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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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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읽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랬다면, 나 역시 쓰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다는 말을 꼭 해 두고 싶다. 스티븐 킹이 책의 닫는 글에서 처음 꺼내는 이 말대로, 책을 읽으며 더 이상 읽기 힘든 순간이 이따금씩 찾아왔다. 처음 책을 펼쳐든 건 시청에서 카메라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이었는데, 사람으로 가득 차 안 그래도 공기가 희박한 퇴근시간대의 버스에서 '1922'의 살인 장면 묘사를 읽다가 결국 멀미가 나서 덮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빅 드라이버'에서 테스가 강간당하는 장면도,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계단에서 떨어져 널부러진 밥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도 한 줄 한 줄이 힘들었다. 역시 나는 스티븐 킹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 그럼에도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고 며칠만에 다 읽었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불편하고 때로는 읽기에 괴롭지만, 그래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다시 펴게 되는 것.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실린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다. 실존인물인 일명 'BTK 살인마' 데니스 레이더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는 이 이야기는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가까운 가족이 우연한 계기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고민하고, 사고하고, 또 행동하는지를 다룬다. 27년의 결혼생활 내내 큰 불화 한 번 겪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온 다아시는, 남편 밥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차고에서 남편이 살인마 '비디'라는 증거를 발견한다. 전화기 너머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내가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걸 느낀 밥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는 살인을 하지 않겠다며 아내에게 자신을, 그리고 아이들을 감싸주기를 부탁한다. 아이들을 평생 살인마의 자식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모성, 사람들이 자신을 알고도 모른 척한 공범으로 몰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 이제는 완벽하게 알게 된 줄 알았던 남편 안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숨어 있었다는 데에 대한 공포. 밥과의 결혼생활은 변하지 않지만, 다아시는 점차 어두운 세계에 침잠한다. 그리고 부업이자 취미로 화폐 수집을 하던 밥이 평생 찾아 헤매던 더블 다이를 우연히 손에 넣고 너무 기뻐 과음한 날, 다아시는 주저없이 남편을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남편의 입에 비닐봉지에 싼 수건을 밀어넣어 끝을 낸다. 그리고 경찰에 전화를 건다. 남편이 과음하고 계단에서 굴렀다고, 어쩐지 죽은 것 같다고, 서럽게 울면서.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순간 순간마다 다아시가 완벽하게 이해된다는 점이다. 남편 밥이 10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인물임을 알고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것도, 그런 남편과의 계속되는 생활 속에서 점차 메말라가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의 손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도 모두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모습들이다. 실제 살인범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남편의, 아들의, 오빠의, 아버지의 범행을 처음 안 게 언제였을까, 그 순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의 끝에서 많은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남아있는 것도 좋았다. 잠깐 영화 '영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영도보다 다아시가 훨씬 건강한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의 영혼을 갉아먹은 것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1922'는 잔인한 살인 묘사로 책을 읽는 데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던 문제의 작품이었다. 전반에 걸쳐 끔찍한 묘사가 가장 많은 작품이기도 했다. 땅 때문에 아들을 꼬드겨 함께 아내를 살해한 윌프레드의 인생을 그 비참한 최후까지 추적하는, 윌프레드 본인이 쓰는 자기고백 형식의 소설. 사실 작품을 읽으며 몇 번이나 어깨를 움츠려야 했던 것에 비해서 다 읽은 후에는 개운한 기분이 들었는데,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결국 윌프레드를 괴롭히고, 공포에 떨게 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그 자신이 저지른 죄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덧붙여진 신문기사 형식의 짤막한 글을 읽고 과연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쥐는 실제로 있었을까.


빅 드라이버를 쫓다

 

   가장 마음 아프게 읽었던 작품은 '빅 드라이버'였다. 어느 날 작은 북클럽의 모임에 강연 연사로 초청을 받은 30대 여류작가 테스는 그 곳의 도서관 사서 라모나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을 추천받는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그 길에는 못이 박힌 목재가 굴러다니고, 결국 그녀의 차는 펑크가 나고 만다. 그리고 같은 길에 들어선 '트럭을 입고 다니는 듯한' 거구의 남자는 타이어를 갈아주겠다며 선뜻 도움의 손을 내민다. 그러나 테스가 남자의 트럭 뒷좌석을 흘낏 본 순간 거기에는 길에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목재가 널부러져 있고, 테스에게 다가온 남자는 주먹을 날린 뒤 그녀를 근처의 버려진 상점으로 끌고 가 강간한다. 그리고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테스를 다른 시체 두 구가 썩어가는 배수로에 버린 뒤 유유히 사라진다. 그 배수로에서 살아 돌아온 테스는 공포와 수치심 속에서 스스로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그 복수에 성공한다. 라모나와 그 두 아들을 죽인 이후의 삶이 행복할 지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모든 이야기를 벳시에게 털어놓고 걸어가는 테스의 뒷모습은 더 이상 겁에 질려 있지 않다.

   어쩐지 강간을 다룬 작품은 유난히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특히 이 이야기는 사건이 있은 후 며칠에 걸친 테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더욱 그렇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고도 어쩐지 자꾸만 움츠러들고 세상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지는 피해자의 심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테스의 복수가 옳았는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저들을 경찰에 신고해서 내가 얻는 게 뭔데?'를 끊임없이 묻는 그녀의 마음만큼은 정당하지 않을까.


언제나 대가는 존재한다

 

   네이버 웹툰 중 배진수 작가의 '금요일'이 생각나던 작품이었다. 사실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말기암 선고를 받고 모든 희망을 잃은 한 남자 앞에 한산한 도로 옆에 좌판을 차린 노점상이 눈에 들어온다. 연장(extension)을 판다는 노점상을 정신병자 취급하던 남자는, 그의 생명을 연장해줄 수 있다는 말에 장난처럼 응한다. 당신 몸 속의 그 덩어리는 그냥 없애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옮겨주게 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싫어하는 사람을 말해보라는 노점상에게 남자는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을 댄다. 늘 자신보다 잘났던, 그래서 끊임없이 열등감을 안겨주었던 친구의 이름을. 그 일이 있고 남자의 암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행복한 가정에 부유한 사업을 운영하던 남자의 친구는 연속된 불행으로 점차 모든 것을 잃어간다. 그의 아내는 암으로 죽고, 딸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아이마저 사산하고, 첫째 아들은 심장마비로 영구적인 정신지체를 얻고, 막내아들은 아내를 폭행하여 감옥에 갇힌다. 회계사의 횡령으로 회사는 부도가 나고, 친구는 아이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주기 위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택할 생각을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이 거래의 대가는 매년 연 수입의 15%를 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기꺼이 그 돈을 보낸다. 그러나 진짜 대가는 친구의 인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고작 암이 낫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한 집안의 끔찍한 불행. 남자는 처음 거래를 할 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게 이런건가? 하고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친구의 거듭된 불행에 속으로 즐거워하며 더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남자는, 이미 악마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거래는 늘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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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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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작에 빛나는 이 소설은 얄팍한 두께에 활자는 큼지막해서 마음 먹으면 한 시간만에 읽어낼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분량을 자랑한다. 실제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짧고 단편적이며 그다지 스케일이 큰 편이 아니다. 누군가는 대체 왜 그런 책이 일본문학계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사실 책을 반납한 지 한달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책은 막연하고 모호하고 어쩐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건에 어떤 동력이 존재하는지 뚜렷이 정의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 다루는 청소년기 자체가 곧 그런 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시기.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소녀는 일본 청춘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들과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일본문학을 수식하는 특유의 블링블링함이 단 0.1%도 존재하지 않는 게 바로 하츠와 니나가와이다. 아마 낯선 사람이 두 사람이 속한 반에 처음 방문한다면 거의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법한, 동년배와 공유하는 공간에서 존재감이 희박한 아이들. 게다가 하츠는 그 나이 특유의 고집스럽고도 유치한 자기만의 세계를 정립한 채 `너희가 나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너희 모두를 따돌리는 것`이라는 신념을 몸소 실천하고, 니나가와는 자신의 온 삶을 바쳐 모델인 올리짱을 동경하며 소위 `덕후`의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는다. 각각 독특한 형태로 생애 가장 예민한 시기에 소외를 경험하는 둘은 그렇게 흔한 허구적 인물과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실재적인 인물에 한없이 가깝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다. 어떤 고등학교의 어떤 교실에서도 한 명쯤은 찾아낼 수 있는, 고유한 사연을 안고 무리에게 등을 돌린 아이. 와타야 리사는 그런 모습을 예리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비웃음이 아닌 애정과 관심을 듬뿍 담아서.

2. 자발적 외톨이들의 가랑비 같은 성장기

첫 몇 장을 읽다 보면 그렇고 그런 왕따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조를 짜는 가운데 어느 조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두 명, 하츠와 니나가와. 그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그 양상은 결코 두 외톨이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이상적 해피엔딩도, 서로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여 연애를 시작한다는 로맨틱한 전개도 아니다. 제각기 강렬한 색채를 지닌 둘은 둘만의 관계 안에서도 부딪히기를 반복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건 동지애와 깊은 이해가 아닌 `나도 이상하지만 쟤는 좀 더 심하다`는 깨달음 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두 사람 모두 외부 세계와 관계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배워가게 된다.
`그렇고 그런` 왕따소설과 이 책의 차이는 거기에서 나온다. 하츠와 니나가와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웃음 당하고 배척당하며 타의에 의해 혼자가 되는 아이들이 아니다. 반 아이들을 한심하게 여기며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걸 최고의 긍지로 생각하는 하츠는 악의 없는 친구들의 손길을 삐딱하게 해석하고 밀어내기 일쑤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가식적이고 허위로 가득차 역겨울 따름이다. 그런 하츠의 모습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한숨이 푹 나온다. 얘는 왜 이렇게 꼬였니,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삐딱하고 시니컬한 시각은 어찌 보면 사춘기를 거치며 누구나가 한번쯤은 지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니나가와에 대한 호감조차 잔뜩 웅크린 그의 등짝을 발로 걷어차는 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하츠. 그러나 니나가와를 괴롭히고 미워하고 무시하는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하츠는 그 방법이 어쩌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 사실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건 있는 힘껏 킥을 날리는 발이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안는 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츠는 자신이 겪는 사춘기만큼이나 경계 없이 막연하게 알게 된다.
하츠가 최소한 주변 인물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스스로 멀어지는 타입이라면, 니나가와의 세계에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올리짱에 의해서 정의되고, 올리짱에 의해 존재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니나가와의 세계에는 `소외`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소외당할 집단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니나가와의 세계에 올리짱을 직접 본 적이 있다는 하츠가 성큼 들어온다. 온통 삐딱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에 니나가와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아이지만, 아무튼 하츠는 그의 생활에서 올리짱 이후 최초로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하츠와 함께 실재하는 올리짱을 쫓고, 만나고, 화려하게 거절당하며 니나가와 역시 처음으로 세상에게 마음 한 구석을 내주게 된다. 조금 많이 아픈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상처 받으며 마음을 연 니나가와의 옆에는 하츠가 있다. 서툴어서 발길질밖에 못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친구`가. 그렇게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란다. 스며들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3. 그 등짝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

지금 학창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생각만 해도 오그라드는 기억이 하나쯤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 우리 모두 성장의 어느 한 순간에는 하츠였고 또 니나가와였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게 한심하고 우습게 여겨지고, 거기에 발을 안 담그는 게 깨끗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나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다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벗어나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며,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바로 그 순간들이 모여 어른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라 해도, 조금쯤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발 대신 손을 내밀어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떨까. 바로 그 등짝이 하나의 껍질을 깨고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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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 in Crime (Paperback, Reissue)
Signet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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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rtners in Crime

미스터리소설광인 젊은 부부 Tommy와 Tuppence에게 Scotland Yard(런던 Metropolitan Police를 이르는 명칭)의 비밀 임무가 주어진다. 러시아 범죄조직의 숨은 연락책으로 의심되는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을 맡아 운영하며 정보를 수집해달라는 것. 원래 탐정소를 운영하던 Mr. Blunt가 경찰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동안, 그렇게 Tommy는 명탐정 Mr. Blunt로, Tuppence는 그의 비서인 Miss Robinson으로 활약하게 된다.
단일한 사건을 여러 챕터에 걸쳐 파헤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Partners in Crime˝은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한다.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로 숫자 16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는 러시아 요원을 쫓는 보다 큰 스토리는 여러 챕터에 걸쳐 이어지지만, 각각의 챕터에서는 탐정소에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의 개별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BBC 시리즈 `셜록`이나 탐정만화의 정석인 `명탐정 코난`과 유사한 전개방식인 셈이다. 그래서 호흡이 짧고 각각의 사건은 다소 깊이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 챕터, 길면 두 챕터에 걸쳐 해결되는 사건들인만큼 애거서 크리스티 특유의 허를 찌르는 반전까지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은 반대로 색다른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Tommy와 Tuppence는 전문적인 탐정이 아니다. 오히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등을 흉내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선 책을 읽는 독자가 쉽게 공감할 만한 추리광의 면모가 더 돋보인다. 두 사람은 지금껏 읽어온 방대한 양의 추리소설을 바탕으로 나름의 추리를 펼치고,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경험에 의존하여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며 한번씩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똑똑하고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탐정들로 인해 독자에게 다소 소외감을 안겨줬다면, Tommy와 Tuppence는 독자들로 하여금 함께 추리하고 함께 고민하며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2. 최고의 파트너

Tommy와 Tuppence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5권에 등장한다. 그 중 두번째이자 유일한 단편모음집인 ˝Partners in Crime˝에서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대 후반의 부부로 그려진다. 그들이 처음 등장하는 ˝The Secret Adversary˝에서는 오랜 시간 친구였던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후 실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도 점점 나이를 먹는 것으로 묘사되어 애거서 크리스티가 집필한 마지막 소설인 ˝Postern of Fate˝에서는 70대 노부부로 등장한다고 한다.
˝Partners in Crime˝을 읽으며 추리소설다운 면 외에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쫓아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새로운 모자를 사들이는 것과 여자들의 수다를 좋아하는 Tuppence와 이성적이고 다소 무뚝뚝하며 한번씩 Tuppence의 상상력에 기겁하는 Tommy는 매일 크고 작은 싸움을 반복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만큼은 숨겨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살면 평생 심심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는 오마쥬처럼 각 챕터에서 기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탐정을 흉내내는 Tommy와 Tuppence를 묘사하는데, 그 때마다 서로 탐정 역할을 하겠다고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내가 셜록 홈즈를 할테니 네가 왓슨 역할을 맡으라는 식의 싸움이다).

3. 아마추어지만 멋지게

Tommy와 Tuppence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추리소설만 읽고 탐정이 되면 저렇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손에 버스 티켓을 쥐고 있는 의뢰인을 보고 버스에 사람이 많아 힘들었겠다고 말했다가 택시를 타고 왔고 티켓은 길에서 주웠다는 대답에 순간 무안해져버리거나, 셜록 홈즈 흉내를 내겠답시고 킬 줄도 모르는 바이올린을 켜다가 Tuppence에게 시끄럽다고 세차게 얻어맞는 Tommy의 모습이 특히 그렇다. 반면 Tuppence는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에 손님이 없으면 자기가 범죄를 저지를테니 해결해서 실적을 올려달라는 위험한 발언을 함으로써 추리소설광의 또다른 문제적 소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렇게 위태롭고 어설프면서도 두 사람은 하나 하나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그것도 살인, 화폐위조, 마약밀매 등의 어려운 사건들을 말이다. 물론 행방불명된 줄 알았던 의뢰인의 약혼녀가 알고보니 의뢰인 몰래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시술소에 입원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어이없는 사건도 중간에 끼어있지만, 대체로 Tommy와 Tuppence는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다른 탐정들과 비교하여 전혀 뒤처지지 않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다. 그리고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의 배후로 지목되는 러시아 요원이 체포되면서, 두 사람은 영예롭게 은퇴한다. 물론 Mr. Blunt와 Miss Robinson으로서만 말이다.
˝Partners in Crime˝을 덮고 나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이 사랑스러운 부부가 어떻게 늙어갈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건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계속 보고싶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후속작들에서는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Albert가 집사가 되어 함께하는 모습까지 그려진다고 하니 그 책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artners in Crime˝을 제외한 모든 Tommy & Tuppence Mystery들은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이 책이 남긴 아쉬움 역시 넘치게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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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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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노가 위트와 만나는 순간

내가 놈베코였으면 아마 진짜 테러리스트가 됐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평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때에 남아공에서, 그것도 그 중에서도 소웨토에서 태어난 놈베코는 인생의 첫장을 부조리와 냉대, 방임과 착취, 그리고 끔찍한 가난 속에서 보낸다. 그 시간 속에서 어린 여자아이는 타고난 두뇌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직관력, 그리고 선천적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지혜로 삶을 개척해나간다. 그러나 놈베코에게 주어진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조금 편해질 만하면 사고가 터지는 나날의 연속이다. 드디어 소웨토를 벗어났나 싶더니 만취 상태의 엔지니어가 모는 차에 치이고, 그 엔지니어의 연구소에서 보낸 감금생활을 청산하는가 싶더니 스웨덴까지 핵폭탄이 따라온다. 핵폭탄의 안전한 처리를 위해 함께 노력해주는 똑똑하고 다정한 운명의 남자를 만나 이제 좀 행복해지려나 싶었는데, 그 남자에게는 분노유발자들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쌍둥이 형제와 그 여자친구가 딸려있다. 그리고 그 이후 놈베코와 그녀의 남자친구 홀예르2가 폭탄에서 벗어날 기회를 손에 쥘 때마다, 홀예르1과 셀레스티네, 그리고 그 외의 예측불허의 인물들은 둘의 삶에 말 그대로 똥을 끼얹는다. 결국 40세가 넘은 나이에 드디어 폭탄을 없애고 `존재할 수 있게` 되어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때까지, 놈베코의 삶은 고단하다 못해 기구하다.

2. 허구의, 그리고 현실의 분노유발자들

5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는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분노 때문이었다. 정말 화가 나서 책을 덮고 혼자 분을 삭여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놈베코가 지켜온 전재산이 불에 타는 동안 블롬그렌 노인이 물값은 누가 줄거냐고 따지며 불을 끄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 홀예르2가 그토록 열심히 준비한 논문심사에 쌍둥이인 홀예르1이 나타나 온갖 반군주제적 발언을 늘어놓은 탓에 논문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을 때, 정계에서 호평받는 잡지를 발간하여 드디어 스웨덴 수상과 만날 기회를 얻었나 했는데 홀예르1과 셀레스티네가 국왕을 모욕하는 사설을 실어 인터뷰를 취소당했을 때. 그때마다 혼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책을 덮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읽었던 건 그런 분노의 결정체들을 작가가 위트로 포장하여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500 페이지 내내 사고만 치는 홀예르1과 셀레스티네를 끝까지 두고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그 말도 안되는 행동에 결국은 어이가 없어서라도 사람을 웃게 하는 면모가 있었던 점이었다. 객관적으로 나열하면 더럽게 운이 없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놈베코의 일생이 하나의 훌륭한 소설로 탄생하게 된 건 순전히 작가의 글솜씨 덕이다. 요나스 요나손이라는 작가가 그냥 반짝 인기를 얻은건가 싶었는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 싶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포인트는 현실과 허구를 섬세하게 잇는 데에 있다. 놈베코와 홀예르 & 홀예르, 셀레스티네, 중국 세 자매와 예르트루드 등은 분명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이 폭탄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실존인물이다. 놈베코가 남아공에서 만났던 `중국 선생님`에서 어느 날 중국 국가주석이 되어 놈베코의 폭탄처리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후진타오, 아파르트헤이트의 절정기에 있던 남아공에서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보타, 스웨덴에서 현재에도 총리직에 있는 레인펠트까지. 그리고 그들의 캐릭터는 팩트에 과하지 않은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서 완전한 허구의 인물들만큼이나 다채롭고 매력적이다.

앞서 홀예르1과 셀레스티네가, 블롬그렌 부부가 얼마나 홧병을 일으키는 인물들인지 간략하게나마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소설에 등장하는 현실의 정치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물론 그들도 크고 작은 소동에 관여하지만, 절대적인 존재감은 중심 등장인물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치인들이 특권의식과 차별주의를 버리고 보다 인도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세웠다면, 어린 놈베코가 똥통을 나르며 유년기를 보내지는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남아공의 법 체제가 좀 더 깨끗하고 올곧게 유지되었다면, 놈베코가 판 데르 베스타위전의 차에 치였을 때 하녀로 끌려가는 대신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자유를 얻지 않았을까? 스웨덴의 왕실과 수상관저에서 몇 차례나 폭탄의 존재를 알리고 협력하기를 원한 놈베코와 홀예르를 시덥잖은 사람들로 치부하고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삶은 훨씬 일찍 평탄해지지 않았을까?

허구의 분노유발자들은 작가의 위트로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의 분노유발자들은 어떨까?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일부는 더 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 나머지 일부도 그닥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의 일상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평범한 개인들의 인생여정에 때로는 티가 나지 않을만큼 에둘러서, 그리고 때로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재계 인사들은 이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때로는 우리도 그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들이 만들어 둔 시스템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그들의 안일한 결정에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처지에 격분하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이 닥쳤을 때, 홀예르1과 셀레스티네처럼 거리로 뛰쳐나가 국왕 타도와 아나키즘을 외치며 정면돌파를 시도할지, 놈베코와 홀예르2처럼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다가올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지는 개인이 선택할 몫이다. 그저 하나, 작가가 주는 메시지는 그런 순간에 - 아주 어렵더라도 - 유머와 위트로 고개를 돌려보자는 것. 이 책을 다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거였다.

"인간을 알면 알수록, 난 더욱 개들을 사랑하게 된다." - 마담 드 스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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