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종이책을 사지 않는 강경 전자책파인데 전자책이 나오지 않은, 앞으로도 나올 것 같지 않은 책들은 어쩔 수 없이 종이책을 구매한다. 그리고 북스캔 업체에 들고가 PDF로 바꿔버린다.

올 한해 사부작 사부작 사들인 종이책이 상당히 쌓였길래 최근에 북스캔 하러 다녀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 북스캔 업체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예전에는 사당 쪽에나 조금 있고 다른 곳에는 많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서울 곳곳에 있다.

나는 총 24권을 가져갔다. 너무 무거워서 캐리어를 끌고 갔다. 가면 우선 책등을 잘라야 한다. 일반 책은 재단비가 1,000원인데 하드커버는 재단비 1,500원을 받는다. 하드커버 책은 무겁기도 무거운데 책등 자를 때도 비싸다.

깔끔하게 잘라진 책들을 가져다주시면 본격적으로 스캔 시작. 내가 갔던 곳은 기본 30분(6,000원)에 추가시간 10분당 2,000원이다. 시간이 곧 돈이다. 초집중해서, 어떠한 오류나 딜레이도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스캔해야 한다.

스캔 속도가 정말 빨라서 정신없이 작업했다. 24권을 다 스캔하고 나니까 약 4n분 소요. 총 50분으로 계산했다. 문자인식(OCR)이나 선명도 높이는 작업을 추가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다 뺐다. 재단비랑 스캔 비용은 총 36,500원이 나왔다. 24권인데 나름 선방한 것 같다.

예전에는 스캔 끝난 책들을 가게에 버리고 왔는데 이번에는 다시 싸들고 왔다. 어차피 버릴 책이니까 밑줄 팍팍 그으면서 읽고 싶어서다. 스테이플러로 대충 찍어서 휙휙 넘겨가면서 보고 있다. 형광펜으로 밑줄도 마구마구 친다. 어차피 PDF로 바꿔놨으니 험하게 다뤄도 상관없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북스캔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제일 좋은 건 출판사에서 정식 전자책을 내주는 거다. 그건 폰트와 글자 크기를 바꿀 수 있으니 정말 짱이다. epub파일이 최고다.

이미 PDF로 스캔해놓은 파일이 있더라도 정식 전자책이 나오면 또 산다. 그것이 바로 조지수의 <나스타샤>. 전자책으로 안 나올 것 같아서 북스캔 했는데(나중에 캐나다 여행 갈 때 들고가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전자책이 나와서 바로 구매했다. 이런 데는 돈 써도 아깝지 않다. 전자책이 나오기만 한다면 중복 소비 쯤이야.

두껍고 무거운 책들은 한번쯤 전자책 발간을 고려해주시길. 692쪽에 969g인 <그레이트 게임>이나 704쪽에 1075g인 <내 심장을 향해 쏴라> 같은 책들이 전자책이 있었다면 굳이 책등 쪼개고 스캔하는 생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이로써 내가 갖고 있는 종이책은 또다시 제로에 수렴하게 되었다. 제로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딱 두 권을 종이책 상태로 보관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 그것은 바로 <탐험가의 스케치북>과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사>.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이건 쪼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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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나는 영화를 좀처럼 보지 않는 인간이라 이 영화도 한때 엄청 인기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나온다는 것 뿐이었다. 과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곳은 연인들의 성지라서 연인들은 그곳에 가서 사랑을 맹세한다나, 아무튼 그런 문장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이 영화의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헤어져놓고도 서로를 못 잊어서 남의 나라까지 와서 사랑의 난리 부르스를 춘다. 당연히 남주에게는 여친이 있고, 여주에게도 남친이 있다ㅋㅋㅋㅋㅋ. 현재 만나는 애인을 버리고 서로를 선택해야만 그들의 사랑이 빛난다고 생각해서 이런 설정이 탄생한 걸까? 하긴, 서로 솔로라면 이렇게 아련한 영화가 탄생할 이유도 없다. 예전에는 이런 식의 설정(각자 애인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해!)이 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요즘 나오면 욕 먹을 거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래도 옛날 영화니까-하면서 재미있게 봤다.


같이 보던 짝꿍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쓴 세 장 짜리 편지에서 기함했다ㅋㅋㅋㅋㅋ. 여주가 편지를 낭독하는 나레이션이 깔리면서 둘의 과거 회상 장면이 차르르르르 아련하게 깔리는데 옆에서 자꾸 '길다, 길어'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웃겼다ㅋㅋㅋㅋㅋ.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90년대의 이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거다. 왜 요즘 젊은이들이 레트로 레트로 하면서 추억에 젖어 사는지 알겠다. 이 영화를 보다 보니 90년대 유럽에 가보고 싶어졌다. 현재 유럽은 비행기 타면 갈 수 있지만 90년대 유럽은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은 <명작을 읽는 기술>과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이다.


<명작을 읽는 기술>은 그동안 아주 많이 봐왔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던 '고전주의, 낭만주의, 리얼리즘, 실존주의, 자연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일단 한 번 후루룩 읽었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서술도 깔끔하고 분명하다. 재독하면서 밑줄 친 거 정리하려고 대기 중이다.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 이 책은 학살이 벌어졌던 장소를 방문하고 나서 쓴 책이다. 가장 슬펐던 부분은 목포형무소 수감 중에 실종된 것으로 추청되는 저자 할머니의 오빠 이야기였다. 그 당시 소위 '빨갱이'로 불렸던 사상범들이 목포형무소에 다수 수감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들이 수감자들을 배에 태워 바다에 수장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오빠가 갇혔던 목포형무소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반도 가장 끝 마을에 사는 할머니의 여동생인 이모할머니는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물었다. 나를 반기던 이모할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침묵했다. 방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오래된 시계에서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이모할머니의 미간에 도드라진 주름이 살짝 움직였다. 나는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이모할머니는 오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모할머니가 말문을 닫고 있는 동안에 옆에 앉은 이모할아버지가 침묵을 깼다.
"그 사람은 빨갱이니 모르는 게 좋다."
단호한 이모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색해진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후손들 잘되라고 돈까지 써서 호적도 지웠다. 다시는 묻지 마라."
이모할아버지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대문을 나서는 내 등을 때렸다.】

【전쟁이 끝난 후, 바다는 이상하게 풍년이었다. 어시장에는 목포 사람들이 없어서 못 먹는다는 낙지와 민어가 넘쳐났다. 하지만, 목포 사람들은 바다에 수장된 사람들이 생각나 좀처럼 생선을 먹을 수 없었다. 거울처럼 잔잔하던 전쟁 이전과 달리 목포 앞바다는 성난 것처럼 거칠어져만 갔다. 바다에서 놀던 아이들도 물귀신이 잡아갔고, 조기잡이 나갔던 어른들도 돌아오지 못했다. 바닷속의 원귀들을 달래기 위해 당골을 불러 수많은 씻김굿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귀신이 가득한 바다는 목포 사람들에게 더는 너른 품을 내어 주지 않았다.】

발리에서 벌어진 학살과 그 후의 이야기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1965년 겨울부터 1966년 초봄까지, 바닷속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살해된 십만여 명의 흔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남부 사누르 해안의 버려진 놀이동산에서부터 아궁산까지 학살 장소는 수없이 많았다. 
학살자들은 사람을 죽이고 발리의 산과 바다에 버렸다. 공산당으로 몰려 죽은 사람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발리에는 공산당으로 몰려 죽어서 이승을 떠도는 귀신 이야기가 흔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밤 외출을 꺼렸다.
신혼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풀빌라로 유명한, 남부 해안의 호텔 대지는 1965년 발리 학살을 지휘했던 인도네시아군 사령부가 있었던 주둔지였다. 호텔 개발 회사는 군용지를 저렴하게 인수하여 호텔을 건축했다. 공사 과정에서 나온 수천의 유골은 먼 바다로 나가서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호텔이 완공된 이후, 전기가 자주 끊어지고 투숙객이 귀신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학살지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신혼여행 부부를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1965년의 발리 학살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었다. 아침마다 사원에 정성스럽게 차낭 사리를 올리는 아주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죽인 학살자를 이웃에 두고 살고 있다. 죽창으로 이웃을 죽인, 잔인한 타멕[발리의 민병단]의 열성 대원이었던 그도 이제는 늙었다. 늙어서 거북이처럼 느릿해진 노인네는 매일 아침 지팡이에 의지하며 집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아주머니는 노인네가 사라지면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붓의 작은 마을에서는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친구를 형이 동생을 죽였다. 타멕에 가족을 잃은 아주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그날 이후, 나에게 발리는 더이상 힐링의 낙원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나 가족을 동물처럼 학살한 무서운 곳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더이상 발리는 지상낙원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다이빙 했던 발리 앞바다에 그런 아픔에 새겨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자는 발리에서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 사는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제발 다른 관광객들처럼 관광지 가서 놀아라', '너 공산당원이냐?' 이런 얘기까지 듣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10년 전 베트남 여행했을 때가 떠올랐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순히 사기를 치고 잔돈을 빼돌려서 그런 인상을 받은 건 아니었다.(그 정도 잔잔한 사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겪었다.) 그들은 외국인이 베트남에 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우리가 한국인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몰랐다면 '여기는 왜 이럴까' 이러면서 잊어버렸겠지만 베트남과 한국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하기에는 굳이 굳이 베트남에 여행 와서 돌아다니고 있는 게 잘못인 것 같기도 했고, 하여튼 여행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이 경험도 10년 전 이야기고 최근 베트남 여행에서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다. 관광객을 대하는 상인들은 무척 친절했다. 구글 지도에 평점 5점 남겨달라면서 활짝 웃기도 하셨다.


아무튼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는 읽어보길 잘한 책이었다. 목포형무소와 발리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필리핀, 대만 등지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픈 과거를 담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이기에 이렇게 새롭게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들이 좋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전자책을 구입했다. 이미 종이책으로 읽어봤기에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전자책으로 샀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이라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전자책 판매중지가 뜰까봐 약간 무서워서 미리미리 사둔 거다.


한동안 책 물욕이 사라졌다며 기뻐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또 장바구니가 터져나가고 있다. 다음 달에는 적립금 들어오면 존 르 카레 책 전부 사고 싶고, 민음사 세문전도 모으고 싶다. 다 샀다가는 정말 큰일이다. 돈도 문제지만, 안 읽고 쌓아두기만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심지어 책장 전시 기능도 없는 전자책을!(ㅠㅠ)


전자책 쌓아둔 거 반성하면서 얼른 책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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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하도 싸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이번 여행 앞에 '오랜만에'라는 단어를 갖다 쓰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심적으로는 오랜만이라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한 번 가봤던 곳에 또 간 적이 많았다.(예를 들면 태국) 이번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중국 서북부 지역에 다녀왔고 그래서 오랜만에 진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나는 예전부터 여행 갈 때는 반드시 책을 챙겨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자책 리더기를 사기 전에는 종이책을 두세 권씩 배낭에 넣어서 다녔고 전자책 리더기를 사고난 후에는 반드시 여행 갈 때 리더기를 챙겨간다. 여행에서 독서는 절대 뺄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다녀보니 생각보다 여행 다니면서 책 읽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1)시간 부족의 문제, 2)심리적인 문제, 이렇게 두 가지를 가장 크게 느꼈다.


우선 시간 부족의 문제. 여행 다니면 책 볼 시간이 없다. 낮에는 여행을 해야 하고 밤에 숙소에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날 뭐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매일매일 여행 기록을 저장해두는데 그것만 해도 엄청난 중노동이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느라 새벽 세 시까지 못 잘 때도 있었다ㅠㅠ. 여행과 기록과 계획만으로도 너무 벅찼기에 독서의 ㄷ자도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심리적인 문제였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서도 일종의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책을 읽으면 어쩐지 이중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이중의 여행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다.


물론 여행지랑 완전히 찰떡인 책인 경우에는 잘 읽힌다. 예를 들어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 이번에 둔황 가는 기차 안에서 <둔황>을 읽었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조행덕이 과주(瓜州)를 지나 사주(沙洲)로 향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마침 기차가 과주 역에 멈춰섰을 때 느낀 그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책은 여행지와 그렇게까지 찰떡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라오스에 간다고 해보자. 라오스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열심히 생각해봐도 딱 떠오르는 게 없다. 가장 최근에 간 라오스 여행에서는,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이 쓴 <전쟁의 슬픔>을 읽었다. 습하고 비가 많이 오고 삼림이 울창한 라오스의 풍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어쨌든 내 몸은 라오스에 있고 정신은 베트남 전쟁 당시를 헤매고 있으려니 피로한 것도 사실이었다.(책 자체는 당연히 좋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여행지와 완전히 찰떡으로 어울리는 책이 아니고서는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여행할 때는 여행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독서는 여행 전이나 후에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맞다는 걸 깨달았다.(물론 한달살이는 예외다. 해외 한달살이 할 때는 시간도 정신적 여유가 많으니까 독서가 가능하다.)


독서는 여행 전과 후에 하는 걸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먹으니까 예전만큼 여행지에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안달복달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와 딱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꼭 챙겨가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지와 딱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네이버에 내가 갈 여행지와 '책' 혹은 '독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지만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리미리 '이 책은 어디 가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기억해두는 편이다. 


둔황 갈 때 <둔황> 읽은 것은 솔직히 일차원적인 해답이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정답 말고 생각지도 못 했는데 그 여행지에 찰떡인 그런 책들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다. 여행지와 책을 엮어서 쓴 책인 <여행자의 독서>는 그런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책이다.(물론 이 책에서 소개한 책도 그 여행지와 완전히 찰떡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참고가 된다.)


이제 여행이 끝났으니 또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 관련된 책을 읽는 거, 너무 좋다. 여행과 독서를 동시에 해야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여행과 책은 최고의 짝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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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멀티태스킹이 굉장히 잘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나의 생활을 보면 멀티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 늘상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 외에 다른 것들이 침투해들어오면 루틴이 사르르 망가져버린다. 나에게 루틴은 견고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대충 쌓아놓은 모래성과 같다. 파도가 한 번 휩쓸고 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나의 루틴이라니...!


요즘 내가 듣고 있는 강의가 하나 있다. 한 번 들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최소한 한 번은 더 들어야 머리에 남는다. 실시간으로 한 번, 끝나고 나서 한 번 더 듣는데 이렇게만 해도 나의 시간을 상당히 잡아 먹는다. 다시 들을 때는 일시정지를 누르고 필기하고 생각하고 모르는 건 검색하기도 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내가 듣고 싶어서 신청한 강의라서 열과 성을 다하고는 있으나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강의를 듣는 기간 동안 글도 안 쓰고 책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금만 다른 일에 집중해도 금방 손에서 놔버리게 된다.


멀티태스킹이란 일종의 저글링과 같다. 어떤 사람들은 손이 열 개고 스무 개인데 나는 너무나 진실하게 딱 두 개의 손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남들이랑 똑같은 개수의 저글링 공을 돌려도 나는 금방 뭔가를 놓치게 된다. 나의 루틴이라고 생각했던 책 읽기, 글 쓰기, 영어 공부, 저녁 산책 이런 것들을 최근에 너무 많이 놓아버렸다. 얼른 다시 주워서 저글링 돌려야 하는데 한 번 떨어진 공을 줍기가 쉽지 않다.


온갖 변명을 다 써놨는데 한 마디로 요즘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책을 못 읽어서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 꼭 책장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전자책만 사니까 전자책 책장을 들춰본다.) 거기에 쌓여있는 수백 권의 책들, 그 중에서 아직 안 읽고 왠지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이 나를 향해 소리친다. 읽지도 않을 거면 왜 샀니~~~? 나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얼른 전자책 리더기를 끈다. 미안 미안, 얼른 읽을게.


그래서 최근에 도대체 뭐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해봤다. 우선 책을 한 권 읽기는 읽고 있다.


이 책, 시사인에서 보고 읽기 시작했다. 미국에 파견된 독일 기자가 쓴 책인데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좌파 세력이 너무나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우며 동시에 어떠한 열린 토론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책의 각 장에는 잘못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직업을 잃거나 강연이 취소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실수든 고의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한 것 자체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사람들을 자르기 전에 열린 논쟁을 했었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린 논쟁이 분노의 말들에 질식당하고 인종차별주의자, 이단, 코로나 음모론자, 푸틴 지지자 등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면, 여기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반민주주의자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왜 소위 말하는 '독단적 좌파'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이해가 가기도 해서 오락가락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열린 논쟁, 열린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말은 좋다. 말은 좋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인 동물인가? 이런 의문이 계속해서 든다.


인종차별에 대해서 얘기할 때 나는 흑인도 백인도 아닌 아시안이라서 아시안들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유독 집중하게 되는데 아시안들은 '적극적 우대 조치'의 피해자에 가깝다는 분석도 매우 흥미로웠다.


【확실히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은 소외된 ‘유색인종’ 집단에 넣기 어렵다. 대다수 아시아인은 미국의 경쟁적 분위기에 아주 잘 적응하여 지내고, 이른바 ‘적극적 우대 조치’의 피해자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2018년에 아시아계 대학생을 대변하는 한 조직이 하버드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조직은 하버드대학이 성격 같은 모호한 선발 기준으로 아시아계 지원자를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학은 이런 혐의를 부정했지만, 〈뉴욕타임스〉는 “학업 성적만을 기준으로 선발했더라면 2013년 아시아계 대학생의 비율이 19퍼센트가 아니라 43퍼센트였을 것”이라 보도하면서 대학의 내부 조사 자료를 공개했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분위기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기가 두려운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같은 과격한 우파의 득세,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의 위선적인 행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게다가 미국에서 현재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한 여러 학자들, 책, 논문 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일목요연한 흐름을 살펴보기에 좋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푸코까지 언급되는 걸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고, 내가 이쪽 방면으로는 그동안 책을 너무 안 읽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반성했다. 비판적 인종 이론, 교차성 이론 이런 거 굉장히 생소했다. 하여튼 책 좀 많이 읽고 공부를 해야하는데 자꾸만 독서 말고 다른 할 일들이 생겨서 난감한 요즘이다.


【만약 감정이 주장을 대체하면 감정은 거대한 효과를 내는 정치적 무기가 된다. 주장은 반박할 수 있지만 감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비난받는다면 그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 위장한 인종차별주의자로 의심받는다. 동시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의 높이가 최근에 특히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이라는 개념과 함께 체계적으로 하향되었다.】


【“백인하고만 사귀는 백인은 이런 말을 들을 겁니다. ‘너희는 인종차별주의자라서 그러는 거야.’ 그러나 만약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과 사귀면 모험을 즐기는 남자라고 비난받습니다. 다른 사례도 있어요. 만약 백인이 흑인 동네에서 이사를 나오면 ‘백인 탈출’로 비난받고, 백인이 흑인 동네로 이사를 가면 젠트리피케이션에 일조한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이런 식의 모순은 문제가 있어요. 백인의 인종차별을 폭로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논리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어요.”】


【공화당은 민주당이 세금 인상과 유니섹스 화장실로 나라를 채찍질하려 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을 침묵하게 하는 급진적 이념 부대라고 프레임을 씌울 기회를 얻었다. 비록 아주 일부만 사실이지만 좌파 진영의 목소리가 매우 크고 언론의 큰 메아리를 얻기 때문에, 공화당의 이런 공격은 효력을 발휘한다.

‘깨어 있음’은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치명적이라고 뉴욕 출신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대다수 사람이 ‘깨어 있음’을 싫어합니다. 오직 진보적 활동가들만 좋아하죠. 미국인의 정치 선호도를 보면 민주당은 안전한 과반수로 승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경찰 예산 삭감하라!’ 같은 구호 또는 학교 이름을 둘러싼 상징적 다툼 때문에 공화당은 민주당 반대 캠페인에 쉽게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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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은 사부작 사부작 사들이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다. 전자책 적립금 쌓일 때마다 한 권 두 권 사모아서 지금 열 두권을 모았고 딱 한 권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민음사 <잃.시.찾> 전자책 세트가 있고 20퍼센트 할인까지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럴 거면 낱권씩 사지 말고 세트로 살 걸ㅠㅠ적립금 모아서 한 권 두 권 모은 거랑 가격면에서 별 차이가 안 난다ㅋㅋㅋㅋㅋㅋ게다가 한 권씩 찔끔찔끔 사느라 너무 피로했다... 세트로 살걸.


그렇지만 즐거운 일도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 전자책이 출간되었다. 이거 종이책은 몇 년 전에 나왔는데 여태까지 전자책이 없길래 전자책 나올 계획이 없는 줄 알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자책 출간 알림이 떠서 깜짝 놀랐다. 문학동네에서는 몇 년 전에 나온 세문전 책들도 계속 전자책 작업을 하고 있었구나. 전자책 애용자인 나는 이럴 때 감동한다. 이제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도 전자책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둔황>은 이미 종이책으로 읽었다. 어어엄청나게 감동한 책은 아닌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난다. 언젠가는 둔황에 가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둔황 갈 때 들고 가게 제발 전자책으로도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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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바쁜 이유 중에 하나는 여행이다. 하반기에 어딘가로 여행을 좀 가고 싶은데 여행 가기 전에 그 지역과 관련된 책을 먼저 읽고 싶은 거다. 여행 계획도 안 짰는데 책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허둥지둥이다. 왜 여행을 여행대로 즐기지 못하고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나만의 난제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행복한 건 사실이다. 여행 가기 전에 그 지역 역사나 식문화 관련된 책 읽는 게 매우매우 즐겁다. 얼른 여행 계획 짜고 독서 리스트도 짜야해서 마음이 분주하다. 과연 6월에는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지, 얼마나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열심히 읽고 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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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가 발송하는 주간 뉴스레터 <영하의 날씨>가 시작되었다. 유료 구독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러가지 주제의 글들을 묶어서 보내주는 형식이다. 며칠 전 첫 번째 뉴스레터를 받아보았는데 거기에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를 추천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재미있어 보여서 알라딘에 검색했더니 종이책만 있고 전자책이 없다ㅠㅠ.


그렇다면 이 저자의 다른 책 중에서 전자책으로 나온 게 뭐가 있나 살펴 보다가 <내 손으로, 발리>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종이책은 품절이고 전자책만 판매하고 있는데 심지어 밀리의 서재에도 들어와 있다. 바로 태블릿으로 밀리의 서재 어플을 켜서 이 책을 다운 받았다.


작가가 친구와 함께 다녀온 발리 여행 기록인데 특이하게도 인쇄 활자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책 가격 같은 서지 정보도 전부 손글씨로 적혀 있다. 컨셉에 매우 충실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이 요상한 책에 감겨 버렸다ㅋㅋㅋㅋ. '요상하다'는 건 절대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굉장히 날것인데 그 느낌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발리 역사책 읽고 몇 줄로 요약해주는 것도 너무 웃겼고 누리스와룽 식당 ㅈㄹ맛있다고 쓴 것도 너무 웃겼다.(손글씨로 쓴 일기장을 그대로 출판한 거라 비속어가 난무한다ㅋㅋㅋ그리고 누리스와룽이라면 비속어도 인정...우리는 우붓에 있던 며칠 동안 거기 세 번 갔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다운 받은 책을 다 읽고는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내 손으로, 발리>와 <내 손으로, 치앙마이> 전자책을 구매해버렸다. <내 손으로, 발리>는 밀리에서 읽었지만 그래도 소장해두고 싶어서 구매했고(이미 종이책이 품절이라 전자책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내 손으로, 치앙마이>는 별 고민 없이 함께 주문했다. 원래 같은 작가의 시리즈 도서 모으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치앙마이라면 또 그냥 지나칠 수 없기도 했다.


예전에는 나도 여행 가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다. 본격적인 그림은 아니고 펜으로 다이어리에 끄적끄적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뭔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백지에다 그려내는 기분이 꽤 좋았다. 한때는 나에게도 그런 감성이 있었는데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로 대충 찰칵찰칵 찍고서는 외장하드에 넣어두고 잘 꺼내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다 작가의 책을 보면서 인생의 어떤 장면들은 그림으로 남겨놓는 것도 참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진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함과 디테일, 그리고 유머와 독특함 같은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음에 여행 가면 나도 그림 그려볼까....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었다. 사실 그래서 일부러 전자책으로 구매한 것도 있다. 여행 가서도 꺼내봐야 하니까 전자책이 편하다. 여행 가서 끄적거리다가 막히면 다시 이 책 좀 들여다보고 그러다가 또 그림 그리고....그렇게 놀면 너무너무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도 전자책으로 나오면 좋겠다. 나오면 일단 제가 한 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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