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9년에 한 한국 사회조사에서도 아내가 폭력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보복이 두려워서‘가 19.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위는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서‘(17.5%), 3위는 ‘나아지리라는 희망때문에‘(15.4%), 4위는 ‘구타하는 남편에게 자식을 맡길 수 없어서‘(12.5%) 순이었다. 220
2.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남성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그가 가진 권력을 공유하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원할수록 권력을 느끼는데, 이때 여성의 욕망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ㅅㅏ람을 위해 소진되는 것이다. 169
완벽한 아내 역할에 ㄷㅐ한 집착은 폭력당하는 아내들의 공통적인 특성이자 아내가 남편의 폭력 지속에 ‘기여‘하는 가장 큰 역할이다. 구타당하는 ㅇㅏ내들은 사회적으로 부과받았다고 느끼는 완벽주의적 ㄱㅕㅇ향이 있다. 190
아내가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이후 남편이 아내에게 더 쉽게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192
‘배려의 화신‘인 폭력당하는 아내는 정작 자신은 배려하는 대상에서 제외한다. 195
상대방과의 관계는 힘의 원리에 좌우되고 있는데 아내들은 사랑의 원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여성 의도와는 반대로 관계는 더 나빠지고 여성은 더욱 상처받는다 197
양상은 다르지만 폭력 남편과 마찬가지로 폭력당하는 아내들도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의 노력으로 어디까지 가능한 일이고 어디까지 불가능한 일인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 197
부모의 이혼은 아들을 ‘병신‘만드는 것으로 이혼한 집의 자녀는 ‘장애인‘과 같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정상/비정상 논리에서 이혼한 집의 자녀는 사회적 장애인이다. ‘누가 이혼한 집 자식과 결혼하겠는가?라는 질문은 신념에 가깝다. 208
폭력당하는 아내가 자신을 아내로서만 정의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녀 문제는 폭력 탈출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211
3.
폭력 당하는 아내의 고통이 남편의 폭력 단 한 가지일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시집 갈등, 외도, 의처증, 알코올 중독, 경제적 무능력, 폭언, 도박 같은 문제가 겹쳐 있다. 211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잃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남편에게 무슨 의미였는가, 왜 폭력을 참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여성은 남ㅈㅏ의 사랑을 잃었을 때 그에게 의존해 왔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213
폭력 남편이라 할지라도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위험하고도 고통스런 과정이다. 특히 ‘누구의 아내‘ 외에는 사회적 지위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일 경우 이러한 상태는 심리적, 정서적으로도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만 당장의 문제는 경제적 곤란이다. 215
여성은 아내의 지위에 매달릴수록 경제 주체로서 사회적 시민이 되기 어렵다. 218
폭력당하는 ㅇㅏ내는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공포를 견디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도망, 신고, 이혼...)을 할 여유가 없다. 221
공간 지각 능력은 개인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서 능동성과 관련이 있는데, 특히 오랫동안 폭력당한 여성들은 공간 지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수학자들에 의하면 수학에서 성별 능력 차이가 가장 현격히 발견되는 분야는 공간 지각력인데 이는 여성이 수동적으로 사회화되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223
몸에 가해진 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다른 종류의 고통과 다르게 대상이 없는 공포이다. 남편의 폭력, 그로 인한 고통과 공포가 몸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배고픔, 욕망, 특정 ㄷㅐ상에 ㄷㅐ한 공포와 같은 고통은 ‘무엇 무엇에 대한 고통‘으로서 고통의 대상이 몸 밖에 있다. 즉, 고통의 원인이 되는 고통의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으로 인한 공포는 대상이 없다. 제거할 수 없는 몸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고통인 것이다. 225
남편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아내는 ‘이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230
4.
‘아내 폭력‘은 부부 관계의 극단적, 일탈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가족 내 남편/아내의 성 역할 규범으로부터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이었다...폭력은 아내의 ‘원인 제공‘에 의해서가 ㅇㅏ니라 남편이 생각하는 ‘아내의 도리‘에서 아내가 벗어날 때 발생한다. 246
폭력당하는 아내가 가정에서 어머니, 아내이기 이전에 사회적 개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이 글의 요지는, 모든 문제는 인권 문제라는 당위적 선언이 아니다. ‘아내 폭력‘이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려면 ㄱㅏ족을 중심으로 ㅎㅏ는 한국 사회의 기본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피하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등 남성 중심의 공동체적 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개인성, 시민성을 획득하는 문제는 곧 가족에 ㄷㅐ한 공격으로 해석되어 왔다. 249
볕뉘.
1. 이 책은 2001년에 출간된 책의 개정본이다. 일터 손님들과 이른 저녁 겸 술로 자정 쯤에 일어나 새벽을 맞으며 책장을 덮다. 60대 야성이 있는 전직 임원은 하나, 둘인 자식이 야근을 밥먹듯이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딸이 하나인 부모들도 그러하다. 사회의 기본 시스템이 바뀌기를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시장의 이력을 탐하기도 하고, 안희정의 행정이력을 추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선적일 수 없다. 잠재된 욕망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책의 남은 부분을 읽으면서 고통스러웠다. 환원하거나 단순하게 요점을 잡고자 하는 지적 욕망은 입체감있는 조망을 그르치게 한다. 여성, 어머니의 역할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개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가족에 포획된 사회적 삶 속으로 빨려든다. 사람들의 권력구조와 인식 구조의 불합리 속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의 판단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잠재적이 사실들을 좀더 넓고, 적확한 인식과 발언에 맞춰 사유를 다시 전개한다. ‘아내 폭력‘은 그 자체로 발라낼 수 없다. 그 뿌리처럼 드리워진 것들을 함께 보지 못한다면, 인식도 실천도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그 암덩어리같은 것을 그대로 들어올린다. 보라....얼마나 천박한 현실인가? 두 눈으로 똑바로 봐라. 이래도 세상이 이해하기 쉬운가? 내 문제가 아니라고...다시 들여다 봐라. 바로 네문제이기도 하다라고....
2. 왕따도 모멸감이나 모욕감, 감정의 순환고리에서 삶을 갉아먹는다. 그 자장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을 등가로 보지 않는 순간, 받은 수치와 모욕은 또 다른 대상을 찾는다. 수직적인 구조는 필연적으로 악순환의 감정의 응어리를 뱉어놓는다. 그 응어리를 자양분으로 그 생계의 순환구조까지 침범하고, 그 울타리의 생태계를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제도적 보완으로만 끊어지지 않는다. 선순환의 또 다른 감정의 고리가 생겨 또 다른 정서를 낳지 않는다면 변환될 수 없다.
3. 감정의 결들을 살필 수 없다면 제대로 알 수 없다. 되먹임되면 흐르는 그 결들을 치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겉알 수밖에 없다. 대안은 생겨나지 않는다. 대안은 새로운 인식과 담론 속에서만 겨우 다른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피상적, 관조적 접근은 사건을 더 악화시킬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전체적, 총체적으로 매개관계를 이어보려는 노력, 변증법적인 인식의 지평이 그나마 무엇인 문제인지, 연루된 문제들을 드러나게 하고, 모두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4. 어느 모임도 어느 집단도 백여일이 지나면, 문제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결하려는 자성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역시 문제를 안고가는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천이지만 해결하려면 좀더 깊숙하고 긴호흡의 사유와 증거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