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는 그날까지
김종숙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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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고민을 껴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민은 보편화되어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반면, 주변의 눈치와 반응을 생각해야하는, 고충을 나누기에도 어려운 고민들도 있죠. 후자에 해당하는 고민 중에 하나가 난임에 관한 고민입니다.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올린 후, 적당한 신혼을 즐긴 다음, 부부의 마음 한켠이 적적하면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아이가 오지 않을 때 밀려드는 불안과 두려움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절대 공감할 수 없어요. 육아 고민에 대한 책들은 많아도 난임으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고 위로를 전하는 책들이 시중엔 거의 없죠. 이번에 접한 책은 소중한 아기를 기다리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네가 오는 그날까지입니다.


네가 오는 그날까지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기적같인 아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느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에세이는 1)가족이라는 이름으로 2)난임이라서 3)선택하고 책임지는 마음 4)나는 성장하기로 결심했다 5)언젠가 새로운 생명이 온다면 으로 총 5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적정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하고 꿈같은 결혼식을 올리린 후, 남들처럼 때가 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이를 만나기까지 너무나 힘겨운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던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8세에 결혼하여 자그만치 6년의 시간동안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를 시도해야했던 힘겨웠던 시간들. 난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없다는 걸 확인하곤, 그녀가 자신의 입장과 같은 여성분들 혹은 부부에게, 난임 중 격어야 하는 여러가지 고충을 담아 공감하고 위로하고 또 격려합니다.



느낀 점


우리나라는 유달리, 결혼, 임신과 출산 등에 너무나 관심을 많이 가지는 나라입니다. 물론, 인구수가 나라 경쟁력인 건 알지만,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져있어서, 그 시기가 다가오면 통과의례처럼 질문을 던집니다. "결혼은 언제할꺼니?","그래도 아이는 낳아야지..", "아이 하나로는 외로워. 둘째도 가져야지.." 힘겹게 결혼하면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종용합니다. 아효- 그러다보니,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온데간데 없고 괜히 죄짓는 것 같고, 또 결혼 후에 아이가 늦어지면 양가 부모님들의 재촉 시작되고, 본이 아니게 눈치를 보게 되죠. 물론, 모든 사람들이 결혼한 부부들을 위한 것이라며 아이 가지기를 종용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부부를 위한다면 부부의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안정감을 줘야하는데, 꼭 아이가 있어야만 완벽하고 행복한 가정이라 인정합니다. 이왕이면 남들과 비슷한 삶, 평균적이고 보통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맘에서 등떠미는 건 알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부부에게 채촉한다고 하늘에서 아이가 뚝~ 하고 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우리 부부의 경우엔 36살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으며,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더군요.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결혼했으니 통과의례처럼 아이에 대한 기대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옵니다. 아이 갖기에 대한 부담감을 표출했더니, 양가 어머님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시진 않으셔서 그나마 어른들을 덜 의식할 수 있었지만, 신경쓰이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겐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아기가 생기지 않는거 보면 우리도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 난 사실 병원가서 검진 같은거 받지 않으면 좋겠어. 두 사람 중에 누군가의 문제라는 결과가 나오면, 왠지 탓할 것 같고, 우리 결혼생활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안생기면 안생기는대로, 살자."라고 말했어요. 남편도 내 생각에 동의했고, 우리는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와 인연이 닿았는지, 기적같은 두줄이를 품을 수 있었어요. 솔직히 맘을 비워야, 아이가 찾아온다는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예요.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가장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아내쪽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검사를 하다보면, 요즘엔 정자쪽에서도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건 여자 탓이라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험관아기와 인공수정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어요.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운건 아내 쪽이거든요.(괴로워 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의 맘도 편친 않을겁니다) 감정이입하면서 저자가 경험했던 모든 과정에 눈을 때지 않고 읽었어요. 나는 아일 가졌다는 맘의 안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고충을 이해하고 싶어서요. 제발, 난임의 문제를 여자탓으로만 몰아가는 말은 하지 않길. 책에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난임은 결혼한 부부와 가족이 함께 책임져야 하며 함께 마음을 모아야하니, 남일처럼 보지 말길. 그리고 남일이라도 측은하고 딱하게 볼 것이 아니라, 묵묵히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이 최선임을 인지하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희망을 가지고 노력 중입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으로 발상을 전환했고, 남편과 지내는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매순간 소소하게라도 행복을 만끽하려고 합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임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고, 무엇보다 그들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와 생각을 보고 맘이 편하지 않을 거예요. 다들 위로라고 하는 말들이 희망고문이거나 상처가 될 때가 있잖아요. 타인을 탓할 순 없지만, 그래도 타인을 멀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며 마음의 문도 닫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런 고충을 6년간 경험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시작으로 생각을 달리하고, 기적같은 아기가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천사같이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기가 마음 착한 저자와 그녀의 남편에 닿아, 지금보다 백배 천배 더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두줄이를 처음 확인하는 날, 멍때리며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남편도 놀랐어요. 그러다가 천천히 현실을 직시하며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연임신이 어렵고 인공수정과 시험관아이를 위한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 책을 읽은 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큰 고충없이 기적을 품지 않았냐며, 아이가 태어나면서 겪는 여러가지 노고들 조차도 감사하게 여기자고 약속했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난임, 불임 그리고 임신과 출산은 절대 여성이 혼자서 감당해야 할, 당연한 일이 아닌 부부와 주변 가족들이 함께 머릴 맞대고 마음을 써야 하는 중대한 일이라 인지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저자가, 시험관아기와 인공수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심적,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울 때 책을 통해서 위로를 얻고 싶어서 서점을 갔는데 난임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없더래요. 대부분 육아서적. 그래서 자신과 같이 난임을 겪는 아내, 혹은 부부들에게 공감을 전하고 위로가 되고자 이 책을 용기내서 썼습니다. 저자와 같이 아이에 대한 간절함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임신과 출산 등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거예요. 새로운 생명을 품는 건 쉽지 않지만, 이 과정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지, 기적을 품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며,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책글귀


p. 37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사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난임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들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한동안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 피하기도 했지만 진정 저를 위하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p. 46 아이를 갖고 낳는 과정은 부부가 함께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난임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일로 다가옵니다. 매달 생리를 반복하면서 호르몬과 전쟁도 해야 하죠. 남자는 문제가 없고 여자에게 문제가 있어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그런 편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런 시선 속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저만의 문제가 아닌데 시댁에 가면 괜히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은 친정 엄마를 만나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왜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저 자신이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p. 52 난임을 겪으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다 보니 오래 근무하지 못할 수도 있고, 혹시라도 아기가 생기면 조심하기 위해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과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저는 직장도 없고 아기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p. 62 불임의 사전적인 뜻은 임신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난임의 사전적 정의는 임신하기 어려운 일 또는 그런 상태입니다. 못 하는 것과 어려운 상태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난임은 임신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불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붙잡고 있던 희망의 끈이 사라지는 것 같아 힘이 빠집니다. 제가 받은 상처 때문에 저는 오늘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말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좌절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p. 98-99 세상에는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참 많습니다. 내 주변에는 나 혼자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자가 아닙니다. 지난 시간을 통해 혼자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들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혹시 스스로를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가두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상처가 있다면 치유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위하고 아껴야 합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세요.


p. 131 난임은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한쪽에게 의학적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꼭 한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부가 되겠다고 약속한 순간 이는 서로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배려하고 좀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p. 142-143 난임의 시간에 서서 저는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그동안의 삶과 앞으로 삶을 보게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살아지는 대로 그냥 살았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그냥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아이를 기다리는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해 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 161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아기를 기다리며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하루를 쌓아 가다 보면 아기를 만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p. 164-165 (중략)난임 기간 내내 저를 괴롭힌 것은 타인과의 비교였습니다. 친구나 직장 동료부터 가족은 물론 비슷한 또래의 누구를 만나도 저 사람과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고 남들이 가진 장점을 부러워하며 살았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나가는 길거리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발 맞추는 엄마들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중략) 어느 순간부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저를 보며 비교가 아니라 제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며 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중략) 제 장점을 찾고,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훠씬 이로웠습니다. 그것과 함께 마음이 더 이상 지치지 않도록 단련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p. 176 저는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투정 부리지 않기로요. 나 그리고 우리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했습니다.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6년 전과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대하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올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보채지 않고 신이 허락하시는 그날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였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많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p. 181 시간의 힘을 통해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렵게 아이를 낳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전과 달리 그 누구보다 깊은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p. 203 매일 하나의 행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동료나 상급자에게 칭찬을 받으면 그것이 행복이고,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타면 그것 또한 행복이며, 야채나 과일을 싸게 사도 행복이었습니다. 행복을 찾기 시작하니 주변에는 참 많은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지친 마음을 긍정의 힘으로 조금씩 치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복한 마음으로 건강한 아이를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임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적고 행동할 것입니다.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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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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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아이들을 참 좋아해서 아이들의 성장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아기를 낳으면 유달리 육아에 관심을 가지던 나였죠. 솔직히 지극히 남일처럼 보였던 육아. 남일처럼 책으로 본대로 매체에서 말한대로 친구들에게 훈수를 두는 일도 많았는데요. 내가 간접적으로 훈수두던 육아를 직접해야하는 입장이되었습니다. 임신을 했고, 아기가 태어날 순간을 기다리지만 태어난 이후부터 부모와 아이의 유대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며, 부모로서 아이가 자기만의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이끌어야할지 고민이 안될 수 없거든요. 주변에 육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많은 부모들이 나에겐 인생선배이자 스승이라, 육아의 많은 부분을 많이 배우면서, 보완점들도 파악하고 있어요. 이미 경험해본 경험자들을 통해서 지혜를 터특하고 싶은 간절함이 가득해서, 여성학자인 박혜란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책도 들여다봅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내용 및 구성


이런 표현을 자주 써도 되는지 저자에겐 조금 조심스럽지만,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여성학자 박혜란. "취업주부 4년, 전업주부 10년, 파트타임 주부 30년, 명랑할머니 7년 경력의 여성학자"라고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 육아 그리고 남녀문제를 다룬 다양한 책들을 집필했는데, 그중에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책이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이 책의 육아서에 일종으로, 그녀의 세 아들을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육아를 했는지, 에세이 형태로 아주 눈에 잘 들어오는 문체로 구성된 책입니다.


느낀 점 


무엇보다 제목이 가장 와닿더라고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믿음"이거든요. 그나마도 어린시절에 부모님의 "믿음"을 먹고 자랐고, 부모가 자녀에게 표현하는 그 믿음이 성장에 엄청난 자양분이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어떤 믿음을 보여줬는지, 삼 형제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먼저, 그녀의 육아서가 주목받은 이유는, 그녀의 세 아들이 모두 서울대에 입학하여 현재는 각자가 원하는 위치에서 사회적으로 자릴잡고 있다보니, 그녀만의 육아방식에 비법이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라면, 내 아이가 나무랄것없이 잘 성장하여 좋은 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져 자기인생을 잘 살길 바라잖아요. 그래서 저자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 삼형제를 서울대로 보낸 어머니로 잘 알려져있죠. 나 또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그녀의 육아방식에 특별한 뭔가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고요.


막상 읽어보면, 아이들을 명문대학교로 보내는 비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삼형제가 알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만 보일 뿐, 그녀는 딱히 삼형제를 위해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언급합니다. 그리고, 삼형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부모로서 몰랐던 아이들의 잠재성을 보고 놀라고, 부모라고 해서 아이들의 인생을 설계해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면 아이들의 인생을 빼앗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가장 큰 반전이라고 한다면, 저자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알뜰살뜰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여성은 아니라는 점.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여성이 지혜로워야 집안이 잘 굴러간다는 강박증을 심어줍니다. 그런데 그녀는 사회가 심어주는 강박증을 거부하는 아주 털털하면서 자칭 둔한 엄마이자 아내라고 표현합니다. 맛있는 밥을 차려주거나, 집을 알뜰살뜰 예쁘게 꾸민다거나, 살가운 아내이자 엄마는 아니라는거죠. 즉, 집도 잘 안치고, 삼형제와 몸으로 놀아주고, 엄마 공부한다고 아이들만 두고 중국으로 유학을 감행하는 털털하면서 자기주도적인 엄마이자 아내입니다. 그럼에도 삼형제들이 나름대로 군소리 없이(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잘 자라 준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되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 일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예요. 물론 다른 집안 아이들과 비교해서 불안 초조했던 경험도 있지만, 최대한 삼형제 각각의 결에 따라서 아이들을 지켜봤더니, 아이들 스스로 자기의 방향성을 찾아가더랍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전업주부로 엄마로 살아가면서 엄자신이 좋아서 책을 읽었더니 아이들도 따라서 책을 읽기도 하고, 아이 혼자서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질문을 던지면 엄마는 답변을 해주려고 노력하거나,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줄 때와 주지 않을 때가 명확했다는거예요.


부모는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이유로, 삶을 먼저 살아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내가 한 고생보다 덜 고생시키겠다는 사랑을 기반으로 아이를 양육하지만, 때론 그 사랑에 가려 아이들의 잠재성을 재대로 목격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나 조차도 내 생각이 맞는 듯 한데, 다만 어른이 하는 말이라 무조건 듣는데서 나의 생각이 무시될 때만큼 기분나쁠 때가 없더라고요.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랄까요. 나도 어려봐서 아는데 어려도 생각이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아이를 동등한 존재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깨닫기까지 본인도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엄마로서 반성하고 삼형제와 조율하면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려고 노력하더라고요. 부모에게도 지혜가 있고 아이에게도 지혜가 있습니다. 저자가 책 서문에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보단, 부모인 자신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육아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는데, 나도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요. 믿음으로 기반한 육아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인내심이더군요. 스스로 하도록 지켜봐주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느끼면 도와주고, 꾸준히 격려해주는 것.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그러나, 부모가 아이들의 인생에 지니치게 자신의 삶을 투영하다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특권을 부모인 내가 뺴앗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인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육아를 하면서 혹은 육아를 통해서, 아이는 아이답게 나는 나답게 성장하고 싶은 예비 부모님 혹은 부모님들에게 추천합니다. 앗,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유아나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교육자분들도 읽으면 교육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합니다. 


■ 책글귀


p. 19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그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육아처럼 즐거운 일은 이 세상에도 없다.


p. 30 엄마가 하루종일 붙어서 아이를 키운다고 아이들이 모두 문제 없이 크는 건 아니다. 엄마가 취업을 했건 안 했건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p. 40 나는 몇 년 동안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한 끝에 드디어 위대한 발견을 해냈다. 즉, '집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나는 집을 위해서 살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노라고.


p. 48 아이들 키우는 일이 재미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꽤 달라졌으리라. 아이들과의 만남은 늘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갓난아이와도 주저리주저리 잘 떠들고 놀았다. 아이들은 키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놀아 주는 대상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노는 걸 아주 좋아한다. 지금까지도.


p. 50-51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놀 수 있는 기간은 대단히 짧다.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사실 아이들과의 놀이는 끝나고 만다. 솔직히 대부분의 엄마가 그렇듯이 나도 그 이후에 아이들이 무슨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악을 쓰면서 서로 뒹굴고 논 그 경험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모자 관계라는 끈 이외에 친구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한 것 같다. 아주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하는 습관을 키워주었다.


p. 64 나는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자기가 흥미를 가지면 저절로 배우게 되어 있다. 그걸 엄마의 흥미나 욕심에 맞추어 억지로 가르치려든다면 역효과만 나게 마련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씌어 있잖은가. 조기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남의 말에 휘둘려서 중심을 잃고는 내 뜻대로 안 된다며 아이를 괴롭힌 게 어리석은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것이다.


p. 73-74 세 아이의 적성 찾기 과정을 늘어놓다 보니 부모가 아이 인생을 설계해 주겠다고 나서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보다 조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생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고, 따라서 그들의 인생을 설계해 주어야 할 책임감 같은 걸 느끼면서 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곧 아이에게서 자기가 살아갈 인생을 빼앗는 일이 아닐까.


p. 74 적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아 젊은 부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이 뜻대로'사는 모습을 보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p. 78 우리의 삶은 한풀이의 과정 이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가난하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기 한 번 못 펴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너무 원통해서 자식을 통해서나마 그 한풀이를 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자식들만은 '기죽지 않고' 살게 하려는 염원이 버릇없는 아이들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남보다 뭐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들의 자식 키우기는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의 발현 수전인 것 같다.


p. 108 자신의 어린 시절을 조금만 되돌아보면, 부모가 마음에 안 들 때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을 탓하며 얼마나 억울해하고 속상해했던지 떠올릴 수 있으련만, 자신이 부모가 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어찌 된 셈인지 아이들에게 신처럼 군림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p. 135 "그래, 이제 어디서 엉켰는지 알았지? 그렇게 쉬운 걸 갖고 괜히 엄마를 곯려 먹으려 했구나. 엄마 때는 그런 거 배워 본 적도 없어. 교과서도 시대에 따라 자꾸자꾸 바뀌니까 니네들이 엄마 세대보다 어떤 면에선 훨씬 유식할 수도 있는 거야. 네가 아는 걸 엄마가 모른다고 해서 엄마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그거야말로 정말 무식한 짓이야."


p. 136 물론 버릇 들이기는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인 방법을 쓸 때 더 효과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라면 가장 바람직하다.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보다 아무 말 없이 틈만 나면 책을 펼치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은 자적 자극을 받는다.


p. 150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늘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문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웬일인지 상당히 생각이 깊은 것 같은 어른들도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것도 그중의 하나이다.


p.215 엄마가 자식들에게 주는 사랑을 일반적으로 '모성'이라고 높여 부르고, 그것은 곧 무조건적인 사랑, 맹목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영원한 모성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모성의 참뜻은 결국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싸안는 한없는 사랑일 듯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주부'라는 이름으로 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죽여 가며 가족에게 쏟아붓는 사랑이 진정한 의미에서 모성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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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투에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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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늘 진지한 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면 심오한 책들을 읽곤 합니다. 그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삶을 대하는 방식들을 마주할 수 있는데요. 가끔 이에 몰입하다보면,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글자가 적고 감성감성 글귀로 구성된 책자를 편안하게 읽으면서 머릴 식히기도 합니다. 이번엔 우리들에게 아주 친숙한 카카오프렌트 중 무지를 주인공으로 하고, SNS 인기 작가인 투에고가 만난 감성에세이 무지, 나는 나일때 가장 편해라는 책을 편안하게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내용 및 구성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카카오톡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무지. 국민 캐릭터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무지는 토끼 옷을 입은 단무지라는 사실! 토끼 옷을 입은 무지는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아주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라고 책에선 소개합니다.그리고 무지가 등장하면 항상 따라 붙는 초록초록 미스테리 캐릭터 콘. 콘은 아주 자그마한 공룡, 혹은 새끼 용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알고보면 무지를 성장시켜주는 조력자라고. 캐릭터에도 특징과 스토리가 있음을 확인시켜주면서 투에고의 감성글귀를 더해 책 한 권을 채웁니다. 주로, 가면을 벗은 진짜 나 자신에 대한 일상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고, 프롤로그를 포함하여 1)다 잘될 거라고 말하진 않을게 2)불안은 토끼옷에 달린 꼬리 같아 3)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4)나의 외로움까지 사랑할래 5)혼자라서 좋고, 함께라서 더 좋은, 총 5파트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느낀 점 


무지가 단무지인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감춘채,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우리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정도로 나의 진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조절할 수 있어야 사회에서 생존하기 수월하거든요. 그러나, 그만큼 나 자신은 온몸에 힘을 줘야하고 긴장을 해야합니다. 집에 돌아와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속이 후련하죠. 온몸에 힘을 빼고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고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와 마주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바라는 내 모습,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너무나 다른데, 내가 사회에서 바라는 모습을 지향하는 쪽이라면 내 본연의 모습을 혐오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일종에 내 마음 저 깊숙한 곳에 열등감 혹은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어서 나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용서하기도 힘들고 특히, 받아들이기 조차 힘든 순간이 더 많아요.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나라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여유를 작가 투에고의 글귀를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답니다.


다만, 카카오프렌즈 무지를 기반으로, 글들이 짜여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가볍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킬링타임으로 머리도 식힐겸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답니다. 글들이 마음에 확~ 와닿길 바라는 마음보단, 글귀 위에 눈과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좋아요. 



■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일상에서 적응하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힘을 바짝주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중간에 짬을 내서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 책글귀


p. 21 행운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내게 찾아온 우연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p. 38 실수는 꼭 짓궂은 그림자 같아. 졸졸 따라다니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미처 준비 업이 마주하기라도 하면 도망치고 싶어지더라. (중략)이미 일어난 일, 자책해봤자 소용없다고들 하잖아. 그림자를 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따라 꼬리처럼 매달리는 그림자처럼 실수도 그냥 내 일부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 오늘밤도 나는 그림자와 함께 걷고 있어.


p. 59 마음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속삭임, 못 들은 척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 자꾸 마음이 표정을 움직여서.


p. 78-79 (중량) 태풍이 온다더니 어김없이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잿빛 하늘에서 거대한 천둥소리가 나더니, 번개가 내릴치기 시작해. (중략)그런데 이렇게 비가 내릴 때 집 안이 더 아늑하게 느껴져. 빗물에 어깨나 발이 축축하게 젖지 않아도 되니까,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빗소리를 들어도 되니까, 방 안이 어두워지면 불을 켜면 되니까. 태풍을 막을 수는 없지만 안도감이 드는 건, 이렇게 사소하지만 따뜻한 것들의 존재감 덕분이야.


p. 96-97 내 안에는 두 개의 내가 공존해. 상처투성이로 웅크리고 있는 나와 살기 위해 치유하려는 내가. (중략) 서로 다른 '나'들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 가능한 한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거든. 그래도 그 둘이 평화롭게 만날 때가 있어. 바로 내 진심을 꺼내 글로 기록하는 순간이야. 이 시간을 통해서 난 비로소 내가 누군지 발견하는 것 같아. 아픈 나도, 치유하려는 나도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유일한 시간이라 그런가 봐.


p. 107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라는 영화를 찍기 시작해.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면 이미 찍은 장면은 다시 찍을 수 없다는 거야. 롱테이크로 계속 이어져서 NG를 내도 다시 찍을 수 없으니, 실수를 할까 봐 진땀이 날 때도 있어. (중략) 역시 연기는 힘들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봐주는 이들과 함께하거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온전히 혼자 있고 싶어. 나는 나로 있는 게 가장 편하니까.


p. 137 외롭고 힘든 날에는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전화번호를 뒤져봐도,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좋을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 저마다 그럴듯하고 멋진 단어로 나와의 관계를 포장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인 거 같아. 사실 이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아? 나를 믿어주는 거, 나를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토닥여주고 응원해주는 거, 바로 스스로에게 가장 완전한 친구가 되어주는 거야.


p. 188-189 너도 그거 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사람보다는, 완벽한 줄 알았는데 커피를 마시다 흘리는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간다는 심리학 법칙 말이야. 뭐, 우리가 겨우 하나만 부족한 건 아니겠지만, 어쨋든 실수가 호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대. 아마 완벽하지도 않고, 실수도 하는, 그렇게 닮은 서로의 모습 때문에 우리 사이가 더 가까워졌나봐. 가끔은 부족함이 관계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거지. (중략)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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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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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여러가지 정보가 담겨져 있거나, 자기계발을 위한 방법론들이 즐비한 책들에 빠져들다가도, 정보와 방법에 치여 때론 잔잔한 이야기를 담아 대화하듯 풀어낸 글 위로 눈을 살포시 올려두면 마음을 올려두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에 매료될 때가 있고, 그 순간을 위해 차분하고 고요한 에세이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감독 김종관의 에세이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___있습니다를 읽으며 마음을 내려놔봤습니다. 



■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최악의하루,페르소나_밤을걷다 등 다양한 단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김종관이 직접 쓴 에세이이며, 1)가까운 산책-10년 전 2)베를린 천사의 시 3)시네마 천국-영화와 기억 4)흐르다-추억과 이야기 5)어느 꿈속에서-10년 후 6)시나리오 로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자는 "창작이 정체된다고 느꼈던 시기(p.9)"에 책에 담긴 글을 썼다고 언급합니다. 자신의 기억들을 모아,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은 "자신의 창작에 베어들어 이곳저곳에 남아 있게 되었다(p.9)"는 프롤로그 속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느낀 점 


에세이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참 든든합니다. 하지만, 제목과 에세이에 담겨진 글에서 느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은 참 달라요.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에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일상의 편린 속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기분이라서, 누군가의 기억와 추억이 벤 글귀를 따라 눈은 흘러갑니다. 마음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특히, 시글벅적한 텔레비전 미디어에 빠져들다가, 그곳에서 나와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어요. 삐쭉삐쭉 곤두 선, 더듬이 같은 신경이 차분하게 내려앉고, 글귀 한 자 한 자에 몰입합니다. 뭔가를 상상한다기 보단, 그냥 글감에서 풍겨지는 분위기와 느낌에 심취되더라고요.


특히, 영화도 만들고 글도 쓰는 저자의 글솜씨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글솜씨라기보단, 뭐랄까, 일상을 바라고 일상에서 접하는 느낌들을 생각치도 못한 다양한 표현들로 어떻게 꾸미는지.. 내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짜도,내 느낌을 예쁘게 꾸밀만큼 다양한 표현이 없어서 늘 고민이거든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직까진 너무 이성적이고 차갑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고 차분함이 젖어든 글귀를 보면 시선이 사로잡히고, 마음도 뺏깁니다. 부러워서요.

에세이 속 글귀는 단편적으로 쪼개져서 적힌고 채워진 글들이라, 연계성도 없고, 그렇다고 막~ 공감되는 글귀는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누군가의 추억과 기억을 들여다보고 따라가는 것에 더 가까워요. 그러다가 와닿는 글귀를 보면 시선을 고정하고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될 때까지요. 산문같기도 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운문같은 글귀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닿는 글귀를 보다가도 이해될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영화감독 김종관의 글귀가 벤 일상이 잔잔한 편린으로 나의 기억 한 켠에 자리잡는 기분도 듭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시끌벅적한 일상에서 벗어나, 잔잔하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55-58 한 시간 후 나는 어느 작은 숲길에 있었다.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숲 안에서 잘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들을 보고 있었다. 새들이 초현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나는 거기서도 알아듣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느끼게 된다. 눈뿐만 아니라 귀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p. 58-59 제주도에서 사실 올레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있고, 그 길만큼, 그 길을 지난 사람들만큼 서로 다른 추억과 사연들이 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다른 옷을 입고 기다리는 그 길들은 닳은 듯 닳지 않은 길이다. 그 많은 길들 중 하나인 올레길은, 길의 시작과 끝이 있지만 길을 걷는 목적은 그 끝에 있지 않다. 빨리 걸어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쉬어도 좋고 뒤를 돌아봐도 좋다. 걸음이 멈추는 끝은 마을의 그루나무이거나, 작은 포구이거나, 해 질 녘의 텅 빈 해수욕장이곤 했다. 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선 기분은 마치, 보신각의 종이 올리며 새해가 되는 순간과 닮았다.


p. 78 발끝이 짓무를 때까지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어떤 것에서 나 자신이 가장 멀리 떨어지길 바란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여행을 할 때 마주치는 낯선 풍경은 우주가 아닌 이상 낯익은 일면이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p. 81 별이 가득한 우주. 저마다 입증된 스타들이 가득한 광활한 그곳의 화려함에 눈 둘 곳 없다가, 이 그림 하나만을 담아 나왔다. 미술관을 나서 강으로 난 길을 걸으며, 마지막으로 본 이 그림이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만의 스타임을 알았다. 작가의 이름도 모른 채, 그 그림을 생각했다. 달이 보이지 않았지만 달에 비쳐진 풍경을 보고, 음악이 들리지 않았지만 그 공간 가득한 음악을 상상했다.


p. 83 그림을 보고 돌아오며, 나를 지나치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림이 주는 위안은 그대로였다는 것,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위안은 더 깊어졌다는 것. 달빛에 의지한 여인들의 왈츠가 있는 그림은, 지금 여기에서의 남루한 재회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생겼다.

p. 98-99 집들 사이의 좁은 언덕길 틈으로 석양이 진 바다가 보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않았던, 마주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해 질 녘 바다를 보았다. 언덕 밑 해안선으로는 아까 보았던 파란 트레이닝복 소년들이 여전히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에 당황했다. 매우 조용했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그 언덕에 서 있을 때 우리의 관계가 생겨났다. 내내 지치던 풍경에 나는 어느새 반해 있었다.


p. 136 완벽하게 좋은 순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스러져가는 환영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p. 175 길 위에 시간들이 놓여있다. 길을 가면서 자주 뒤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목적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것도 의미는 없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을 지나 어제가 될 것이다. 오늘은 오늘일 뿐이지만, 수많은 어제가 나의 오늘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오늘을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후회하며 엉망진창으로 살든, 고민하며 살든, 우리는 어제가 만들어낸 길들을 밟고 오늘이라는 길 위에 걷는다는 걸 생각한다.

p. 197 때때로 옛 동네를 찾아갔다. 옛 동네를 걸으며 그 생생한 추억에 지워지는 기억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대부분의 공간은 사라졌고 누구도 그 기억을 위한 비석을 세워주지는 않는다. 허물어지는 언덕에 올라 사진을 찍고 글로 그 기억을 남겨볼 뿐이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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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 회사에서 뒤통수 맞고 쓰러진 회사인간의 쉽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퇴사 적응기
민경주 지음 / 홍익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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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목적을 위한 사회활동에 뛰어든건 딱 20살이었고, 딱 31살에 사회생활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일을 놓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일을 해야했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 또한 사회생활의 일환인 줄 알고 버티면서 야근을 밥먹듯 하며, 나를 챙기도 못하고 살았던 지난 20대. 중간에 짤리기도 했지만, 일복이 있었던 덕분에 그나마 일을 이어서도 했지만, 조직을 위해서 치열하게 충성하며 열과성을 다했으나, 나에겐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을 목표로 일했는데, 조직은 일개미같은 직원을 위해서 힘써주지 않는 현실을 보곤, 사회생활에 치를 떨곤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둬야 했죠. 이후 나는 백수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내 길을 찾가 위해서 여전히 퇴사적응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퇴사적응기라는 표현은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방할 줄 알았는데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퇴사 후 경험해야 하는 물질적, 심적인 딜레마를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내용 및 구성


저자는 서른 살 겨울,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엄청난 기업도 아니고,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월급날 정확하게 받지 못해 찔끔찔끔 밀리면서 받다가 결국 방출 통보를 받은(p. 15)"은 저자가, 퇴사 후 경험해야 하는 여러가지 고충과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던 이야기를 1) 퇴사 후에 오는 것들 2) 퇴사하고 뭐하세요? 3) 도전에는 실패가 따르지 4)퇴사 후에 맞는 역풍 5) 바닥과의 조우 6) 다시 쌓아 올리기, 총 6파트로 나눠서 퇴사 후 인생적응기를 담고 있습니다. 



느낀 점


책의 제목처럼, 생계를 위해 돈때문에 일을 해야만 상황에 놓여서, 일을 그만두고 나면 세상이 무너지고, 우리 가족들은 전부 거지가 되어서 길바닥에 나 앉는 줄 알았습니다. 일 그만두면 지구가 멸망하는 듯한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힘들어도 일을 꾸역꾸역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윗 선에서 지시하면 지시하는대로 일을 척척 잘 해내는 편이어서, 총알받이도 역할도 자주 자처해야만 했습니다. 일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내면 조직에선 날 알아주고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커버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나, 큰 잘못을 하면 그 책임 또한 나 혼자서 짊어져야 했습니다. 조직의 일개 직원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따지고 보면, 함께 책임을 분담해야 할 조직에서 소위 "발뺌 현상"을 목격했고, 혼자서만 속 앓이하고 죄책감은 물론 주변사람들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심지어 직무유기라는 말도 들으면서 죄의식을 가중 시켜서, 책임감의 무게는 더해졌습니다. 그때 알았죠. 사회는 참 냉정한 곳이며, 같은 조직에 있어도 절대 엮이지 말아야 할 일에 있어선 동료를 커버해주는 것도 인색했습니다. 그리고 일개 직원이 조직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도, 성과와 영광만 날치기할 뿐, 나에게 공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참 허무했고, 이용만 당하는 기분에 너무 화가나서 일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퇴직금 명분으로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나마 실업급여정도만 받고 초라하게 조직에서 나와야만 했죠.


퇴사를 하고 보니, 나에게 남은 것은 마이너스 500만원. 오로지 정직원만 되면 생활권에 안정이 찾아 올 것이라는 희망만 가지고, 돈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계속 일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나를 챙기지도 못하고 재정관리도 하지 못한채, 그렇게 꾸역꾸역 나를 밀어붙였는데, 역시나. 자리도 잃고 돈도 잃었습니다. 나도 잃었고요. 노력의 배신이라는 말이 정말로 와닿았습니다. 일을 치열하게 하든 하지 않든, 내 그릇 챙기는 건 내가 해야 한다는 걸, 퇴사 후 암울한 삶을 살면서 뼈절이게 느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하게, 퇴사 후에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우울증까지 겹치는 등 여러가지 악재같은 딜레마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접하니, 이건 필히 사회문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해 졸업을 앞둔 선배들을 보며 저들은 심사숙고 끝에 자신의 진로를 확정하고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줄 알았고, 진심으로 그들을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어쩌다 보니' 그쪽 공부를 하고 있고 '어쩌다 보니' 그 회사에 취직해 '어쩌다 보니' 그 직무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p.87)"라는 문구를 보고 완전 공감. 남들하는대로만 살면 잘 살아지는 줄 알았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고, 개인의 집안 소득수준과 배경 등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며, 기업은 개인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되, 책임만 다 떠넘기며, 만만한 사람을 아주 만만하게 대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이 사회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 퇴사 후에 내 업을 갈고 닦는 건 결국엔 자기 몫이며, 사회가 만들어낸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결국 내 몫이라는 걸 알고, 내가 해낼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내가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동안에 생계문제 또한 혼자서 껴안아야 하고요. 아효-!


그럼에도 살아갑니다. 그 과정을 버텨내는 건, 언젠가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실천이 이어져 나의 업과도 연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죠.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고해서 짤렸다고해서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지구는 무심하게도 참 잘 돌아갑니다. 나 또한 일을 그만두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고민과 고충을 고통스럽게 껴안으면서 살궁리를 하면서 지금껏 숨쉬고 있습니다. 나의 운명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은 하지만, 결국엔 살아갑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최선을 다해서 조직생활을 하는 중, 갑자기 퇴사통보를 받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스스로 조직을 벗어난 경험이 있는 모든, 퇴사자들에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퇴사 후, 나의 업을 찾아가는 나만의 치열한 여정 중에 있는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18-19 풍랑을 만났을 때 배가 너무 무겁다며 선원을 바다에 던지는 선장, 내가 그동안 일하면서 회사로부터 받은 것은 월급밖에 없었는 것 같은데, 심지어 그동안의 고생에 대해 아무것도 보상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바다로 던져지고 있었다. 이런 선장 밑에서 계속 버틴다고 해서 언젠가 내가 보상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p. 30 기업이란 수많은 사람들의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개인에게 제공해야 하는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오랫동안 일한 사람에게 그 기간에 상응하는 퇴직금을 주어야 하며 스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실업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법은 기업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도덕의 문제다.


p. 32 내가 회사를 아무리 사랑해도,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p. 55-56 지금 방향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없어서 슬픈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백수의 삶은 행복 그 자체지만 돈은 점점 떨어지고 그로 인해 삶의 질도 자꾸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일단 움직일 방향부터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에 있는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물론, 그날 하루를 또 그렇게 탕진해버리고 말았지만.


p. 62-63 퇴사를 하면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 더 이상 수입이 없는 상황에 매일같이 카페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집이 있다면 매달 죽일 듯이 날아오는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해낼 수도 없다. 공간은 사람의 생활과 기분까지 지배한다. 퇴사자가 있어야 할 공간은 어디인가. 그렇게 어떻게든 빨리 일을 해야하는 이유가 늘어났다.


p. 80 우리는 생활에 뭔가가 더해지는 것만으로 삶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 변화에 맞춰 기존의 환경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항상 쓰던 대론 새로운 도구를 쓰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며 성질을 내는 일이 많다. 이런 사고는 회사에서 사람을 쓰는 일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p. 106 나는 나의 상황이 정말이지 너무 창피하고 비참했다. 나름 열심히 일하면서 인정받길 바랐던 회사에서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내 일과 사람들을 빼앗겨버린 현실이, 그 뒤로 멋지게 재기하지 못하고 고꾸라져 있는 내 모습이. 하지만 내가 부끄러워하든,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p. 126 퇴사를 맞이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약속이 생겨난다. 누군가의 삶에 급자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퇴사를 계기로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제법 괜찮은 인간관계를 가져왔다는 고마운 증거이기도 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시간을 정말 넘쳐났다.


p. 132 살아서 뭐 하나 싶고, 더 이상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와중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우울증은 일에 더 집중하면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 수 있다. 하지만 일도,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찾아오는 우울증은 차고 올라갈 수 있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끝없이 어딘가로 빠지고 있는 느낌을 준다. 계속 허우적거릴 뿐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p. 135-136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업적을 세우는 피곤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고 몰두하는 매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업은 어디로 갔고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는 걸까.


p. 138-139 특별히 하고 있던 일도 없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없으니 생각은 자꾸 과거로만 갔다. 그 여파인지 꿈속에서는 과거의 일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억울했던 일,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일, 지금 생각해도 너무 쪽팔려서 이불을 뻥뻥 차야 하는 일, 일생일대의 기회를 바보같이 놓쳐버린 일…. 이상하게 좋았던 일들은 생각나지 않고 나쁜 일들만 떠올랐다.


p. 191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게 될 때 받는 충격만큼,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동력을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방황하고 나서 움직여야 한다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나는 좀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주자앉아 있었다. 그런데 소속도, 져야 할 책임도 없으니 아무도 나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끝도 없이 자기 비하만 계속하고 있는 상황, 우울감도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p. 192 우울증이란 결국 혼자 털고 일어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병이다. 노여움의 파도가 몇 차례 지나간 후에 조금 정신을 차리니 모든 문제가 운도 지지리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꾸준히'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214-215 첫 직장을 도망치듯 나온 이유는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쉬고 새벽 두 시에는 집에서 잠들어 있고 싶어서였다. 그게 너무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도망쳐놓고 나는 또다시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풍파만 있을 뿐이었다. 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p. 218 기록이란 참 신기하다. 갑자기 떠올리려고 하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다가 사진이든 글이든 그 순간의 어떤 것을 마주하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그렇게 과거의 일들이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하루에 하나씩, 가끔 귀찮으면 빼먹기도 하면서 글 옮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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