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펼쳐둔 <<괴델,에셔,바흐>> 책에 짬짬이 눈길이 간다. 대략 몇 장을 읽을 수 있었는데, 관심가는 대목을 밑줄긋기를 해 본다.  이 대목은 선문답(공안이라고 써있다.) 부문이기도 하고, 사둔 조주록이 기억

나기도 한다.



-1.


가을 볕과 하늘이 좋아 이동중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보고싶은 할아버지 할머지 삼촌....친구들 다 만나고 계실 줄 몰라. 참 기분좋은 시간들이겠네. 정작 놓아주지 않는 건 나였지. 그렇군 했다.


-2.


데이비드 봄의 <<전체와 접힌 질서>>라는 책이 겹친다. 부분은 전체에서 나온 것이고,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 자본주의를 살아내는 우리들이 불행한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번지는 책이다. 물론 양자역학의 지름길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검색해보니 반갑게도 두 권의 책이 나와있다. <<봄의 창의성>> <<대화란 무엇인가>> 번역서가 없어 아쉬웠는데, 가을을 매듭짓기에 좋은 책들이 될 것 같다.


1. 괴델,에셔, 바흐의 대위법을 갖춘 책은 자기-순환구조에 빠진 그물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란 문제의식을 가진 책이고 아마 이십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체계가 있는 책이다. 


2. 깨달음은 얕은 것이기도 하다. 깨달음의 깨달음. 그 껍질은 계속 얇아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 앎이 아니라 삶의 농도를 고민하는 이라면 대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밑줄을 다시 새겨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3. 오랜만에 작업실에서 늦도록 작업한다. 여러가지가 물밀듯 들어올 때가 있다. 조주간만은 차이의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달이 차오를때가 있다. 몸도 아이디어도 차 오를 때가 있기도 하다. 잘 기다려야 한다. 꼼지락거리며 뭐라도 하면서... .. 어젠 달이 조금 기울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만월이었다.


볕뉘


긴장된 깊이 읽기. 동-서, 서-동, 서양-동양의 사고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플랑크길이에서 시작되어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나 애초에 모든 것이 점에서 시작되고, 시공간을 지나 얽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다가 접는다. 접자... ...앙꼬없는 찐방, 찐빵없는 앙꼬.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동.서서.동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사물들은 한 각도에서 보면 복잡하게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 과수원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면 전혀 질서가 없어 보이지만, 다른 특정한 각도에서 보면 아름다운 규칙성이 나타나지. 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같은 정보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지. - P317

논리로부터 벗어날 경우에만 깨달음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원론은 세계를 개념적으로 나누어 범주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원론을 벗어날 수 있는 인상을 주지만 세계를 범주들로 쪼개는 것은 사고의 위층 훨씬 아래에서 일어난다:사실 이원론은 개념적으로 나누는 만큼이나 세계를 지각적으로 나누어 범주화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의 지각은 본질적으로 이원론적 현상이며, 이것은 깨달음의 추구를 힘겨운 투쟁으로 만든다.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말에 대한 의존을 극복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이로서 깨달음의 적이 논리라고 하는 것은 아마 틀린 것이고, 그 적은 오히려 이원론적이고, 언어에 의한 사고이다. 그런데 사실, 언어에 의한 사고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지각이다. 지각하자마자 대상과 세계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세계를 부분들로 쪼개며 그로 인해 진정한 길을 놓치는 것이다. - P339

그 길은 보이는 사물에 속하는 게 아니다. 안 보이는 사물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는 사물에 속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물에 속하지도 않는다. 참된 길을 찾지 말아라. 공부하지도 말아라. 이름 붙이지도 말아라. 참된 길 위에 있는 네 자신을 발견하려면 네 자신을 하늘과 같이 활짝 열어두거라. - P343

그것 자체가 영원인 죽음은 눈송이가 깨끗한 대기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것 같은 것이다. 한때 우주 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하위체계였던 눈송이가 이제는 한때 그 눈송이를 포함했던 더 큰 체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간다. 구별된 하위체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의 본질은 어떻게든 여전히 남아있고 앞으로도 남게 될 것이다. 그 눈송이는 딸꾹거리지 않는 딸꾹질과 읽히지 않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세계를 떠돈다...... - P345

조사의 관문: 때가 되면 익는 과일처럼 너의 주관성과 객관성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그것은 마치 꿈을 꾼 벙어리와 같다. 자기만 알 뿐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 이 상태에 이르면, 자아의 껍질이 박살나고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일 수 있다. 그는 날카로운 칼을 가진 위대한 전사와 같다. 부터가 그의 길을 막으면 부처를 베어 쓰러뜨릴 것이고 조사가 장애가 되면 조사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생사의 길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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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월의 마지막 날. 일터에서 회의를 했고, 라이딩 마무리 400k를 채우느냐고 고민했지만 한번 달려주는 걸로 마무리한다. 대박이라는 막걸리에 두부계란부침, 깻잎반찬, 족보에 없는 황태 미역 두부 미소된장국, 갓지은 밥으로 매듭을 짓다. 야전침대용 노르웨이 담요도 도착하고, 오전 여러 아이디어들이 삐죽삐죽 올라온다 싶어. 드디어 준비가 되어가는구나 한다. 몸이 차오르고 있어, 기운내보자 한다.


1.


길은 집착할 수록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길-마음이라는게 있다면 아마 마음을 비우는 쪽이 더 낫다 싶다. 길-회의, 진리-회의라는게 있다면 회의라는 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라 길이나 진리를 좀더 뚜렷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믿지 못할텐데. 그런 회의의 자세가 좋다.  팽팽한 두 힘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세 가닥의 줄다리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하나 하나 더하면서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는 방법. 


2. 


한 친구가 강연마무리 자료를 자세하게 보았던지 루쉰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

는다. 그래서 이욱연의 책의 1부 2절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우연으로 사유하는 것은 비단 과학의 사유에 근거한 것만이 아니다. 불확정성의 원리. 미결정이란 말 이후가 아니다. 니체는 친절하게도 우연이란 가장 오래된 귀족이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진리를 지우고, 진선미에 가로로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더 가깝게 가기 위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공짜가 없듯이 나만의 길로 가 보는 것이다. 실수실수실수.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것이 곧 길이다 싶다. 


볕뉘.


벽돌책이 다시 눈길과 손길에 들어온다. 1/3지점, 다시 잇고 있다. 그래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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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벽 운전까지 겹치니 무척 피곤하다. 밤 열두시가 넘어,( 열한시 반부터는 놀이와 웃음이라는 주제. 환원주의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이와 얘길 나누다. 그는 곁에 기도라는 단어를 두었으면 했다.) 귀가하고, 캔 한두개로 마감하고 잤다. 부지런히 햇살의 경계를 느낄 수 있어 반가웠다. 36.2(대전의 위도이기도 하다.) 36년 2개월을 근무한 이와 송별만남. 전별금을 약간 보태고 배웅을 하는 마음을 보탠다. 한 공장에서 젊은 청춘을 다 보냈으니 말이다.


-3. 양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하고 주말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챙기고 퇴근. 라이딩 와중 낯선 번호가 울린다. 저녁을 들었는데, 또 라니...어라 횟집 사장님이시네. 웬 일이지. 밥이나 먹자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홋카이도로 3명이 건너갔다 한다. 라멘집부터 8천엔으로 배를 곯다가 6년을 어렵게 어렵게 배웠단다. 이 집은 음식 투정을 부리면 가차없이 쫓겨난다. 음식값도 받지 않고 말이다. 그런 손님들이 단골이 되었다니....근데 정말 맛있고 한결같다. 두꺼비같은 손은 회맛을 변하지 않게 냉감하는 법도 터득해야 하나보다. 그리고 아이 하나 있고, 언제나 부부는 동체라는 중년의 헛된 로망도 있어 정신차리라고 했다. 맥주 한잔 더 하자는 걸 뿌리친다. 내일 작업때문에...어서 이시가리를 보러 가야 한다. 돌가자미...와 가자미를...


-1. 문득 생각나 책방 전시 공모에 메일을 보낸다. 사장님을 뵈니 + 플러스 강연(책 네권)기획까지 제안해주신다. 그렇게 또 다른 전시가 이어지게 된다. 내년. 2024.


 0. 전쟁 시리즈가 책 판매대에 놓여있다. 그 가운데 백승욱교수의 <연결된 위기>를 고른다. 아니 여기까지 손을 뻗치시다니 놀랍다. 


1. 그리고 피치니의 글을 챙겨보신 강연시 높은 안목을 가진 분. 나태, 우울, 죽음을 나에게 들여온 멜랑콜리가 창조의 원천으로 본다는데  노벨상 실물 영접을 해본다. 같은 얘기일까..어떤 얘기일까 궁금하다.





2. 아래 책은 책가방에 같이 다닌 지가 오래되었는데, 아직 읽히지 못하고 있다. 걱정말라. 버섯 키울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곧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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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30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멜랑콜리아는 화가 얘기 치고 재미가 진짜 더럽게 없어요~~

여울 2023-10-30 10: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줄거리는 겉표지에서 봤는데 ㅜㅜ 참고할께요. 순서를 저 뒤로....가라구 ㅎㅎ
 
타이포그래피 전시;강연

지금 인간들은 두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선입견과 편견이다.

 

덕분에 사색의 감옥,

아니 삶의 감옥에 갇혀 다른 삶을 볼 수 없다.

그 우물은 좁고도 까마득히 길고 깊다.

 

한번 빠져나가도록 올라가보자.

 

1. 개인은 없다.

 

여긴 외로운 섬이다. 나밖에 없다. 너라는 흔적조차 없으니 점점 잊는다. 건망증도 아니고 여긴 여기서는 대체 나를 가늠할 길이 없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혹자는 이를 너라는 말을 곁에 둔다. 나를 주체라 부르기도 하고 너를 객체라고도 하고 타자라고도 한다. 곁에 두어보자. -, 겨우 아니 너저분하게 타짜를 붙여서야 내가 가

늠된다. 이런 나를 상정해서 개인이라 셈하고 금칠을 해버린다. ‘내가 싫은 건 남에게 시키지 마라’ ‘내가 싫은 음식을 남에게 주지말라고 큼직하게 대문에 걸어놓은 것이 황금율이다. 이천년동안 말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싫은 음식을 남이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을 곁에 두어야 그토록 같다고 여긴 가 다른 너(타자)와 연결되는 것이다. 내가 없어져야 겨우 다른 너, 또 다른 나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창하게는 이질적인 자들의 도래라고 말한다.

 

우물 벽을 타고 조금 더 올라가보자. 신이 인간에 대한 동정심 으로 돌아가신 뒤, '나'는 우울하고 외롭다. 외로워졌다. 등에 새긴 개인이라는 타투를 새겨 자신감 뿜뿜이었는데 시대가 도와주질 않는다. 나는 앓는다. 스르르 풀려난 줄 알았는데, 자유라는 쇠구슬마저 쇠사슬에 묶인 채  발목에 달려있다. 환장하시겠다. 그래 무의식이다. 이렇게 개인을 발명한 인간들은 무의식이라는 물음표를 붙인다. 정신을 육체에서 발라낸 뒤 둘로 나누다가 생긴 병들을 이름붙이기 시작한다. 억압이니 분열증 정신병이니 분석이니 하면서 말이다.

 

자아란 없다. 니체돌멩이엔 중언부언하지만 자기다. 자기가 있다. 내몸이 있다. 마르크스란 벽돌모양의 바위에는 인간의 본질이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란 애매모호한 발언을 하고 '노동을 통해 본성도 생성된다'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관계라니 하면 본성도 만들어진다고 하니 무슨 어처구니인가? 조금 더 우물벽을 타보자 제법 큰 바위돌덩어리가 있다. 기관없는 바위라고, 기관없는 몸이라고 한다. 기관없는 몸체냐 신체냐. 번역 좀 잘하시지. 토르소. 릴케는 이 제목의 시 끝에 이렇게 말했다고 해.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고 이게 무슨 아귀아구맞춤이야. 기관없는 몸, 토르소, 그 말랑말랑함


어느 한 곳이라도 툭 터져버릴 듯해. 싹이라도 나올 듯 말야. 그래. 이 양반은 좀 전 얘기했던 무의식의 대가. 프로이트 그 양반 참 어이없어. 하지. 정신을 분석하다니. 정신분석. 형용모순. 그게 분석이 되냐고, 말이야 맘이야. 따라서 해보시라고. 말해. 이렇게, 그게 아니라 분석 앞에 분열을 붙여보라고, 크게 얘기해보시겠어요. 분열분석.!!! 이 양반을 까면서 이렇게 얘기하니 잘 들으세요. “무의식을 생성할 수 있다.” 벽을 타고 올라오다 본 구절하고 비슷하지 않나. 본성도 생성된다. 무의식에 의해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분열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잖아. 그러니 프로이트가 얼마나 작아 보이겠어. 지독한 환원주의자라구. 거세콤플렉스같은 소리라니.

 

정리해봅시다. 나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서로 보완하며 마주칠 때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너라는 것은 없고 그 관계만 있는 것이다. 둘로 나누다보면 죽는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주인공이 다 이 이분법이라는 개에게 물려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랄뿐.


2. 인과는 없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 우엔 과학을 신주단지 모시 듯한다. 그러니 곁을 준 과학철학 같 은 건 별종 취급받는다. 하물며 시인에게까지 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가 아니다. 그래서 칸트가 까인다. 경험이전의 선험적인

진리가 있 다의 용례인 이것이 무참히 밟혔다. 아시는 것처럼 양자역학이다. 입자이면서 파동이 다. 불확정성의 원리, 상보성의 원리를 원리를 말한 보어까지. 프랑스 정치철학은 이 런 과학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래서 진리는 거짓말쟁이들의 발명품이라고 말하 며, 인식론의 단절을 철학에 꺾꽂이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냥 4가지로 나눈 작용 인과 목적인을 그대로 받아들여 원인과 결과로 미래를 지금으로 가져와(계획하여) 지 금을 소진하는 것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연 우연 우연. 사물에 대하여를 쓴 루크레티우스..비가온다. 우연히 사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에테르로 쌓인 천상세계 가 헬리혜성의 출현으로 무너지듯이, 아무 것도 아닌 인식방법은 이렇게 백년전까지 버텨왔고, 우리가 숨쉬는 여기저기는 아무런 균열의 지점도 없다. 앨버트 허시먼은 경 제학의 이해관계라는 개념을 역추적하였더니 별 이유없이 그냥 우연히 유통되다가 만 들어진 것이라는 걸 밝혀낸다. 카렌바라드는 해러웨이의 회절개념을 발전시키고 얽힘 현상까지 철학에 끌여들였다. 존재의 기본단위를 현상으로 본다. 마르크스의 관계론적 존재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사유의 전개는 비단 서구의 일만이 아니다. 뤼쉰은 이 길로 가다보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에 늙은 노인이 나올지 꽃을 든 소녀가 나 올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것은 내일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주어진 길 을 갈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 다른 인과라는 편견. 그것이 이항대립, 이분법이란 선입견과 맞물려 이 사단이사달이 나 게 된 것이다. 


3. ‘하기’라는 뱀 


이제 좁다랗고 긴 우물의 끝부분에 빛들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우물가장자리 가 휘윰하다. 닫힌 우물덮개 한쪽을 밀어올린다. 눈이 부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뒤 보니 풀밭에 뱀이 천지다. 무슨 일이람. 이 꼴 보려 고 이


 짓을 했단 말인가. 에휴. 뱀이 움직인다.


 ‘하기’라는 머리가 움직이면 알기라는 배와 되기라는 꼬리가 같이 요 동을 친다. 간을 맞출 줄 알게 되면 요리들이 쉬워 보이고 다른 음식을 찾게 되고 더 만들고 싶어진다. 굳이 어렵게 이야기하면 인식론과 존재론이 한몸이고 실천이란 머 리를 쳐들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것이 생명이다. 윤리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 고 하기의 끝에 자연스럽게 붙어있는 것이다. 하는 순간만 뱀의 꼬리를 볼 수 있다. 이게 무슨 재미냐. 재미다. 


안다는 것은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앎은 지혜에 가깝다. 그 앎은 외운다고 해결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깨우침에 가까운 것이다. 하는 것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관계를 지어본다면 프락시스, 실천, 하기라는 말만 다를 뿐이 다. 해석하기가 아니라 변혁한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 거듭“나”는 나를 끌어내리 지 말고 끌어올려보자. 


우연으로 사유한다고 해서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유한 것들은 그렇게 연습하면 하나 더하기 다수이하의 범위에 머무른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감안하고 보 는 눈과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늑대였다. 개가 아니었다. 인간인 줄 알았는데. 개였고. 개가 아니라 늑대였다 니. 왠 개족보람?


 

2.6이분법(이항대립).우연. 3.4,9무의식, 1.5자본주의,우울, 타자.. 늑대.환원주의,선험,진리 현상,관계,5.10하기(되기),프락시스, 실천, 상보성,미결정성,실타래,7 마주침 등등 면역,공동체,선물. 2자기스텍트럼,신경다양성,자연문화, 철학물리학 철학인간학(과학철학/정치철학) 대중개인 7사물 인식론단절,주어,동사,형용사,부사.야성,,.2황금율.백금율.이질적인자 속도. 벡터. 8 제어. 광인. 뤼신. . , . - 있음.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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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28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마리 개를 키운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1. 


타이포그래피 전시강연자료집을 만들어 보낸다. 10꼭지. 그래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다. 내일 전후 이력을 보태어 놓으면 그런대로 오고 간 길의 흔적이 남겠다 한다.


 -2. 


작업실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바쁜 날이다. 어제는. 찹쌀에 오곡을 넣고 밥을 하고, 남은 양파를 남은 애호박찌개에 넣어 저녁국밥을 해 먹는다. 정리해둔 책장에 책들을 살펴보고 쉬다 놀다하다 일찍 잠들어버린다. 


 0. 


한밤중에 깨어 가지고 온 책을 든다. 2부를 마저 읽다. 마지막 시.


현弦


춤을 출거나

콩깍지

조르르 콩알

어디 갔을까

장길 실개울에

빠졌다

두붓집 간수에

빠져버렸다

끝없는 추석 하늘

그을은 일각 一角

거미줄에 걸린 현 弦


춤을 출거나.


박재삼 박목월 박용래  누가 낫다 할 수 없구나 싶다.  그리고 3,4부를 아껴두고 남은 잠을 자다. 쌀쌀해지는 새벽, 이불을 꼬옥 감싼다.


대전에 가면 박용래문학관을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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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10-24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용래 시인이 대전 출신인것은 알고 있었는데 대전에 박용래문학관이 있나요? 모르고 있었어요.
<현>이라는 시는 악보를 보고 쓴 시 같아요.

여울 2023-10-24 16:04   좋아요 0 | URL
오류동이 본가인 듯요. 대전역 인근에 대전문학관이라고 있어요.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한번 둘러봐야할 듯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