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 - 유럽 출산율 1위, 프랑스에서 답을 찾다
안니카 외레스 지음, 남기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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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보면 프랑스 작가가 쓴, 프랑스 육아를 홍보하는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 안니카 외레스는 사실 독일 출신의 기자다. 동시에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가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또 프랑스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남기는 기록이다. 자연히 저자가 의도하는 독자는 독일의 엄마들, 혹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엄마보다 여성 그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고 모성애를 강요하지 않으며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양육을 하는 프랑스의 육아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일 여성들이 겪는 육아에 대한 강박과 부담을 안타까워한다.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프랑스의 육아에 대한 시선을 그들에게도 알려주고자 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낯설지 않다. 저자가 묘사하는 독일 여성들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한국 여성들에게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실제로 커리어의 포기로 이어지는 육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시선. 그 모든 건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의 엄마들, 혹은 예비엄마들에게도 용기를 실어준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애초에 그건 고민이 아니었다고 얘기하면서 말이다. 일과 육아 사이의 저울질, 육아를 하며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수많은 포기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고뇌, 그 모든 것이 그저 사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하여 여자들에게 덧씌운 불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를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여자의 인생 중 (아주 아름다운)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 일부분을 위해 인생 자체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일하면서, 좋아하는 취미를 지속하면서, 그러면서도 행복하고 따뜻하게 아이를 기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 100%의 엄마가 아니라고 자책할 필요는, 정말이지 전혀 없다.

   나는 엄마가 아닌데도 책을 읽으며 소소한 위로를 받았다. 내 또래만 해도 벌써부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아이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리셋버튼이 없는 게임과 같아서 한번의 실수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번씩 끼쳐오고는 했다. 그렇다면,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타이밍이 올 때까지 아이는 낳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 모든 고민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저자가 있어서 이 책은 마음을 조심스레 간질였다. 그렇게 고민하는 게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나 역시 그 고민들을 거쳐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혹은 언젠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더불어 남자들이 읽었을 때 육아에 대한 여자의 고민을 보다 생생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버리자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출산율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실제 저자가 만나는 대부분의 프랑스 친구들도 아이가 둘 이상 있다. 그 중에는 살 집이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당장 직업이 없는데도 아이를 갖고 싶기 때문에 아이를 가졌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무책임함'을 독일인인 저자는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나중에는 부러워한다. 어떤 부모가 될지 고민하기 이전에 부모가 되고 싶으면 되기로 마음먹을 수 있는, 어떤 가치보다 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 그 아이를 길러가는 기쁨을 택할 수 있는 프랑스인들의 흔들림 없는 우선순위를.

   사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한국인의 기준 안에 갇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도 엄마는 당연히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 실수하면 안되고, 출산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결코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덜 완벽해도 더 행복한 엄마의 아이들이 훨씬 잘 자랄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전해오는 양육 조언

 

   1.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2. 아기를 갖기에 '완벽한 때'는 없다!

   3. 아이는 부모가 함께 키우는 거야

   4. 항상 훌륭한 엄마일 수는 없어

   5. 완벽한 출산

   6.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까

   7. 셋째 아이는 알아서 클 거야

   8. 아이들에겐 지루한 시간도 필요하다

   9. 행복한 프랑스 워킹맘

   10. 말이 통하는 아이들

   11. 코스 요리를 먹는 프랑스 아이들

   12. 아이들은 아무 데서나 잘 잔다

   13. 막내아이 대하듯이 자신을 돌보기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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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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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삶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구멍 같은 사고.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스스로를 돌볼 수도 없게 된 오기는 그렇게 홀로 남는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했던 아내는 사고로 사망했고, 그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내의 어머니, 장모 뿐이다. 혼자 대소변을 볼 수도, 자기 몸을 닦을 수도 없는 그를 돌보게 된 것도 장모다. 그리고 장모는 딸이 죽고 없는 집에서 딸의 흔적을 찾아간다. 딸과 사위의 관계를 확인한다. 딸이 품었던 감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딸이 집착했던 정원에, 거대한 구멍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때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가장 생생한 반증인지도 모른다. 일찍 부모를 여읜, 성공에 목말랐던, 때로는 그를 위해 옳지 못하나 그렇게 비난받지도 않는 길을 택했던, 늘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제대로 된 관계로 충족시킬 줄 몰랐던 오기는 얼굴이 뭉개지고 사지가 마비된 채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 순간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다르게 대한다. 대학 교수도, 성공한 동료도, 한때의 애인도, 너무 사랑하는 딸의 남편도 아닌 그저 오기라는 인간으로 남은 그 순간, 그래서 오기의 삶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때로는 입주도우미와 그녀의 아들에게도 무력하게 모욕을 당할 만큼, 그 모욕마저 그리워하게 될 만큼. 오기의 추락은, 자동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던 그 날 이후로 계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기는 좋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끔찍한 악인이라 하기도 어렵다. 오기는 바람을 피운다. 아내를 두고 제이와, 제이를 두고 또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며 결국에는 모두의 마음을 잃는다. 대학원에서 고만고만하게 공부했던 동료들을 앞서기 위해 오기는 넌지시 누군가의 험담을 흘려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할 필요는 없었던 그 말 덕분에 오기는 그 누군가보다 일찍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런 오기의 행동에는, 어쩐지 경멸과 함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오기는 나약하다. 한번도 강했던 적이 없다. 그 나약함이 오기를 비겁하게 하고, 비겁함이 오기를 못나게 만든다.

    나약한 오기를 사람들 위에 서게 했던 건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었다. 사고 후 겨우 왼손을 움직이게 된 오기로써는, 그 중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언젠가 그 곳으로 돌아갈거라는 희망이 잠시나마 오기를 일으키지만 사위가 자신의 딸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 알게 된 장모는 서서히 그 희망을 끊어나간다. 오기의 대학에 사직서를 대신 내고 오기의 돈을 멋대로 쓴다. 그리고 오기가 한번도 사랑한 적 없던 정원, 아내의 정원에 구멍을 판다. 어두컴컴한 방 침대에 누운 오기가 볼 수 없는 곳에. 사람을 삼킬 만큼 깊고 크게.

   마지막 순간 거대한 구멍의 바닥에 누워 오기는 하늘을 본다. 그런 오기의 얼굴에서 읽히는 건 체념, 그 체념보다 깊은 안심이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 오기의 나약함은 그의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 내내 가장 두려웠던 건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오기는 가진 게 없었고, 그래서 더 갖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렇게 가진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났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오기에게 남은 건 그 구멍 뿐이다. 그 시간이, 어쩌면 오기의 인생에 처음 찾아온 평화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안의 두려움을 보았다

 

   '홀'은 무척이나 정적인 작품이다. 큰 사고 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오기에게는, 사실 어떤 다이나믹한 일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런데 입주도우미가 몸을 닦아주는 척 희롱해도 제지할 수 없는, 전화 한 통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자신이 걸었던 전화를 조용히 들어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는 장모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오기에게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그 모든 일들이 생활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 모든 순간이 공포를 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순간부터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섬뜩했다.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있는 오기, 그런 오기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구멍을 파며 그 곳에는 '살아있는 것'이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장모. 오기가 필사적으로 '장모 이상'이라고 글씨를 써 자신의 위험을 알리려고 한 그 때, 물리치료사가 순진하게도 환자가 장모님이 요즘 건강이 이상하다고 많이 걱정한다며 그 쪽지를 장모에게 전하는 그 순간의 공포. 귀신도, 살인마도 등장하지 않는, 사실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오기와 장모와 그 외의 몇몇 단역 뿐인 이 이야기가 어떤 스릴러보다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설

 

   장모가 오기를 구멍에 빠뜨리는 데에는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았다. 그저 오기가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앞을 막아서며, 끝없이 한 쪽으로 가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되었다. 장모가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도, 오기는 제 힘으로 그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갈 수 없어졌다.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장모가 파놓은 구멍, 자기 집 마당에 있는 구멍, 바로 울타리 하나 너머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위치의 구멍인데도. 목소리도 낼 수 없고 다리도 쓸 수 없는 오기는 그저 거기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때때로 인간은 그토록 나약하다. 평생 나약했던 오기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태에 놓였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오히려 사고로 즉사한 아내, 그래서 살아남아 이토록 괴로운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아내가 부러웠던 오기.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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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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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디낭은 혼자다. 아내 루이즈는 우편배달부와 바람이 나서 떠났고, 딸 마리옹은 지구 반대편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이웃의 노파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미워하고, 특히 그 중 관리인인 쉬아레 부인은 그를 내쫓지 못해 안달이다. 아흔을 목전에 둔 페르디낭의 삶에서 의미 있는 존재는 늘 그의 곁을 지키는 독일 개 데이지 뿐이다. 오직 데이지에게만 마음을 연 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틈만 나면 심술궂게 구는 이웃집 할아버지, 그게 바로 페르디낭이다.

   그런 그의 인생에 연이어 불행이 닥친다. 그가 사랑하던 유일한 존재인 데이지가 어느날 사라지더니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은 페르디낭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끝나고 만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그 순간, 딸 마리옹은 청천벽력같이 아빠가 아빠 인생을 망가뜨리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며 자신을 돌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요양원으로 보내드릴거라고 선언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스스로를 잘 돌보는지 확인하고 딸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건 쉬아레 부인이다. 누구와 같이 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페르디낭인데, 요양원에 가느니 죽는 게 차라리 낫다. 그렇게 절망과, 분노와, 세상에 대한 증오가 교차하는 순간에 누군가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윗집에 이사 온 줄리엣은 학교에서 '똑똑이'라며 친구들의 비아냥 섞인 놀림을 받는다.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용감하며, 깊이 있는 시선을 지닌 이 꼬맹이는 페르디낭의 독설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차지하여 점심을 먹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더니, 과일젤리 한 박스를 남긴 채 내일도 밥을 먹으러 오겠다 선언하고 가버린다. 페르디낭은 이 모든 게 못마땅한다. 겨우 저런 버릇없는 꼬마애에게 휘둘리려고 이제껏 살아온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의지와 달리, 줄리엣은 조금씩 페르디낭의 닫힌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줄리엣을 통해, 페르디낭은 이웃과 친구가 되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법을 배워나간다.

   페르디낭의 괴팍함은 이 책이 프랑스 소설임을 끝내 숨기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렐리 발로뉴는 페르디낭 할아버지를 통해 모든 게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 더 이상 삶에 어떤 즐거움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고 노력만 한다면 변화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페르디낭은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좋은 이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그는 좋은 할아버지, 좋은 이웃, 좋은 친구, 그리고 어쩌면 좋은 남자친구가 될 것이다. 여든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페르디낭보다 젊은 독자들 역시, 지금 무엇이든 시작해도 좋지 않을까.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릴 때의 나는 연립주택의 모든 집 벨을 눌러보는 아이였다. 그저 이웃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서, 내 이웃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누르곤 했다. 그 당시 그 연립주택에는 온통 독일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살았다. 당시 내 기준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중 대다수는 지금의 내 부모님 또래였지 싶다. 아무튼 그들은 문을 열어주었고, 현관 앞에 서서 1층 오른쪽 집에 사는 누구예요, 인사하는 나를 다정히 굽어보았고, 집에 들어오게 하여 과자를 내주고 책을 빌려주었다. 나는 4층 오른쪽 집 할머니의 카나리아와 놀았고, 2층 오른쪽 집 노부부와 함께 잼을 만들었으며, 4층 왼쪽 집에서 독일식 커틀렛 요리법을 배웠다. 그 당시에는 그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내 가족이었고, 내 보호자였다. 나는 그들의 품에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조금씩 철이 들면서 그런 습관은 사라졌다. 나는 이유 없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건 실례라는 것을 배웠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웃사람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아갔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보니 이웃의 아이에게 함부로 친절을 베푸는 것도 그 부모에게 불쾌한 일일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줄리엣을 보며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는 나도 줄리엣 같은 존재였을까 생각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가족의 유대가 강하지 않아서, 자식이 반드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자식은 부모와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한번씩 인사만 건네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때 내 이웃들의 대부분도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그들 인생 속으로 들어온 나를 스스럼없이 가족으로 받아주고 사랑해주었다. 갑자기 그 때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잘 자란 아이는 고집 센 노인도 바꿔놓는다

 

   이 아기는 페르디낭에게 재난 중 가장 큰 재난이다. 브룅 씨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젖먹이들을 싫어한다. 그에게 젖먹이들은 구속일 뿐 아니라 배은망덕 그 자체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울며 언제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결코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웃을 때는 부모나 마찬가지로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잘 웃는다.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이분만 아니다. 예쁘다는 둥 천재라는 둥 하겠지만 아이는 침을 흘리고 세 단어도 열거하지 못하고 파킨슨병 환자처럼 걷는 인간 존재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페르디낭은 가식적일 수가 없다!


- 페르디낭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대목. 자기 딸 마리옹이 태어났을 때조차 병원으로 보러 가지 않았다던 이 고집쟁이 할아버지 때문에 부인인 루이즈는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파킨슨병 환자처럼 걷는 인간 존재'라고 표현하는 건 정말로 프랑스 소설밖에 없을 것이다.


   7) 예기치 못한 것에 여지 남겨주기

   좋은 소식들에나 좋지 않은 소식들에나 마찬가지로 여지를 주기.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


   8) 묘비명 바꾸기

   모든 걸 심사숙고해볼 때, '마침내 찾은 평온'은 약간 과장인 것 같다. 약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가족과 이웃에게 마음을 열게 된 페르디낭의 변화가 드러나는 다짐들. 습관과 익숙함에 갇혀 무엇에도 마음을 열지 않던 그가 우연이 가져오는 삶의 굴곡을 수용하고, 죽음이 아닌 살아있음의 가치를 직시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누가 뭐래도 줄리엣 덕분이다. 이웃 모두가 연쇄살인범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괴팍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문을 두드렸던 용감한 아이가 없었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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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여름 스토리콜렉터 4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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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크리스마스 아침, 네브라스카의 외딴 농장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다섯명 사망, 두명 중상. 사망자 중 한 명은 사건을 벌인 범인으로, 이 농장을 운영하는 그랜트 가의 막내아들이기도 하다. 가족에게, 그리고 가족처럼 지내던 일꾼들에게 총을 난사한 후 오랜 기간 농장을 위해 일해온 다른 일꾼의 총에 맞아 사망한, 18세의 에스라 그랜트. 대체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사건의 중심에 서는 것은 죽은 에스라가 아닌, 살아남은 그의 양동생 셰리든이다. 17세의 셰리든 그랜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밤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달아난다. 그 전날 그녀는 여태껏 모두가 쉬쉬하던 가족의 비밀을 폭로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자신을 끔찍히도 구박하고 학대하던 양어머니 레이첼의 숨겨진 악행에 대해 낱낱이 털어놨다. 달아나는 건 오직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 다음날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이, 셰리든에게서 가장 좋아하던 오빠를 앗아간 끔찍한 사건이 되려 그녀를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잡아끈다. 양어머니 레이첼은 전국구 방송에 등장하여 이 모든 건 양오빠들과 양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남자에게 꼬리를 치며 가정을 파탄낸 은혜를 모르는 양딸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끔찍한 사건의 충격 속에, 대중은 아들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어린 외침에 설득당한다.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셰리든은 범인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폭력과 모욕 속에 농장으로 돌아온다. 그녀 앞에 놓인 세상은, 살아있는 지옥에 불과하다.

   그렇게 셰리든의 비극이 시작된다. 사건은 셰리든의 편이 되어준 오빠와 새언니, 능력 있는 형사 조던, 늘 그랜트 가의 비극을 똑똑히 지켜보던 메리제인 워커와 존 화이트호스, 그리고 셰리든에게 죄가 없음을 아는 페어필드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츰 해결의 기미를 보인다. 셰리든의 주변에는, 그녀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셰리든은 여전히 배은망덕한 창녀에 불과하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한다. 고작 열일곱에 셰리든은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 뉴욕에 가서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꿈꿨었는데, 이제는 농장을 벗어나는 일 자체가 두렵게 된 것이다.

   그래서 셰리든은 다시 도망친다. 외모를 바꾸고 죽은 엄마의 이름을 빌려쓰며, 새 인생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어린 여자애에게 주어지는 일은 뻔하다. 몸을 갉아먹는 막노동, 자존심을 팔아야 하는 서비스업. 사랑을 속삭이며 비싼 패물을 바치던 남자는 알고 보니 그녀를 고위층에 매춘부로 팔고자 하는 포주로 드러난다. 그렇게 페어필드를 떠난 후에도 셰리든은 자꾸만 넘어지고 부딪힌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메사추세츠 주 록브리지에서 폴 서튼을 만나 드디어 행복을 찾은 듯하지만, 어쩐지 그 결말이 석연치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독자들이 지금껏 셰리든의 불행을 뒤쫓아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번에는 셰리든이 제대로 된 남자를 고른걸까. 자꾸만 의심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끝나지 않는 여름'은 '여름을 삼킨 소녀'의 후속편이다. 네브레스카의 소녀 셰리든이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은, 산산이 부서지면서야 성장할 수 있는 아픈 사춘기의 모습을 그린다. 그렇기에 때로는 공감이 가지 않아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책이다. 셰리든은 미숙하고, 성급하고, 다혈질이면서도 쉽게 상처받고, 애정에 목말라 누군가의 사람을 갈구한다. 그런 그녀의 선택은 때로는 바보같고, 그래서 한번씩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눈앞에 셰리든이 서 있다면 어깨를 흔들며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를 질러주고 싶을 정도로, 이 소녀의 삶은 엉망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성장이 있다. 소녀는 자랄 것이다. 여름은 끝나지 않았지만, 마침내 가을이 오면 거기에 서 있는 건 달라진 모습의 누군가일 테니까.


넬레 여사의 판타지 월드


   넬레 노이하우스의 인기를 견인했던 타우누스 시리즈에 대해, 독일어 원본을 읽었던 아빠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멋지고 예쁜데다 능력 좋고 성격까지 쿨하다고. 이 정도면 스릴러가 아니라 판타지지, 하는 설명이 뒤따랐다. 정말로 그랬다. 넬레 여사에게는 특유의 판타지 월드가 존재했다. 로망이 실현되는 공간, 이 세상에 있을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실재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곳. 어쩌면 사람들은 거기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셰리든은 분명 로망의 집합체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셰리든의 외로운 모험 외의 이야기를 담당하는 인물들은 멋지다. 조던 블라이스톤은 외모에 대한 묘사부터 전작의 멋진 형사들과 같은 라인을 이룬다. 게다가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과 동성애적 요소까지 합쳐지니, 정말 작가가 꿈꾸던 대로 빚어놓은 인물 같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조던이 자꾸만 이끌리고 마는 니컬러스 화이트호스는 누가 봐도 매력적인 남자다. 게다가 전세계를 떠돌며 극한 직업을 전전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쿨함을 숨길 수 없다. 니컬러스의 어머니이자 아메리카 원주민인 메리제인은 또 어떤가. (아마도 작가 자신을 포함하는) 많은 유럽인이 상상하듯, 그녀에게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미래를 예견하는 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는 통찰. 어쩌면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멋진 인물은 메리제인일지도 모른다.

   그 판타지는 푹 빠져들면 너무나 매혹적이다. 실제로 셰리든의 고행길에서 잔뜩 고구마를 먹다 보면 주변 인물들의 눈부심이 한번씩 사이다가 되어주는 듯하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그 모든 게 불편해지기도 한다. 정형화된 판타지는 때로는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위 '꼰대' 같은 마음으로 보면 한번씩 덜걱거리는 요소가 있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흡입력 하나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넬레 월드'의 전매특허 아닌가. 그래서 투덜대면서도 책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명대사를 만나보자

 

   "이해합니다, 그랜트 양. 이런 일을 마주하고도 부서지지 않는 게 운명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 조던, p. 69


   "내가 여기 있으면 좋겠어?

   "그래."

   니컬러스가 대답했다.

   "그래, 당신이 머문다면 기쁘겠다."

   - 니컬러스, p. 372


   "당신 정체가 뭐야, 구루?"

   그는 뒤엉킨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농담처러 물었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는 '오래된 영혼'이지." 니컬러스가 대꾸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카우보이야. 이제 상당히 만족하는 삶을 사는 카우보이."

   "아, 그래? 왜 그렇지?"

   "드디어 도착했으니까."

   "어디에 도착했는데? 여기?" 혼란스러워진 조던이 물었다.

   "그래,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니컬러스는 재킷 주머니에서 손을 빼 조던의 어깨에 얹었다.

   "당신에게 도착했어. 아주 좋은 느낌이야."

   - 조던 & 니컬러스, p. 505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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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캘리포니아 S시의 새로 지은 쇼핑몰, 영화관 옆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가 영 수상쩍다. 메뉴도 한 개 뿐인데다 탄산음료도 팔지 않고, 혼자 가게를 보는 흑인 점원은 어딘가 불퉁한 기색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게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한 물체다. 물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거대한 차통의 형상을 한 그것은 핵전쟁을 대비한 벙커 같기도 하고, 군사시설의 일부 같기도 하다. 수상쩍은 가게를 그냥 지나쳤으면 좋으련만, 우유부단한 성격의 일본인 에리오를 비롯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가게로 모여든다. 내내 한 명 이상의 손님이 동시에 있었던 적이 없는 이 가게에. 외모도, 국적도, 인종도, 성격도 가지각색인 손님들의 첫만남은 결코 원만하지 않다. 거친 말이 오가고 폭력을 휘두르기 직전까지 치닫기도 한다. 통하지 않는 언어의 힘을 빌려 서로에 대한 원색적인 편견을 드러내고, 초면에 그닥 싫을 이유도 없는 상대에 대해 적의를 불태운다. 그렇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한 공간에 머무르게 된 7명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바로 대규모의 지진이다.

   지진 이후 깨어난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다른 사람으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CIA 요원들과 아크로이드 박사에 의해 그들은 자신들이 '매스커레이드'라는 현상에 휘말렸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지진을 피하기 위해 뛰어든 가게 한 구석의 수상한 벙커는 사실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인격 전이 현상을 일으키는 장치이고, 그 장치에 의해 그들은 평생 인격이 뒤바뀌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매스커레이드'가 얼마의 주기로 언제 일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순서만이 정해져 있다는 설명은 지진 그 자체보다 더 암담하다. 무엇보다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은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예정이며 다시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그들은 절망한다. 이런 새로운 삶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스커레이드'. 함께 '체임버'에 들어간 사람들이 '스플릿 스크린'에 의해 인격이 나뉘고 나면, 일정한 순서로 계속해서 인격이 바뀌게 되는 현상이다. A에서 B로, B에서 C로, 순차적으로 인격이 이동하지만 이동하는 횟수와 주기는 인간의 힘을 벗어난다. 이 현상은 평생 지속되며, 만약 누군가 사망할 경우 그 육체와 함께 소멸되는 것은 그 순간 육체에 들어있던 인격이다. 즉, A의 몸과 B의 인격이 함께 죽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앞으로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할지 우왕좌왕하며 대립각을 세우기 바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살인이 일어난다. '매스커레이드'가 빠르게 반복되는 가운데, 누가 누군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둘씩 사람들은 죽어갈 뿐이다.


그 세계는 안전하다

 

   '인격전이의 살인'이라는 제목을 읽고 책 뒷면의 간단한 시놉시스를 훑었을 때 당장 나부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인격이 자유롭게 뒤바뀌고, 그렇게 인격이 바뀌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인이 벌어진다니.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가려는 걸까, 싶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런데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작가였다. 소설은 SF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생생한 현실감을 제공했고, 덕분에 흠뻑 몰입하여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비과학적인 현상이 일어나도 처음에 그 조건이 명확하게 독자 앞에 제시되어 있으면 그 범위에서 수수께끼는 풀리고, 독자는 공정한 정보에 기인하여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설에서 모리 히로시는 말한다. 그 말 그대로다. 형이상학적인 인격을 자유롭게 전이할 수 있는 장치는 아마 실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 거쳐 작가가 극중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조목조목 설명하는 작품 속 세계는 흠 잡을 곳 없이 탄탄하고, 그래서 그 세계관을 흡수한 순간 이 소설은 반박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말이 안 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세계 내에서는 모든 게 딱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격 전이의 살인'이 지닌 진정한 힘이자, 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의 원동력이다.

   책 속에 친절하게 제시된 그림들을 지도 삼아 이야기를 따라가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미스터리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도 더 생생하게, 여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참 놀라웠다.


미스터리 모아 로맨스

 

   눈 깜짝할 새에 습격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건 오로지 에리오와 애쉬블론드의 미녀 재클린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CIA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어느 순간 인격이 바뀌어도 들키지 않을 만큼 서로의 직업이나 언어, 생활습관 등에 대해 완벽히 익히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일본으로 돌아와, 늘 그렇듯 티격태격하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안타깝게 숨을 거둔 한 때의 동료들의 자취를 더듬다 알게 된다.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였는지를.

   미스터리답게 이 소설의 결말은 반전이다. 꼭 진범을 찾는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체임버'의 목적에 대해 아크로이드 박사와 진저가 오래 전 깨달은 사실을 공유하는 시점에서도 그렇다. 여전히 니시자와가 구축한 세계 내에서 삐걱대는 일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톱니바퀴 같은 결말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인물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완벽히 수긍하면서도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찜찜함이 남았다. 정말 그런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살인을 결심하게 되는 걸까.

   역자는 후기에서 자신에게 '인격전이의 살인'은 에리오와 재클린의 로맨스였다고 말한다. 책을 덮은 이후에 내가 느낀 기분도 그랬다. 정말로 상대방이 되어 살아보는 경험을 한 연인은, 서로를 얼마나 잘 알게 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둘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극적으로 숨을 거두어야 했던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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