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왓! 콰과광!! 인적이 드문 주유소로 향한 것이 화근이다. 인도와 차도와 경계가 무딘 한적한 읍내를 라이딩하던 참이다. 배유구라고 할까 기름이 흘러넘치면 빠져나가게끔 만든 길쭉한 홈사이 미니벨로 앞바퀴가 끼는 사이, 이런 끝장을 봤구나 싶다.  아얏! 아이쿠~~!! 내동댕이 쳐지자 시큰거린다. 한참 일어나지 못하고 정황이 시선을 끈다. 체인은 벗겨졌는지? 끊어져버린 것인지? 찰과상인 건지? 뭐가 잘못된 것이야. 


 -4



























-3


후다닥 읽을 참이었는데, 시집도 그렇게 빈 틈을 메우는 시간들의 결들이 달라 짤라 읽기다. 도서관도 가고, 책방도 들르고, 식당에서도 읽는데 진도가 나가질 않아. 벨로 뒷짐을 싣고 달린 것이 화근인가. 


-2










책들 모서리를 읽다가 다 읽은 것도 서문에서 감탄하다가 어떻게 한다 고민한 것도 있고, 절반을 씨름하듯 읽어내기도 하고, 어 고진 이사람 연구많이 하셨네. 역시 말년이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이지 한다. 


 

그러다보니 진도나가야 하는 데 걸린 대목이 아쉽기도 하다. 챗gpt의 헛점도 알게되고, 유투브 영상을 보다나니 대충 감이 오기도 한다.







-1


<정신머리>라는 시집의 첫머리는 시간을 죽이면서 산 인물을 나온다. 먹여줘 재워줘 연금으로 하루하루 대접받고 풍요로운? 삶, 고독사가 아니라 남부러운 죽음까지 산 인물을 그려낸다.  시간을 죽이는 것이 뭐가 어때서. 이렇게 지독한 전제와 가정을 새겨두고 그려나가는 모습이 김수영시인의 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이세 삼세의 시인들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선명함. 어쩌면 굳이 세대를 나눈다면 그 쥐어지는 선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분석하거나 사유해내기도 하지만, 선명한 선을 긋고 색다르게 살아내는 이들로 넘쳐나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런 시집이 아직 반이나 남았다. 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인가? 진도를 내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쌓여 있는 책들을 보라. 정신머리가 아니라 정신차려라 고 한다.


1


오랜만에 놀멍쉬멍 로씨난데 2 미니벨로 장거리 시승 겸 투어를 했다. 정신머리를 어디다 두었는지 신년 라이딩 액땜. 덕에 자전거도 나도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 무사하다. 신난다고 신나게 탈 일이 아니다. 


2.


작업에 쓸 요량으로 여기저기를 찍어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


꿈을 꾼다. 치과의사가 나오고 전직 대통령이 겹쳐온다. 날기보다는 떠 있다. 가파른 경사 위에 자연스럽게 떴다 안착하는 법을 배운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런데 왜 불안한가. 꿈을 접으며 그래 그래도 된다. 안심하면 돼.


-4


꿈 속에 꿈. 그렇게 몇 번 거듭 다짐을 한다. 


 -3


 작업실이 썰렁하다.  작업을 하다가 늦은 점심하러 간다. 맞파람에는 제법 버거운 느낌이 드는데, 오늘은 벨로가 괜찮다 싶다. 식사를 하고 식당 난로가 마음에 들어 묻는다. 오방히터 어디서 산 거예요. 하니 저기 다리 근처 티마트에도 있단다. 2년 썼는데 하나 더 살려고 한다고....그래서 달린다. 더 작은 용량의 히터가 있어 미니벨로 짐받이에 싣고 간다.


-2


책들이 손에 잡힐 줄 싶었는데, 마음은 싱숭하여 자리잡지 못한다. 


-1


첫 꼭지가 가로등이다.  빛과어둠.은 선악처럼 우리의 일상의 절망과 희망을 담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늘 거창했던 것이다.  그 커다란 대문자가 작게 드리워지면 어떨까. 터널을 빠져나오듯, 터널로 빨려들어가듯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 빛나지 않더라도 그 가로등만 보면 따듯한 집에 다가서는 느낌이나 안심이 자리잡기도 할 것이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빛이라니, 눈이 폭폭 내리는 소리까지 들려주는 주황빛이라니....인기척을 닮기라도 하듯...


0


내 안에 드러선 대문자들을 조금씩 균열내어 봐야겠다. 그러다보면 나의 입말들도 작아지며 옹알옹알거릴 것이다. 그러다가 졸졸 흐르기도 하고 졸졸 흐르는 물살을 막는 척하는 작은 돌알갱이도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작아진 말들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알려건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큰말들에 자갈을 물리고 싶다. 더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1


점점 작아지는 적어지는 단어와 언어와 말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


<기본> 2인분이상에 끌려 다가서면/ 3인분부터 주문을 할 수 있다/숯불.가스우삼겹 오뎅탕 계란찜 라면 여름이라면 빙수까지. 열한가지/6인분을 소화하지 못하면 나올 수 없다. 나갈 수 없지./어쩌지 못하는 쯔양. 어쩌지 못하는 포장.라면먹고 갈래 그냥갈래/젊은 부부는 오늘도 어쩌지 못해 빈 테이블. 아무 것도 못해 빈 겨울./시계추같이 왔다갔다 어쩌지 못하는 봄. 어쩌지 못할 밤./'서울의 봄' 아아-여기는 바다의 밤.겨울바다.바다봄


-3


날이 차다. 숙제를 풀려고 끙끙대다 연락하길 수 차례 드디어 통화는 되고, 어이없다시피 문제가 풀린다. (을들은 편한 길만 생각하지 자신의 힘을 가늠할지 잘 몰라 정들에겐. 정들은 병들에게 점점 좁혀들이 밀지 드러나도록.)


-2


영화나 문학에 멀어진다. 아니 멀어졌다. 더 더구나 이슈가 되거나 많은 관객들이 몰리는 영화는 더욱 더. 집안 이십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봐야되나 싶기도 일터 삼십대와 이야기를 나누다 작품성이 좋다는 말에 이끌려 혹하기도 한다.


-1


문학이 문학밖을 거닐거나 영화가 영화밖을 거닐 수가 있을까.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주인공이란 인물과 대위의 레퍼토리란 벽에 갇혀 그 안을 맴맴돈다. 


0


표현의 자유란, 픽션이란, 단체관람이란, 언론이란.....
















1


두 책들 사이를 번갈아 오가고 있다.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아 걱정이다. 무척 잘 읽히는 책임에도 홀로 주춤거리는 마음때문에 그런 듯싶다. 새벽에 일어나 읽기를 이어간다.


2


이 책의 공유-물음은 기술이 인간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바꾸는가이다. 내가 얼마나 바뀔 수밖에 없는가이다. 예전보다 얼마나 바뀌고 있는가이다.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들. 확신이라고 여기는 것들. 그 뿌리가 얼마나 부실한지 알아보는 것이다.


3


<서울의 봄>을 마지막쯤 미친듯이 좋아하며 쉬-를 누는 전두광의 장면, 광주 오적을 되뇌이며 데모하던 장면, 화장실로 향한다. 마저 볼 수가 없다. 파티장면을...


4


자끄 엘륄은 자신의 말들을 믿지 않는 세상을 나무라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을 펼치기를 바라고 연구에연구를 거듭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말 유사한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내고 싶어 하는 책들이 나와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부분들을 중동내고 또 열심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다른 눈을 만들어낸다. 


5


기술이라는 X가 무엇을 했는지 하고 있는지 일상을 어떻게 엮고 있는지, 생생히 볼 수 있다. 날렵한 대국처럼 그 한수 한 수가 놀랍도록 밀도가 높다. 이렇게 다가서주어 고맙다. 늘 늦은 것은 없다.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


양자컴퓨터, 양자 역학 영상들을 다시본다. 삼프로 초청강연이라든지 교수 초청강연이라든지. 하지만 막히는 부분, 적절한 비유일까. 한 번 그 비유들이 박히면 다른 방법들이나 길들을 놓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식상하지 않은 다른 접근사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3


최근 신상의 변화는 없지만 어떤 제안에 대해 궁리중이다. 아니 궁리당하고 있다싶다. 제안자의 막다른 맥락과 고려해 좋고 나쁨의 결들을 다양하게 맞추고 있다. 극단의 불리와 다른 끝의 유리까지. 놀이같은 방법이 나올 수 있을까. 감정도 관계도 다치지 않는 그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통화문자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 며칠 째 날이다. 주변을 탐색할 것이다.


-2


단골 밥집 사장님 식당이름이 '안다미로'다. 인심이 넘쳐난다 싶지만  주요 관찰 지점이기도 하다. 동네 사람들의 편린을 읽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에 냄새가 나서 아무 식당에서 받아주지 않는데 늘 반갑게 맞아주는 광경도 목격한다. 사장님에겐 손님들의 사연이 박혀있다. 좋은 일 나쁜 일,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생각들도.....채널에이와 조선티브이와 막장연속극이 루틴이긴 하지만 따듯한 밥, 따듯한 말, 간간이 어려움을 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방앗간같은 곳이기도 하다. 


-1


대면한 적 없는 인연이지만, 사람과 삶의 터전에 대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아요'를 누르다가 친구가 되었네요란 엽서와 선물이 왔다.


0


얼마나 섬세하고 또박한지 글 과 선물에서도 느껴진다. 허투루 쓰지 않는 단어와 말이 정갈하다. 백 번도 더 다녀왔다는 시작말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1


우리들은 과정과 방법에 천착하지 못한다.  짧게 소비되는 것은 비단 상품만이 아니다. 방법들과 과정들의 잔뿌리에는 수많은 답이 달려있다. 다만 우리시대가 보지못하는 인간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안보이는 척 하는지도 모르겠다.


2


비 주류의 시인, 중년 시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수십번이 아니라 수백번 등단을 위해 두드렸다한다. 될 때까지. 그 간절함들이 이 책에서도 읽힌다.


3


잘 되던 식당이 옮기면 안된다. 정말 유명한 과메기집에 들렀는데 이사를 갔다. 그런데 맞은 편 횟집의 과메기가 특수를 맞는다. 무슨 일일까. 아 지도를 찾아보니 다른 곳에 있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이 맞은 편 과메기집에서 청어과메기를 산다.


4


작업실 편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친해지기 위해서 걷고 달리고 타고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손님들을 들이고...이사하고 이사하고 사고 배치하고 또 사고 옮기고 몇 번의 계절이 익고나서야 몸에 배인다.


5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 닿는 곳이 어디란 것도...또 다른 방법과 과정을 찾아야 한다.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 어떤 내력이 있는지, 지역이 어떻게 변해왔는지...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요. 우리가 하는 일은 단지 그들이 가진 지혜가 드러나게 해주고, 그것이 잘 쓰이게 하는 것뿐이에요./주민참여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다. - P22

지역관리기업의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주민 중심, 관계 중심, 정주 목적, 생태적인 목적의 도시정책이 논의되고 제안되어 실행되기를 바란다. - P27

사회적경제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인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걸음 더 나아가 관계를 맺고 협력하고 연대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다중이해당사자 구조/ - P58

설립 전 전문가 진단과정 1-2년; 이 과정에서 현재의 주체는 물론 잠재적인 주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이야기하게 된다. 현재와 미래의 주체들이 각자 사업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각자 어느 정도 참여할 것인지 서로 가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방앗간,정미소) - P63

무엇을 협동할 것인지, 어떻게 협동할 것인지, 어떻게 구성원들이 각자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도록 할 것인지 그러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고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서둘러 설립하다보니 나중에 문제가 터지는 경우가 많다. / 자신이 처한 현장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협동하는 자세를 기르는 것. - P65

신임 상임이사는 6개월간 이미 설립된 지역관리기업의 상임이사를 따라다니며 연수를 받는다. 일종의 도제방식이다. (현장성과 관계성의 확보) - P76

자체인증제도: 무엇보다고 그 조직의 주체들의 의식과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의 근거가 되는 문서는 헌장과 메니페스토이다. - P86

지역관리기업의 경제활동은 "근린서비스와 사회적 요구, 노동권의 조화"를 이루며 "정의와 권리의 가치", "환경과 연대의 가치"를 지키면서 "더욱 인간적인 목적을 가지는 도시화"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관리기업은 이익 추구하는 단일 논리가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를 개발하는 경제적 목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통합하고 사회관계를 재창조하는 사회적 목적, 주민들과 공공 부문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도모하는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가지는 복합적인 논리에 바탕을 둔다. - P98

정치도 못하는 것들을 지역관리기업이 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 즉 ‘인간의 발전‘에 있었기에 장사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들이 서로 돕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구상이다. - P119

지역관리기업이 칸막이식 행정을 통합할 수 있다: 사회관계를 우선 고려하여 거래한다. 공공질서를 다룰 때도 주거 정책, 교육 정책, 사회 불평등과 같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다."/ 사람만 사회에 통합해서 될 것이 아니라 지역도 사회에 통합되어야 제대로 된 통합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기 생빅투아르산을 보게. 그것이 어떻게 솟구치는지, 그것이 얼마나 초지일관 태양을 갈망하는지 말일세. 그리고 그것의 모든 무게가 푹 가라앉는 저녁이면 그것이 얼마나 구슬픈지도...이 덩어리들은 불로 만들어졌고 여전히 내부에 불을 간직하고 있지...그게 바로 묘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네. 


말하자면 그건 경험의 용기라서 감광판을 담가야하는 곳이 바로 거기지. 하나의 풍경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의 지질학적 구조를 발견할 필요가 있네. 대지의 역사란 두 개의 원자들이 만났던 때로부터, 두 개의 소용돌이가, 두 개의 화학적 춤이 한데 모였던 때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보게. 


루크레티우스를 읽을 때, 나는 그 최초의 커다란 무지개들에, 그 우주적 프리즘들에, 공허 위로 떠오르는 인류의 새벽에 흠뻑 젖는다네. 옅은 안개 속에서, 나는 새로 태어난 세계를 들이마시지. 나는 색의 차이를 극도로 예민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네. 나의 무한의 모든 색조에 흠뻑 젖어 있는 것처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나와 그림은 하나가 되지. 


우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푸른 색을 함께 만들어내지. 나는 모티프와 대면하고 그 속에서 나를 잃는다네...나는 이런 관념을, 이 분출하는 감정을, 보편의 불 위를 맴도는 이 삶의 증기를 붙들고 싶어. 


내 캔버스가 묵직해지기 시작해. 내 붓에 무게가 가해지고 있어. 모든 것이 떨어지고 있어. 모든 것이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고 있어. 내 두뇌에서 캔버스로. 내 캔버스에서 땅으로. 무겁게. 공기는 어디에 있으며, 그 농밀한 가벼움은 어디에 있는가? 천재적인 솜씨가 있어야 이 모든 요소들이 공중에서, 똑같은 솟구침으로, 똑같은 욕망으로 만나는 걸 환기할 수 있으리. 548-549 주)142 <<지각의 정지>>







볕뉘.


1. 


생에 말년의 세잔이 종종 자신을 "감광판"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기록하는 기계"가, 그것도 "빌어먹게 좋은 기계"가 되기를 열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기관은 사실 눈이 아니라 뇌다. 인간-기계 이분법의 분명한 조건들을 넘어서는 자동적 작동 양식의 가능성이다. 이런 면에서 세잔은 역사적,개인적 흔적들의 저장소이면서 부동의 기능성을 지닌 무덤덤한 기계 장치로 상상할 수 있던 세잔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질질 끄는 작업, 숙고, 연구, 고통과 기쁨...옛 거장들이 활용했던 방법들에 대한 끊임없는 숙고"를 통해 "기록하는 기계"가 되는 데 필요한 온갖 수련을 다했다고 단박에 주장할 수 있었던 세잔 말이다. 547


2.


이 것은 인간적 지각의 근간이 되는 조건들로부터 해방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말한다. 다시 말해 형상/배경, 중심/주변, 근경/원경이라는 조건들을 벗어나 세계를 확고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548


3.


말년의 세잔과 관련해 널리 회자되었던 '고립'(계급적 고립, 지리적 고립, 공동체로부터 고립, 노련으로 인한 고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선연히 빛나는 그의 선캄브리아기적 무정형의 이미지들은 사실 자본주의의 탈영토화 과정 및 그 지각적 쇄신의 원칙들에 상응하고, 그 흐름에 부합하는 뿌리 뽑힌 '방향성 없는'주체에 상응했다. 549


4.


세잔은 "사물 속에 있을 " 눈을, "보편적인 변화, 보편적 상호작용"을 기록할 수 있는 눈을 구성하기를 꿈꿨던 첫 인물이다. 556


5.


세계란 본질적으로 관계들의 세계다. 어떤 조건에서 그것은 어디서든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 존재는 본질적으로 어디서든 다르다고 한 니체. 세잔에게서도 관건이 되는 것은 관점의 복수성이 아니라 각각의 관점을 이루는 힘들과 강도들의 특별하고 생생한 관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567


세기 전환기의 세잔은 자기-변형, 자기-갱신이라는 모순적 기획의 화신이다. 5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