는 측면이 큰 것으로 서술됩니다.


p. 584 문학작품 속 문장은 어떤 경우 한 문맥만 떼어 놓고 보면 도저히 번역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듯 압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인해 (더군다나 중의적 의미까지 더해져)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바르게 번역하지 못하면 작품 자체가 엉뚱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p. 597 아마 번역은 그럴 것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 놓고 보자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이해하기 힘든 게 더 많은 것. 그래서 과연 이 책 한 권을 어찌 정확히 번역할 수 있을까 싶은 것.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앞의 내용이 있기에 다음 문장 다음 문장이 어떤 식으로든 정확한 하나의 의미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번역에도 하나의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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