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단골 식당에 정말 오랜만에 들르다. 주방에 불이 꺼져있고, 온풍기는 틀지 않았고 한기에 손님도 없어 지키고 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백색소음처럼 켜져있는 텔레비전은 막장 연속극이다. 순간순간 전환이 빠른 톤의 배경음악도 친숙하다 싶다. 


-2.


작업실에 가서는 석고 작업한 것들을 포장한다. 귀퉁이나 모서리를 떼운 것들이 있어 조심조심 낱개 포장을 하고 상자에 쇼핑백에 담는다.  늘 준비과정에서 예상치 못하는 변수들이 있다. 생각지 못하는 일들이 있어 긴장도 되고 나중의 이야기꺼리를 낳기도 한다. 이번에는 프사의 저 녀석이다. 물고기는 코가 둘이다. 들어온 물이 빠져나가야 되니 구멍이 뻥 뚫려있는데 냄새를 맡는단다. 연어의 귀환처럼 말이다.


-1.


아카데미 강연이 준비기간 중에 잡혀 매끄러운 준비를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로 매끄럽게 해결된 부분이 많다. 시집출간 소식을 목격한 일도, 산책기간 내내 나눈 이야기들이 <다다르다>는 시로 되돌아 온다. 타이포그래피 즉석 강연 준비하면서 이어지지 않던 부분이 강연준비 밖에서 하고나서 굵은 실선으로 그어주는 부분이 생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정리해내면서 그 과정 역시 고비였다는 점. 곁에 있던 친구들의 조언이 도움으로 맴돌아 돌아온다. 

 0


 뇌과학이나 감성, 감정을 다루는 그물들은 우리가 미래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둔다. 찰라의 순간 우리는 점점 박혀있는 과거를 잇는 매듭이나 뿌리를 내린다는 걸 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이 아닌 것이다. 미래를 등지고 서서 지금의 지점에서 과거를 안고 밀려가는 것이 미래인 것이다. 


1


그러니 '지난 흔적'을 서투르게 여기지 않는다면 지난 일들에서 숱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하나하나 한점한점 다른 각도로 빛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2


경마장의 경마처럼 앞을 보고 채근하는 것이 아니라, 뒤를 보고 크게 쉼호흡하고 과거와 실수라는 양념을 첨가해두는 것이다. 당신은 그 그릇에 조금씩 기다리고 대기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적정한 온도로 말이다. 그래서 무의식도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4


두루치기요 했는데, 김치찌개를 해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과식 지점이었는데 후후. 반주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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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난 주말, 바쁘다 바뻐. 급여날이기도 하구, 전시미팅도 잡혀있구. 이런 날은 뱅킹도 잘 되지 않더라. 몇 차례나 다시 해서야 간신히 된다. 거래처부터 입금하구보니 시간이 미팅시간이 잠시 뒤다. 서둘러 섬안다리를 건너다. 시원시원한 큐레이팅 덕분에 일들이 가닥이 잡히고 해내야할 일들이 준다. 기분 좋은 일이다. 


-3


동네 손가네 만두집을 간다. 봐둔 곳이긴 한데, 이곳이 그 비빔만두의 명소란다. 만두국에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모듬만두 한판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젊은 작가들은 자아란 것이 마치 있는 것 마냥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다, 그 표현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보탠다. 자기를 응시하거나 증상에 말을 붙여나서야 자기밖을 맴돌 수 있다. 그 한계를 설정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독서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근시안때문일 것이다. 비평가를 애써 만나지 마라는 말도 살짝 걸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 이렇게 합을 맞춰보니 제법이다 싶다. 내년 전시 소식도 슬쩍 건넨다.


-2


어머니의 제주도 여행사진에 걸린 무표정. 마음에 걸려 올라간다. 배다리 막걸리 두 병을 사들고, 딩동. 그 새 아들 온다는 소식도 잊으셨나. 누님 전화까지 왔는데, 음식 준비해두었으니 빈 손으로 오라고. 하소연도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했다. 하시라구.....하고싶은 얘기가 많으셨나보다. 먹을 걸 자꾸 갔다주는데, 그걸보면 아부지 생각난다고 같이 못드셔서 어떡하냐구......


좋은 데 가셔서 보고싶은 사람, 보고싶은 친구들 하고 술도 배워 잘 지내고 있는데 왠 걱정이냐구

이렇게 이렇게

틈만나면 말씀드리고, 그 음식 배드민턴 장 분들에게 주시라고...도록들도 가져왔으니 챙겨드리구요....그러더니 일요일 약속을 잡으신다....그 양반들 다음 날 아침 다시 연락이다. 피해줄까봐...오시지 못하겠다고....어머니는 음식싸서 가져가신단다.


그러다가 작은 수첩에 적힌 일기를 본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분이 어떤지 걸음수까지 적어놓으신다. 나아지고 계신거다.


-1


올라가는 길에 두 권이 걸려 챙긴다. 

 이 책도 생각나고, 식물의 사유부터 이끼까지 같은 부류의 책들을 모아 읽고도 싶다. 연결 지점이나 기획이 궁금했는데 서문을 보니 이어지는 연구서다. 


고양이를 연구한 칠레의 바렐라 책이 앞부분만 접혀있어 가져간다. 어디쯤에서 읽힐까. 하지만 어머니가 챙겨준 귤과 사과를 넣은 가방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렇게 예식까지 돌아다니다 내려온다.


0.


열차에 몸을 담으니, 옆자리에 아는 지인분이 타신다. 세상에 이런 일이...귤을 드리고 그간 안부를 나눈다.


1. 늦은 토요일 일요일 온전히 작업이다. 할 만큼 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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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철야다. 작업실에서 새벽을 맞아보고 싶었다. 그 새벽 봐 둔 목욕탕도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고 말이다. 그런 날도 있었다. 아침 해장국밥까지 챙긴 날.


-3.


야근이다. 그제 철야라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저녁 쉬어줄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무심코 시작하다보니 열시에 가깝다. 그래도 밑작업을 해둔 곳에 손이 가는대로 놓아두었더니 제법 봐 줄만하다. 퇴청길에 마트에 들러 하이볼 두 캔에 과메기를 시식해본다.  유일한 애청프로그램을 본다. 시큰거리는 곡들이 제법이다.


-2


작은 공연(기타연주), 시낭독, '다다르다'란 시다. 내년 봄 시집 출간예정인 서진배시인의 도움이 밋밋할 수 있는 전시에 멋진 꽃한발 드리운 듯하다. 12월 2일 저녁 4시 작가와 만남 이벤트 진행중이기도 하다. 숙소들이 예약이 들어차, 결국 에비앤비까지 동원하여 주택 2층을 빌려 손님맞을 준비도 해둔다.


-1


오늘 오전 팜플릿(도록) 마지막 준비작업이다. 어제 야근한 작품도 좋아해주신다. 사진찍고 작업한 내용들 추스리고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간추린다. 한 사이드에는 간택되지 못한 작품들도 가득하다.



0


파란색. 파랑.  정작 본인을 잘 모르겠는데 여러 번 잘 어울린다 한다. 바다를 좋아해서인가. 바다를 자주 봐서인가. 바다를 그때그때 그리고 싶어서인가. 자주 그리워해서인가. 바라만바 좋아서인가. 가끔 바닷가 카페에서 앉아 책을 마무리지으면 그렇게 울렁거리고 아득하고 좋다. 그 책을 바다와 함께 갈무리라니.



1. 


석고부조 색칠과 다중시선 작품 손만 보면 된다. 또 다른 만남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2. 


토요일 돌아와 <응시> 석고부조 작품을 탈형해본다. 드디어 건조완료? 조심스럽게 뜯어나간다. 손에 수분이 느껴진다. 어쩐다, 조심조심. 겨우 망가뜨리지 않고 탈형을 했지만 겉바속촉이라니. 테두리를 자르고 다시 난방패널 가동이다.  그래그래 흐르지는 말아라.


3. 


석고 작품들 채색을 해본다. 여벌로 한 작품 귀퉁이부터 시작하는데, 자꾸 색이 죽는다. 어쩐다 아무래도 조소 흙이 남아서인 듯싶다. 나머지를 과감히 치솔로 북북 씻는다. 모서리가 닳든 말든 세게 치카치카다. 비누도 묻히고 세제도 묻히고, 그런데 모서리가 툭, 에구 어쩐다. 간신히 부여잡고 테이블에 놓는다. 말라라. 붙어라. 채색은 은은하게 해야한다. 습기가 있으니 그래도 낫구나. 해나가다가 에폭시 레진 생각이 나 응급처방이다.


4.


밤새 카톡카톡이다. 도록내지, 표지, 엽서, 포스터안 오탈자와 문의까지 한밤중에도 특근작업을 하셨구나. 보내온 시간이 새벽 세시가 넘는다. 세부 내용들이 들어오지 않아, 출력을 해두면서 붙인다. 하나하나 관객의 입장에서 읽어낸다. 호흡도 수정글도 그림도 배경칼라도 마음에 든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다싶다. Gypsy와 귤의 도움이 크다. 그러고보니 벌써 4년 전부터 같이 작업을 했구나. 구력도 붙었다는... ...


5.


14일 화요일 출근길. 확인한 도록에 실수한 부분이 떠오른다. 이런. 판화를 혼합재료로 기재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수제 젤라틴판으로 작업한 건데. 


다행이군. 아직 시간은 기다려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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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세대 2023-11-2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다르다에 다다르기까지 삶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따로 보고 같이 보고... 그리고나니 우연과 중첩이구나. 거듭난‘나‘에 다다르다

소슬바람 2023-12-23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감을 깨워주는 작업, 작품 고맙습니다
 















-1. 


어제도 바쁜 하루다. 추가면접까지. 살아가는 방식에 제 각각이다 싶다. 글을 남긴다는 것이 책만 올려놓고 생각을 잇지 못하고 급히 다른 일들을 보다나니 퇴근 시간에 가깝다.


0. 


동료가 요청한 책을 들여다본다. 서론-목차-그림과 요약본...제법 잘 된 책이다. 중독을 다룬 책 <<도파민네이션>>도 나쁘지는 않지만, 자기계발서식 미국식요약방식의 서술 방식이 별로 고통을 느끼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며칠 지나면 남는 것이 별반 없을 지도 모르겠다.


1. 


페북의 한 친구가 이동권 실습을 웹툰?만화로 다룬 이야기를 보다. 아차 놓친 게 있어 말고리를 잡고 싶어서다. 속도. 목발을 짚고서 이거나 아프거나 노인이거나, 노약자로서의 속도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놓친다. 행정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더 더군다나 이들의 말의 강도를 잡아채지 못한다. 그런 속도를 추체험해본 적이 없어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보이는 행정, 느린 것들은 모두 뒤안으로 숨기고 싶은 속내. 단계를 거쳐 올라가면 그런 정상인들의 체계에서 그 온도는 점차 식어간다. 온기는 온 데 간 데 없다. 그들의 속도도 문제다. 시선만이 문제가 아니다. 느릿느릿 겪어보지 못한 자들이 윗자리에 머무르는 관행이 지금을 망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평생 영감 소리를 듣거나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못한 자들. 밥도 운전도 수발도 내 손으로 겪지 못하는 자들. 


2. 


거스르는 감속의 시선.  거슬러 올라가는 몸이 겪는 시선들. 그 시선들의 온기가 스러져가는 것들을 조금은 따뜻하게 보듬고  그 곁으로 온기를 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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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로볼: 막내가 가지고 놀아, 하나 사서 놀아보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오른손, 왼손. 아니지 아니야, 오른손은 잘 되는데 왜 왼손은 되지 않는거야. 그러다가 유투브를 보게 된다. 빠르게가 아니라 원심력을 느끼면서 천천히..천천히 ...조금 속도를 올리면 되는거야. 빨리빨리가 아니란다. 그렇게 하다보니 왼손왼손..왼손 하다보니 작업실에서 양팔이 욱신거린다...결국 맨소레담 듬뿍 발라주어 통증을 가라앉혔다...지난 밤..  전완근, 손목 터널증상에 좋을 듯...


-2.


파파보이: 삼십대 초중반 면접을 보는데, 이 친구들 꼼꼼하다. 자세히도 본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정작 본인들이 현장 확인까지 하고도, 또 결재를 받는다. 그러면 결정을 왜 내린 것인가 싶다.


0. 


면접대기. 두 분이나 펑크를 낸다. 짬짬이 앞에 놓인 벽돌책 진도를 나간다. 에셔의 창작론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나는 마치 내가 불러낸 녀석들에 의해서 조종되는 영매인 듯한 느낌을 가끔 받는다. 그것은 마치 그들 스스로 어떤 모양으로 보이게 할지 결정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까지 나의 비판적인 견해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태어날 때의 크기에 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로 아주 까다롭고 고집이 센 녀석들이다. 524 <<괴델, 에셔, 바흐>>








2. 이 창작론은 훈데르트바서의 식물성의 사유와 비슷하다. 자랄 때까지 충분히 숙성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린 기다리지 못한다. 뭘 이뤄야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서 이기도 하다. 천천히 그냥 자라게 놓아두어야 한다. 고 지난 전시에서 얘기를 해두었건만, 물아일체의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기는 할 것이다. 어떻게 그 상황을 만들어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3. 폴발레리는 천재는 없다는 관점에서 부단히 노력했고, <테스트씨>를 발명하기도 했다. <<피렌체 사람들 이야기>>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볕뉘


몸이 필 때가 있다. 잘 기다리고 빨리 낚아채려 하지 말고, 기다려주라. 그러면 또 그 녀석이 물고올 것이다. 헌데 잘 믿지를 않는다. 어쩌면 낡은 단어에 매여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의 온도를 올리는 것에 집중하라. 어쩌다어쩌다가 점점 패턴을 갖게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누구나 다른 경험의 세계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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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23-11-07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이 시들고 있는 입장에서 재미있는 책
소개에 .. 웃프고도 흥미롭습니다!!

여울 2023-11-07 09:28   좋아요 0 | URL
꽃 피우듯 피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