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기 - 당신의 노후를 바꾸는 기적
김경록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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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시간은 빠르게 간다. 예전에는 그게 한국인의 '빨리 빨리' 근성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우리 사회를 의미하는 말이 된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 그럼에도 인구의 초고속 노화에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라,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65세의 정년을 미처 채우지도 못한 채 평생 몸 바쳐 일한 회사를 나서야 하는 가장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고령화는 곧 실업과 파산, 불행과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을 꼬박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한다 해도 평균수명이 85세를 넘어 95세로 향해가는 지금에는 여전히 30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을, 새로운 계획으로 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간에 대한 해답으로 '1인 1기'를 제안한다. 노후를 설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좀 더 정확하게는 전문적인 기술이라는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쌓아둔 자산은 큰 의미를 발휘하지 못하고, 평생 회사생활을 한 후 은퇴한 사람들은 창업의 꿈에 부풀었다가 사기를 당하기 십상이다. 엉성한 판단은 실패로 이어지고, 인생의 황혼기에는 한 번의 실패가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개인이 지니고 있는 인적자산, 그 중에서도 직업으로 쓸 수 있을 만한 전문적인 기술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굳이 판검사나 의사가 아니어도 좋다. 아주 작은 기술이라도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적이기 때문에 환영받을 수 있고, 그렇기에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 속에서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은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도예를 배우기도 하며, 기사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늦은' 과정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30년이나 더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많고,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얼마나 잘 쓸 수 있는가, 그것 뿐이다.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자연스레 설득되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분명 저자의 조언은 일리가 있다. 실제 환갑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종종 당신들의 직업에 대해 잘 선택했다는 평가를 하신다.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나이가 들어 눈이 보이지 않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인지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아빠는 번역을 계속할 것이고 엄마는 여전히 상담을 할 것이다. 그것은 큰 경쟁력이 된다. 두 사람은 나이가 가져오는 불안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 당장 내년이, 혹은 내후년이 된다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사라질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삶에 더없이 고마운 '빽'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내가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쌓아온 능력이 앞으로의 과정에 힘을 실어준다는 건, 아주 뿌듯한 성취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책을 덮으며, 어쩌면 정말로 해답은 '1인 1기'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다르다

 

   자기계발서도, 경제 관련 서적도 크게 즐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책의 초반에는 중요한 개념을 소개할 때마다 친숙한 영화들이 등장한다. '마션'이나 '인터스텔라'처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작품을 간단히 요약하고, 새로운 경제개념을 이에 빗대어 설명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별 어려움 없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흡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다채로운 에시가 등장한다. 실제 '1인 1기'를 실행하며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는 사례들은 하나하나 소설에 등장할 것처럼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늙고 싶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례들도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저자의 의견에 설득되고 만다. 정말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있으면 행복한 노후를 보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노후계획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나이인 나도 이 정도인데, 실제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막막한 퇴직 직전의 누군가에게 이 책은 어떻게 다가올까. 아마 소중한 이정표를 만난 기분이 들지 않을까.


1인 1기를 향하여

 

   앞으로 30년 동안 60세 이상 인구가 1,400만 명 이상 증가한다. 1,400만 명이면 부산 인구의 4배이고, 춘천 인구의 50배이며, 나주 인구의 160배다. 달리 말하면 30년 동안 총인구는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60세 인구만 모여 사는 부산만 한 도시가 4개 생겨나거나 춘천만 한 도시가 50개 생겨난다는 뜻이다. 나주만 한 도시는 160개가 생긴다.

- p. 25


   30대 중반에 노후에 빵집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빵집 이름까지 지어두었다. 닥터 김즈 베이커리, 간단히 말해 김박사 빵집이다. 이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박사 학위를 반드시 따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때 나의 비전은 이랬다. 동네 사람들이 아침이면 줄을 서 내가 만든 빵을 사고 또 그 빵을 맛있게 먹고 나도 사람들에게 가끔 공짜로 빵을 주면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빵집에 와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가고, 새벽마다 밀가루를 반죽하다 보면 아마 팔뚝이 뽀빠이처럼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거나 잘 먹다 보니 맛있는 것을 만들 줄 모른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빵 하나 만드는 데도 외워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 p. 226


* 더난프렌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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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 - 본격 애묘 개그 만화
강아 글.그림 / 북폴리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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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성은 초요, 이름은 승달이다. 올해 여섯살의 수컷으로, 통통한 살집과 날리는 털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다. 그 옆에 고양이 집사로 살아가는 한 여자가 있다. 밥과 반찬에 온통 고양이 털이 붙어 있어도, 승달이가 벽지를 힘껏 긁어내려도, 자는 얼굴에 강인한 앞발로 핵펀치를 날려도 골을 낼지언정 끝끝내 져주고야 마는, 완벽하게 집사다운 삶을 사는 그녀. 이 책은 승달이와 집사 1호, 그리고 집사 2호이자 브로콜리로 불리는 여동생의 평범한 듯 범상치 않은 일상 이야기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늘 내 위주로 돌아가던 일상에 어느 순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대상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게 사료를 주는 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술자리를 빠져나와 귀가하게 되고, 소파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게 되며, 늘 깨끗하던 바닥이 아무리 청소해도 털 투성이가 되는 것도 수용하게 된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사람이니까,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꼭 오래된 연인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반려동물이 어느날 구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괜찮다. 괜찮아야 한다. 그래야만 반려동물과 함께 할 결심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기동물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동물의 문제가 아니다. 반려동물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만큼 쉽게 버리는 인간의 문제다. 전국 방방곡곡의 동물보호소는 자리가 없어 안락사와 씨름해야 한다. 여전히 공장, 펫샵, 그리고 일부 가정에서는 인공적인 생식을 통번식시킨 새끼들을 헐값에 판매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길고양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한겨울 식지 않은 자동차 엔진의 온기에 의지하며 근근히 살아가다 잔혹한 죽음을 맞는다. 이 나라에는 동물이 넘치도록 많은데 그들을 책임 있게 거둘 줄 아는 사람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늘 피해는 동물에게 돌아간다. 그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겪으며,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는 그런 현실 속에서 동물과 상생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브로콜리의 회사 앞, 버려진 집에서 나름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던 길고양이 가족은 난데없이 집을 철거하기 시작한 사람들에 의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 꾀죄죄한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남는다. 그 고양이는 운이 좋아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승달이라는 이름을 얻고 따뜻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하는 집. 그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과 동물은 각각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비록 터무니없는 비율로 고양이가 존중받는, 그런 삶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승달이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사진 속 고양이는 행복해보였다. 이따금씩 밥을 챙겨주었던 기숙사 앞 고양이 가족을 생각했다. 때로는 아직 내 손에 들려있는 캔에도 앞발을 뻗을 정도로 늘 굶주렸던 그들은, 그런 여유롭고 나른한 표정을 지을 줄 몰랐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눈빛으로, 내가 내놓은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사라지기 바빴던 고양이들. 그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도시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다.


초승달이 반짝이듯이

 

   만화에도 유행이 있다. 뜨는 장르가 있는가 하면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일부 마니아에게만 사랑받는 장르도 있는 법이다. 그 중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소소한 하루하루를 그리는 일상툰은 롱런하는 장르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소셜미디어에 속속 개설되는 반려동물 관련 페이지가 증명하듯, 사람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컨텐츠를 보는 순간만큼은 마치 내 앞에 재롱을 부리는 강아지, 꾹꾹이를 즐기는 고양이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반려동물 일상툰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작가와 동물이 함께하는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끔 한다. 귀여운 동물 일러스트는 덤이다.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는 분명 반려동물 일상툰이다. 승달이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생생히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껏 유행했던 컨텐츠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 일러스트 속 승달이는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지는 않다. 외모뿐 아니라 행동 역시 그렇다. 때로는 이빨을 드러내고 등을 세우며 위협하고, 때로는 눈을 반쯤 뜬 채 잠이 든다. 집사를 잠에서 깨운 뒤 그 자리를 차지해 배를 내놓고 잠들기 일쑤고, 한번씩 집사의 손을 먹음직한 고깃덩이마냥 힘껏 물기도 한다. 동물이 사는 집이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듯 이 집에도 온통 고양이 털이 날려 털이 없었던 날을 기억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니까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 속 세상은 마냥 핑크빛은 아니다. 오히려 하도 리얼해서 흠칫흠칫 놀라게 될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매력있다. 10초 가량 이어지는, 반려동물의 재롱을 담은 동영상에는 그 순간 그렇게 예쁜 동물이 어떻게 먹고 자고 싸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동거다. 생활의 모든 순간이 함께 맞춰가는 과정이다. 그 중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맞춰감에 있어 내가 포기할 것이 많아짐을 의미한다. 왜냐고?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집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징글맞지만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고야 마는 집사 라이프를 완벽히 담아낸다. 고양이의 애정표현을 무시했을 때의 격한 삐짐,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중노동의 장렬한 서사,  고양이에게 약을 먹이기 위한 칠전팔기 도전기까지, 이 책이 담아내는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을 키우는, 혹은 동물을 아예 키우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품는 로망과는 좀 동떨어져 있어도, 승달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충분히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승달이를 만나보자



때로는 이렇듯 한없이 귀엽고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털은 날리고)



때로는 이렇듯 리얼한 외모를 자랑하며



이따금씩 애교가 넘치지만



그와 비슷한 빈도로 야생의 공격성을 보여주는

승달이를 만나러 가보자

아마 후회없는 결정이 될 것이다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직접 구입하여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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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아이 운동의 힘 - 행복한 영재를 만드는 똑똑한 운동 습관
정주호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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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타들을 운동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자녀에게 나이에 맞는 운동을 시키고 싶어서 서점을 찾는다. 어린이 운동에 관한 책을 열심히 찾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서점 직원에게 문의한 후 '어린이 운동에 관한 책은 없다'는 답을 들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우리나라 부모 중 5.6%만이 '키, 체형 등 신체적 조건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6-17세 소아청소년의 1.8%만이 신체활동이나 운동을 하고, 대한민국 소아청소년의 31퍼센트는 일주일에 단 하루도 운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10명 중 1명은 비만이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는 운동이 필요하고, 그 운동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다양한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려고 하면,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어른의 운동은 좀 더 간단하다. 인터넷에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하기만 해도 온갖 운동법이 쏟아져 나온다. 친절하게 운동과정을 설명하는 동영상도 넘쳐난다. 그걸로 부족하면, 헬스클럽에 등록하면 그만이다. 맞춤형 PT는 최근 어디에서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었다. 꼭 기구를 이용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운동 동호회가 있어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에게 맞는 운동법을 찾는 것도 그낭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떨까? 어린이를 위한 헬스클럽은 없다. 일단 기구를 사용한 웨이트 트레이닝 자체가 성장기의 아동에게는 좋지 않다고 보고되어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어린이에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운동 프로그램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부모가 집에서 직접 지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알기가 어렵다. 어떤 운동이 아이에게 좋은지, 어떤 운동을 하면 키가 크고 체중은 줄면서 튼튼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다. 자칫 무리한 운동을 시키다 괜히 성장판을 다쳐서 키가 안 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래서 결국 부모들은 아이를 태권도장에 보내거나 축구클럽에 등록한다. 발레나 피겨를 가르친다. 딱히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다. 운동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태권도나 축구, 발레나 피겨가 나쁜 운동은 아니다. 아이들은 팀을 이뤄 스포츠를 하면서 친구를 사귀고 협동심을 배운다. 어떤 운동은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인내심을 기르게 한다. 그러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쉽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은 그만의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그게 이 책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이 제 나이에 맞게 걱정없이 뛰어놀고 자연을 만끽하며 마냥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이 다시 오면 좋겠다. 채 10년도 살지 않은 아이가 벌써부터 제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책가방을 매고 학원을 전전하지는 않았으면. 이 책은 그런 희망을 품게 한다. 좀 더 밝고 티없이 맑게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은 자란다

 

   어릴 때의 나는 키가 컸다. 독일에서도 상위 1%에 들 정도였다. 그때는 의무적으로 운동을 해야 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무상 프로그램이 있어 모든 아이들은 일주일에 몇번씩 체육관에 모여 다양한 운동에 참여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없어 틈만 나면 어딘가를 다치고 오곤 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들었다.

   한국에 오고 나서는 달라졌다. 친구들과 간간히 놀이터에서 놀기는 했어도 집중적으로 운동을 하는 시간은 없었다. 학교에 체육시간이 있었지만 이전에 비해 운동의 레퍼토리는 단순했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내 성장은 가파르게 멈췄다. 한 때 소아과 선생님이 180을 바라봐도 되겠다 점쳤던 내 키는 160대 중후반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내 성장곡선은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적절하게 뒷받침한다. 키에 있어 유전적 소인보다는 후천적인 요인들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고, 그 중 적절한 운동은 키를 키우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외국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운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평균신장을 키울 수 있는지를 설득한다.

   사실 나는 키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데에는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소아과에서는 아이의 키를 부모의 키를 이용한 공식을 통해 예상한다. 분명 후천적 요인에 의해 오차 범위 내의 변화가 일어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전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아이의 키는 부모의 키라는 캔버스 위에 운동과 영양, 생활습관 같은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과 같다고 평소의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부모들이 열심히 운동시키면 아이가 180대 후반까지 자랄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운동의 의미가 꼭 키 뿐인 건 아니다. 운동은 많은 사람이 평생 이어가는 취미다. 적절한 운동은 체력을 키워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준다. 우리는 운동을 하며 친구를 만들고 협동을 배우며 때로는 생산적인 경쟁이 무엇인지도 경험한다. 어린 나이부터 그런 기회를 주는 건 그 자체로 무척 소중한 일이다.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

 

   이 아이는 저자가 운동을 가르치고 싶어 했던 아들일까? 책을 보는 내내 시범을 보이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건강하게 쑥쑥 컸으면!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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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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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순간 아주 명료하게 드러난 진실 같다가도 다음 순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조 올로클린은 그런 사람의 마음을 쫓는 일을 한다. 심리학자, 그게 그의 직업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보고 싶지 않은 감정의 파편들을 오롯이 마주해야 하고, 때로는 우연히 알게 된 진실이 그와 그의 가족을 위험과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을 놓지 못한다. 사람을 마주한 순간마다 그의 눈에는 상대의 마음이 비친다.

   명석한 두뇌와 파킨슨병으로 무너져 가는 몸, 별거 중인 아내 줄리안과 더 이상 이전과 같이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그의 소중한 사람들. 조의 일상은 우울하다. 사춘기의 딸은 아빠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실망하고, 분노하고, 마음의 문을 걸어잠근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지만 줄리안은 자신이 그와 함께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 모든 건 어떤 일 때문이다. 큰딸 찰리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긴, 그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사건. 그래서 조는 더 이상 경찰과 일하지 않는다. 일하고 싶지 않다. 어두운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 마음이 향하는 곳을 추리하는 일에서 이제는 발을 빼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이번 일은 외면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찰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열네 살 소녀, 시에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죄목으로 기소된 아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에나의 친아버지다. 그리고 조는 직감으로 시에나가 범인이 아님을 느낀다. 여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진실은 모퉁이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꼭 셋째딸처럼 내내 조의 가족 곁에 머물던, 언제인지 알 수 없던 때부터 어떤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는 듯 보였던 그 아이를 조는 도저히 모른체할 수가 없다. 비록 의문의 레인지로버에 쫓겨 목숨을 잃을 뻔하고, 이번 일로 또 한번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해도.

   '내 것이었던 소녀'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십대 소녀들이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견고하고 단단하다 믿지만, 어른들은 너무도 쉽게 성큼성큼 들어와 그들을 제멋대로 바꾸려고 한다. 그것도 좋은 어른의 얼굴을 한 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며, 가장 먼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 등을 돌려도 이 사람만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느낌을 준다. 부모라는 어른은 누구보다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자식을 걱정하고 아끼며 지켜주고 싶어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도 서툴러서 번번히 아이를 끌어안기는커녕 저 멀리 튕겨내고 만다. 이 어른은 다르다. 멋진 미소를 띤 채 손을 내밀며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털어놓으라고 말하는 그들은 매혹적이다. 그리고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의 손으로 떨어진다.

   책을 읽기 전, 한글 제목에 거부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소녀'에 비록 과거형이라 해도 '내 것'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소유하고, 조종하고, 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믿는, 그렇게 '내 것인 소녀'를 향한 욕망이 얼마나 뒤틀리고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첫인상부터 불편한 이 책의 제목은 어쩌면, 너무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어디엔가 진짜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것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녀들을 생각하며 읽은 소설이었다.


어째서 심리학자인가

 

   조 올로클린 시리즈는 10년 이상 인기를 끌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한다. 파킨슨병의 영향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심리학자.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사람의 마음이라도 꿰뚫어보는 뛰어난 지능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있다. 그 능력이 때로는 그에게 고난을 안겨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다. 그건 그냥 보이는 거니까. 상대의 작은 표정에서 망설임을, 분노를, 공포를, 누군가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마음을 읽어내는 건 조 올로클린에게 있어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시에나의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조가 말려들고 관여하게 되는 것 역시 선택보다는 불가피한 일이라 보는 것이 더 맞다. 사건이 있기 전부터 조 올로클린의 눈에는 작은 단서들이 들어온다. 시에나의 표정, 말투, 눈빛. 사람이 죽기 전부터, 그는 거기에서 무언가를 본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관여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기 때문에 더는 물러설 수 없어진다. 그 진실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사춘기의 여자아이의 마음 속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섬세하다. 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던 아버지가 작은딸의 방에서 피투성이의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해낼 수 없다. 죽은 선배의 체면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수사 지휘관의 눈에는, 더더욱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 올로클린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야 시에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고, 세상의 모든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살인사건 해결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것이었던 소녀'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심리가 어떤 것인지,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대책없이 꼬인 것처럼 보이던 일들이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 올로클린 같은 심리학자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

 

   이따금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때가 있다. 그냥 뭔가 울렁거리는 느낌이나 달랠 수 없는 미심쩍음, 또는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것밖에는 못 느낀다 해도.

   그것을 직관이라 부르든 지각이라 하든, 아니면 통찰이라 하든 상관없다. 육감은 없다. 육감이라는 건 사실 단순한 정신적 과정이다, 뇌가 상황을 인식하고, 머릿속 파일들을 급속히 뒤지고, 기억과 지식의 난잡한 배열 속에서 즉각적인 조화를 찾아내는 과정. 그게 바로 첫인상이고, 그게 퀴즈대회 때 머리에 떠오르는 첫 번째 답을 내놓는 게 대체로 가장 효과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첫 번째 생각은 무의식적 신호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거나 옹호할 수 없는 지식. 같은 질문을 너무 오래 고민하면 우리의 더 고고하신 뇌 기능들은 증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그 신호를 포착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첫 반응을 믿을 것. 내 본능은 시에나 헤거티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고든 엘리스가 입밖으로 내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내게 교사와 학생, 그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선을 넘은 우정이.

   - pp. 218-219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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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재테크 최선입니까? - 두 배로 돈이 모이는 재테크 리모델링
이재철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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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테크 하려고?"

   친구들이 모인 곳에서 이 책을 꺼내들면 어김없이 날아든 질문이었다. 그 질문의 바닥에는 설마,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내 또래에게 재테크란 그런 것이었다. 아직은 직접 번 돈으로 생활비며 월세를 감당하기보다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바쁜 나이, 미래는 불투명하고 모아둔 돈은 있을 리 없는 불안한 어른이들인 우리에게, 재테크는 더 잘 나가는 진짜 어른들이 하는 수준 높은 돈놀이로만 느껴졌다.

   사실 그런 가진 것 없는 20대 중반 중 하나인 나에게 이 책은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한 적 있는 '재테크 경력자'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재테크 최선입니까?'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책을 집어든 독자가 어느 정도는 재테크를 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재테크 서적을 단지 지식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만, 또는 교양서적으로만 접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것이 낫다'(p. 12)는 초반의 한마디에 문득 찔려 책을 덮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읽어나가다 보니 나도 '재테크 경력자'였다. 거창한 포트폴리오를 꾸며본 적도, 미래의 판세를 그려보며 똑똑한 투자를 한 적도 없지만 분명 나에게도 내 손으로 직접 골라 가입한 금융상품이 있었다. 막연히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싶어 시작했던 주택청약저축이 그랬고, 올해 떠나는 일렉티브를 대비하여 2년 전부터 붓기 시작한 적금이 그랬다. 내가 상상하던 재테크에 비해 비록 규모는 적을지 몰라도 분명 나에게도 내 나름대로 상당 기간 유지해온 포트폴리오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연 중에는 나와 닮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 사실이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재무 상담가와 만나 자산 현황을 이야기하고 플랜을 세우는 사람들은 전부 다 나보다는 한 수 위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그들은 나보다 훨씬 안정적인 월 수입이 있었고, 때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펀드며 보험에 이것저것 가입되어 개선의 여지가 훨씬 많긴 했지만, 그래도 재테크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고 늘 불확실한 결정을 내려 때로는 후회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을 위해 이 책이 있다. 재테크에 대한 솔직한 고민을 짚어주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그러면서도 특정 상품을 막연히 권유하기보다는 경제금융을 보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추라고 독려하는 이 책은 아마 지금 이 순간 어떤 이유로든 고민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가 직접 만난 여러 고객의 사례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얼핏 재테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고 따져 묻는 듯한 제목의 이 책은 그래서 든든한 조언자이자 힘찬 응원의 목소리가 된다.


금융문맹으로 산다는 것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고등학교 때 경제올림피아드에 나간 적이 있었다. 대학 입시를 위해 AP 시험을 치르느라 벼락치기로 일주일만에 경제 문제집 한 권을 뗐던 무렵이었다. 그 때는 그래도 이런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주식과 채권의 차이에 대해, CMA와 적립식 펀드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남에게도 설명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전공과도 동떨어진 데다 특별히 흥미를 가지지도 않았던 분야인지라 그 이후 시간이 지나며 나의 경제 지식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금융문맹'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지만 '세계 금융 이해력 조사'에서는 77위라고 한다. 3명 중 2명은 금융의 기초를 묻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금융문맹'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금융 교육의 부족을 지적한다. 의무교육과정에서는 경제의 기본개념에 대해 제대로 다루지 않고, 마땅히 배울 곳이 없어 막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누구보다 맹목적으로 추구하면서도 정작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상스럽게 여기는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측면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노인층으로 갈수록 더욱 심화되어 현재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슬픈 기록 역시 부분적으로는 '금융문맹'에서 파생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의 재테크 최선입니까?'는 쉽게 특정 상품을 추천하고 개인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경제와 금융 교육의 필요성을 깊이 설득한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에게는 초등학교부터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해 자녀의 경제관념을 키워주도록 권하고, 성인들에게는 쉽게 기초부터 다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설득력이 있다. 단기적인 해결책이 아닌 멀리 내다 보는 조언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뼈빠지게 일해서 월급을 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는 은행 앱을 찾아봐야 알 수 있는, 매달 돈이 빠져나가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상품에 얼마의 자산이 구축되어 있고 평가액이 얼마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고객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서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봤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경제개념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꼬박꼬박 월급 주는 곳에서 안전하게 일하라던, 너는 개원하면 사기 당하기 딱 좋으니 다른 사람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라던 지인들의 걱정어린 조언들도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재무 전문가를 찾아가 똑똑한 포트폴리오를 내밀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정도의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거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좋은 자극이 되어 주었다. 안 그래도 외울 것 많고 할 일 많은 내 인생에 이거 하나 정도는 남의 손에 맡겨도 되지 않을까, 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한국은행 경제교육'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추가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느리더라도 조금씩 시작해봐야겠다.


* 더난프렌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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