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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 고, 괴롭습니다.

[ ] 사랑에 빠진 자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과 달라진 자다. 당신이 눈앞에 보이면 언제라도 ‘변질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려 세포 하나하나가 준비하고 있는 자, 존재의 근육이 유연해진 사람이다. 사랑이 침입했을 때 즉시, 온몸에 당신이 전이되어 ‘타자로 감염된 존재‘가 되는 사람. 그래서 사랑에 빠진 자는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기 쉽다. 29

[ ] 그녀의 마음 상태는 충분히 전해졌지만, 고통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안개 가득한 도로처럼 윤곽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도로에 어떤 문제가 산적해 있는 걸까, 궁금하고 안타까웠다. 아마 말하기 쉽지 않은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무거운 고민거리도 밖으로 꺼내고 나면 하찮고 통속적인 사정으로 보일 염려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더 초라해 보이고 외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72

[ ]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76 정말 나를 힘들게 하던 게 결국엔 내 몸에 배어, 내게 영향을 끼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 같아. 나를 지불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들, 결국 그게 귀한 거야. 76

[ ] 마음이 변해서 사랑이 죽는 게 아니야. 돌보지 않아서 사랑은 죽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돌보지 않으면 죽어. 특히 더 많이 사랑받는 자들은 모르지. 사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러나 끝난 사랑은 누군가 돌보지 않은 결과야. 가꾸지 않으면 집 안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은 죽는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사랑은 깨지기 쉬운 원료로 되어 있어. 93 인생은 어떤 면에서 공평하지. 신이 가혹하게 굴면 굴수록, 영리하고 지독한 인간은 재주를 부리거든, 놀라울 만큼 빛나는 재주. 94 때론 청승이 우리를 돌본다. 96

[ ] 우리는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아무도 우리를 돌봐주지 않으니까. 힘을 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믿으면서, 고쳐 생각하면서 계속, 나아가야 한다. 화날 땐 화를 내면서 131 내 인생의 목표 중에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39 당신이 계속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완전히 구속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사세요. 그런 삶이 위기 상황에서 완충제 역할을 해줄 겁니다. ‘이게 나다. 나는 가치있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위기도 그다지 힘겹지 않을 겁니다. 189


볕뉘

0. 조용한 카페가 하나 생겨 책을 여러 권 챙겨갔다. 다른 책들은 조금 펼쳐질 뿐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이 책만이 오로지 읽힌다.

1.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하나 편에 프리다칼로 집이 나온다. 그리고 트로츠키가 그 집에 피신했지만 얼마되지 않아 그는 암살당한다. 그녀의 그림과 이야기는 풍성하다. 어디서 어떻게 가든지 이렇게 만나니 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몇 구절을 챙겨본다. 그러고보니 자신에 대한 배려의 감수성을 말하는 북디자이너의 글http://www.dchr.or.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media_c&wr_id=165&page=0&sca=&sfl=&stx=&sst=&sod=&spt=0&page=0을 읽었다. 낡고 시든 것은 없다며 어느 것이든 때에 따라 묵묵히 할 일을 해낸다고 말이다.

2. 예전 같으면 밑줄이 긋지 않을 랍비의 질문과 답변처럼이라는 구절에 금빛 색연필을 데었다. 신의 말씀과 해석을 그대로 남겨놓는 그들의 유산이 너무도 소중해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레비나스에 빚진 것이 외려 방법. 블로흐의 책들이 맴돌아 읽다나니 그의 거침없는 신에 대한 사랑의 편린들이 반짝여 주섬주섬 그 빛을 따라가본다.

3. 박연준시인은 베니스 푸디카에서 실연의 실패란 말을...그리고 여기서도 그렇게 쓰고 있다. 어쩌면 끊임없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매듭을 짓지 못해 끊임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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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의 여러 가지 조작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유동적이고 미해결이며 아직 순간순간마다 변할 때이고 그것들이 기분전환과 법칙, 정리나 예술작품 등으로 불리기 전의, 점차 완성으로 향하면서, 처음의 서로 닮은 상태에게 멀어져가기 이전의 상태에 있어서이다. 17

[ ]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감각은 정신을 인도하고 결국에는 정신 자체를 예상시키고 세부에 있어 상상될 수 있는 것을 총체로서 상상시키며 나아가서 이렇게 요약된 계기의 효과를 상상시키는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일반성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25

[ ] 보편적 인간도 또 그저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항상 응시하는 광경에 자기를 침투하는 것으로 돌아간다. 자기의 특이한 본능이 초래하는 도취 그리고 현실의 아주 작은 사물에서 주어지는 감동에 그는 복귀해가는 것이지만, 이 본능과 현실의 사물이라고 하는 두 개를 주의해보면, 그것들은 그 성질 전부에 의해 확실히 닫혀진 것이며 게다가 어쨌든 많은 효과를 응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8 멋진 풍경조차 그들에게는 그다지 열린 것은 아니다. 겨우 몇 걸음의 이동, 광선의 정도, 시선에 무겁게 드리워지는 졸음 등이 미세한 변화를 주면 그들에게는 큰 영향을 준다. 자신이 받아들이는 감각을 무엇 하나 다시 만드는 것 없이는 무엇 하나 파괴하는 것도 없는 것이다. 29

[ ] 상징적 정신은 많은 형태의 더 할 수 없이 광범한 수집, 자연이 보여주는 여러 태도의 투명한 보고, 언제나 절박한 것이면서도 그 영역의 확대에 따라서 증대해가는 잠재적 능력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 수많은 존재, 수많은 상기 가능한 기억, 그리고 엄청난 수의 다른 사물을 세계 속에서 식별할 수 있었고 이들 사물을 무수하게 많은 다른 방법으로 배치하는 힘이 이 정신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얼굴, 해부학적 구조, 기계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43 그는 모든 건물을 새로 짓는다. 다른 재료들을 결합하는 모든 방식들이 그를 매혹시킨다. 공간의 여러 차원에 물체들을 배치하는 것을 그는 즐긴다....남쪽으로 예각의 삼각형을 만드는 철새들의 비상의 구조는 생물들의 합리적인 조합을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즐겼던 것이다. 46 그는 남자와 여자의 육체를 숭배했는데 그것이 만물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어떻게 장미가 자라 사람의 입에 닿을 정도가 되는지, 어떻게 거대한 플라타나스 나무가 인체의 높이의 20배를 넘는 정도가 되는지를 느낀다. 48

[ ] 그는 현대의 인간들을 절망에 빠뜨리게 할 만한 인물이다. 현대의 인간들이란 젊은 시절에 특수한 전문분야에 입문해서 그곳에 닫힌 상태로 있으면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인내, 단일한 방향, 전문화와 쉼 없는 노동이다. 여기서는 생각이 없는 것이 장점이 된다. 50

[ ] 어떤 감각을 연장시킴으로 해서 생기는 망연자실의 상태가 유사한 데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싶다. 어떤 영역에서의 위대한 개선이라는 것이 십중팔구는 그 영역에서의 위대한 개선이라는 것이 십중팔구는 그 영역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방법과 관념의 침입에 의해 획득된다는 것이다....진보의 원천은 우선 이미지의 형성, 이어서 언어의 형성에 있다...요컨대 한 사람의 인간이 소유하는 언어의 양이 그가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는 기회를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느냐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51

[ ] 어떤 회화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처음에는 거기서 어떠한 물체의 모습도 인지하지 않은 채로 그저 한정된 장에서 여러 색채의 반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토대로 일련의 추론을 해보는 것이다. 그 추론을 진전시키면 은유에서 은유로, 가정에서 가정으로 나아가면서 마지막에는 미리 가지고 있다고는 하기 어려운, 주제의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가 하면 따로는 단순한 쾌락의 의식에 도달하게 된다. 59 모든 예술작품은 일종의 귀납법, 즉 정신적 이미지를 산출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평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산출이 어느 정도 에너지에 찬 것이고 어느 정도 피곤하게 하는 것인가는 이미지의 산출을 촉진하는 것이 꽃병 위의 단순한 무늬인가 혹은 파스칼의 단장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58

[ ] 이러한 관념에 의해 겉보기에는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 예술가와 학자의 영역을 횡단할 수 있으며 보다 시적이고 보다 환상적인 구축물에서 만질 수 있고 계량화할 수 있는 구축물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을 잃지 않으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구성의 문제는 분석의 문제와 서로 관련되어 있다. 물질의 구조에 있어 관념의 형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너무도 단순한 개념을 포기한 것은 우리 시대의 하나의 심리적인 승리이다. 67 가장 중요한 문제인 구성이 문제를 언급했고 작품의 효과에 관한 한 상대적인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이상할 정도로 난해하고 무수한 곤혹을 초래하는 관념과 언어의 도움을 받아 해결된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놀랄 것이다. 73

[ ] 그는 세계 자체의 제작자였다. 83

[ ] 나는 어떤 기능을 사용할 때 다른 기능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유명한 작가 중에 그 작품이 자신의 감정의 배설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그들은 작품을 쓰면서 자신들이 몰랐던 것을 만드는 것을 배우지 못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89

[ ] 하나의 멋진 생각을 주는 데 있어 정신은 백만 개의 어리석은 생각을 뻔뻔하게 속삭이는 것이다. 그 하나의 기회조차 우리의 목적에 맞도록 조정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광맥 안에서는 별다른 가치가 없던 광석이 햇빛으로 나와 표면을 가공하게 됨에 따라 비로소 중요성을 갖게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92 진정한 가치는 우리의 욕구와 만남,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작품을 숙고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의 인간과의 전체적인 협력에 유래하는 것이다. 93 우리의 사유에 평균치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쉼없이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우리 안의 선택하는 부분, 우리 안의 조직하는 부분이란 것이 된다. 93 위장과 기만은 지적 야심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는 것이 결과인지 알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구을 바꾼 것을 발견으로 여기고 은유를 증명이라 생각하고 언어의 토사물을 중요한 인식의 급류로 보며 자기 자신을 권위자로 생각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는 병이다. 94

[ ] 수많은 우상에서 적어도 그 중 하나는 숭배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어쨌든 선택해야만 하는 데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눈앞에 둔 것은 ‘완고한 엄밀함‘이다. 94

[ ] 이 탁월한 인간은 결코 독창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 개성은 그저 평범함에 지나지 않는다. 불규칙한 데가 거의 없다. 지적인 것에 대한 맹신도 없으며 무의미한 두려움도 없다. 그는 분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분석을 진행하면서 멀리 떨어진 결과에 도달한다...그는 모방하고 혁신한다. 오래된 것을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도 않으며 새로운 것을 새롭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영원히 현재적인 어떤 것에 질문을 던진다. 95 호기심과 능력 사이의 평형상태. 이 평형상태는 균형의 대가에 의해 항상 회복된다. 책략이나 현혹에 대한 경멸. 그리고 가장 창의적인 인간임에도 자기과시에 전혀 무지하다는 것. 97 레오나르도는 탐구에서 탐구로 나아가면서 오로지 자신의 본성을 더욱 놀랍게 단련하는 조련사가 된다. 그는 자신의 사고력을 한없이 조련하고 시선을 단련하며 행동을 발전시킨다....일단 자신을 느슨하게 풀어놓았다가 다시 집중하고 의지와 능력의 대응을 탄탄하게 조이며 예술에서의 추론을 더욱 밀고 나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98 이 세계의 형상은 우리가 그 무한의 무리의 모든 요소를 알지 못한 채로 소유하고 있는 형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발명가(창작자)의 비밀이다. 113 의식은 후퇴하고 모든 것의 밖에 자신을 두고 있으며 어떤 것이라도 자신이 구상할 수 있는 것 혹은 대응할 수 있는 것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것은 모든 것을 흡수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돌려주지는 않는, 하나의 검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의식은 이제 두 개의 본질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실체, 즉 ‘자기‘와 ‘X‘만을 필연적인 존재로서 간주하게 된다. 어느 것도 모든 것에서 추출되고 모든 것에 포함되며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동등하면서도 서로 불가분인 두 개의 존재. 114, 115

[ ] 인간의 특징은 의식이다. 그리고 의식의 특징은 무엇이 나타나더라도 의식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비워내는 것, 예외 없이 거기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행위, 모든 사물의 질뿐 아니라 양에서도 독립된 행위이며 그 행위에 의해 정신의 인간은 최종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된다고 해도 그것을 무한히 거부하는 존재로 환원되게 된다. 118 정신의 활동은 결국 이처럼 극한적이면서 초보적이기도 한 고찰을 정신에게 강제하지 않을 수 없다. 증식하는 정신의 운동, 마음속에서의 이의제기, 다양한 혼란, 몇 번이나 회귀해서 분석하려는 자세...변화, 우주의 끊임없는 다면적인 작용에 저항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의식, 그것도 가장 추상적인 상태에 있는 이 의식뿐이다. 119

[ ] 그는 자신의 인격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 인격을 포기했으며 주체의 위치에 인격 대신에 이 형용하기 어려운 자아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 자아는 이름도 없으며, 역사도 없고, 반지나 행성계의 중심처럼 감지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에 뒤지지 않게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전체가 어떠한 것이든, 어쨌든 전체에서 생기는 자아인 것이다. 123 사람이 작품의 원인이다. 126 헤라클레스는 우리보다 많은 근육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근육이 훨씬 튼튼한 것이었다. 그가 들던 바위를 나는 움직일 수도 없지만 우리의 기계(신체)이 구조가 다른 것은 아니다 . 뼈와 뼈, 섬유와 섬유, 행위와 행위로 보자면 나는 헤라클레스와 대응할 수 있다. 이 서로의 유사성 덕에 나는 그의 작업을 상상할 수가 있다. 129

볕뉘.

1. 폴발레리는 영웅으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면모로서의 요소들을 신비화하지 않는다. 하나하나를 탈각하면서 그는 그저 평범한 인간임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작가와 작품이 떨어져 있는 경우를 들면서 그것이 얼마나 위선과 기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완고한 엄밀함‘을 말이다.

2. 자기 과시에는 무지한, 그러나 자신에게는 엄밀하고 철저한 인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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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춤 데생 -폴발레리

[ ] 우리 눈에 아주 익은 대상까지도 그걸 그리려 하면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로 그것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56

[ ] 사실상 어떤 것을 그리지 않고서 그것에 대한 나의 인지를 명확히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우선 내가 인지했고 잘 알았다고 믿은 것을 눈에 띄게 변형시키는 의지적인 주의력이 없다면 그것을 그릴 수가 없다. 57

[ ] 의지를 유지시키는 것이 그림에는 필수적이다...눈은 방황하려 한다. 손은 움츠러들어 슬그머니 도망가 버리려 한다. 그림의 자유를 확실히 하려면, 그래서 화가의 의지가 그 자유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국부적 자유에 이겨야 한다. 그것은 통치의 문제다. 57

[ ] 독립된 여러 기관, 그것들 자체의 경향과 이온, 그것들의 자유자재는 모든 의지적 일에 대립된다. 그래서 그림이 가능한 한 가장 가깝게 하나의 대상을 재현하려 할 때 그림은 가장 각성된 상태를 요구하는 결과가 생겨난다. 58

[ ] 예술은 나아가고, 물러나고, 몸을 기울이고, 눈을 깜빡거리며, 자기 눈의 부수물처럼 된 몸을 움직이며, 완전히 겨냥, 조준, 수정, 정리의 기관이 된다. 59

[ ] 형태의 최고의 정확성에 도달하려는 작가가 초고를 되풀이 쓰고 퇴고를 계속하는 것처럼, 그처럼 드가는 되풀이해서 나아가고 그의 예술 작품에 대해 사후에 발표해도 될 상태에 다다랐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한없이 그의 그림에 다시 달라붙어 그걸 한장한장 다시 모방하고, 다시 모방하여 더 심화시키고, 옥죄이고, 감싼다....드가는 형태를 색이나 재료와 구분한 추상화가에 속한다. 그가 화폭에 모험을 하고, 제작의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것을 싫어했으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는 말을 불신하는 뛰어난 기사였다. 60, 61

[ ] 점 상태와 사물 상태, 혹은 대상 상태 사이에 일련의 신비스러운 조작이 개입하여, 최선을 다해 통일성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여건을 정리함으로써 모순을 해결하고, 유아 시절부터 형성된 판단을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계속성, 연결, 변화 양태 등을 강요하는데, 그것들을 우리는 공간이나, 시간, 질료, 운동이라는 명칭으로 묶어 놓는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는 그 동물을 실제 본 것처럼 상상해낸다. 63

[ ] ˝대단해요. 하지만 이 잎을 그리느라고 얼마나 한심해 했을까요. ....정말 지겨운 일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조용히 있게.˝ 드가가 나에게 말했다. ˝지겹지 않다면, 즐겁지 않을테니까.˝ 77

[ ] 그들은 시간과 의지를 늘려가는 노름꾼들이다. 78

[ ] 나는 그림보다 더 지성적인 예술을 알지 못한다. 복잡한 외관에서 새로운 묘선을 추출해내고, 구조를 요약하고, 손에 양보하지 않고, 형태를 쓰기 전에 그것을 읽고 또 자체로 말하게 한다. 혹은 발명이 순간을 지배하며, 생각이 눈 밑에서 종이 위에 드러나는 것에 복종하고 그것으로 정확해지고 부유해지건, 정신의 온갖 재능이 이 작업에 사용된다. 그 작업에서는 그 사람의 모든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90

[ ] 생각 안 해도 그것의 실체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림에 대해서 그게 형태를 보는 태도라고 말한 드가와, 시는 말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말라르메는 저마다 자기 예술에서 ‘그걸 벌써 발견하지 못했으면‘ 완전히 그리고 유용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요약한 것이었다. 97

[ ] 70세 때에 그는 에른스트 루아르에게 말했다.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해야 할 것에 대해 높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게 없으면 일할 필요가 없다.˝ 99

[ ] ˝그림이란 잘 모를 때면 그리 어렵지 않지. 하지만 알게 되면, 오, 그때는 다른 거야!˝ 106

[ ] 풍경에 대한 관심은 점차로 방향을 바꾼다.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113/미술계에서 내가 말한 모든 것은 문학계에서도 멋진 유사성을 갖고 있다. 묘사가 문학을 침범한 것은 풍경이 미술을 침범한 것과 비슷했다. 116/ 이 대중은 세련되면 될수록, 더 나아가며 다시 말해, 내가 말한 옛날의 이상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완전인에게서도 멀어진다. 완전인은 죽는다. 117 정치, 경제, 삶의 방법, 오락 방법, 움직임의 방법이 문제될 때 나는 현대성의 모습이 정신적 중독의 그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관찰한다. 우리로선 양을 늘리거나 다른 독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법칙이다. 더 나아가고, 더 격렬해지고, 더 커지고, 더 빨라지고, 언제나 더 새롭다 - 그게 바로 감수성이 무뎌지는 데 대응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가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 우리에게는 육체적 동인이 더 격렬하게 증가하고 계속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옛날의 예술에서 지속에 대한 생각이 맡고 있던 역할은 거의 없어졌다. 이백 년 동안 감식되도록 하는 자는 오늘날 없다고 생각한다. 117,118

[ ] 변화를 위한 변화의 악마는 많은 것의 진정한 아버지이다. 그 악마는 우리로 하여금 미를 진 속에, 진을 순수 속에, 순수를 부조리 속에, 부조리를 평범 속에 던지게 한다. 그는 세기마다, 적어도 한 세기에 한 번은 자연에의 기원이라는 큰 노래를 부른다. 120 그들 중에서 한 세기가 지나도 그 영광이 줄어들지 않은 자들은 역시 노력에의 의지, 일 자체에 대한 열정, 점점 더 단단하고 섬세한 방법의 과학을 얻으려는 열망이 무시되지 않고, 자기 시대의 오류 때문에 희생되지 않은 자들이다. 122

[ ] 나는 그에게 말했다. ˝도대체 데생이 뭘 의미하는 겁니까?˝ 그는 그의 유명한 공리로 대답했다.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 123 예술가의 가치는 같은 방향의, 혹은 같은 경향의 어떤 불균등성에 매달려 있는데, 그것은 어떤 모습, 어떤 장면, 어떤 풍경에 관해, 어떤 사람의 능력, 의지, 요구, 도치와 재구성능력 들을 다 드러내 준다. 이 모든 것의 그 어느 것도 사물에는 없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125

[ ] 항해술의 언어나 수렵의 언어보다 더 아름답고 더 실제적인 것이 또 있으랴....왜냐하면 이 예술에서는,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실행에 이르는 것만이 문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알고 있는 것이다 128/화가라면, 언제나 분절 언어의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자를 위해 그리기를 꿈꾸어야만 하리라. 아주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우리들을 찬탄 때문에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129

볕뉘

0. 에드먼드 윌슨 [악셀의 성] 폴발레리 편에 이어지는 독서이다. 여기서 폴발레리는 테스트씨의 작품이 초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과 연관된 작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1. 드가.춤.데생이라는 작품 속에는 드가가 얼핏 테스트씨란 작품 롤모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라는 대목이 나오긴 한다. 장 주네의 자코메티 비평보다 어쩌면 더 진솔하면서 더 시공간의 확장을 담은 예술비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2. 위 흔적들은 평이하지만, 어떤 시선으로, 어떤 방법으로 예술이 감수성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는지, 예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상징주의라고 폄훼하는 비평에는 그들의 삶과 예술관, 인생에 대한 논의가 빠져있다. 그들은 나름 삶을 걸었고, 작품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진정 말년이라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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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 ] 브리세, 로트레아몽, 말라르메 등. 루셀은 내게 길을 보여주었다. 나의 정신적 도서관에는 루셀의 모든 작품을 소장할 것이다. 말라르메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동물적인 표현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으로, 이것이 예술이 가야할 방향이다. 나는 ‘화가처럼 바보스럽다‘는 표현은 신물이 난다. 29

[ ] 예술가의 기량과 기교, 생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상물은 캔버스 위에서 생명을 얻으며, 그것은 넓거나 좁은 의미의 ‘회화‘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캔버스 위에 있는 모든 것의 조화가 예술작품에 이르는 행로 범주에 속하게 된다. 33

[ ] 1912년에 페르낭 레제가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콘스탄티 브랑쿠시, 뒤샹과 함께 항공 공학 박람회에 다녀왔는데, 뒤샹이 친한 친구인 브랑쿠시를 돌아보며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라고 했다고 한다.....아폴리네르는 피카비아, 뒤샹과 함께 했던 자동차 여행 끝에 이렇게 적는다. ˝치마부에의 그림이 거리에 도열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는 루이 블레리오의 비행기를 보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인류는 지난 천 년 동안 영광스러운 인문 과학(아카데미)의 호위를 받으며 고민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마르셀 뒤샹처럼 미학적 편견에서 자유롭고 열성적인 예술가에게는 예술과 사람을 융화시키는 것이 책무일 것이다.˝...그리고 어느 면에서 아폴리네르가 옳았다. 뒤샹이 회화를 20세기 사회상의 산물로 변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1

[ ] 푸엥카레..˝과학은 사물 그 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단지 사물간의 관계에만 닿을 수 있는 것이다...이 관계의 외부에는 인식할 수 있는 실재가 없다.˝ 뒤샹 자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푸앵카레의 이런 생각들이 이후 작품 중심사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그가 제작한 모든 작품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마치 루셀의 동음이자처럼 서로를 반영한다. 43 나중에 그는 장난감 인형의 집처럼 펼쳐볼 수 있는 형식으로 자신의 주요 작품 여러 점을 복제해서 상자 안에 넣음으로써, 서로 근접한 맥락으로 다루고 검토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보통 완성과 함께 작품이 끝난다는 생각을 급진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44

[ ] 그는 그림과 회화의 전통을 모욕할 만한 새로운 공식을 찾는 데 흥미가 있었다. 그는 냉혹한 염세주의였지만 자신의 아이러니를 즐겼다. 그가 술을 마시면서 보여준 모든 것을 버리려는 매력적인 태도, 그가 공들여 만들어낸 말장난, 감상마저도 포함한 모든 가치에 대한 경멸만이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 매력과 그에 대한 궁금증의 이유는 아니었다.˝ 51

[ ] ˝작가는 자신의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그 영혼은 작품으로 흡수되어야 해. 그게 중요한 거야˝ 뒤샹이 지각 없는 예술형식을 혐오했던 데서 시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볼 수 있다. 76

[ ] 섹슈얼리티는 뒤샹에게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였고, 그것은 20세기 초에 모든 진보적인 에술가들이 추구했던 존재의 합리성이었다. 뒤샹은 가장 진솔하게 대했던 미술사가 로렌스 스티펠에게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난, 페니스가 여자의 질에 의해 꽉 조여지는 것처럼 정신적인 문제를 움켜잡고 싶소˝ 스티펠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뒤샹은 비애를 쾌락으로 감정을 사고로 전환하는 방법을 추구했다. 그 전환의 과정은 괴상했지만, 그 본질은 대립과 증류된 자극을 대리물인 오브제에 투영하는 ‘바꿔놓기 게임‘을 발명하는 데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뒤샹은 정신적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샹은 스티펠에게 ˝난 사실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오. 하지만 나 자신이나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기계를 상대하는 것이 더 나았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티펠은 ˝기계나 메커니즘이 고통받도록 만드는 것을 통해 뒤샹은 시를 연구하고 생존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뒤샹의 시는 마치 ‘행간‘처럼, 입 밖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고, 항상 형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감정을 뒤섞어서 재창조하는 과정에 존재하는 것이다. 84

[ ] 아폴리네르는 뒤샹이 ˝보편화된 지성이 아닌, 집합적인 형태와 색채, 그 지각이 아직 지식이 되지 않은 자연과 씨름하는 예술을 창조하려고 노력한다˝라고 쓴 바 있다. 93

볕뉘

0. 정작 앞에서 장황하게 언급한 뒤샹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찾아보고 있다.

0.1 외할아버지가 사업가이자 판화가였고 아버지는 공증인이었고 노르망디 블랭빌의 시장이기도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형 두명도 미술을 하였고 여동생도 회화와 드로잉을 하였다고 한다.

1. 읽는 내내 말라르메를 보는 듯했는데, 아니 오히려 더 한 것 같다. 아직도 그의 작품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듯싶다.

2. 푸엥카레의 코멘트처럼 이 분야도 좀더 살펴봐야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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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험

[ ] 카프카와 죄의식의 생산: 사회보험은 노동운동으로부터 태어났다. 진보의 빛나는 정신은 따라서 사회보험 안에 거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이 제도는 관료들의 어두운 둥지일 뿐이다.(카프카) 268 [성]의 연락비서인 뷔르겔은 말한다. ˝우리는 시간, 시간 그 자체와 노동 시간 사이에 어떤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이런 구별들은 우리에게 낯선 것입니다.˝/˝K는 행정과 삶이 이 정도로 겹쳐지는 것을 결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었다. 너무 겹쳐져서 사람들은 때때로 행정이 삶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느낄 정도였다.˝ 268 [소송]에서, 고발은 절대로 명확히 진술되지 않는다. 실업은 네 잘못이야라고 암시하려고 시도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업이라는 잘못은 모호하고 불확정적이고 부정확한 윤곽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고발은 점차 어떤 것에 대해 죄를 지었다는, 잘못을 했다는 의심과 느낌을 정착시킨다. 269 삶에 있어 실제적 석방은 단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표면적 석방은 사람들이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군대로, 군대에서 공장으로, 하나의 감금에서 다른 감금으로, 하나의 유죄에서 다른 유죄로 옮겨가는 규율 사회들에 속한다. 그리고 각각의 옮김은 판단/평가에 의해 표시된다. 사람들은 하나의 석방 - 너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너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등-에서 다른 서류-너는 군인이다. 너는 노동자이다. 너는 은퇴자이다 등-를 심리하는 다른 소송으로 옮겨간다. 무한한 석방유예는 반대로 결백과 유죄의 추정에 동시에 무한히 속하는 상황으로 유지한다. 271 소송의 첫 번째 단계의 무한한 연장은 끝이 없는 추적조사를 포함한다. 피고소인의 시간표와 추적조사의 시간표는 서로를 따른다. 272

[ ] 카프카, 예술, 작품, 예술가 그리고 공중: 카프카는 그의 마지막 단편소설(1924) [여가수 조제피네, 또는 쥐들의 인민]에서 마르셀 뒤샹과 원거리 대화를 시작한다. 274 쥐들의 종족은 음악에 재능이 없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걱정에 사로잡힌 쥐들은 ˝음악처럼 자신들의 삶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 조제피네는 인민 안에 음악에 대한 사랑을 유발할 줄 아는 유일한 자이다. 275 하지만 하찮은 막노동꾼들도 휘파람소리를 힘들이지 않고 내지만 조제피네는 그 소리도 간신히 내는 정도이다. 276

[ ] 호두를 깨는 것은 정말로 전혀 예술이 아니다. 아무도 공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의 눈앞에서 호두를 깨기 위해 관객을 소집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런데도 그것을 한다면, 그리고 그의 목적에 도달한다면, 그렇다면 호두를 깨는 것만이 관건이 아니다. 아니면, 실제로 그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너무 잘할 줄 알다 보니 그것이 예술이었다는 것을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그리고 이 새로운 호두 깨기가 그것의 진짜 속성을 폭로하기 위해 출현해야만 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예술가가 우리들 대부분보다는 호두를 약간 덜 잘 깬다면, 생산된 효과는 아마도 더 클 수가 있기 때문이다. 277

[ ] 뒤샹에게서처럼 레디메이드는 ˝실재˝를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정신의 기술이다. 왜냐하면, 이 이상한 휘파람 불기를 경험한 두에 쥐들은 이렇게 확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서는 전혀 감탄하지 않는 것을 그녀에게서 감탄한다.˝ 바로 보통이고 평범한 활동 안에, 모든 사람이 할 줄 아는 것 안에 낯선 자, 이방인, 친숙하지 않은 자가 거주한다. 278 조제피네의 예술은 아름답지 않고 비범하지 않고 숭고하지 않은 기술들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의 시공간을 중지하면서 예술이 말, 취향, 의견, 평가로 고정되기 전에 아동기의 순수함을 향해, 아동기의 전언어적이고 전인식적인 세계를 향해 열린다. 278 비 기교와 재료의 빈약함은 공중에 대한 전통의, 저자의, 작품의 권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민주적˝ 기술들이다. 279 모든 교란은 환영이다. 바깥으로부터 온 모든 것은 노래의 순수함을 해친다. 그리고 ˝군중을 깨우는 데˝ 기여한다. 가장 평범하고 가장 보통인 활동들의 가장 작은 것 안에서 ˝비가시적인 것˝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279 그녀는 일종의 보장된 소득을 요구한다.조제피네에 따르면 노래가 초래하는 피로가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한 노동의 피로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들은 그녀가 말하게 내버려두고 무시한다. 282, 283

[ ] 조제피네가 그녀의 노래가 야기하는 피로의 ˝인정˝을 위해 여러 형태로 투쟁할 때 바로 그 대립 자체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술의 지위와 노동의 지위라는 두 개의 지위 모두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것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고 미적인 새로운 체계의 발명을 초래할 것이다.....화자가 보기에 ‘조제피네는 쇠퇴와 잊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권위적으로 주권을 가진˝ 인민은...˝자신의 길을 계속 간다.˝..만약 우리가 우리의 해석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이 새로운 미적 실천들과 이 새로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조건들을 통합하는 것에 대한 인민/계급의 거부가 우선은 인민/계급의 쇠퇴를, 다음에는 인민/계급의 소멸을 이끌어낸다고 확언할 수 있을 것이다. 284

볕뉘.

0. 말미 부록이다. 오히려 이 부분부터 거꾸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올해 초 벗에게 받은 카프카 책이 떠오른다. 단편집은 살펴보지 못한 것 같은데 호기심이 생긴다.

1. 저자는 시간이 회색톤으로 균질화되는 것을 되살핀다. 그에 앞서 대부분의 삶이 저당잡혀있다는 것을 문제삼는다. 빚.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정해놓는 일상. 무섭도록 획일화된 진한 회색빛. 그 나날이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이지도,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내는 모태가 되지 않는다. 기다리거나, 여물거나, 꽃잎이 벌어지는 시간을 달리보지 않는다. 텅 빈 시간. 멍 한 시간들.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시간만을 환산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사회의 기준에는 약한자나 기울어지거나 아픈 자나 아플 자는 그 성원이 될 수 없다.

2. 희귀한 조제피네. 그녀를 위해 말을 만들어내고, 삶의 시간을 찾아내고, 무색하기만 한 행정에 그라비티를 해야할 지경일 것이다. 하물며 정치는 행정의 뒷짐을 진 채, 새로운 것이라면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바보임을 명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는 사실. 하나 하나 아둔을 풀어헤치고 다시 맞추어나가야 할 것이다.

3. 심정적인 것들이 다시 확연해지거나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더 위태로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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